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BLRLUh7HqY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어제는 가족끼리 풍성한 식탁을 나누셨으니 오늘은 왕의 식탁에서 말씀의 만나를 만족하게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이 죽은 지 20여년이 지나고, 다윗의 왕권이 강해졌을 때 일입니다.
다윗은 아주 중요한 일 하나를 실행합니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자 친구였던 요나단의 혈육을 돌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데려다 사울 가문의 땅을 되찾아 주고, 왕자처럼 대우해 왕의 상에서 먹게 합니다.
이 내용은 단지 다윗의 미덕을 기리기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럴 의도로 다윗의 역사가 기록되었다면 몇 장 뒤에 나올 밧세바 사건은 아예 빼버렸겠죠.
성령께서 다윗의 일대기 중, 이 사건에 주목해 소상히 기록하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지 잘 이해하고 오늘도 큰 은혜를 받으시길 축복드립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은 자를 찾고자 한 부분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다윗이 이렇게 사울의 자손들을 찾아내려는 의도를 정치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왕조를 세우신 것을 모두가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북쪽 지파가 무려 칠 년 반이나 다윗을 인정하지 않았잖아요?
정권이 바뀔 때의 저항은 곰이 새끼를 뺏기지 않으려는 것만큼 사납죠.
사울왕조가 있던 베냐민지파는 그런 미련을 다 털어버리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사울의 자손들을 다 찾아내서 눈앞에서 관리하는 게 안전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그게 목적이라면 다윗이 이제와서 므비보셋을 찾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령께서 이 사무엘서를 기록하게 하실 때도 일관적인 목적에 맞추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주에 들었듯이 다윗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다윗언약을 계속 보장하십니다.
오늘 읽은 교독문에서도 나오죠.
이사야55장3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또 예레미야33장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레미야33장15절,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이 말씀을 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만약 낮과 밤이 반복되는 법칙을 바꿀 수 있다면, 다윗과 세운 내 언약을 파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언약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죠.
이 언약의 확실성을 철저히 인식하도록 성경은 다른 모든 언약들도 반드시 지키도록 다루십니다.
성경에서 언약이 나오면 굉장히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나안정복 전쟁 때 기브온부족들이 여호수아에게 찾아와 멀리 있는 민족이라고 속여서 화친조약을 맺었던 것 기억하실 것입니다.
상대가 속였는데도 언약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지키잖아요?
하나님은 가나안 정벌이라는 원칙보다 기브온 부족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을 더 우위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이스라엘에 삼 년 간 가뭄이 발생합니다.
이런 긴 가뭄은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 다윗이 하나님께 그 이유를 여쭈어봅니다.
그 이유는 사울왕이 기브온 부족들이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학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살려주기로 언약을 했는데 그 언약을 파기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임한 것이죠.
1) 오늘 다윗이 므비보셋을 복권 시킨 것도 그런 언약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절에 그 중요한 포인트가 나옵니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집에 은총을 베푸는 이유가 요나단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울은 사위가 된 다윗을 노골적으로 죽이려 하죠.
눈 앞에서 창을 던지기도 하고, 자객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때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과 관계가 악화되면서까지 다윗을 보호하고 결국 다윗을 탈출시킵니다.
다윗은 요나단 때문에 은총을 베풀겠다고 합니다.
물론 도의적으로도 다윗은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이 말한 은총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헤세드’입니다.
은혜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 단어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에 헤세드라는 단어는 두 가지 경우에만 사용합니다.
약속과 관련된 은혜, 그리고 무조건적인 은혜만을 헤세드라고 합니다.
다윗이 은총을 베풀겠다는 말 속에는 요나단과의 언약으로 인해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다윗과 요나단이 맺은 언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사무엘상20장에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 나올 때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렇게 약속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왕으로 세우실 것이다, 그때 나를 생각해서 내 가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
다윗이 그렇게 요나단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고 헤어졌던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으니 이제 언약을 지킬 차례가 된 것이죠.
오늘 망한 므비보셋이 이 언약으로 인해 다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을 왜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처럼 다윗의 후손을 통한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다란 확신을 성경을 읽는 이스라엘 민족에 각인시키려는 것입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가 되었을 때, 로마제국 식민지로 있을 때, 다윗의 자손이 와서 구원한다는 그 언약을 믿고 기다리게 하신 것이죠.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더욱 확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성경에는 이 다윗의 후손에 대한 언약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이 말씀 왜 안 믿으세요?
덕소교회 목사님이 기도하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말씀이 믿어지는 경험을 중학교 때 했다고 합니다.
중3때 문방구에서 만년필을 훔치는 옆 학교 일진들을 보고 주인아저씨 한테 일렀다가 일진들 표적이 된 거예요.
잡히면 죽는다고 했으니, 학교 다니는 길이 얼마나 끔찍했겠습니까?
절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를 하며 불안하게 학교를 다니는 데, 진짜 한번도 마주치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안하게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되었는데, 담임선생님이 학교가 이사를 가니까 개학하면 새학교로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부이촌동에 있던 학교가 땅을 팔고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때 내 기도가 학교를 옮겼구나, 믿음의 기도가 산을 옮긴다는 말씀이 틀린 게 아니구나를 진짜 체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학교 이전은 준비되었던 것이지만요.
