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Xq2NFyEOeSk
지난 주에는 창세기 1장을 과학과 연계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천지창조의 사건을 간명하고 웅장하고 위엄차게 선언합니다.
창조의 역사를 창조 당한 우리의 지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장3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특히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가 설화적이고 신화같다는 생각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 성경의 기록들이 잘 안 믿어져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성경 전체,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과 우리 신앙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신화적인 창세기에서 출발한 신앙이 어떻게 사실과 현실로 연결이 되겠습니까?
오늘 2장은 사람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아갈 방식을 규정해 주십니다.
안식일에 대한 초석을 놓으시고, 노동에 대해서, 만물을 돌볼 의무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원칙을 주시고 그것을 따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2장을 창조자께서 주신 나에 대한 사용설명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규정해 주신 사용설명서를 잘 배워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원리대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가장 중요한 안식에 대한 원리를 세우십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입니다.
2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안식의 원리가 여기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안식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피곤해서 쉬실 필요가 없는 분이신데, 왜 안식하셨고, 왜 그것을 발전시켜서 안식일 계명으로 주셨을까요?
1)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가 완벽했다는 뜻입니다.
죄악과 고통이 가득 찬 지금의 세상을 만드신 게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 어디를 봐도 한숨과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세 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젊은 부부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청춘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음주운전자에게 억울하게 생명을 잃었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폭력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망가진 세상만을 보아 왔죠.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세상은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2) 그런데 불과 한 장만 넘기면 하나님이 완전하게 창조하신 모든 것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고 맘 편하게 안식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창조세계의 비탄을 앞두고 안식하신 것일까요?
성경이 망가진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이고, 구원은 곧 안식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안식에는 그것이 포함된 것입니다.
창조뿐 아니라 타락에서의 구원까지 포함된 안식인 것이죠.
하나님의 계획은 곧 성취된 것과 같습니다.
그 계획만으로도 모든 일을 마치고 안식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2절에 슬쩍 비밀스럽게 표현된 것입니다.
2절에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언제 마쳤다고 합니까?
원래 6일째에 다 이루셨는데, 일곱째 날에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하죠.
일곱째 날에 하실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것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라고 하셨죠.
오늘 하나님의 안식과 장차 주실 십계명의 안식일은 우리에게 구원과 안식을 주실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안식일의 실체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복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할 때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주실 구원자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십계명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실 때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한 가지는 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했으니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죠.
우리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을 뿐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주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용설명서입니다.
2.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에서 사람이 일하며 살게 규정하셨습니다.
1) 4절부터 6절까지는 사람이 일해야 할 땅을 조성하십니다.
그 상태가 어떤지 5절을 보시겠습니다.
5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절,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각 마디 마디가 다 중요합니다.
먼저 이 말씀에서 사람이 땅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살게 계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죠.
1장에서 하나님이 셋째 날에 식물들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들에 초목이 없고 밭에 채소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땅이 저절로 열매를 내는 게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경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람에게 일을 하도록 의도하셨다는 것이죠.
천국은 놀고 먹는 곳일까요?
천국과 같은 에덴동산이 놀고 먹는 곳이 아니었다면 천국도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연금 수급 시기를 64세로 늦추는 법안을 놓고 시위가 계속되고 있죠.
우리나라도 연금 개혁이 큰 숙제입니다.
일본은 올해부터 소득의 46%를 세금과 사회 보험으로 내게 되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미 그보다 더 많이 내는 나라가 프랑스와 독일입니다.
대신 이런 나라들은 월급에서 세금을 떼고 받는 금액보다 연금 액수가 더 많습니다.
연금을 받으며 남은 여생을 놀고 먹으려고 했는데 더 일하라니 분노한 것입니다.
우리는 연금이 부족해서 더 일하게 해 달라고 할 판이니 사정이 좀 다르죠.노년까지 건강하고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아마 사람들은 더 일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일은 단순히 생계 수단만은 아니잖아요?
건강하고 능력도 있는 사람에게는 일이 없는 게 곤역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땅을 경작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처음 지구환경은 농사 짓기에 최적이었습니다.
