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대비하면 망하지 않는다 (창세기 41장)

남수연 2023. 9. 10. 16:51

제가 가끔 보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인 아내와 미국인 남편과 귀여운 딸아기가 미국 텍사스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채널입니다.

딸아기가 아주 영리하고 예쁩니다.

우리나라 육아 프로에도 소개 되었던 마시멜로 실험이라고 있죠.

달콤한 마시멜로 한 개를 아이 앞에 놓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안 먹고 참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말하고 나갑니다.

다른 방에서 15분 동안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아이들의 인내심과 자제력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죠.

그런데 두 살 된 이 아기가 십오 분을 참아내는 거예요.

마시멜로를 안 보려고 애를 쓰고, 아예 다른 놀이를 하며 위기를 넘어가더군요.

아기인데도 어쩜 저렇게 주도적이고 인내심이 있는지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가 생후 오개월 때 머리뼈가 좌우 비대칭이고 위쪽이 튀어나와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단단한 헬멧 보조기를 24시간 착용해 머리뼈를 바로잡는 치료였습니다.

아기가 헬멧을 쓰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씻겨주려고 헬멧을 벗기면 머리카락이 다 땀에 젖어있더군요.

그렇게 힘든 치료가 끝나고 머리뼈가 정상이 되어 드디어 삼개월 만에 헬멧을 벗게 됩니다.

부모로서도 얼마나 기쁘겠어요?

후련하게 아기 헬멧을 벗기는데, 아기가 그 의미를 알았나봐요.

헬멧을 벗기는 순간 아기가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머리를 옥죄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기쁨, 그 어린 것이 그런 걸 느끼며 웃는 데, 보는 제가 다 행복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무거운 속박에서 벗어났던 날들, 있으시죠?

저도 빚의 감옥에서 벗어난 일이 생각납니다.

질병의 감옥, 헤어날 수 없는 관계의 감옥, 여러 가지 번민의 감옥.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속박에서 드디어 벗어난 순간을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때처럼 지금의 속박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드디어 요셉의 십삼년 간의 종살이와 감옥살이가 끝납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쫒겨 다니다 십여 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잖아요?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한 그날, 다윗에게 꿈꾸던 자유가 한순간 찾아옵니다.

요셉의 자유도 오늘 한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어거스틴이라는 신학자는 설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미시는 손이다.

오늘 우리에게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나눌텐데요.

요셉이 바로의 꿈해석을 위해 왕궁에 들어간 것, 꿈 해석과 총리가 되는 것, 그리고 칠년 흉년과 칠년 풍년이 왜 필요했냐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은 바로의 꿈 해석을 위해서 감옥에서 바로의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1) 요셉의 석방은 멀리 바로의 왕궁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이 내 옆에서만 준비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혀 상관도 없는 멀리 있는 사람이나 환경에서 준비해서 나와 엮어 놓으실 경우가 많으시죠.

내게, 지금 내 곁에 아무 것도 없다고 낙담할 일은 아닙니다.

바로왕이 기이한 꿈을 꿉니다.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첫 번째 꿈은 나일강 가에서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를 비쩍 마른 흉악한 일곱 마리의 소가 잡아 먹는 꿈입니다.

소가 소를 잡아 먹는 것도 해괴한데, 잡아먹고 나서도 몰골이 여전히 파리한 상태였습니다.

연거푸 꾼 두 번 째 꿈은 한 줄기에서 나온 일곱 이삭에 대한 꿈입니다.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보이고, 나중에 나온 가늘고 마른 이삭이 충실한 이삭을 삼키는 꿈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는 데 바로의 꿈자리가 뒤숭숭한 것이죠.

급히 꿈을 해석할 왕궁의 모든 점술사가와 현자들을 소집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 꿈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바로왕의 참모인 점술가, 현인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닐 것입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비슷하게라도 해석해 낼만도 한데,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모든 점술가들의 생각을 막아 아예 왈가왈부 논의도 못하게 하신 것이죠.

요셉이 해석해야 하니까요.

2년 전 술관원장이 요셉이 해석해 준 꿈대로 복직하고 요셉을 까맣게 잊었던 것 역시 하나님이 기억을 틀어 막으신 것이죠.

신하들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어있을 때 이 술관원장의 기억을 하나님이 깨우십니다.

그걸 잊고 있었다는 것에 자신도 놀라며 바로에게 비로서 요셉의 꿈 해석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술관원장의 말을 듣고 바로는 급히 요셉을 부릅니다.

바로가 요셉을 부르자 아마도 감옥이 발칵 뒤집혔을 것입니다.

권력과는 아무 줄도 닿을 수없는 최하층 히브리 노예 청년을 왕이 부른 것입니다.

지금도 아무나 대통령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2) 요셉은 왕궁으로 들어가 바로와 신하들 앞에 서게 됩니다.

기다리고 있던 바로왕은 요셉을 보자마자 꿈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만큼 불길한 예감이 계속 바로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도 주시지만 때로 주님의 뜻을 가르치시기 위해 번뇌도 주십니다.

번뇌와 불안이 계속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가 그 꿈 해석을 알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게 하신 것이죠.

