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고린도전서15장12절-19절)

남수연 2021. 4. 7. 15:05

www.youtube.com/watch?v=ltdJ1gsQoyY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과 우리 구주로 인정되신 예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바울사도가 쓴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그래서 이 15장을 부활장이라고도 부릅니다.

오늘 일부만 읽었는데 전체는 상당히 깁니다. 전체를 참고해서 볼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부활에 대해 특히 길게 썼다는 것은 무엇을 짐작케 합니까?

교회 안에 부활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죠.

우리의 부활신앙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부활은 구원, 영생, 하나님나라, 등과 다 같은 내용입니다.

전에 한 유명 승려분이 즉문즉설이라는 프로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본래 불교는 내세를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현실의 생로병사의 문제를 벗어나보자는 현세적인 종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분이 굉장히 솔직하더군요.

천국이 있다, 극락이 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기는 잘 모르겠고, 자기는 그런 게 있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거예요.

혹시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혹시라도 우리 가운데 ‘나의 죽음 뒤에 부활이 있고, 천국의 영원한 삶이 있다는 건 모르는 일이다 가봐야 알겠다’

그런 분은 안 계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에 대해 성령께서 올바르게 지도해주셔서 힘 있는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길 소원합니다.

 

1. 우리가 부활을 믿어야 하는 것은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잖아요?
본장 1절,2절에서 바울사도도 그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을 받으려면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굳게 지키며 헛되이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헛되이 믿는 믿음이 있다는 걸 유의해야 합니다.

믿어야 하는 복음의 내용이 무언지가 바로 이어서 3,4절에 나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이 곧 복음이고 이것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 먼저 쐐기를 박는 것이죠.

이 십자가와 부활을 헛되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신앙을 종교 활동으로 아는 사람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믿되, 자기 인격을 걸고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부활이 지금 나하고는 아무 관계없이 사는 걸로 나타납니다.

오늘 바울사도가 걱정하는 것은 고린도교회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정말 믿어진다면 지금 사는 게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부활의 삶에 현재의 모든 것이 조정되고 맞춰지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절에 계란이나 까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진짜 부활을 헛되이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부활이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란 걸, 자다가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부활이 실제로 믿어지고 내 부활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매일성경 묵상과 소요리문답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에 대해 계속 배워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 소유의 묘실에 안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고, 40일 뒤에 승천하셨다는 것이 제자들이 전해 준 복음입니다.

앞에 보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본 사람이 오 백 명도 넘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이 많은 제자들이 보았고, 전파한 것입니다.

보았다는 데 어떡하겠어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부활을 믿되, 목격한 제자들의 말을 듣고 주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근거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서인 것이죠.

만일 제자들이 부활을 꾸며냈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2천년에 걸쳐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럴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동안 부활절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믿을 만 하다는 증거들을 계속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믿을만한 증거는 제자들이 변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아주 작은 부분도 잘 안 변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집행될 때 모두 도망가 숨어있던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잖아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다니다 공회에 잡힙니다.

공회는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예수님의 이름도 발설하지 말라고 풀어줍니다.

이때 제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전후의 상황들을 성경에서 잘 읽어보면 부활을 조작했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는 요한사도의 형제 야고보사도입니다.

헤롯왕이 잡아다 죽였습니다.

조작한 것을 전파하려고 자기 목숨을 버릴 사람이 있습니까?

부활이 조작이고 조작한 부활을 위해 제자들이 다 순교했다고 믿는 것보다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셨다고 믿는 게 훨씬 합리적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모로 보나 부활하신 것이 분명하고 모든 신자들이 그걸 믿는 것 같지만 전에 미국 교회의 통계를 보면 그게 아니더군요.

본인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1억6천명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네 명 중 한명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답했다고 하니 믿어지가 않더군요.

우리 성도님들은 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죠?

 

2. 그렇가면 다음은 예수님이 왜 부활하셨냐를 알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부활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 자기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교회 안에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통탄을 합니다.

12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결국은 다 부활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죽으셨습니다.

만일 사람이 죽은 뒤 완전히 멸절되어 사라진다면, 혹은 몸은 썩고 영혼만 남도록 설계되었다면 당연히 주님도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은 몸을 지닌 채 부활해서 영생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13절 말씀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우리도 반드시 다시 부활합니다.

2) 그러나 사람들의 부활은 둘로 갈라집니다.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고 부활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그냥 자기 죄를 지닌 채 죽은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할 몸은 지금과 다른 신비한 몸이라는 걸 예수님의 부활로 먼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우리 같은 예전 몸이 아니라 신비롭게 변모한 몸이셨잖아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다니셨고, 닫힌 문을 그냥 통과해 들어오셔서 이전 몸처럼 음식을 드시기도 하셨죠.

우리도 그런 신비롭고 완벽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 중이염 때문에 치료를 좀 받았습니다.

이비인후과 약이 좀 독하잖아요?

오후에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고 깼는데, 진짜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몸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침대에 새털처럼 가볍게 얹혀 져 있는 거예요.

몸의 한 부분도 불편이 느껴지지 않고 정신만 말짱했습니다.

너무 생소한 느낌이라 진짜 내 사지가 제대로 있는 것인지 살며시 돌아 누워보고 발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잘 붙어 있더군요.

언제부터인가 누워도 몸이 편치 않게 되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누우면 어깨가 아프고 무릎이 겹쳐지면 또 아프고, 어떤 베개를 베도 목은 또 왜 그렇게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그날 오랜만에 새털 같이 가뿐한 몸을 느꼈던 그 이상한 현상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이비인후과 진통제가 너무 쎘던 것이죠.

진짜 그날 부활하게 될 몸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더군요.

부활의 몸은 백년 살게 설계 된 이런 약해빠진 몸이 아닙니다.

