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사무엘하2장1절-11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다윗의 나라)

남수연 2024. 1. 12. 02:19

https://www.youtube.com/watch?v=2zLrqiVkUtc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습니다.

누군가엔 처절하게 살아보고 싶었던 바로 그날들일 것입니다.

귀하고 소중한 이땅의 시간들을 우리가 또 누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새해 들어 여기저기서 터진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걱정도 되죠.

그래도 올해도 우리가 생각할 성경말씀은 잠언169절일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좋은 길을 아시니 올해 우리 모두를 복되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 복된 길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송구영신예배 말씀 사무엘하1장에서 이어집니다.

앞으로 계속 사무엘하 말씀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1. 사울의 나라와 다윗의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것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요지입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우리 송구영신 예배 설교 제목이 무엇이었지요?

사울이 가고 다윗이 온다.

올해 우리에게서 사울이 가고 다윗이 오기를 축복드립니다.

1) 다윗의 나라와 사울의 나라가 다른 것이 기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다윗의 나라의 근간이 기도라는 것을 대놓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잘 적용해야 하는 것이죠.

오늘 배경을 잠시 보면, 사무엘상 마지막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맹렬한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사울왕과 요나단이 전사합니다.

이제 다윗의 지긋지긋한 십년 도피생활의 끝이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다윗의 처지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다윗이 있는 곳이 바로 블레셋의 성읍 시글락이기 때문입니다.

9년이나 유대광야를 전전하던 다윗이 사울왕의 추적에 지쳐 아예 블레셋으로 망명을 가 있는 것입니다.

블레셋에서 1년 반을 망명하던 중 하필 그 마지막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시대가 온 것은 확실하지만 이 일이 어떤 정치판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것이죠.

문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죠.

사실 다윗은 십 오년 전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차기 왕으로 내정이 된 상태입니다.

사울왕이 죽고 후계자 요나단도 죽었으니 당연히 다윗 차례가 된 것이죠.

다윗에게는 이미 육백명의 잘 훈련된 병사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배하고 왕도 없으니 누가 봐도 기회이지 않습니까?

신속히 이스라엘로 돌아가 지파들을 모으고 왕이 되면 방법이 있죠.

아마 함께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다윗이 그렇게 하길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당연한 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견을 구합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차마 기도하지 못하죠.

또 내가 하고 싶으면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뜻대로 후딱 해치웁니다.

다윗이 도피 생활에 지쳐서 피난처로 시글락을 선택할 때 그래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로 인해 시글락에서 큰 위기를 만났잖아요?

또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 것이죠.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행한 일들이 결국 인생의 장애물이 되지 않았던가요?다윗은 블레셋으로 망명했던 마지막 선택을 크게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자기의 시대가 왔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결과를 보면 하나님의 뜻은 당장 전국의 왕이 되는 게 아니었죠.

묻지 않았다면 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새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오늘 기도하는 다윗에게 배웁니다.

이건 틀림없다 싶고, 내 앞에 문이 활짝 열린 것 같을 때도 기도로 확신을 얻은 뒤에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올해는 우리 앞에 광대한 문이 열리고, 기도의 확신 안에서 행하여, 원하는 것들이 성취되게 해 주시길 축복드립니다.

 

2) 다윗의 기도는 단지 삶의 인도를 받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에 역대기 역사서는 사울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역대상10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왜 죽었다고 합니까?

그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죠.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울을 죽이시고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셨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당연히 사울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실 때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 인해 큰 환난을 당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울을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사울왕은 단지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울왕은 아예 묻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판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가 사울의 나라입니다.

다윗의 나라는 다윗이 주인이 아니고 다윗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게 무엇으로 증명됩니까?

하나님께 묻고 하냐, 사울처럼 내 생각대로 하냐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야 맞는 것입니다.

 

3) 기도하지 않는 사울과 기도하는 다윗은 세속나라와 하나님나라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울과 다윗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울도 사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삼으신 사람이잖아요?

처음부터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지 않고 왜 사울을 먼저 왕으로 세우셨냐는 것입니다.

사울왕 이전엔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직접 신정통치를 하십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런 체제가 싫다고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주변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서 전쟁도 하고 나라도 다스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세상 나라처럼 인간 왕의 통치를 원했던 것이죠.

하나님이 그들이 원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인 왕을 구하는 데, 우격다짐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다윗을 주시지 않는 것이죠.

우리가 구할 때 내가 구하는 게 뭔지 잘 알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래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만한 사울을 뽑아서 왕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 중에서 뽑힌 사울도 블레셋으로부터 나라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울 통치 40년간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집니다.

