민수기

민수기21장4절-9절 (불뱀과 놋뱀)

남수연 2021. 1. 5. 17:52

www.youtube.com/watch?v=3hG8csVmgkw&feature=youtu.be

드디어 올해의 가장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2021년은 작은 희망, 큰 걱정 속에서 맞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월가에서는 내년에 삼십년 만에 대형 인플레이션이 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푼 돈이 1경5,225조원인데, 이것이 결국 엄청난 물가상승을 가져온다는 것이죠.

백신이 보편화 된다 해도 결국 코로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풍토병으로 남을 거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예측도 나온 바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올 초에 중대본부장이 말한 대로 이제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이렇게 될지 모르고 맞이한 2020년이었지만 이번엔 좀 다른 각오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송구영신예배에서 나누고 싶은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지는 가나안 길목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입니다.

광야의 시간이 거의 다 지나고 약속의 땅으로 진군하는 가나안의 길목에서 이스라엘은 무서운 불 뱀 떼를 만납니다.

이스라엘이 길로 인해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호르마에서 승리를 거둔 그 사람들이 오늘 전혀 딴 사람이 되어서 죄를 짓고 엄격한 징계를 받습니다.

우리도 아마 이렇게 올 한 해를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매일 호르마의 승리만을 거두며 살지는 못했습니다.

새해를 앞둔 우리는 여전히 이런 승리와 실패를 반복하며 한 해를 보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올해 보다는 실패보다 승리를 더 많이 거두는 한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삶에서의 실패는 뱀에 물린 것 같은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배운다면 마음을 다잡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1. 이스라엘이 큰 실패를 한 이 광야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들이 걸어갔던 40년의 길은 특별한 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매일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들은 우리가 그렀듯 순탄치 않은 환경을 만난 것이죠.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살펴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을 것입니다.

4절,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지난 주 잠깐 말씀드렸죠.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직선도로인 왕의 대로를 이용하는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에돔 땅을 관통합니다.

모세가 에돔왕에게 통행을 요청했지만 군대로 가로막고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해는 되죠.

2백만명의 민족이 자기 땅을 통과하겠다는 데 순순히 문을 열어 줄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말씀대로 에돔과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우회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 우회로는 현재의 지도상에도 사막과 광야길입니다.

그 길로 가다보니 백성들의 마음이 참을 수없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 울퉁불퉁한 황무지를 가족과 가축을 거느리고 가재도구를 싣고 걸어가는 걸 상상해 보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어쩌면 이들의 입에서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38년을 광야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간 광야 생활을 명령하셨으니 2년만 더 있으면 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왜 새삼스럽게 그 광야 길이 못 견디게 되었을까요?

거의 다 왔을 때 사실 더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죠.

그런데 이들의 불만은 호르마에서 승리한 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성공하고 승리한 뒤가 항상 제일 위험합니다.

아랏왕과 싸워보니 에돔도 싸워서 이길 것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시면 당연히 이길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들과 싸우지도 못하게 하고, 길도 열어주지 않으셔서 이 고생을 하게 하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까, 에돔 편이십니까?

이런 것이죠.

다 같이 잘 안될 때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 사장님들이 그러잖아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닌 데 어떡하겠냐고.

그런 줄 알았는데, 어제 뉴스를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집으로든 주식으로든 평균적으로 1억 이상을 벌었더군요.

올해가 오히려 자기 삶이 도약할 수 있는 그런 한 해였다고 말합니다.

여기 해당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뉴스를 볼 때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여전히 광야를 지나는 데, 다른 사람은 재산이 늘어나고 더 잘 살게 되었다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래서 마음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길을 막은 에돔은 의기양양 하고 우리는 이 험악한 광야 길을 걷다가 잘못하면 쫄딱 망할 것 같은 것입니다.

시간이 가고 행진이 어려워질수록 점점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이죠.

