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시편118편1절-13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남수연 2021. 11. 25. 00:36

https://www.youtube.com/watch?v=55zVHGFNlSI 

코로나 사태 속에서 두 번째 추수감사절을 맞았습니다.

올 한해도 우리에게 적던 많던 소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가 2년째 이어진 올해는 먹고 살고 일상을 유지한 것만 해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하고 혼돈 된 생활 속에서도 믿음으로 교회와 삶의 자리를 잘 지켜 오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리고 위로와 축복을 전합니다.

오늘 설교 시편118편은 우리교회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12년차 추수감사절에 다시 이 말씀을 보게 되어서 왠지 더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함께 읽는 동안에 벌써 큰 힘을 얻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본문 시편은 누구의 시라는 말이 없죠.

그러나 사용한 단어나 안에 담긴 신앙, 시인이 겪은 개인사를 미루어 볼 때 다윗의 시편이라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칼빈이나 매튜 헨리는 다윗의 시편이라고 단정합니다.

1. 오늘 시편의 주제는 추수감사주일에 맞게 ‘여호와께 감사하라’입니다.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그것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것을 감사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감사만이 아닙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그 혜택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와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본질이신 선하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복을 나눠주어 누리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잖아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던 것 기억하시죠?

오늘 본문에서의 ‘선하심’과 창세기의 ‘좋았더라’가 같은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선한 창조세계를 지어내신 것이죠.

이 선하게 지으신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사망에 빠진 죄인에 대한 구원도 역시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 목자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의 ‘토브’를 헬라어로 번역한 단어 ‘칼로스’입니다.

예수님의 선하심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려 죄를 대속해 주시게 된 것입니다.

창조와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를 창조해 존재케 하셨고, 다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마음에 크게 울려서 나오는 그런 감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선하게 창조하신 세상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가 인자하심입니다.

시편 90장이 모세의 기도인데, 모세가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간파하고 이렇게 기도하죠.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평생 만족하고 기쁘게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그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이 어려운 시련 중에도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셨기에 믿음도 생활도 실패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1절부터 4절까지 함께 감사하고 찬양할 사람들을 부릅니다.

‘이스라엘아’, ‘아론의 집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이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구원받고 은혜를 아는 자들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고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이렇게 해같이 비추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한다니, 같은 하늘 밑에 살아가는 인생들의 미스터리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아론의 집과 같은 거룩한 성도들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기에 오늘 찬양하고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알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감사의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2.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어떻게 우리를 도우셨는지에 대해 시인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자하시다한들, 내게 인자를 베풀지 않으시면 그 인자하심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마어마한 우주세계를 창조하신 광대하신 하나님이 우주의 티끌보다 작은 나를 마음에 품으시고 한없는 인자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또한 미스터리입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인자를 베푸셨는지를 증언합니다.

아마도 이 고백이 올 한 해 우리 고백과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1. 첫 번째 감사, 우리는 고통 중에 기도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5절,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인처럼 우리도 올해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잠언 14장 13절은 인생의 고통을 이렇게 처연하게 표현합니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지혜자 솔로몬은 전도서2장23절에서 이렇게 인생의 고충을 들여다 봅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세상 부족한 게 없고 천하를 호령하던 솔로몬이 어떻게 이렇게 아픈 인생을 잘 통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전세계 1위 부자에 오른 사람이 전기자동차 테슬라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입니다.

그런데 머스크의 기부액은 상위 5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의 재산 2%만 기부해도 기아에 허덕이는 4200만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죠.

부자가 인생의 수고와 슬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힘듭니다.

그걸 볼 때 솔로몬이 과연 최고의 지혜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코로나 2년차를 보낸 올해 우리 모두는 인생 중에 큰 고통과 시험의 때를 지내왔다고 생각합니다.

계획이 아무 소용없고, 노력과 능력을 써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안타깝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병마와의 싸움으로, 누군가는 오랜 경제적 어려움으로 지쳐가고, 사람관계에서 큰 고통을 당하며, 기도로 하루하루를 이겨 온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미국교회의 경우 목회자 40%가 목회를 중단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코로나로 인해 파급된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어떤 문제들은 무사히 넘어왔지만 어떤 문제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성경이 우리에게 확실히 보장하듯 끝까지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의 불안하게 기울어지고 비좁은 땅이 아닌 판판하고 넓은 땅에 세워주실 것을 기대하고 감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고통과 부르짖음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가올 다음 파도를 넘어갈 큰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내게도 인자하시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네’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내일 또 역경이 올 것이잖아요?