앞에 사무엘상13장 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힌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창이나 칼을 만들까봐 블레셋이 이스라엘에서 철공들을 다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철공이 없으니 백성들이 농기구가 무뎌지면 블레셋으로 가서 날을 갈아왔다고 하니 그 생활이 얼마나 빈곤하고 누추했을지 느껴지죠.

기도 없이 사는 사울 왕국의 삶이 결국 나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다윗시대는 어땠습니까?

뒤에 보면 다윗 왕의 사방에 원수가 없어 궁에 평안히 살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그쳤으니 백성들에게 태평성대가 찾아온 것이죠.

이 두 나라가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완전하게 통치하실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올해 우리가 기도하며 예수님의 나라에 붙어 있을수록 삶이 평탄하고 복되다는 걸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다윗은 하나님을 닮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과 주변사람들의 확연한 차이를 2장 전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얻는 과정에서 동족의 피를 흘리길 원치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숙청, 피 흘리는 정권 교체를 원하죠.

그래야 내 권력이 견고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내용도 다윗의 군사와 사울의 군사들끼리의 덧없는 칼부림을 보여줍니다.

각자들의 권력에 대한 탐욕이 피를 부르는 것이죠.

4절부터 7절까지의 에피소드는 그들과 전혀 다른 다윗을 보여줍니다.

다윗에게 한 보고가 올라옵니다.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가 블레셋 성벽에 걸려있는 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수습해 장사를 치렀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사울 편에 있는 사람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의도인 것이죠.

그러나 다윗은 사신을 보내어 하나님의 복을 빌어 줍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의 시신을 수습하고 블레셋의 보복과 다윗이 어떻게 나올지 두려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말이 얼마나 따뜻합니까?

6,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다윗은 이렇게 우리를 축복하고 힘을 주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의 나라에 속한 성도들이 어떠해야 할지를 다윗이 보여줍니다.

우리의 욕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겠죠.

만만히 보고 비수를 찌르는 말은 정말 삼가야 합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두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윗처럼 위로하고 품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다윗은 예수님 나라가 사울의 세상나라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일과 사람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 삶의 모든 부분에서 내가 예수님께 속한 것이 드러나는 올 한해가 되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 지를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고 인도하시는 것은 정말 큰 신비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도와 주는 것 같고 환경이 열리는 것 같은 데, 그게 하나님의 응답이신 것이죠.

하나님은 위급한 기도에 즉각 응답도 하시고 상황에 따라 늦게도 응답하십니다.

믿음의 기도에도 응답하지만 믿음이 흔들리는 신음 같은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한 0니라는 찬양사역자가 있습니다.

0니가 어릴 때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점차 많아져서 교회를 크게 짓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성전 봉헌을 앞두고 교회 첨탑에 직접 십자가를 달다가 그만 감전 사고를 당합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결국 한쪽 팔은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뉴스에도 났다고 하더군요.

내게 이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어떤 일은 막아주시고, 어떤 일은 견디도록 허용하십니다.

다윗도 십 년을 사울왕에게 쫒기며 목숨 부지하기 위해 살았잖아요?

우리에게도 질기게도 쫒아 다니는 사울 같은 문제나 어떤 존재가 있잖아요?

그 매서운 화상치료를 아버지 목사님이 견뎌냈지만 화상의 상처가 남았고 의수를 끼고 살게 되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아버지를 괴물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어린 딸에게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부끄럽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이후 아버지가 다시 사역을 시작하고 간증집회를 다닐 때 노래를 잘하던 0니 사역자가 함께 다니며 찬양을 하게 됩니다.

건강하고 고운 손이 상처 입은 손을 만져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처 입었던 손이 상처 입은 손을 일으켜 줍니다.

예수님의 못 박히신 손이 우리를 고치신 것과 같은 것이죠.

0니사역자가 고3이 되었을 때 미국교회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0니가 피아노를 치고 찬양하는 것을 보고 그 교회 목사님이 미국에 남아서 찬양사역을 해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딸의 음악 학업을 뒷받침해 줄 수도 없던 아버지가 승낙을 하고, 0니는 미국에 머물게 됩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얼마간 받는 돈으로 어떻게 대학 학비를 하고 숙식을 감당하겠습니까?

그나마 묵고 있던 집에서도 나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고로 힘들게 살아왔는데 미국까지 와서 당장 갈 곳도 없는 자신이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힘없는 소리로 이런 기도 아닌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미국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들도 많은데, 그런 곳으로라도 저를 좀 보내주시면 안되나요?’