5절에 보면 아직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하죠.
대신 안개가 땅에서부터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고 합니다.
비는 분명히 노아의 홍수 때 처음으로 내렸을 것입니다.
그 이전의 지구환경은 안개와 이슬의 형태로 물이 순환되었을 것입니다.
물은 식물 생장에 필수조건이죠.
비보다 좋은 것은 안개와 이슬이 밤새 흙을 적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주신 생활의 터전이 얼마나 복되었는지 알 수 있죠.
하나님의 은혜도 이슬같이 주시는 은혜가 좋은 것입니다.
매일 살아갈 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매일 잔잔한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삶의 터전인 일터에 그런 복이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 아담이 경작할 곳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에덴 동산의 토양은 비옥했고 안개와 이슬이 항상 식물을 재배할 완벽한 상태를 유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식수와 생활용수를 위해서는 안개와 이슬 외에 또 다른 물이 필요합니다.
10절부터 14절까지에서 에덴 동산에서 강이 발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줄기가 네 개로 갈라져서 주변 땅을 흐르는 강이 되었다고 하죠.
네 개의 강이 에덴에서부터 발원되었다는 것은 세상을 살리는 은혜가 하나님의 동산에서 흘러 나온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네 개의 강 이름이 나옵니다.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고 강의 이름을 정확히 알려줍니다.
이것은 에덴이 실제 지구상에 위치했던 곳이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이 어디였는지 알 수 있지 않겠냐는 호기심이 생기죠.
비손과 기혼강은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곳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셋째 강인 힛데겔은 티그리스강의 히브리어입니다.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이 티그리스강 옆에 위치합니다.
유브라데는 유프라테스강이고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를 지나는 강입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죠.
비손과 기혼을 모른다 해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만으로 에덴동산이 그 어디 쯤에 있었으리라 추정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대홍수 때 일어난 지각변동으로 에덴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특히 비손강 근처에선 순금이 나오고 베델리엄과 호마노라는 보석이 나오는 곳이라고 하죠.
아무리 금과 보석이 나오는 땅이라고 해도 물이 없다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에덴이라는 단어는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행복들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통해서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 좋은 것, 좋은 일터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정말 갖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하나님께 구하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을 조절하시면서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좋은 것을 아무 부작용 없이 은혜롭게 주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산에 준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동산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무언가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기도로 얻는 것이 철칙입니다.
제 힘으로 쉽게 되리라 생각한 것들도 그렇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하나님께 의논하며 사는 게 자연스러운 방식이 되었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말씀드리는 것 같지만, 분명히 하나님과 대화가 됩니다.
의논드리면 답을 해주시거든요.
제가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게 아니라 지혜로운 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성도님들이 일하고 생활하실 때도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자리에서부터 지혜와 능력이 풍성히 부어지시도록 잘 훈련하시길 간곡히 권면드립니다.
이것이 일터에 대한 사용설명서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스리며 살라는 사명을 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십니다.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사람이 흙으로 지어졌듯이 동물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19절에 나오죠.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생물학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이나 흙에 있는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물질들을 흙에서 얻어내죠.
반도체도 흙에서 나온 물질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어떻게 하셨을까요?
마치 조각가가 흙으로 빚어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이 그렇게 사람을 주물러서 만들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원소를 조합해서 인체를 만드셨을테니까요.
하나님이 흙의 원소로 세포와 유전자와 핏줄과 신경과 근육과 피부를 고안하시며 서서히 만들어가시는 광경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마치 고안한 프로그램대로 3D 프린터가 물체를 뽑아내는 것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죠.
이렇게 흙의 성분으로 지으신 몸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 놓으셔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동물이 숨을 쉬는 것과는 다릅니다.
동물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죠.
흙으로 만든 육체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적용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까?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달리 영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이시기에 다스려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 삶을 다스리지 못하면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셔서 아담에게 그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19절,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물론 아담이 지은 동물의 이름은 지금 우리에게 의미는 없습니다.