요셉은 술관원장의 꿈을 해석할 때처럼 망설임 없이 바로의 꿈을 해석합니다.

요셉의 이런 지혜와 은사는 노예살이, 감옥살이 십삼 년에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십칠 세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난 상처를 안고, 다른 어머니들 손에서 자라며 자존심만 예민해진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백을 믿고 형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더 교만하게 굴었던 요셉이죠.

뒤에 보면 형들이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넘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4221,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목숨을 애걸하며 형들에게 매달렸던 청년 요셉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고난을 통해서였던 것이죠.

시편105편에서 요셉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더 이상 의지할 아버지 야곱이 없는 감옥에서 요셉은 아버지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에게 꿈도 주시고 해석과 말씀도 주시며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의지하도록 단련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이 많은 성경 말씀을 주시고 때에 맞게 말씀하십니다.

감옥 같은 환경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렇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사람들은 형통할 때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죠.

요셉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그렇게 만든 그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보디발도, 보디발의 아내도, 술관원장도, 자기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형들도.

하나님을 믿을수록 모든 악조건도 결국 나를 훈련하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이심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랑 엮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상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자존심 상해 할 일도 아닌 것이죠.

우리가 자식들 고생하고 일이 잘 안될 때 안쓰럽고 걱정이 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식의 영의 아버지께서 성격과 기질에 맞게 시련도 주고 실망도 주고 꿈도 주시며 요셉처럼 인도하실 것입니다.

 

3) 바로 앞에 선 요셉이 얼마나 바르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를 보십시오.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깁니다.

파라오라는 이름이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앞에서 하나님이 이 꿈의 해석을 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집트의 점술가와 현일들의 무능뿐 아니라 태양신의 무능을 폭로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편안한 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내 가족의 신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참하나님이시라는 요셉의 확고부동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밥 먹을 때 당당히 식기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을 주님께서도 반드시 높여 주십니다.

요셉이 바로 앞에서 그만큼 담대한 것은 그 순간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자기를 보호해 줄 가장 든든한 대상입니다.

그런 아빠와 함께 다닐 때와 아빠가 집에 있을 때는 다릅니다.

집에 있는 아빠를 믿지만 지금 나를 지켜줄 수는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 대한 우리 믿음은 현제여야 하고 실제로 체험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종일 아버지를 집에 모셔 놓고, 혼자 나다니기에 믿음이 힘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요셉이 고압적인 분위기의 바로와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머리 위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다른 것들에게 두려워 머리를 조아리지 않게 됩니다.

사람과 일과 환경이 두려워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하나님을 머리 위에 굳건히 모시고 살면 됩니다.

 

2. 요셉은 바로의 꿈을 이렇게 해석해 줍니다.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이니이다

1) 이 꿈은 온 땅에 칠년 풍년이 온 뒤 칠년 흉년이 올 것을 예고하는 꿈입니다.

나중 칠 년 흉년의 피해가 너무 커서 풍년은 기억도 나지 않고 애굽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일강의 풍성한 물줄기가 넘실대는 애굽이 기근에 망할 정도면 인근 나라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죠.

그 참혹한 흉년에 지난 풍년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빚내서 흥청망청하다 IMF를 만났을 때 나라 전체가 비참했죠.

자영업자들이 목숨을 끊고, 가정은 깨지고, 해외에 나갔던 유학생들도 학업을 못 마치고 숱하게 돌아와야 했습니다.

잘 살던 때가 언제였나 싶었죠.

칠년 흉년에 애굽 땅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의 얼굴은 굳어지고 신하들은 웅성댔을 것입니다.

칠년 흉년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해석이 얼마나 강력하게 그들을 타격했는지 아무런 반박도 질문도 못합니다.

그렇기에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매일 말씀이 우리를 강타하는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그때 요셉은 바로에게 애굽이 흉년으로 망하지 않을 해법을 제안합니다.

먼저 이 업무를 전담할 사람을 세우라고 합니다.

중요한 일은 누군가 책임을 져야지, 돕는 사람만 있으면 안됩니다.

칠년 풍년 동안에 국민들에게 소출의 20퍼센트의 세금을 거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 성마다 창고를 짓고, 거둔 곡식을 비축하면 칠년 흉년에도 애굽 땅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다가올 흉년을 모른다면 풍년에 흥청망청 모든 걸 허비할 것입니다.

흉년은 기정사실이기에 풍년에 곡물을 비축하라는 요셉의 제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죠.

본질을 잘 파악하면 우리 생각과 생활이 점점 간결해질 것입니다.

너무 속이 복잡하게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 명쾌한 통찰력을 주시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해야 힘이 있는 것이지, 생각이 많으면 거기에 에너지가 다 소모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매일 답을 얻으며 단순 명쾌하게 살아갑니다.

절망적인 칠년 흉년을 대비할 수 있다는 요셉의 말에 바로와 신하들은 안도했을 것입니다.

바로가 탄복하며 이렇게 말하죠.

38,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물론 이것은 바로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를 보니 네 신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온 국민들을 흉년에서 살릴 큰 임무를 요셉에게 맡깁니다.

