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내가 네 집을 세우리라 (사무엘7장1절-17절)- 다윗언약

남수연 2024. 2. 9. 02:23

https://www.youtube.com/watch?v=YMQJOCPVvqw

 

지난 주일에는 다윗성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옮겨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언약궤는 광야시대 성막에 있었던 것처럼 다윗이 준비한 텐트 안에 모셔졌습니다.

언약궤가 텐트 안에 모셔있는 것이 다윗의 마음에 걸렸습니다.

웃사가 죽고 오벳에돔이 복을 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여전히 언약궤와 함께이신 것도 경험했잖아요?

다윗은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언약궤를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건축을 근본적으로 반대하십니다.

대신 누가 성전을 건축할 것인지 하나님의 은밀한 생각을 발표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신 언약의 책입니다.

성경 없이는 사람에게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구원을 알 길이 없습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우리 믿음에도 확신이 생깁니다.

창세기3장에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실 여자의 후손을 주신다는 최초의 약속을 주셨죠.

그 메시야의 약속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로 이어지고, 이삭과 야곱에게로 이어집니다.

야곱의 유언에서 유다지파가 정해지고, 오늘 유다지파 중 다윗의 씨가 구원자가 되실 것으로 그 단서가 완벽하게 좁혀지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이 성도 다윗을 택하시고, 사랑하시고, 높여주신 것에서 우리 신앙과 교차되는 부분을 발견하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1. 드디어 다윗에게 평안을 주셨을 때 이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사건은 다윗의 통치 말기의 일이라고 봅니다.

아직 다윗의 일대기가 한참 남았지만, 사무엘하는 시간 순서로 기록한 게 아니라 이렇게 주제별로 모아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앞 장에서 언약궤를 가져왔기에 거기에 관련된 성전 건축을 연이어 기록한 것이죠.

1,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1) 다윗이 왕에 오른 뒤 많은 전쟁을 했을 것이 예상되죠.

사울왕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은 중동의 최약체 국가로 전락했잖아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강대국들과의 전쟁 없이는 평안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것들을 끼고 있다면 마음엔 불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의 표현이 좀 특이하죠.

분명히 전쟁에 나가서 싸운 사람은 다윗인데,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셨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 아시안컵 16강전도 그랬지만 호주와의 8강전도 연장전까지 정말 대단했죠.

그걸 보다 문득 우리 인생에도 정규시간만 있는 게 아니라 추가시간도 있고, 연장전도 있고, 승부차기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경기를 잠깐 보았는데 운동 경기도 혈전이더군요.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은 전쟁에서 이기는 게 양측에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죠.

목숨을 걸었으니 누가 지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이겼다고 합니다.

사울왕 때 지던 그 군사들이 갑자기 어벤져스 군단이 되었을 리는 없죠.

하나님이 싸우셨다는 게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과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서 싸우십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고 메시야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아브라함 언약이잖아요?

약소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웃나라에 먹잇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질병과의 전쟁이고, 때로는 가난과의 전쟁이고, 때로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의 전쟁이고, 나 자신과의 전쟁입니다.

성도들은 평생 이런 문제들과 믿음의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우리도 이런 전쟁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나라를 위해 싸워주셨듯이 예수님 나라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싸움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싸워 승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특히 긴 전쟁을 치를 때 지치고 낙담하기가 쉽습니다.

다윗의 고난은 이십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마침내 평안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평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2) 다윗에게서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전쟁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고 뭉뚱그려서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은 한 건, 한 건, 기도하는 대로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5장에서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마다 한 건씩 하나님께 전술과 전략을 물었던 것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안들을 하나씩 따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요즘 집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하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회사를 경영하는 윤주0 대표가 있습니다.

윤대표가 의뢰를 받고 여러 집을 방문해서 집정리를 해 주며 느끼는 것은 사람이 다 깨끗하고 정리된 환경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공간만 변화되어도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청결하고, 정돈 된 집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힘든 우리 삶에 작은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죠.

사람이 사는 집의 상태와 영적 상태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불교와 무속을 과도하게 믿던 집에서 윤대표가 처음 예수님을 믿고 나서 부모님과의 갈등이 너무 컸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뜻하던 엄마의 눈빛이 그렇게 차갑게 변하는 걸 보고 가족이라 해도 영적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더욱 부모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갈등이 깊어지자 윤대표는 집에서 나와 교회 옆에 방을 얻어 독립을 합니다.