그런데 일주일 후 정확히 혼자 사는 미국 할머니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 0니의 형편을 알게 된 미국할머니가 아예 본채 뒤에 있는 독채를 내주고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이 할머니가 신문에 나올 정도의 재력가 백만장자였습니다.

할머니가 피아노도 사주고 도움을 주어서 걱정 없이 열심히 공부해서 0니는 버클리음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백만장자 할머니의 재산을 다 물려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식들이 고생 모르고 살길 바라지만 그게 아이들에게 최선만은 아닙니다.

자녀들도 어려움 속에서 인도하시며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까지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가 살 길입니다.

새해에 모두가 다 기쁜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실패를 줄이고 우리도 평탄한 날들이 되도록 스스로도 노력해야 합니다.

 

3. 다윗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거기서 유다지파의 왕이 됩니다.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하나님이 왜 다윗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지 않고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또 이스라엘 땅에는 길갈, 기브온, 실로, 벧엘, 미스바 같이 유서 깊은 도시가 많았는데 하필 헤브론으로 보내셨을까요?

우선 헤브론이란 지역이 이스라엘엔 큰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렇게 언약을 맺죠.

가나안땅을 주시겠다,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 네 씨가 열방의 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보증서로 받은 것이 헤브론의 막벨라 굴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서 매입한 유일한 땅이죠.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묻힌 곳이 바로 막벨라굴입니다.

그 후 사백여 년이 지나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복할 때, 탈환하기가 힘들었던 곳이 바로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은 천혜의 요새로 정복하기 아주 어려운 성입니다.

이 헤브론을 누가 정복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갈렙이 정복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다 아시죠?

갈렙과 그 자손들이 헤브론을 정복해서 거기서 살게 됩니다.

갈렙이 유다지파예요.

같은 유다지파인 다윗이 들어가는 것을 헤브론 주민들은 당연히 환영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극에도 보면 중신들이 종묘사직이 어쩌고 저쩌고 상소하고 그런 내용이 나오죠.

헤브론이 마치 이스라엘에게 그런 곳입니다.

헤브론은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주신다는 언약의 장소로, 다윗이 거기서 즉위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라는 걸 공공연히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로 그 맥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와 하나님의 응답도 그 결과를 잘 보면 신비하게도 우리를 예수님의 구원의 언약 안으로 인도하신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그리고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해서 여부스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5장에 가서야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로 수도를 옮기죠.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신 곳곳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도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다음 걸음을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기대하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3) 그런데 다윗이 왕으로 내정된 지 십오 년이 지났지만 이제 겨우 유다지파의 왕이 됩니다.

아직도 열한 지파가 남았으니 갈 길이 너무 멀죠.

11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이렇게 다윗왕조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사람이 사는 생태나 과정을 무시하고 급발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른 시간에 도약하길 원하죠.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사람과 환경이 함께 움직이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국민들의 마음엔 여전히 사울왕조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열한 지파는 사울왕의 남은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아직 다윗을 왕으로 추대할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뒤로 가면서 다윗의 나라와 사울왕조가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며 점점 다윗에게로 분위기가 넘어옵니다.

그런 시간이 무려 칠년 반이나 걸렸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칠년 반이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굳이 하나님이 그 과정을 다 거치게 하시는 이유가 있으시겠죠.

다윗이 이스라엘 전국의 왕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의지하는 훈련이 광야 10년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는 왕의 훈련을 그만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들이 더디 이뤄진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단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실 오래 걸리는 것일수록 중요하고 우리에게 얻는 것도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빌드업을 하셔서 마침내 골을 만들어 내십니다.

다윗의 기도응답에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문제와 기도의 제목을 통해서 우리를 예수님의 언약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응답이 더디더라고 그만큼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믿고 인내하며 귀하게 연단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올해는 기도생활을 잘 회복해서 주님이 기쁘게 우리를 다스리시는 해가 되길 축복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것이 언행과 삶의 태도에서 다윗처럼 드러난다면 더 좋겠습니다.

한 방송국 뉴스에 손흥0선수 아버지인 손웅0감독이 나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올해 어떻게 살고 싶으시냐는 물음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감사하면 행복은 따라오니까 라고 하더군요.

, 이 분이 뭘 아시는 분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장년층 이상의 성도님들께는 항상 지금이 우리 남은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입니다.

조금 부족해도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기쁨과 행복을 매일 따라오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