병들지 않고 쇠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비하고 완전한 몸입니다.

부활의 몸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죄를 모르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새사람은 남고 옛사람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죠.

지금 이 옛사람의 몸은 원죄를 기억하잖아요?

이 몸에 죄의 기억들이 켜켜이 새겨져서 자율신경처럼 제멋대로 반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내 의지와 상의도 없이 후딱 죄를 짓잖아요?

다급할 때 임기응변의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이 툭 튀어 나오는 걸 보면 빛의 속도죠.

그러고 나면 얼마나 창피하고 후회스러운지요.

만일 부활이 지금의 이런 모습을 그대로 갖고 영원히 사는 것이라면 거기는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대로 천국에 간다면 거기가 무슨 천국이겠어요?

이 죄의 몸을 갖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다 이미 충분히 지쳤잖아요?

부활한 몸은 죄의 기억이 삭제되고 원죄의 유전자까지 완전히 삭제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밖에서 죽은 자들도 영원히 죽지 않을 불멸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런데 세상 살 때와 동일한 인격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변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구석구석 읽어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인격을 그대로 갖고 영원히 지옥에서 사는 것이죠.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는 주님과 함께 생명의 부활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래도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을까봐 바울사도는 ‘만일’ 주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일어날 우리의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 줍니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지난 주 사망을 이기신 죽임 당한 어린양에서 한번 들으셨기에 쉽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 되려면 주님 자신은 죄가 없으셔야 하는 것이잖아요?

주님이 죄가 있으셨다면 속죄자의 자격도 없으셨고, 다른 죄인들의 죽음처럼 사망에서 일어날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께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과 그렇기에 내 죄를 대신해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주셨다는 것을 완벽하게 입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죠.

또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믿음이 다 헛것이라고 말합니다.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이 가짜라면 너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다 순교까지 한 죽은 성도들은 또 뭡니까?

내세에 보상도 없고 부활도 못하고 그냥 비참하게 죽고 끝났으니 그 사람은 진짜 망한 것입니다.

18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바로 부활하지도 않을 건데 그걸 믿는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말은 내가 바보냐? 이런 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없다면 바울이 가장 불쌍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가말리엘의 수제자인 바울은 존경받는 랍비가 되었을 것입니다.

평생 좋아하는 성경 연구나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았겠죠.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를 했겠습니까?

저만해도 그렇잖아요?

천국도 없고 부활도 없다면 왜 목사를 하겠습니까?
안정되게 교사하다 모아둔 돈과 연금으로 골프나 치러 다니며 여생을 즐기며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제 나이에 명퇴하신 분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열심히 사업해서 여기저기 선교지에 갔다 붓는 우리 장로님, 권사님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많이 버셨는데도 빌딩 한 채를 못사셨잖아요?

우리 성도님들, 교회에 십일조하고 헌금하지 않으면 매달 좋은 옷 한 벌씩 사 입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좋은 봄에 꽃구경도 안 가고, 가깝지도 않은 이 먼 교회를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준비해서 여기 앉아 있는 우리는 다 뭐하는 겁니까?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더 즐기며 살아야지, 영생을 대비해 바친 우리가 제일 불쌍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바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4. 그렇다면 이 부활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울사도는 부활을 믿지 않고 이생이 전부로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고 합니다.

32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어떤 이들은 입으로는 어떻게 말 한다 해도 사는 걸 보면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 너머에 부활과 영원한 나라가 실제 보이는 것처럼 그 나라를 위해 삽니다.

바울은 강력히 충고합니다.

33절,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사는 사람들과 동무하면 결국 거기에 물들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과 심판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정직과 선과 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하나님이 모든 걸 보신다는 걸 모르니 사람의 눈만 속일 수 있다면 뭐든 자기 이득을 위해 행하는 것이죠.

그들은 친구인 것 같지만 자기를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이며 삽니다.

바울사도는 이 부활장 마지막에서 너희는 이렇게 살라고 결론을 내줍니다.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렇게 믿는 게 진짜 맞는거야? 진짜 부활이 있어?’

이런 생각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 일년 코로나로 인해 대면예배가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집에서 예배드리고, 편한 시간에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게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의 경우 작년에 현장예배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성도들을 교회도 별로 찾으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대형교회들이 비협조적이고 교회에 아무 기여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조 조정한다는 기막힌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성도들 자신도 스스로 구조조정 당함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아직 나의 부활과 영원한 천국이 다 믿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구원의 진리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분명한 몇 가지 진리들을 꽉 붙들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의 소낙비를 내려주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힘쓴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힘써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늘 생각하고 마음을 거기에 쏟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만 기쁜 일이 아니라 반드시 나를 기쁘게 할 내게 유익한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며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의 수고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바르게 알고, 그것을 헛되지 않게 믿으면 우리는 주님을 따라 생명의 부활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나 죽음 뒤에 나의 부활이나 관심이 부족한 것은 먼 옛날 일이고 먼 훗날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그 부활이 믿어지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도 부활도 다 진실이었음을 내 인격을 걸고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부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땅만 보고 살던 우리가 어느새 하늘의 본향을 바라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귀한 자산들을 점점 더 하늘의 생애를 위해 옮겨 놓게 됩니다.

시간도, 은사도, 물질도, 마음도, 점점 더 하늘의 삶을 위해 기여하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누가 천국이민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눈여겨보시면 보일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과 동행하십시오.

물론 당장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 너머 산이라 먼 데를 바라볼 여력이 없다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으로 문제너머 저 멀리를 바라보는 게 그 산들을 더 잘 넘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죽은 영으로서 죽은 자들의 땅에 사는 게 아니라 산 영이 되어 이 땅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를 기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부활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