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상12장 (열 지파를 잃은 선택)

남수연 2023. 10. 4. 20:32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게 된 결정적 사건을 전합니다.

우리가 요즘 배우고 있는 창세기에서 야곱의 자손들이 열두지파를 이루죠.

이들이 애굽에서 사백년, 가나안 정복 후 사사시대 삼백오십년을 거쳐 솔로몬왕의 시대까지 한 나라로 통일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상황처럼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라는 두 국가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서는 이 두 나라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입니다.

열왕기서는 그래서 읽기가 좀 어렵죠.

우리나라 국사도 들으면 헷갈리는데 고대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가 쏙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왕들을 알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나라를 망친 왕들의 이야기를 알아서 뭐하라고 성경에 굳이 기록했겠습니까?

열왕기서도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시기까지에 초점이 맞춰져있기에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모형이 나오고 왜 참 왕이신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그 역사 속의 왕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지라 그들을 보고 교훈을 삼으라고 주신 것이죠.

 

나라가 분열 된 원인은 솔로몬왕에게 있습니다.

지난 수요기도회에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것과 성전 완공 뒤에 드린 기도까지가 솔로몬의 믿음의 전성기입니다.

그 이후로 솔로몬은 수많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삼아 여인들의 우상신을 용납하고 신전을 지어주죠.

그리고 결국 자기도 그 우상들을 섬기는 어이없는 죄를 짓게 됩니다.

죄와 악을 가까이 하면서 거룩이 유지되길 기대한다면 오산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에 없는 지혜를 받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현몽하신 그런 희귀한 경험을 하고서도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게 참 이해가 안되죠.

그러고 보면 우리가 수십년 간 특별한 기적도 없는데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믿는 그게 기적인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주변에 대적자들이 일어나 평생 솔로몬을 괴롭힙니다.

우리 삶에 괴로움이 요셉과 같은 연단일 수도 있지만, 내가 믿음에 굳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마귀의 공격과 죄를 이기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원수가 된 중요한 인물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로보암입니다.

곧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될 사람입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심복이고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솔로몬왕 생전에 하나님은 그의 우상숭배를 두 번 경고하십니다.

그래도 솔로몬이 돌이키지 않자 여로보암에게 선지자를 보내 열지파를 다윗왕조에서 찢어 여로보암에게 주시겠다고 합니다.

만일 여로보암이 다윗왕의 길을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면 견고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 다윗을 생각해 그 후손에게 하나님이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과 유다 한 지파를 남겨주십니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솔로몬의 변절과 우상숭배인 것이죠.

그러니까 열왕기서 기록자가 솔로몬이 탐탁할 리가 없죠.

흥미로운 것은 솔로몬의 아들은 본문의 르호보암 외에 다른 아들들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처첩이 천 명이었는 데 자식들이 르호보암 뿐일리는 없죠.

유독 솔로몬의 자식들을 역사에서 다 빼 버린 것은 그들이 우상숭배 이방여인들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에 솔로몬의 자식들의 기업이 없다는 것이죠.

유일하게 알려진 르호보암도 14장을 보면 암몬 여인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여로보암에 대한 소식을 듣고 죽이려 하자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망명을 갑니다.

이제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서 왕 위에 오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르호보암이 전체 지파들에게도 왕권을 인정받기 위해 북쪽 지파의 중심도시인 세겜으로 가서 백성과 지도자들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백성들은 이집트로 망명 갔던 여로보암을 불러옵니다.

묘한 의도가 있는 것이 느껴지죠.

그리고 이 여로보암이 백성과 함께 르호보암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2. 나라가 분열되는 두 번째 원인은 르호보암입니다.

백성들은 요구를 받아 들여주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전에 다윗이 열두지파의 왕이 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여로보암은 유다지파 보다 강한 에브라임지파 출신입니다.

이미 선지자의 예언을 들은 여로보암은 반역할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이죠.

백성들의 조건은 이것입니다.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솔로몬왕 치하에서 국민들이 노역봉사가 너무 심했다는 것이죠.

성전과 왕궁 공사만도 이십년이 걸렸잖아요?

그 외에도 솔로몬이 도시건설도 많이 합니다.

고대국가에서는 왕이 소집하면 나와서 전쟁도 하고, 노역도 해야 합니다.

오랜 노역과 과중한 세금으로 무거운 멍에를 졌으니 이제는 그 짐을 좀 가볍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면 르호보암을 계속 왕으로 섬기겠다는 것이죠.