인생에서 매일 풀어야 할 문제지가 가마득히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풀어가는 것이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절히 부르짖으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결국 풀릴 것입니다.

저는 이 믿음이 있는데, 우리 성도님들도 그러시길 축복드립니다.올해도 숨 막히고 절박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어렵게 진행되는 일이나 관계를 포기하고 싶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우리가 다 잘 견디고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들 잘 싸워 온 우리 모두가 전우애로 뭉쳐진 것 같습니다.

 

2) 두 번째 감사, 하나님이 내 편이 되 주셨기에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올해 많은 사람관계가 더욱 우리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라는 말은 시인도 사람이 두려웠다는 걸 내비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사랑받는 관계보다 미움 받고 두려워하는 관계가 더 많을지도 모르니 인생의 고통이 더한 것이죠.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성경 인물 중 다윗만큼 증오와 미움의 상대가 되어 오래 고통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살다보면 무섭고 질리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처럼 가까운 이들이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하죠.

사회생활, 대인관계에서 나를 무시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에서 처음부터 두려움의 대상으로 설정된 관계는 바뀌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런 관계는 정말 인생에서 큰 고통을 주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우려하시고, 이런 갑을의 관계를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 이렇게 두려움으로 위축된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관계를 벗어날 방법을 오늘 시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운 상대가 많았던 다윗의 간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당당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잖아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선 불면 날아갈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고, 나를 돕는 자이시면 사람이 나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강하게 확신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담대한 믿음을 가진다면 누구 앞에서도 겸손하기는 하겠지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우리는 예수님의 종일지언정 사람의 종은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나와 같은 편이 되셔서 뒤를 봐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평생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게 잘 실감나지 않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하나님 편인지 확정하지 못해서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것은 그대로 믿는다고 확신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편이 되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경험을 쌓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것은 순교와 같은 대단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작은 일에서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 청년 다니엘과 세 친구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왕은 그들을 인재로 뽑아 특별히 훈련하고 교육시킵니다.

그때 이들이 한 가지 결심을 하죠.

포로 교육생들에게 매일 왕이 내려주는 고기와 술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왕이 바벨론의 우상 마르둑 신전에 제사를 드린 고기였거든요.

이 청년들이 비록 포로로 잡혀왔지만 여전히 하나님 편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 특식을 거절합니다.

한창 때 고기와 술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들이 채식주의자라서 그걸 거절한 게 아니잖아요?

자신들의 불리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편에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각오를 결의하기 위해, 매일의 일상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지킨 것입니다.

그 일을 완수했을 때 누구보다 기쁘고 확신에 찼던 것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확 성장하고 하나님이 내편이 되신다는 확신이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 뒤에 다니엘과 세 친구의 믿음이 죽음을 이길 만큼 강해지죠.

우리도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 내 감정이 본성을 따라 거세게 흐르는 길을 막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쪽으로 감정의 물줄기를 돌려보는 것입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 우울감을 평안으로 바꿔보는 것, 불안과 염려를 감사로 바꿔보는 그런 것이죠.

어떤 경우는 내게 행복감을 주는 취미나 다정한 사람이나 좋아하는 일, 음식 등에 대한 집착을 중단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고 집착하는 무언가를 끊어보려고 하면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내가 애착하고 행복해 하는 것, 간절히 원하는 것, 거기엔 하나님도 접근하지 못하시게 그어놓은 마지노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이런 내 믿음의 실체를 직면하는 것은 루틴이 잘 돼서 반복되는 신앙생활에 대한 안일함과 내 믿음에 대한 과신을 수정할 수 있는 유익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 예수님을 따른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순종하고 싶을 때는 하고, 안하고 싶을 때는 안 하잖아요?