그런데 결혼도 안 한 딸이 집을 나와 혼자 자취하는 십 년 동안 어머니가 단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십 년 간 매일 새벽에 눈물로 기도한 것이죠.

아무리 기도해도 바위처럼 꿈쩍도 않던 어머니가 어느날 윤대표를 집으로 부릅니다.

웬일인지 놀라서 집에 갔더니 요즘 왜 그런지 너무 마음이 힘들다. 네가 다니는 교회 좀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정말 믿을 수 없이 희한하게 부모님이 믿음을 갖게 되셨습니다.

윤대표가 하는 말이 거대한 바위에 십 년 동안 한 방울씩 떨어진 기도에 어느 날 바위가 쩍하고 갈라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이 미동도 없는 듯 보일 때라도 낙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어머니가 치매 4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윤대표의 부모님들은 평생 얼마나 싸웠는지 다정한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같이 어디를 가야 할 때도 각자 따로 따로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지난 주 뇌출혈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아내를 보고도 아무 조치 없이 테니스를 치러 나갔다 아내가 뇌사에 빠지게 된 남편이 기소되었습니다.

경찰조사에서 남편이 한 말이 기가 막혔죠.

엮이기 싫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싫어서 싸우는 사람들을 누가 서로 좋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싸우며 살아가는 부모가 노년이라도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 윤대표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기억이 완전히 삭제되어 버린 거예요.

반대로 아버지를 너무 좋아하게 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내가 치매에 걸린 게 자기 때문이라고 얼마나 어머니를 잘 돌보는지 둘이 매일 붙어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모든 문제들을 다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항상 간구했던 기도 응답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도 기억해야겠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일에 함께 싸워주심을 믿고 계속 기도로 우리 삶의 문제들과도, 구원해야 할 영혼들도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누리며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성전 건축에 대한 생각을 의논합니다.

2,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이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높다란 궁궐 회랑을 거닐며 왕궁 뜰을 바라볼 때 다윗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가 느껴지죠.

우리도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 그런 마음입니다.

1) 사람이 다윗과 같은 상황이 되면 성전을 건축할 마음 정도는 당연히 가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제야 평안히 쉬게 된 이 때, 다시 성전건축이라는 대역사를 벌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나중에 7년이 걸려 성전을 건축하잖아요?

건축비 부담도 막중하지만, 국민들도 이제야 겨우 전쟁에 동원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며 살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다시 역군으로 동원해 수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라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눈치를 봅니까, 사람 눈치를 봅니까?

다윗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신경썼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국민들의 신앙을 위해 다윗이 그걸 원했던 것이죠.

하나님이 다윗을 특별히 보신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진심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되었지만 금, , 놋이 생기면 장차 지을 성전을 위해서 차곡차곡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지만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다윗이 준비한 것입니다.

저는 김영희권사님이 작은 금액을 매달 건축헌금 하시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리라고 누가 지금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교회가 잘 되길 바라는 믿음이 진심이신 것이잖아요?

꾸준히 선교헌금을 드리는 성도님들도 같은 마음인 것이죠.

하나님 뜻이면 하나님이 하시겠지, 아니면 말고’.

그렇게 늘 한 발 빼려는 신앙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끝을 보자고 달려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나단선지자는 다윗이 생각하는 성전 건축을 이행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논의가 본문 내용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다윗은 이 문제를 오래 생각하며 기도했을 것이고, 나단선지자와도 신중하게 논의를 했을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도 하나님이 반대하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다르셨습니다.

두 사람이 헛발질을 한 것이죠.

강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우리도 이럴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많이 받았던 다윗도, 선지자인 나단도, 누구라도 아무 때나 자유자재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낼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기도해 봤더니 이렇게 응답하셨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기도가 중요하기에 하나님이 기도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렇다고 응답이라는 미끼를 주시며 애견 조련하듯이 하지는 않으시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만 기도하고, 하나님이 그대로만 응답해 주신다면 그건 하나님이 혼자 하시는 드라마잖아요?

하나님이 기도해도 일일이 답변하지 않으시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가 시행착오를 통해서라도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내 믿음을 스스로 책임지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내겐 왜 아무 말씀이 없냐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며, 배운 대로 잘 선택해 가시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다윗처럼 인도해 주십니다.

 

3) 다윗의 진심을 아시는 하나님이 밤에 나단에게 임하셔서 다윗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내가 언제, 누구에게 내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냐고 하십니다.