바벨탑 이후로 언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제 아담이 모든 동물들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첫 시도는 바로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아담이 이름 짓는 것을 하나님이 아주 주의깊게 살펴보셨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권한을 의미합니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부모에게 자식에 대한 권한이 있다는 뜻이죠.
아담은 뛰어난 지능을 가졌을 것입니다.
수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는 동물의 특징과 성격과 생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스릴 모든 동물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애정을 갖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렇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잖아요?
우리에게는 머리털까지도 세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스리는 리더십에는 관심과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면서 정복하고 다스릴 지경들을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가정에서라면 자녀들을 다스려야 하고, 직장에서는 나와 일하는 직원들과 내 맡은 업무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 전체가 다스리고 정복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주의 깊게 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애와 자비로 대하시듯이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우리에게 다스리게 하신 영역은 어디입니까?
남의 밑에서 일하는 자리라 해도 그 일을 내게 주시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회사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일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우리가 실은 일터 전체를 다스리는 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은 말씀하죠.
27장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오늘 사용설명서 대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과 삶의 현장을 부지런히 돌보고 가꾸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4.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곳에 두십니다.
그곳에는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있었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현재의 행복을 확정해 주십니다.
16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복되게 누리게 하시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먼저 그것들을 아끼고 감사로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담이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준엄한 경고를 내리십니다.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은 모든 생물체들에게 일정한 질서를 따르도록 지으셨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생물들로 인해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복종하는 본능을 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유롭게 따르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한가지 준칙을 주십니다.
바로 에덴동산의 많은 나무들 중에서 선악의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를 존중하고 선하심과 완전하심을 믿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왜 범죄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냐.
왜 선악과를 두셔서 사람이 죄를 짓게 하셨냐.
사람들은 이런 의심들을 하며 하나님께 인류 죄악의 책임을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려면 아들을 대속제물로 주셔야 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희생을 결심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자유롭게 선택하며 사는 이 자유의지입니다.
매일 이 자유를 구가하며 살면서 왜 이런 자유를 주셨냐고 하나님을 몰아세우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 인생의 사용설명서는 범죄로 왜곡된 본성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선악과의 문제는 다음 3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5. 하나님은 가정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주십니다.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신 뒤 갈빗뼈를 한 개 취하셔서 그것으로 하와를 만드십니다.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것은 생육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먼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함께 살아갈 공동체와 서로 도울 수 있는 조력자들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사는 게 관계가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공동체인 교회의 초석을 하나님의 안식을 통해 제정하셨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에게 좋은 가정을 주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담은 자신의 갈빗대로 만들어 주신 하와를 보는 순간 탄성을 발하죠.
23절,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고 아담이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인해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은 동물의 이름짓기와 다릅니다.
원어로 보면 단지 남자와 여자라고 성을 구별해서 불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어떤 차별을 두고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인격적으로는 동등하게 만드시되 돕는 배필로 만드신 것이죠.
돕는 배필이라는 의미에는 주연보다 조연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조력자는 돕는 사람이기에 더 뛰어나야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뭐가 좀 나아야 도울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들을 부부가 잘 이해한다면 무난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주연보다 조연이 되기를 자처하고 남편은 아내가 나보다 더 낫기 때문에 돕는 배필로 주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좋겠죠.
어느 여성작가가 말하기를 가족은 서로 꼴을 봐 줘야하는 관계라고 하더군요.
그 작가가 책을 쓰기 위해 노년기를 앞 둔 여러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 노년에 혼자 남는 것을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노후대책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도 똑같았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만들어 주신 사용설명서는 교회공동체와 가정을 잘 가꾸고 구성원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2장이 다소 모호한 내용인 줄 알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규정해 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으신 분이 작품의 사용설명서를 가장 정확히 알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의 안식,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용설명서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일을 사랑하고 잘 돌봐서 복된 기업이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동산에서 나오는 생명의 물이 스며들게 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교회와 가정을 아끼고 가꾸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아들을 대속제물로 주신 하나님께 받은 이 자유로, 늘 주님과 교통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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