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사무엘하5장1절-25절 (강성해 가는 다윗)

남수연 2024. 1. 26. 01:32

https://www.youtube.com/watch?v=CFg80zJPoTY

 

사무엘하 성경은 다윗왕조가 세워지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특히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중요한 인물들이 있죠.

노아, 아브라함, 야곱, 이삭, 그리고 다윗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예수님이 태어나실 한 가정의 족보를 만들어 가실 뿐 아니라 아예 한 나라를 만드십니다.

특히 다윗의 나라를 통해서는 예수님의 나라가 어떤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시련이 많았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오랫동안 선지자들이 예언한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다윗왕 통치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무엘서를 읽으며 이스라엘 민족은 그때를 기억하고 메시야를 대망하도록 이 성경은 씌여진 것이죠.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야이심을 믿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사무엘서는 이 믿음에 대한 지식과 확실성을 얻게 합니다.

이로써 오늘 우리 믿음이 더 강건해지는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1. 드디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지난 주 북쪽 사울왕조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 다윗의 나라에 개입하려다 요압에게 살해당했죠.

그리고 4장에서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왕이 측근에게 살해를 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정권이 바뀌는 격변기인 것이죠.

그 후 오늘 북쪽 지파의 사절단이 헤브론의 다윗을 찾아와 왕으로 추대할 뜻을 밝힙니다.

왜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는지 1,2절에서 세 가지 명분을 댑니다.

사실 정권이 바뀌는 게 세상나라에서도 큰일이잖아요?

사울이 40년을 통치한 나라를 넘겨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죠.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다윗에게도 명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1절에서는, 다윗이 같은 조상을 둔 혈족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베냐민 지파인 사울왕조의 뒤를 잇는 것은 아니지만 유다지파도 결국 같은 혈족이기에 민족의 왕이 될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이죠.

2절은, 사울왕보다 이스라엘을 전쟁에서 구원한 사람은 다윗이었다고 합니다.

다윗이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이미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셨다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니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내한 성도는 반드시 기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1) 특히 장로들의 말 속에서 다윗의 나라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시려는 게 무엇인지를 잘 캐치해야 합니다.

다윗의 나라와 그것이 상징하는 메시야의 나라는 왕이 목자라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자들 중에 저 사람은 목자 같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요즘 선거가 다가오는데, 공천과 정권 창출에 목을 맨 모습들만 보이니 씁쓸하죠.

북쪽 지파 장로들이 알고 있었듯이 사울도 다윗이 왕으로 지명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을 아예 죽여 없애고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세습하려고 한 것이죠.

사람이 권력을 내려 놓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작은 감투라도 썼다 내려놓아 보면 압니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중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자 같은 왕이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이 목동에서 왕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윗의 믿음과 사람됨됨이도 필요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가 없이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세우시는 게 아닙니다.

다윗에 대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사도행전에서 인용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대체 어린 다윗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을까요?

양떼를 돌보는 어린 다윗의 마음과 태도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생각하시는 마음과 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어린 다윗의 마음이 양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향하는 걸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격분한 게 무엇이었습니까?

거인 골리앗이 대치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모욕하고 겁박하죠.

무기도 변변치 않은 보통 백성들이 전쟁에 차출되어 나왔지만, 골리앗이 베틀 채 같은 칼을 휘두를 때 겁에 질려 막 도망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동 다윗의 눈에는 마치 사자가 달려들고 양떼가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나가 뭐라고 합니까?

사자와 곰이 양떼의 새끼를 물어갈 때 내가 따라가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냈다고 합니다.

사자의 발톱에서 나를 건져내신 하나님이 이 블레셋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양들을 구했듯이 하나님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이었다는 것이죠.

어린 청년 다윗이 그 전쟁 상황에서 자기 목숨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각했다는 것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박현* 가수의 샤방샤방이라는 노래를 거의 다 아실 것입니다.

이 노래는 목사님 아들인 * 지환씨가 고3 때 작곡한 노래입니다.