그러나 단지 그런 연약함에서 오는 불평 때문에 이스라엘이 불뱀의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2. 이 원망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선의를 모욕하고 구원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건 심각한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광야에서 38년을 인도해 오셔서 생존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관계 자체를 부인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주 큰 것입니다.

불안한 동거이고 불편한 동거였다는 게 드러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들은 거의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2세대입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부모 세대와 똑같은 원망을 쏟아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유전자의 승리인 것이죠.

이것이 우리 죄의 본성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원망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격을 모독하고, 능력을 안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적인 죄 속에는 이렇게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범죄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에 손을 댈 때, 하나님이 좋은 것을 감추고 못하게 한다는 불신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어떤 일로 큰 궁지에 몰릴 때 우리 맘에 먼저 드는 생각이 하나님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못되었는데 화살은 하나님께 향한다는 것이죠.

내 인생을 한번 맡겨 봤더니 왜 이 모양으로 인도하시냐는 것입니다.

욥도 자기 속에서 나오는 반항심을 보고 놀랐잖아요?

욥기23장2절,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우리에게 솔직해지자면 몸만 좀 아파도 하나님께 화가 납니다.

사실은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도 일부는 하나님께 화내는 것입니다.

2년이 지나면 얻을 하나님의 구원을 감지덕지해야 할 이스라엘사람들이 어이없이 이 판을 뒤집어 엎겠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히 지고 가야 할 죄의 본성입니다.

이걸 잘 알고 있기에 우리를 엄습하는 생활의 문제 앞에서 마귀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뒤흔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은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호르마에서는 전쟁을 벌이겠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죠.

길이 나쁜 것하고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하고 어느 게 더 무섭습니까?

당연히 전쟁 하는 게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목숨을 건 전쟁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이스라엘이, 가는 길이 불편할 때는 그 믿음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큰 어려움만 사람을 넘어뜨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정도의 고난을 만나면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믿음으로 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만 의지하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놀랍게 뛰어 넘기도 하죠.

그런데 지루하게 이어지는 불편함과 늘 신경 쓰이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계속되면 오히려 더 쉽게 불평이 나오고 믿음도 메말라가기가 쉽습니다.

이런 코로나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에 금이 가면 나머지 것들은 봇물 터지듯 무너집니다.

처음엔 길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더니 그다음은 그동안 받은 은혜를 다 엎어 버립니다.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만나는 지겨워 죽겠다 이러다 다 죽겠다.

이스라엘이 지나온 40년 동안 이것 없어서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길이 험해서 죽은 사람이 없었어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은 사람도 없고, 물이 없어서 탈진해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

만나를 먹다 질려서 죽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래서 죽은 게 아니라 죄를 지어서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로 죽었잖아요?우리가 힘들어 죽겠다, 이거 해결하지 못하면 정말 죽을 것같다는 문제로는 안 죽습니다.

하나님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밀어내면 그게 우리를 죽기까지 몰고 갑니다.

새해에 어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닥친다 해도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엎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한순간도 놓치지 마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드립니다.

 

3. 결국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광야의 무서운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6절, 여호와께서 불뱀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모든 심판받은 인간들 가운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순종의 언약으로 구원을 보장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은혜를 거절하는 순간 다시 그 심판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자식 키우다 보면 한번쯤은 날 위해 뭘 해준 게 있냐고 대드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안 들어 보셨다면 애들이 용기가 없어서 못한 것입니다.

그동안 자식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며 키웠건만,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참 억장이 무너지죠.

정말 네 힘으로 한번 살아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네 힘으로 한번 살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광야의 불뱀들이 이스라엘 장막을 찾아 들어가 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오히려 이들이 40년간 하나님께 어떤 은혜를 입으며 살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생존이 불가능한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매일의 양식.

그리고 불뱀과 전갈이 득실대는 광야에서 한 사람도 물려 죽지 않게 이스라엘 진영을 보호해 주셨던 것이죠.

그것은 하나하나가 광야에서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지만 매일의 기적이 일상이 되어 당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은 머잖아 불평이 됩니다.

