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남북문제가 빅뉴스다 보니 5월 가정의 달이 별 뉴스거리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성도님들 가정에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가정의 달의 의미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고 서로를 격려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주 기사를 보니 예상했던 대로 직장인들에겐 어버이날, 어린이날에 지출 부담이 앞선다고 하더군요.
그걸 아는 부모님들이 하는 거짓말이 있죠.
‘필요한 것 하나도 없으니 아무 것도 사지 마라’
‘바쁜 데 내려오지 마라’
이게 늘 빠듯하게 살아가는 자식들에 대한 부모 마음이죠.
저희 어머니도 늘 그러셨습니다.
사실 쓸 돈이 풍족하다면야 부모를 위해 자녀를 위해 지출하는 게 뭐가 아깝겠습니까?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용돈드릴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의 크기만큼 챙겨드리지는 못한다 해도 함께 어려움을 헤쳐 가는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만은 크게 갖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을 통해 더욱 축복의 가정을 만들어 가는 가장 소중한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이 담긴 시 작품입니다.
예배용 노래집이라고 할 수 있는 시편엔 작가의 신앙과 기도,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중엔 고난가운데 부르짖는 탄원의 기도시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에 대한 메시야 예언시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부분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시편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다윗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시가 성경에 들어 있어도 되는 것일까요?
작자는 전해지지 않지만 이런 시편들이 예배찬송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믿을만한 사람의 작품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작자미상의 시편들도 모두 성경의 교훈과 정확하게 일치된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지난 주 가수 박진0 씨가 구원파냐는 문제로 떠들썩 했었죠.
제가 간증문도 읽어보고 유튜브에서 성경공부하는 내용도 좀 들어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도들의 전통과 성경과 정통교회에 뿌리를 내린 신앙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글 한편에서도 그게 다 나타난다는 것이죠.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한 백오십편이나 되는 시편이 전체 성경과 얼마나 일치되어 깊고 풍성한 은혜를 주는지를 보면 참 놀랍습니다.
다 한 분이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영감을 주셔서 기록케 하신 보이지 않는 작가이시기 때문인 것이죠.
오늘 본문 시편은 지은 사람의 깊은 신앙심과 체험, 그리고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말씀입니다.
본문 시편을 가정주일의 말씀으로 정한 것은 우리 가정들이 모두 이 시편과 같은 복을 받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은 개인에게 주시는 복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집, 아론의 집,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집에 주시는 가문의 복이기도 합니다.
우선 본문 전체의 내용은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복을 주신다는 것을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먼저 본문 9절에서 11절까지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대개는 안 좋게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힘이 있고 생활이 안정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단박에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자기 능력으로, 하고 싶은 대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이죠.
정말 가난한 나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서 먹고 살 수가 없는 지경에 있는 난민들은 아무의 도움이라고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나 리어커에 폐지를 모아서라도 자기 힘으로 먹고 살만 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하나님을 내 생애에 개입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까요?
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 앞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의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형상도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 사람들은 무엇을 섬겼습니까?
자기 손으로 조각해서 만든 신상들을 섬기고 의지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안전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것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종교이든, 돈이든, 사회적 지위든, 건강이든 그걸 의지합니다.
사람이 평범하게 누리던 것 중 하나가 없어질 때 얼마나 거기에 의지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그걸 다시 회복해서 이전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사회에서 은퇴하고 더 이상 직장에 나가지 못하게 될 때의 상실감은 사람이 얼마나 직장과 월급에 의존했나를 알게 합니다.
가졌던 명예를 잃었을 때, 나쁜 평판을 얻게 되었을 때,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그러잖아요?
결국 인간은 스스로 강해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인’ 한자가 서로 의지하고 기댄 모양인 것도 그걸 의미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무얼 가장 의지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동의 1위는 ‘돈’일 것입니다.
본 시편에서 하나님을 비웃고 사람들이 섬겼던 그 우상의 자리에 앉은 것은 이 시대엔 단연코 ‘돈’일 것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돈이 많으면 기도제목들이 많이 줄어 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 금수저 재벌2세들이 돈 많은 아버지 빽을 믿고 세상 무서울 게 없이 살았더군요.
재벌들의 갑질은 천박한 범죄행위지만 부자 부모, 큰 재산은 누구에게나 부러움이죠.
그러니 이런 가정의 달에 특히 가진 게 없는 집에서는 오히려 갈등과 원망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오 너희의 방패시로다.
돈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게 못됩니다.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돈도, 사람도 배신합니다.
아래층 음식점 사장이 사업 수완이 좋습니다.
장사가 잘 돼서 여기저기 세 군데 분점을 냈는데 다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 매출이 떨어지고 겨우 본점만 장사가 된다고 합니다.
한 때 잘되던 사업을 확장하고 무리하게 투자했다 고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돈은 하나님 밑에 있어야 안전합니다.
정말 내게 귀중한 것일수록 하나님 밑에 두는 게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취약한 가정은 하나님을 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집입니다.
욥기8장에서 그걸 말씀합니다.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모르는 집이라면 아무리 든든하게 서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미의 집, 거미줄 같을 뿐이라는 것이죠.
빗자루로 몇 번 휘두르면 우두둑 끊어져 버리는 게 거미줄입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잠언은 오히려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한다고 밝힙니다.
성경은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고 악을 행하는 자의 심판을 엄중히 예고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하나님 밑에서 관리되지 않는 재물은 반드시 악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을 늘 목격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단순한 도움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주의 힘으로 살아가는 피조물임을 아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입니다.
