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6장1절-11절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다)

남수연 2023. 1. 4. 02:37

https://www.youtube.com/watch?v=tNoW_tBdMnY 

2023년 우리교회의 첫주일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를 함락한 본문입니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죠.

우리가 새해에 목표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견고한 여리고성과 같을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전술과 전략을 우리가 따른다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목표한 것들을 충분히 정복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 가나안땅에서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갔는데 성을 뺏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나안땅에서도 광야처럼 여기저기 방랑하며 안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죠.

이 의미를 우리 믿음에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해도 외부의 적들, 내부의 죄를 정복하지 못하면 평안과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영적 전쟁을 피하면 편할 것 같지만 정반대입니다.

해야 할 믿음의 싸움을 하지 않아서,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삶에는 젖과 꿀이 흐르지 않고 평안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성도들의 삶을 성경은 계속 믿음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이 믿음의 싸움을 잘해서 영혼과 삶이 더욱 복되길 축원드립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점령해야 할 여리고는 가나안 중부지방의 첫 성입니다.

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여리고를 가 보았습니다.

삼천오백년 전 무너져 흙더미에 묻혀있던 여리고성을 발굴하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파헤쳐진 곳을 내려다 보니 제가 보기엔 그냥 돌무더기와 돌 담벼락 같은 것들이 보이더군요.

그런데 전문가인 고고학자들은 그 속에서 여리고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캐냈습니다.

여리고성이 이중 성벽으로 요새화된 견고한 성이었는데 지진 같은 어떤 요인으로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는 것입니다.

발굴 된 항아리 속에는 불에 탄 곡식들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당시 굳게 닫힌 여리고의 내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여리고성은 장기전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엔 엘리사가 쓴 물에 소금을 던져 단물로 고쳤던 엘리사의 샘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었고, 생수로도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마침 추수기를 맞아 추수한 곡식들을 쟁여 놓고 성문을 걸어 잠그면 철옹성 같은 여리고는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점령하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 될 때도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이 천연요새였잖아요?

성문을 걸어 잠그니 아무리 막강한 바벨론 군사들도 점령하는 데 일년 반이나 걸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드시 이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함락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2. 여리고 성을 공략하는 핵심 전술들을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1) 모든 전술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서 여호수아 장군이 여리고를 향해 진군할 때 칼을 빼든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났었죠.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전쟁의 지휘권자는 하나님 자신이고 여호수아는 말씀대로 실행하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첫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전술을 자기가 짜지 않았습니다.

6장에서도 여호수아는 어떻게 여리고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7장2절에 와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전술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매일 우리 앞의 환경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전술을 주십니다.

새해에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로 오늘의 전술을 묻고 말씀과 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의 승리의 전술은 아주 분명합니다.

말씀이 세상과 악의 세력과 내 안의 죄를 이기는 전술입니다.

오늘 여호수아가 이 전술이 이상하다고 자기 나름의 방법을 썼다면 여리고성 정복은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우리에게 주시는 전술은 우리 입맛에 딱 맞고 세상에서 잘 먹힐 것 같은 그런 전술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건 오히려 세상살이에 너무 불리하게 느껴지죠.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며 살아가는 방법임이 분명합니다.

새해에도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성경대로 순종하고 승리를 거두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여리고 전술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왜 이렇게 해야 하지?’

‘왜 이 방법대로 해 주지 않으시지?’

이런 의문이 사실 매일 듭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전쟁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전술은 여리고 성을 매일 한바퀴씩 도는 것입니다.

그 순서는 맨 앞에 무장한 군사들, 그 다음은 나팔 부는 제사장, 그 다음은 법궤를 멘 제사장, 다시 그 뒤에 무장한 군사들의 순서로 배열됩니다.

엿새 동안은 이 대형으로 성을 한바퀴씩 돌라는 것입니다.

전쟁 초보자가 들어도 백프로 실패할 전술입니다.

성 안에 있는 적들이 성 밖을 행진하는 대열을 그냥 두겠습니까?

머리 위로 화살과 돌맹이와 뜨거운 물들이 퍼 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을 돈 다음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맞춰서 엄청난 함성을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말이죠.

사람이 이 전술을 세웠다면 망상이지만 하나님이 주셨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사람들이야 잘 될 거라고 계획한다 해도 다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안될 것 같아도 됩니다.