올해 하나님께서 우리도 이렇게 신실하게 인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셨고 코로나에 물리지 않게 지켜주셨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낼 믿음을 주셨고 하나님 또한 신실하게 우리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비록 거친 길이었다 해도 걸어올 수 있는 두 발에 힘을 주신 것은 또 어떻구요.

그러나 호르마의 전투처럼 위급할 때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이겨낸 것도 나였지만 지루하게 계속 되는 거친 길에서 낙담하고 원망했던 것도 나였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얄팍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랐던 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불뱀 사건의 전체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싫어했던 그 사막과 광야길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 본문 다음에 펼쳐집니다.

우리에게 지름길을 돌아 거친 사막과 광야를 걷게 하셨다면 이유가 있으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 코스를 아무 문제없이 넉넉히 진군합니다.

되니까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21절부터 35절까지를 보면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인 시혼과 바산을 정복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전투가 왜 중요하냐하면 이 두 왕을 정벌한 소문이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본토에 널리 널리 퍼졌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정탐할 때 기생 라합이 그러잖아요?

‘너희 민족의 하나님이 시혼과 바산에 행하신 일을 듣고 우리 민족들의 마음이 다 녹았다.’

가나안 입국에 앞서 완전 기선제압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이 얼마나 사기가 올랐겠습니까?

우회도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왕의 대로를 지나 요단강을 건넜다면 이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성경을 보다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모리 왕들의 마을을 정벌하고 그 촌락에서 살았다는 구절이 25절에 나옵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광야에서 태어나 천막 생활만 했잖아요?

울타리가 있고 지붕이 있고 문빗장을 지를 수 있는 안전한 집을 난생 처음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광야 길을 잘 견딘 사람들에게 가나안땅의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미리 맛보게 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사막과 광야를 허락하셨다면 그 다음은 천국을 맛보는 기쁨도 반드시 허락하십니다.

올해 길다면 긴 광야를 지나온 우리 모두에게 새해에는 이런 놀라운 축복도 예비해 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4.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것은 장대에 매달은 놋뱀이었습니다.

7절,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하지 않으신 게 있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다시 구해주시기 위해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고 하십니다.

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나님이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다시 구원하시는 해결책은 장대에 높이 매단 놋뱀이었습니다.

이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는 모세의 말을 듣고 그것을 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구약성경의 역사 속에서 일관적으로 지시하시는 그 예수님의 대속을 또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인 것이죠.

물론 우리의 정서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뱀이 장대에 달린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뱀은 사탄을 뜻한다고 생각하죠.

이 사건의 가장 정확한 해석은 예수님께서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3장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말씀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뱀에 물린 사람을 살리기 위해 놋뱀을 만들어 매단 것과 예수님이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같은 의미라는 것이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놋뱀의 의미입니다.

그 이상으로 확대 해석은 금물입니다.

뱀을 사탄과 결부시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는 범죄로 다시 사망의 상태가 되었지만 회개하고 놋뱀을 바라봄으로 다시 구원의 언약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믿음에 견고히 선 줄을 믿습니다.

새해엔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사에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님을 저렇게 못박은 나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바울사도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행하신 대로 살지 않는 것을 보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에 탈선하고 타락한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건하고 바른 삶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더 높이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제 새해가 밝아옵니다.

우리 앞에는 오늘 이스라엘처럼 사막과 광야 같은 어려운 환경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호르마와 같이 하나님께 문제의 답이 있음을 믿고 기도하며 승리할 것인지, 오늘 불뱀에 물린 것처럼 불신과 원망으로 큰 실패를 맛볼지는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신명기30장15절,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호르마의 승리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길을 행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또 실패의 자리에서 뿐 아니라 매일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모든 시험에서 이기고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본 자들이 죽음에서 살아났듯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매 순간마다 바라봄으로 새해 모든 시간들을 죽음과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생명과 축복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