지금은 ‘******* 혼수상태라는 이름으로 2인조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환씨는 이 첫작품은 샤방샤방을 하나님께 바친 곳이라 생각하고 저작권료는 다 아버지 사역에 헌금으로 드린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교회가 건축헌금을 작정하는데, 지환 학생이 50만원을 작정합니다.

한달 용돈이 만원이었다는 데, 학생이 어디서 50만원을 구하겠어요?

그래서 지환씨는 부모는 모르게 급식비를 내지 않고, 매점에서 빵으로 때운 뒤에 기독동아리 교실로 가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교 후에는 전단지 알바를 하며 돈을 모읍니다.

그렇게 모았더니 한 달에 십만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 개월 만에 작정한 건축헌금 오십 만원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죠.

그 돈이 마련되고 헌금을 드렸을 때 자기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고 합니다.

지환씨가, 하나님이 그런 순수했던 자기를 보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기에 축복을 받아 작곡한 곡들이 크게 히트했다는 것이죠.

영탁씨의 찐이야, 송가인씨의 서울의 달, 가인이어라.

김호중씨와 정동원씨 등등, 수 많은 가수들의 인기곡을 작곡해 명성을 얻고 돈도 많이 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도 어린 다윗이 하나님 백성들을 위하려던 그 마음과 무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만을 위해서 살면 세상이 사용하겠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복을 받을 그릇을 잘 준비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하나님이 정하신 왕은 왜 목자여야 할까요?

세계 역사를 보면 지도자 한 사람이 온 국민을 도탄에 빠드립니다.

독재자들은 왜 그렇게 국민의 고혈을 빼내 사치를 하는지 의문입니다.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었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화장실 벽면을 온통 금으로 치장하고 변기를 아예 금으로 만들었잖아요?

사회제도상 지도자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인간 지도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이 양을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병든 양을 치료하고 약한 양에겐 더 좋은 풀을 먹이며 돌봅니다.

새끼를 밴 어미 양을 살살 인도하고, 새끼를 받아주고, 어미 품에 둡니다.

다윗처럼 사자 입에 물린 양을 구하려고 자기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왕을 목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런 목자 같은 왕이시기 때문이죠.

그 하나님을 일평생 경험한 다윗이 시편23편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경험했던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주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면 삶의 음침한 골짜기도 주님과 함께 통과하고, 실제 죽음도 주님을 의지해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목자의 마음을 가졌던 다윗의 시대에 백성들은 평안을 누렸던 것입니다.

실질적으로야, 인간 다윗이 어디서 그렇게 할 능력이 생기겠어요?

스스로가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랐기에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평안히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자 예수님을 잘 따르면 우리 삶과 가족들과 생활의 환경들이 다 평안히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죠.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을 때 성령이 임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목자의 마음이 생깁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과 똑같은 목자의 마음이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양떼를 돌보듯 성도들과 이웃들을 챙기고 돌보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자의 마음을 품고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분량만큼 세상에서 우리를 귀하게 세워주시길 축원드립니다.

 

3)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십세 전에 사무엘의 기름부음으로 왕으로 내정됩니다.

그리고 지금 삼십칠세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 연단 없이 왕이 되어 곧바로 40년 통치를 한 것과 비교가 되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훈련과 연단이 없이는 우리에게 주시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공은 더더욱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연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사울과 다윗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전에 이영*선수가 독일 프로팀에서 뛸 때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훈련하고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침에 구단에 갈 때면 차가 좀 굴러서 석 달만 입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합니다.

그걸 겪으며 훌륭한 축구선수이자 신앙인이 되었던 것이죠.

사는 것도 때로 너무 힘들다 생각이 들고, 시련의 시간도 너무 길다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헛되이 보지 않으시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2. 헤브론에 살던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예루살렘을 택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수도가 된 내용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오늘 6절을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성에 살고 있는 여부스 사람들을 치고 다윗성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헤브론은 남쪽에 있는 유다지파의 성이고 북쪽 지파까지 관할하기가 어렵습니다.