르호보암은 이 말을 듣고 사흘간 말미를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그룹의 참모들의 자문을 구합니다.

하나는 왕궁의 노인 원로들이고 또 하나는 르호보암 또래의 친한 젊은 세대입니다.

원로들은 백성들의 제안을 들어주라고 조언합니다.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젊은 측근들은 아주 강압적인 말로 그들의 제안을 묵살하라고 합니다.

10,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둘 중에서 르호보암은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의 말을 듣죠.

사흘 뒤 찾아온 여로보암과 지도자들에게 포악하게 호령합니다.

저는 솔로몬과 르호보암에 행적을 읽으며 마음이 많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알고 지혜로웠던 솔로몬도 여색에 빠지고 그로 인해 분별력과 믿음을 잃고 변절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오늘 백성들이 하는 소리가 의외이지 않습니까?

솔로몬이 화려한 상아 보좌를 만들어 황금으로 입히고 온갖 부와 사치를 누렸잖아요?

백성들도 잘 사는 나라 덕에 그 혜택을 누리며 편히 살았겠지 싶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솔로몬을 받쳐주느라 모든 백성들이 무거운 멍에를 지고 허덕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고충을 토로하는 사람들에게 그 아들이라는 르호보암은 위로는커녕 수치와 모멸감만 안겨준 것입니다.

뒤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들의 행사가 거의 다 이렇습니다.

이런 갑갑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뭐 하러 그리 길게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지 참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이 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게 분명히 있으시겠죠.

오늘 르호보암에게 조언한 원로들의 말에서 저는 찾았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왕 때 유일하게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을 뿐입니다.

다윗왕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모형이 되게 하신 것이죠.

성경이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향해 가고 있는 줄을 놓치면 안됩니다.

오늘 원로의 말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원로들의 말에 참된 왕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분명히 드러납니다.

백성을 섬기는 왕이 참된 왕이라는 것입니다.

또 백성들의 고충을 살피고 그들의 마음에 선한 말로 대답하는 왕이 좋은 왕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국민을 섬기는 왕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그걸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왕이 너희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정확히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신정 통치하시는 걸 거절하고 왕을 달라고 사무엘에게 졸랐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원했던 왕들은 평안을 주기는 커녕 그렇잖아도 힘든 인생의 멍에를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잖아요?

이 땅의 어떤 종류의 왕을 우리가 선택하든 그것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만 지울 것입니다.

세상 조직이나, 돈이나, 건강이나, 내게 행복을 줄 무엇이든, 그런 사람이든, 심지어 나 자신까지.

그것이 내게 왕이 되면 우리는 그 무거운 멍에를 지고 허덕이며 살 뿐입니다.

이것을 남유다 19명의 왕과 북이스라엘 19명의 왕이 확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역사는 지난 주일 야곱의 예언대로 유다지파에서 메사야인 실로가 오실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왕을 알고 섬기니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4.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거만하고 미련한 르호보암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가면서 뭔가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고대국가에서야 힘 있는 자가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는 게 부지기수죠.

그런데도 그들의 요구를 완전히 묵살하고 멸시하는 말로 대응한 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왕궁에서 호의호식하고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사람의 오만방자함인 것이죠.

남보다 우월한 것, 더 가진 것은 반드시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장점이 있고 잘하는 게 있으면 그걸 철저히 다루어야 합니다.

이번에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선수들이 얼마나 자기를 담금질했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가운데도 500위나 아래인 선수에게 지고 라켓을 부수고 악수에도 응대하지 않은 선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자신에게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거기서 사람들은 약자에 대한 오만함을 보았을 것입니다.

롤러스케이트 선수들이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치는 이변도 있었죠.

계주에서 마지막 선수가 이겼다 생각하고 결승선 바로 앞에서 기쁨의 우숭세레머니를 하다 속도가 늦어졌죠.

그 순간 대만 선수가 스케이트날을 내밀어 0.01초 빠른 기록으로 금메달을 가져갔습니다.

당사자가 얼마나 황당하고 부끄러울지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은메달을 따는 바람에 자기는 물론이고 한팀이었던 다른 선수도 병역특례를 받지 못했다니 얼마나 미안도 하겠습니까?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며 치타가 토끼 사냥을 할 때 목덜미를 무는 일격의 순간까지 전력질주를 하던 모습과 대비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치타가 토끼 앞에서 겸손한 것이죠.

우리가 이 선수들과 다를 바는 없습니다.

항상 겸손히 행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믿음과 인생을 자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함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023년10월4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