우리는 보통 상식적인 선에서 알맞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 이걸 한번 해 볼까?’

‘이 길로 한번 가 볼까?’

저도 어느날 ‘개척을 한번 해 볼까?’ 왜 이런 생각이 듭니까?

우리에게도 때로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다른,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짧은 순간에 어떤 지혜가 머리를 스치며 중요한 결정을 성공적으로 하게도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이런 결정적인 변곡점이 생각해 보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그렇게 해서 구불구불 인도해 오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이런 초자연적으로 작전에 개입하신 것은 필요해서입니다.

일반 전투방식으로 여리고를 함락시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그렇게 전력을 소모하는 사이에 가나안 부족들은 이스라엘을 만만히 보게 되는 것이죠.

‘여호와 신이 요단을 건너게 했어도 전쟁에는 별 수 없구나.’

오히려 가나안땅의 부족들이 연합군을 결성해서 공격해 올 것입니다.

여리고 전술을 보면 이스라엘이 할 부분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손 안 대고 코 풀 듯이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정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벽을 무너뜨려 진입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고 무너진 성벽을 넘어 여리고 군사들과 싸워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군사들입니다.

하나님은 행군의 순서에 제일 먼저 무장한 군사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법궤는 행군의 중앙에 있습니다.

길을 모르던 때는 제사장과 법궤만 앞세워 인도 하시지만 전술이 분명할 때는 일반 전쟁처럼 무장한 군사가 앞서고 뒤서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이 무너질 때 각자 앞으로 올라가 성을 정복할 수가 있는 것이죠.

우리 앞에 있는 문제들은 내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런 건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라는 것은 하나님이 무너뜨려 주셔야 그 다음 내가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우리의 최선을 다한 태도와 불가능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3) 이스라엘에게 주신 전술은 성을 도는 동안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10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하나님의 함구령의 이유는 이 작전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이동하는 의식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배시간에 잡담하고 떠들지 않잖아요?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에서 우리는 입도 삼가고 발도 삼가야 합니다.

함구령은 이 작전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말로 하나님의 작전에 대해서 비판하고 불평하지 못하게 사전에 차단해 버리신 것이죠.

우리가 다 알다시피 사람은 환경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하기보다 부정적인 말을 쉽게 합니다.

사실 부정적인 말, 비난하는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하는 순간에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안 좋은 말을 잔뜩 쏟아 놓는 것이죠.

함구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이 전술에 대해 모두가 다 한마디씩 했을 것입니다.

‘이런다고 성이 무너지겠냐고, 이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 된 거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과정이 종종 그렇잖아요?

이게 뭐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당장 현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의심했다 나중에 이뤄진 걸 보면 머쓱하고 죄송하죠.

강제로 군사들의 입을 막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절대로 이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이 얼마나 빨리 사람의 감정을 동요시키는지 이스라엘은 40년 전에 경험했잖아요?

정탐꾼 단 열 명이 이백만 명의 마음을 가나안에서 다시 애굽으로 되돌려버렸잖아요?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존 골즈워디란 사람이 한 말은 새겨둘만 합니다.

‘눈은 그의 현재를 말하며 입은 그의 미래를 말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현재의 사실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입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라는 것이죠.

우리의 새로운 한 해가 어떻게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대로 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내 자식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현재는 눈으로만 보시고, 말은 기대하고 원하는 대로 말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도 내 귀에 들리는 그대로 너희에게 시행하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우리 입은 본성에 따라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주시겠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 백년에 한 명 나오는 성악가라고 세계가 극찬했던 배재0 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젊은 나이에 유럽 무대에서 정상급의 실력을 인정받고 많은 오페라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목소리가 좀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술도중 성대를 지나가는 신경이 떨어져나가 오른쪽 성대에 마비가 오게 됩니다.

성대는 두 개가 부딪쳐서 소리가 나는 데 왼쪽만으로는 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렇게 정상에 선 성악가가 목소리를 잃은 것입니다.

수술 뒤에 배집사님은 의사에게 안 나오는 목소리로 ‘이제 저는 노래를 하지 못합니까?’

그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의사가 하는 말이 ‘성대 하나로 노래하는 것은 육상 선수가 한 발로 달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악가에겐 이 이상 절망적인 말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 순간 배재철 집사의 귀에는 그 말이 육상선수가 한 발로도 뛸 수 있다고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성대 하나로도 노래할 수 있겠네’ 자기 마음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죠.