남쪽 유다와 북쪽 지파의 경계상에 있는 곳이 시온산성에 있는 예루살렘성입니다.

예루살렘성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부터 사백 년이 지난 본문까지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지형적으로 서쪽, 남쪽, 동쪽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이 성을 함락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예루살렘과 붙어 있는 북측 베냐민 지파도, 남측 유다지파도 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통일왕국을 다스릴 다윗에게 그동안 아무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이 예루살렘만큼 좋은 성이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 성을 주시기 위해서 남겨두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다윗이 이 예루살렘성을 어떻게 정복했는지는 8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치라 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의 지형 조건을 믿고 다윗이 절대로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을 장담했습니다.

그래서 다리 저는 사람이나 소경이라도 다윗이 못 올라오게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죠.

그런데 예루살렘성은 가장 취약한 급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채 안에 수원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바깥 기혼샘의 물을 수로를 통해 성 안으로 끌어 들여 사용했습니다.

1867년에 워렌경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수구를 발견해 워렌수구라고 이름을 붙였고 성지순례객들이 꼭 들르는 곳입니다.

성경 기록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죠.

히스기야 때 만든 터널과는 다른 수로입니다.

다윗 당시에는 수로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승리의 포인트가 어딘지를 알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성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막고 그 수로를 통해 군대가 들어가 여부스사람들을 몰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갱도의 별명이 예루살렘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부족을 몰아낸 것은 출애굽기에서 말씀하셨던 가나안 일곱부족의 정복이 비로소 완수된 것입니다.

여부스족속이 일곱부족에 들어갑니다.

다윗에게 주신 이 예루살렘성에 천년 뒤 예수님이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환영했죠?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로 예루살렘에 통치하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참 기이하고 흥미로운 것이 또 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어느 나라에 속하지 않은 지구상의 독특하고 유일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나누어서 관할하고 있지만 국제법상으로는 두 나라 어느쪽에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의 성이라는 상징성을 남겨두신 것일까요?

그 어느 나라도 소유할 수 없는, 누구나 왕래할 수 있는 그런 독특한 곳으로 남겨두신 것이죠.

가나안땅의 중심에 있는 정복되지 않았던 그 예루살렘성은 어쩌면 끝까지 정복이 되지 않는 부패한 우리 마음 중심일 것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이 오셔서 통치하시길 축원합니다.

 

3.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자 함께 하는 나라와 대적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나라에 협력하는 사람들과 대적하는 세력들이 있죠.

1) 두로왕은 다윗의 나라를 기뻐하고 협력합니다.

두로왕 히람은 다윗 왕의 통일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화친합니다.

백향목이 많았던 두로에서 재료를 가져와 다윗의 궁을 지어줍니다.

스스로 찾아와 화친을 청하고 왕궁을 지어주겠다는 나라를 볼 때 다윗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12절입니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고 순종하며 따르다 보면 이런 일도 일어납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와서 친구가 되고, 나를 돕는다는 것이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하며 나를 도와줄 때 우리도 그런 것을 느끼게 되죠.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높여주시는구나

그렇게 좋은 이웃과 친구와 동역자들을 많이 만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반면에 블레셋은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공격해 옵니다.

우리 믿음의 삶의 번영을 훼방하는 악의 세력들은 늘 존재하죠.

이렇게 우리를 반대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환경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합니까?

다윗이 어떻게 블레셋을 물리치는지를 오늘 본문은 보여주십니다.

다윗은 블레셋을 상대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지를 또 묻습니다.

아무리 통일 이스라엘이라 하지만 블레셋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사울왕과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전사했잖아요?

다윗은 두 번의 전투에서 블레셋을 크게 물리쳐 대승을 거둡니다.