그래서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면 되지’,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걱정만 하지말고 기도하라고 다시 약속을 깨우쳐 주시는 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2.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사울의 종 시바에 대해서입니다.
1) 먼저 시바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시바는 다윗이 찾을 때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손자를 찾아내 죽일까봐 걱정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새 권력자가 왕좌에 앉으면 이전 왕조의 가문 전체를 죽이고 재산도 몰수하는게 고대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사울왕이 죽고 이후 이십여 년 동안 시바가 여전히 사울 가문의 농토와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주변나라와의 전쟁이 더 급박했잖아요?
오늘 10절이 시바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명이라
이 정도면 종이 아니라 호족입니다.
시바가 주인의 재산권을 갖고 자기 가문을 크게 키웠다는 것이죠.
시바가 약삭빠른 사람이고, 재빨리 머리를 굴리는 게 오늘 본문에서도 나옵니다.
다윗이 남은 자가 있냐고 물을 때, 시바는 두 가지 정보만 이야기합니다.
요나단의 아들이 한 명 있기는 한데, 두 발을 다 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4장에 잠깐 나옵니다.
사울왕과 요나단이 블레셋에게 패하고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모가 어린 므비보셋을 안고 급히 도망가다 그만 아기를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두 발을 다 절게 된 것이죠.
시바는 므비보셋의 이름도 말 안 하고, ‘두 발을 저는 장애인이니 신경쓸 것 없다’고 다윗의 생각을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는 이스라엘 중심지와는 멀리 떨어진 요단강 동편 길르앗땅 변방입니다.
시바는 다윗이 그런 므비보셋에 신경 쓰지 않길 바랬습니다.
자기가 지금처럼 살 길 원했던 것이죠.
그러나 상황은 시바가 원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땅을 므비보셋에게 복권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바와 그의 가족들은 그 땅을 경작해서 므비보셋의 집을 섬기라고 합니다.
20년 동안 자기 것으로 여겼던 재산이 하루 아침에 다시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시바는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악인의 탐욕이 여기서 끝나지는 않겠죠?
시바의 2탄이 뒤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2) 므비보셋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므비보셋은 왕자로 태어났지만 가문의 불운에 휘말려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입니다.
사울왕조가 이어졌다면 요나단이 2대 왕이 되었고, 므비보셋이 3대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자기 잘못도 아닌데, 할아버지 사울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아버지도 잃고 가문은 몰락했고 자신은 절둑발이가 된 것이죠.
지금은 남의 집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서글픈 처지가 되었습니다.
역대상에 보면 므비보셋의 이름이 므립바알로 나옵니다.
왜 이름이 두 개이겠습니까?
므비보셋이 이름까지 바꾸고 숨어 살았을 것이라 생각되죠.
새 정권이 들어섰으니 왕세자인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몸만 장애를 입은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상처를 입었고 여전히 그 상처가 진행 중인 불쌍한 사람인 것이죠.
우리가 과거 받은 상처에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게 있잖아요?
우리도 인생이 파산한 므비보셋처럼 영혼도 인생도 파산했던 사람들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기를 찾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12절을 보면 므비보셋에게 미가라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장애가 있어 왕이 될 수 없다 해도 아들 미가도 왕손입니다.
아들의 운명까지 걸렸으니 므비보셋의 심장은 불안감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마치 아버지처럼 인자하게 말합니다.
7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그리고 가문의 땅을 법적으로 므비보셋에게 되돌려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소유하는 게 하나님이 백성이라는 증거입니다.
토지가 없다면 하나님나라의 영주권이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가난으로 토지를 남에게 팔았을 때 50년이 지나면 되돌려 주라는 희년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왕조를 세우시려는 하나님나라에 대역죄인이 되어 죽었으니 토지도 없어지고 기업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죠.
그런데 다윗이 그것을 모두 돌려 준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왕자들처럼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합니다.
므비보셋이 완전히 복권된 것이죠.
이십 년간 하나님나라의 반역자의 후손으로 숨죽이고 살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반전되는 걸 보며 므비보셋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8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다윗을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왜 모르겠습니까?
원수의 후손인 자신은 죽은 개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의미로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죠.
자격이 없는 자신에 비해 받은 은혜가 터무니없이 클 때 그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속에 있는 숨겨진 나를 직면할 때마다 이런 무가치한 나를 위해 예수님이 목숨을 주셨다는 사실이, 딱 이렇게 표현할 만큼 송구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므비보셋이 언약 때문에 다윗왕의 식탁에서 먹게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하게 된 것도 예수님의 대속의 언약 때문임을 항상 묵상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3. 오늘 본문은 이대로 끝이 아니라 결론이 뒷 부분에서 나옵니다.
사울의 땅을 차지하려는 시바의 2차전이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 17장에서 이어집니다.
연결되는 내용이라 함께 보도록 합니다.
다윗의 노년에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반역한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다윗은 반역 소식을 듣고 한밤중에 궁을 빠져나와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으로 피신을 갑니다.