오늘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와 우리 가정이 바로 서기 위해 기댈만한 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재산이 넉넉한 부모가 없어 비빌 언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청년들 하나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청소년들 아직 어리고 부모를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청소년들도 예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성장하도록 보내주신 대리자이고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그 위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가정의 달에 더욱 가족 모두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에 바로 서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도움과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이 말씀 안에는 실제로 하나님이 도움이 되시고 방패가 되신다는 체험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며 도움을 받아왔다면 우리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다보면 답답한 가정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어느 집이나 다 마찬가지더군요.
제가 세상적인 경험이나 상식을 갖고 조언을 해준다 한들 정답도 아니고 그런 말을 들은 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이미 세상적인 방법은 전부 써보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가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도와주실거예요.’
이렇게 말할 때는 제게 확신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체험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조언을 하겠습니까?
시편기자 역시 그것을 체험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무수히 확인한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도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하나님께 먼저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 고맙기도 하지만 부채감이 생기고 부담이 남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한테 도움을 받는다 해도 장성한 자식들이라면 미안한 마음이 들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 구하고 받는데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무슨 자존심이 어떻고, 처지가 창피하고 그렇지가 않습니다.
남에게 뭐 좀 도와달라고 하면 말이 입 밖에 안 나오는데,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달라고 비는 게 구차하기는커녕 기도한 게 되려 자랑스러워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차원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하심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약속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전반적인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도움을 구하지 않는 한 특별한 도움과 특별한 축복을 자동으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혼자 힘으로 꾸려가겠다면 하나님도 그 선에서 보고 계신 것이죠.
그것은 전적으로 사랑하시는 문제와는 다른 것이죠.
자기 힘으로 하는 일은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 선하시고 무한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지도 못합니다.
내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한숨에 응답하시는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알 수 없는 것이죠.
특별한 도움과 특별한 사랑을 누리며 살도록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어려움에서 건지시고 위기에서 보호해주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12절부터 나옵니다.
이스라엘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고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의지하고 경외하는 자들의 집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일관되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시작에서부터 복을 주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주셨다고 하죠.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고, 노아와 그 가족에게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다윗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렇기에 이사야선지자는 65장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스바냐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 오히려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그 때에 내가 등불로 두루 찾아,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하나님께 복을 구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죄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1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번창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번창하게 해주신다는 것이죠.
여기서 번창한다는 것은 단순히 후손이 늘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신앙, 인격, 재산, 지혜, 명예 같은 것들이 다 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됩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재산이 좀 적고, 지혜가 좀 부족하고, 스팩이 없다고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부자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잘난 자도 못난 자도 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누구도 자기가 스스로 잘나고 능력 있는 게 아닙니다.
놀라운 지혜서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명철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경외하는 우리가 가장 명철하고 복된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3. 그렇다면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내면적인 신앙과 외적인 행위를 통해 구현됩니다.
우리의 내면적인 상태가 하나님을 가장 존경하고 가장 사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들과 비교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경외하는 수준을 각자의 신앙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 놓고 믿는 편입니다.
주일예배는 가급적 참석하자, 성경도 하루 한 장은 읽어야지, 기도는 자기 전에 십분이면 되겠다. 헌금은 매주 1만원씩 하면 되겠지.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이렇게 수준을 정해 놓고 사랑하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송구스럽게도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시듯 오직 나 한사람을 아낌없이, 완전한 마음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마주한다면 우리의 얕은 계산적 신앙은 정말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우리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경외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외적으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지킬 때 좋은 사람이 되고 삶의 체계가 잡히고 안전하고 평온해 집니다.
성경은 행복한 가정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우리에게 정해 주셨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갈등이 되어도 결국 그 말씀을 점점 지키게 되는 것이고 그런 가정이 어떻게 점점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가정을 번창하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매일 미워하고 다투고 가족들을 서로 섬기지 않는 가정에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가 없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이 저절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살지?’ 그렇게 생각하다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목적과 우리의 책임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라고 합니다.
16절에 보면 하늘은 하나님의 하늘이지만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지 그 목적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번성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잖아요?
땅은 우리에게 주신 산업이고 현실의 지평이고 우리의 가정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잘 다스려 번창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믿음에 바로 세우고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영역에 들어온 모든 관계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번창해서 주변을 다스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들이 우리를 통해 사방으로 확산되고 그렇게 다스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영광스런 책임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이 지역에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은 인적자원이나 재정문제로 지역사회에 복음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할까 제가 늘 고민입니다.
지난 주 한 권사님이 아이디어를 내셔서 교회 어깨띠를 차고, 쓰레기 봉투와 집게를 들고 주택가를 한 바퀴 돌며 청소를 좀 하며 전도물품을 나눠주었습니다.
보통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던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 먼저 ‘수고하십니다’, ‘좋은 일 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을 건네더군요.
그 때 자연스럽게 전도물품을 건네며 교회 얘기를 하니 아주 반응이 좋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맡겨 주신 땅을 이렇게라도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식사 후에 같이 나가 청소에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전할 접촉점을 만들고 지역을 살리고 지역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가리라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셨지만 범죄 이후로 모든 상황이 바뀌었듯이 가정도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현대의 가정들은 과히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었잖아요?
성도들의 가정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축복된 가정으로 회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정에 주신 교훈들을 잘 지켜나갑시다.
아직은 미숙해서 여전히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고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없었다면 맛보지 못할 행복을 우리는 많이 누려왔습니다.
가족들로 인해 기쁨도 누렸다면 가족들로 인한 불편과 수고도 또한 견뎌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미래의 영원한 삶을 생각할 때 이 땅의 삶은 잔디처럼 짧습니다.
이 짧은 생애가 영원으로 이어지도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며 예수님 안에서 나날이 번창하는 모든 가정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018년5월6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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