그 믿음으로 몇 년 뒤 남아있던 성대를 움직여 마비된 성대와 부딪쳐 소리를 내도록 복원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성대 하나로 훌륭하게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계속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중에 있는데 찬양이 정말 은혜가 되더군요.

배재0 집사의 이 기적 같은 이야기가 유지0 씨가 주연을 한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라는 영화입니다.

새해에는 부정적인 말을 우리 입 밖에 내지 않길 다 같이 서약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결국 이겨내게 되는 것인데 왜 걱정하고 염려하는 말로 스스로 무릎을 꺾어 버리겠습니까?

 

3.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정복했고 그 주민 중에 라합의 가족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성벽이 다 무너졌는데 성벽 위에 살고 있던 라합은 어떻게 살아났을까요?

하나님이 약속대로 라합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라합의 집이 있던 성벽은 남겨 두셨습니다.

여리고 발굴에서 고고학자들은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한 쪽 성벽을 발견합니다.

북쪽에 있는 이 성벽이 바로 라합의 집이 있던 성벽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라합이 정탐꾼을 밧줄로 내려주며 산에 며칠 숨어있다가 수색대가 철수하면 돌아가라고 했었거든요.

라합의 집 앞쪽으로 산이 있었다는 뜻이죠.

여리고는 북쪽 방향에만 산이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성이 고고학이나 과학의 발달로 입증되는 것이죠.

그날 무너진 여리고 성벽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라합의 집 창문에는 붉은 줄이 나부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을 보내 먼저 라합과 그 집안을 구조하게 합니다.

송구영신 말씀에서 들었듯이 이 전쟁을 이스라엘의 가나안정복과 건국 전쟁이라고 보면 안됩니다.

앞에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이스라엘의 편도, 가나안부족들의 편도 결코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으로 만물을 바로잡고 통치하시는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창조주이십니다.

홍해의 기적도 그렇고 요단강을 말리고 건너게 하신 기적도 그렇고 거기에는 모든나라에 하나님을 알리신다는 목적이 붙어 있었습니다.

오늘 라합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와 경외하게 하시려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제의와 같은 경건한 행군을 왜 엿새 동안 했을까요?

저는 그것이 여리고가 백기를 게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리고 사람들이 들려온 소문대로, 눈으로 요단이 갈라지는 것을 본대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고 백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도 라합처럼 죽지 않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을 두고 하나님이 멸망 당할 사람을 미리 정하셨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는 것보다 더 먼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결정했던 사람들입니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결국 가나안부족을 멸하신 것도 이것을 교훈으로 세상 만민들이 죄를 버리고 창조주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라합이 구원받은 이 사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 우리를 통해내 주변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 우리 세상적 목표와 생활이 번영하는 것보다 더 귀한 복입니다.

새해에도 이런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와 같은 문제들, 넘어야 할 산들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리고성을 돌 때 행렬의 순서는 올해 모든 일을 승리로 이끌 중요한 정보입니다.

무장한 군사들이 앞서듯이 우리는 내 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성실한 태도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나팔과 언약궤를 중심에 둔다는 것은 모든 일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에서 여리고로 문제는 계속 바뀌지만 해답은 언제나 언약궤입니다.

11절을 보면 이스라엘 군사들이 성을 돌았다고 하지 않고 언약궤가 성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합니다.

언약궤 없이 일곱바퀴가 아니라 칠천바퀴를 돌아도 성은 안 무너집니다.

올해도 변합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를 드리면 하나님은 열가지로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년 안에 어떤 선물들이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주문하지 않은 슬픔을 택배로 받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군사들이 언제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 적들의 공격에 마음을 조리며 성을 한바퀴 돌 듯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을 하나님과 함께 풀어가며 점점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만큼 우리 영혼도 더 강건해질 것입니다.

육체의 나를 잘 먹이고 입히고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영혼을 잘 가꾸고 강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 됨은 범사를 잘 되게 할 수 있지만 육체는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구원의 확신을 가질 만큼 우리 믿음이 성장하는 것도 정복해야 할 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실한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순종으로 한해를 아름답게 채워가시길 바랍니다.

올 한 해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으로 나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이런 문제들을 우리의 군대장관 되시는 예수님께 맡겨 드리고 그 인도하심을 잘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