이방인 노예가 한 순간 최강국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죠.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이지만 바로왕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 본 외국인 노예에게 어떻게 이런 전권을 줄 수 있었겠습니까?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 것이죠.

왕들 가운데는 물론 어리석은 사람도 있지만,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남다른 능력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바로왕이 그 넓은 이집트를 다스리고 인근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간파하고, 각각의 능력을 평가했겠습니까?

똑똑하고 성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을 한 눈에도 알아본 것이죠.

바로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4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이집트식 이름을 주고 태양신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줍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요셉의 하나님 신앙에 제동장치를 걸어 두는 것입니다.

요셉의 능력과 탁월함은 인정하지만 애굽과 애굽신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바로가 어리숙한 것도 아니고, 뭐에 홀린 것도 아닙니다.

탄탄하게 훈련 된 요셉을 알아본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연단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 발을 착고에 채우십니다.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묶여 있는 환경을 주셨다면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고 믿게 하시는 성장의 기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높아진 자를 쓰지 않으십니다.

낮아진 자, 자신의 낮음을 아는 자를 들어서 높여 주십니다.

요셉은 한없이 낮아진 고난 중에 모든 유익한 일들을 배웠고 오늘 애굽의 총리일을 맡을만한 자가 된 것입니다.

잠언2229,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우리 성도님들 모두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연단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칠년 흉년과 칠년 풍년의 의미입니다.

요셉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고 두 번 보이신 것은 반드시 이 일을 행하신다는 뜻이라고 바로에게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계획하셨을까요?

물론 이 일로 인해 요셉은 총리가 되고, 야곱의 가족들이 흉년을 피해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내시기 위한 나라를 준비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세계 경영의 중심은 항상 예수님을 통한 구원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대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계획하셨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심의 한 부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자연재난, 전쟁과 가뭄, 전염병 같은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땅의 가뭄, 흉년은 그 땅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징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풍요로울 때 더 악을 행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칠년 동안 풍년을 주신 것은 모든 피조물을 축복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풍성한 재물은 반드시 사람의 죄성을 부풀게 합니다.

돈이 많다 보면 인간 내면의 탐욕과 죄악들이 서서히 부풀어 제어하지 못할 만큼 커집니다.

유럽나라들이 아프리카를 침략해서 자원을 강탈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가는 악을 자행한 때가 힘있을 때였죠.

하나님이 흉년으로 죄인들의 본성과 세상의 안전을 다스리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유명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번갈아 가며 주신다는 것이죠.

인간이 스스로 세상의 악한 주인이 되려는 탐욕을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이 오르고, 사업이 잘 되고, 생활이 윤택해지면 우리의 자아가 점점 부풀어 교만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가난할 때 짓는 죄보다 부할 때 짓는 죄가 더 범위가 넓고 피해자가 많게 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항상 빠듯한 재정을 주셔서 잔고를 헤아리며 살게 하시는지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도 큰 목돈 들어오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악에 제동을 걸고 세상을 경영하지 않으신다면 지구는 이미 파멸했을 것입니다.

제국주의, 나치, 공산주의, 극단주의 이슬람, 이런 세력들이 파죽지세로 세상을 쓸어 버릴 것 같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상황이 반전되고 기세가 꺾입니다.

극악한 정권들이 영원히 권세를 누릴 것 같지만 종말이 옵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이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고 관여하고 계십니다.

그런 7년의 흉년 중에도 요셉을 통해 곡식을 남겨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이 요셉은 장차 죄악으로 인해 우리가 망하지 않게, 이 땅에 오실 에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을 통해 풍년과 흉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풍년이십니까?

흉년을 대비해야 합니다.

풍성한 재물의 축복을 주셨을 때 방만하게 교만해지지 말고 다가올 흉년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죠.

돈이 잘 벌릴 때 과도하게 소비하지 말고 남은 돈을 저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재물만이 아니라 건강이나 믿음이나 좋은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흉년이 올지 모릅니다.

대비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도로 생활의 지혜를 구하며 잘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굳게 대비한다면 모든 흉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생이 지금 흉년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만 단련되는 우리의 기질과 성품이 있기에 우리에게 흉년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말씀이 나를 단련하도록 철저히 말씀에 맞춰 살아간다면 풍년보다 더 복된 흉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에겐 풍년도 좋고 흉년도 좋은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이 구주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해 오늘 한 걸음 더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요셉을 통해 온 땅이 망하지 않게 대비하신 것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온 땅의 멸망하지 않게 하신다는 예표입니다.

대비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이 나에게 내미시는 손을 잡으시고 심판을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의 요셉을 말씀과 꿈으로 연단하셔서 구원언약의 한 부분을 영광스럽게 담당하게 하십니다.

고난이 모든 사람을 복되게 연단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고난에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더 쓸모있는 사람으로 연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연단 되신 성도님들을 요셉처럼 사용하실 것입니다.

일상의 시련 중에도 나를 잘 연단 하시고 요셉처럼 내가 감당할 하나님나라의 작은 부분을 성실히 감당하며 복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