다윗의 군사력이 압살롬보다 약해서 도망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맞서면 민족 간에 큰 살상이 나고 아들도 결국 죽을 것을 다윗은 아는 것이죠.
그때 다윗이 맨발로 울면서 피난을 갔다고 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할 때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우리가 자식들이 매정하게 대하기만 해도 속에서 눈물이 나잖아요?
다윗의 피난길에 다윗 편에 선 수많은 사람들과 군대가 따릅니다.
다윗의 피난 행렬 앞에 이 시바가 나타납니다.
나귀 두 마리에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싣고 와서 충성심을 드러냅니다.
다윗이 네 주인 므비보셋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시바가 하는 말이 므비보셋은 이 상황이 사울왕조를 다시 세울 기회라며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아들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았던 다윗은 시바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립니다.
그리고 네 주인의 모든 소유가 오늘부터 네 것이라고 말해 버립니다.
그 뒤 반란이 마무리되고 다윗이 돌아올 때 므비보셋이 마중을 나옵니다.
다윗이 떠난 뒤로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은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않았냐고 묻죠.
므비보셋은 가려고 했지만 시바가 자신을 속였다고 합니다.
아마 잘 걷지도 못하는 주인이 왕을 따라가면 오히려 폐가 될 것이라며 그냥 기다리자고 만류했겠죠.
그리고서 왕에게는 자기를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말 중 누구 말이 옳을까요?
다윗은 누가 옳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이 둘 사이에서 다윗은 의외의 결론을 냅니다.
‘재산을 둘이 나누어라’
다윗이 진실을 가리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바가 왕을 속인 걸 추궁해서 알아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다음은 시바와 그 가족을 다 죽여야 하잖아요?
왕을 능욕한 죄죠.
다윗은 아들도 나를 속이고 배신하는 데, 남이야 어떻겠냐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김창0 강사가 어릴 때 엄마를 이렇게 속여 먹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학교도 못 다니셨고 한글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번은 영한사전 산다고 돈을 타고, 그 다음엔 한영사전 산다고 돈을 타고, 그 다음엔 콘사이스 산다고 돈을 탔다는 거예요.
엄마가 모르시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딸을 낳고 키우다 보니 고것이 자기를 속이더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 부모 속이잖아요?
그게 자기 눈에 보이는 순간, 그때 어머니 생각이 난 것이죠.
그때 엄마가 다 알고 계셨구나.
때로는 친한 사람들의 거짓말을 모른 척 해주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사소한 문제까지 따져서 가족이나 사람들의 진실을 밝혀서 뭐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뜯어 고칠 수도 없잖아요?
사람은 다 실수도 하고 배신도 합니다.
지금 나와 잘 맞는 저 사람도 내가 모르는 것이지 내 뒷담화를 합니다.
언젠가 나를 배신하고 서운하게 할 것입니다.
그도 저도 다 잘라내면 나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죠.
다만 모두를 포용하되 거기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늘 기도는 해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사람관계를 맡기는 한 누구와든 큰 불화는 피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다윗이 시바와 므비보셋에게 내린 판단을 우리가 의미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바와 같은 사람도 그냥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살게 둔 것이죠.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우리 몫이 아니잖아요?
예수님도 주님의 무리를 따르지 않으면서 주님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사람을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못 봐줄 사람도 좀 봐주고, 흠이 많은 사람도 우리가 눈감아 줘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늘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무한대로 용서해 주시잖아요?
4. 마지막으로 므비보셋을 돌봤던 암미의 아들 마길에 대해서입니다.
마길이 다시 나오는 곳은 19장에 다윗이 피난 가던 때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땅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다윗을 마중 나옵니다.
전에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가져다 장사해 준 길르앗 사람들의 공로를 치하했던 내용이 나왔었잖아요?
길르앗사람들은 사울 편이었음에도 곤경에 빠진 다윗을 보고 나와서 다윗을 받아주고 환대해 줍니다.
만일 전에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피난 온 다윗을 적대하는 세력들과도 큰 충돌이 있었을 것입니다.
남을 인자하게 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알 수 있죠.
그 사람들 중에 특히 큰 부자인 바르실래라는 사람과 본문의 마길이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피난길에 양식이 부족한 다윗과 일행들을 위해 엄청난 음식과 쓸 것들을 가져옵니다.
마길은 므비보셋이 왕궁으로 불려 간 뒤 얼마나 노심초사했겠습니까?
사울의 남은 혈육이니 십중팔구 없앨 수도 있겠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푼 것을 보고 안심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는다고 잠언에 있잖아요?
마길이 그 마음으로 다윗을 도왔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베푼 대로 자기가 다 받은 것이죠.
오늘 다윗의 일화에서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우리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했던 므비보셋은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 때문에 모든 것이 복권됩니다.
이것은 구약의 복음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미 사망 가운데 살다 예수님의 구원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란 과분한 지위를 얻은 것이 똑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왕자 같은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삶에서도 많은 약속을 주신 것을 놓치지 말고 기도하고 응답받으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인자하게 사람을 대하고 우리의 곁에 사람들을 많이 용납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베푼 사랑을 내가 힘들 때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믿고 널리 베풀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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