주님의 언약궤는 백성들보다 앞서 행하며 갈 길을 인도하셨잖아요?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여전히 광야를 떠도는 인생들과 함께 하시며 장막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시편89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주님의 발등상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집을 짓고 법궤를 모시겠다는 생각은 인간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착한 생각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어떻게 성전에만 계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세운 성전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같은 내용을 다룬 역대상17장을 보면 더 단호히 말씀합니다.

4,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3. 하나님은 대신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9, 땅에서 위대한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1,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조를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았던 사울왕조가 무너진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왕조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아직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다윗 주변엔 여전히 사울왕조를 다시 일으키려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가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은 목자 같은 왕입니다.

어떻게든 사울왕조의 잔존 세력까지 끌어안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왕조에는 언제고 화근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조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윗에게는 큰 기쁨이 되는 말씀이었겠습니까?

성전은 하나님께 큰 의미가 없었지만 다윗의 마음은 크게 받아 주십니다.

나중에 열왕기상8장에서 솔로몬이 이렇게 말합니다.

8,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하나님께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닐지라도 그 마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김성0아나운서가 전에 방송계 연예인상을 받고 이런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성주라는 자기 이름의 한자 뜻이 거룩할 성 기둥 주, 즉 십자가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목사 아버지가 아들 이름을 십자가라고 지어주신 것이죠.

그래서 자기 인생에 평생 고난의 길만 있겠구나 생각했다는 거예요.

시골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아버지를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겠죠.

내 인생에 세상에서 성공하고 영광을 받을 일은 없겠구나.

그런데 이렇게 큰 상을 받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평생 시골교회 목회를 하다 소천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며 울먹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십자가가 우리를 굳게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잘 이겨내는 방법은 오히려 더 헌신하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게 아니면 이 세상 영화도, 고난도,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아니면 사람은 허무한 존재입니다.

돈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삼백억이 넘으면 인생이 따분해진다는 연구도 있더군요.

건강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건강을 잃어봐야만 건강이 좋은 걸 안다는 게 함정이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다윗처럼 위대한 이름을 만들어 주십니다.

세상에서의 존귀한 명성,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성전에 대한 다른 비밀한 뜻을 밝히십니다.

사실 본문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이죠.

12,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 표면적으로는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원치 않으시면서도 솔로몬에게는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도 애초에 사람들과 만나실 성전을 생각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것은 다윗이 생각했던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 짓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이 영원히 예배할 참 성전을 지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지으면 그 상징적인 면에서 혼돈이 오기에 안되는 것이죠.

또 현실적인 이유로 다윗이 정복 전쟁으로 많은 사람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가 피를 흘리셔서 자기 몸으로 성전을 지으셔야 하잖아요?

 

2)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솔로몬이 지을 성전과 예수님이 몸으로 지으실 성전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한 쪽으로만 해석하면 잘 안 맞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예루살렘의 종말에 대해 예언하실 때, 세상의 종말도 들어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죠.

본문을 잘 보면 그것을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지 않았잖아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다시 남북 왕조가 갈라집니다.

그리고 사백 년 뒤 남유다의 다윗왕조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완전히 사라집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왕조는 로마제국이 임명한 헤롯왕조였습니다.

마리아와 그의 남편 요셉은 둘 다 몰락한 다윗왕조의 후손입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죠.

요셉은 솔로몬의 혈통이고, 마리아는 솔로몬의 형제 나단의 혈통입니다.

예수님은 법적으로나 혈육으로나 다윗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솔로몬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5절은 이 말씀을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죠.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이 부분은 다시 솔로몬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자손 중에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신다는 중대한 언약과 예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후 선지서에 계속 다윗의 후손에 대한 더 구체적인 예언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헤롯 왕조와 로마 속국에서 벗어나게 할 그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 속에서 과연 메시야가 오신다는 뜻을 이해했을까요?

다윗의 시편을 보면 다윗이 이해하고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메시야 시편들이 있잖아요?

거기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것과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에 대한 놀라운 예언들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다윗이 모든 대적을 이기고 평안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삶을 감당하면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실수도 많았지만, 하나님께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다윗은 법궤에서 그 다음은 성전으로 조금씩 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것이죠.

그런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고 세상에도 왕조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집을 세워주시고, 위대한 이름을 만들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오셔서 몸으로 참 성전을 지으신 예수님을 통해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