그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그런 노력과 부단한 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게 언제나, 한결같이 진심이신 하나님처럼 나도 하나님 편인지를 일상에서 자주 점검하며 자꾸 하나님 편에 서도록 노력하는 모두가 되길 권고 드립니다.

그러면 점점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배짱과 담대함이 생겨 힘든 관계들도 잘 관리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하고든 힘든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사람관계입니다.

항상 내 편이신 하나님께 간구할 때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 감사,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기에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시인도 그것을 감사하는 것이죠.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아마도 이 시를 다윗이 썼다면 누구보다 그 사실을 절실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시기심으로 살해 위협을 느끼던 시절, 심지어 수 천 명의 군인이 뒤를 쫒으니 어떡하겠습니까?

그에게 은신처가 필요했고, 사울왕을 막아 줄 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블레셋 땅으로 망명한 적도 있습니다.

다윗이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고 권력 있는 자를 의지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전도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가드왕 앞에서는 결국 미친 사람처럼 수염에 침을 흘리며 도망쳐 나오잖아요?

블레셋에 망명했을 때는 또 얼마나 큰 위기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하필 블레셋과 사울왕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큰 전쟁을 하게 됩니다.

블레셋왕은 당연히 다윗을 그 전쟁터로 끌고 나갑니다.

이 전투에서 사울왕이 전사합니다.

하마터면 적국의 도움으로 사울왕의 자리를 찬탈했다는 오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자기 백성들과 싸워야 할 처지가 된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막아주셔서 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블레셋을 떠난 경험을 다윗은 말하는 것입니다.

고관들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낫습니다.

돈 있는 친척을 의지하는 것보다, 인맥을 의지하는 것보다 곧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낫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오는 구원이 더 확실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크게 나를 도와주지 못한다는 걸 아시잖아요?

사람은 각자 자기 인생의 짐을 지고 살기도 다 버겁습니다.

다윗도 오죽 힘들었으면 자기나라와 원수진 나라라도 의지해 살아보려고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시편 62편에서 의지했던 사람들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가족이든 남이든 사랑을 배우라는 관계이지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대상은 아닙니다.

가족은 너무 소중하지만 각자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서있지 않다면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들끼리 기댔다 서로가 무너집니다.

부모가 나이가 들어가면 몸도 쇠약해지고 재정적으로도 자식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과 정신적으로는 끝까지 자식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들수록 더 간절히 하나님께 의지하고 강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더 인자한 인격을 가져야 자식들이 존경합니다.

내 부모가 하나님께 가까워서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게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든든한 지원이겠습니까?

자식들이 앞으로 헤쳐 나갈 길이 만만찮은데, 기도로 힘을 주고 격려하며 끝까지 믿음직한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구차하게 누군가 사람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께, 진짜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만 구하고 얻으며 살아가길 축복드립니다.

 

4) 네 번째 감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싸움에서 이겼기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 기억해 내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올해 많은 싸움을 잘 이겨왔습니다.

시인도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해 승리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기에 스스로도 싸울 결의를 다지고 안팎의 원수들과 싸우고 승리를 얻었던 한 해였습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 다윗은 상당한 어려움 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절은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더 겹겹이 둘러 나를 옥죄고 있다는 것입니다.

12절,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실제로 환경이 나를 가두고,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고 비난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해 기도하며 힘을 얻고 지혜를 얻어서 우리를 옭죄는 이 악한 것들을 담대하게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에워싸는 것이 무엇입니까?

벌들처럼 나를 에워싸고 공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식들에 대한 걱정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끊으리로다’

‘노후 삶에 대한 걱정도 믿음으로 끊으리로다’

‘내년의 재정적인 염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끊으리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올해도 내 안의 죄도 이기고 밖의 악한 세력도 많이 이길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벌처럼 에워싸 다윗을 비난하고 공격하던 사람들도 눈을 들어 보니 어느새 가시덤불에 타듯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우리를 압박하는 모든 상황들도 그렇게 용기 있게 대항해 끊어버리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올해 우리의 모든 고통에 응답하시고 도와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듯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길 부단히 시험하고 확증하며 더 돈독하게 하나님과 같은 편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올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굳세게 해서 끊어버린 여러 가지 죄와 시험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더욱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