사울왕 때 보다 적은 군사력으로 어떻게 사울이 패한 블레셋을 이길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윗이 모든 전투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전술을 쓸 것인지까지 다 지도해 주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대를 만나고 힘든 시련을 만날 때 꼭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할 때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방법과 세밀한 지혜까지 주시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알고 보니 혼수상태팀은 매일 큐티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트로트 계통의 작곡을 하다 보니 별의별 사람이 다 찾아와 곡을 달라고 하고, 사기꾼들도 찾아오고, 조폭도 오고, 무속인들까지 찾아온다고 합니다.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말려드는 것이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그날에 꼭 맞는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와 말씀으로만 상황을 명석하게 분별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 시야가 정말 좁아지고 흐려집니다.

매일 이 경건생활을 실천하는 모두가 되시길 다시한번 권면합니다.

 

4. 다윗 왕가의 구성원들도 점점 많아집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에 다윗의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헤브론에서 여섯 명의 아내가 있었고, 오늘 예루살렘에서 또 다른 아내와 첩에게서 낳은 11명의 아들 이름이 나옵니다.

다윗왕조가 번성하는 것 같습니까?

이 부분은 다윗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은 처첩을 많이 둔 것입니다.

일부다처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의 공통된 고대 문화였습니다.

모든 남성들의 죄성이 똑같기 때문이죠.

구약성경이 일부다처를 허용하느냐를 이 부분에서 따질 것은 못됩니다.

이미 창세기 아담과 하와의 창조는 한 아내와 한 남편을 가르치십니다.

갈비뼈 하나로 아내를 만드셔서 한 몸이 되리라 하셨잖아요?

다른 갈비뼈를 더 가져다 붙이겠습니까?

십계명도 분명히 동일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다윗이 여러 여자를 둔 것이 잘한 것이냐 못한 것이냐는 결과가 말해줍니다.

사무엘서와 역대기를 종합해 보면 다윗은 열아홉 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 이복형제들은 서로를 죽이고, 이복 여동생을 겁탈하고, 아버지의 왕권을 향한 욕망으로 형제간의 칼부림이 계속됩니다.

다윗이 잘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다윗이 여자를 많이 두고 자식들을 많이 낳아서 왕실을 강화하려고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불신입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과 숫자로 나라가 견고해 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 다윗을 보고 자란 솔로몬은 급기야 천 명의 처첩을 둔 엽기적인 왕이 되고 그 아들 대에서 나라가 다시 두 쪽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다윗의 아들들에게서 유의해서 보아야 할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14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역대상 3장을 보면 이 네 명의 왕자는 모두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그 중 솔로몬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는 아들이죠.

그 위에 나단이 있습니다.

이 나단을 여기서 언급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경의 한 부분을 뒷받침해 줍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다윗 다음이 솔로몬으로 이어져 요셉까지 이릅니다.

전에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말씀드렸죠.

거기에는 다윗 다음이 바로 이 나단으로 나옵니다.

나단으로부터 이어져 마리아에게로 내려오는 족보인 것이죠.

여자의 족보를 인정하지 않던 관행 때문에 마리아 대신 요셉이라는 이름으로만 바꿔서 기록한 것입니다.

만일 다윗의 아들들의 이름이 기록에 없었다면 누가복음의 족보가 붕 뜨게 되는 것이죠.

성령께서 역사가들을 감동하셔서 그 이름들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왕국을 상징하는 다윗의 나라의 핵심요소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게 좀 늦죠.

다윗의 나라가 온 것처럼 반드시 이뤄집니다.

우리의 바라는 기도의 응답도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시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양같이 미련하고 약한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도 주님처럼 목자의 심정을 받았기에 조금씩 교회와 이웃을 생각하며 섬기며 복을 받을 그릇을 만들어 가시길 축복드립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서로가 좋은 동역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환경과 사람은 기도와 말씀의 힘으로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다윗처럼 다 취약한 부분이 있죠.

약점이 있다고 은혜를 안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약점을 다루지 못해 죄를 지을 때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을 잘 내는 게 기질적인 약점이라면, 성내는 순간 평화가 깨지고 불편하게 되는 걸 감수해야 하잖아요?

우리의 약점과 약한 믿음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믿음을 곧게 성장시켜 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