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히스기야의 기도 (열왕기하20장1절-7절)

남수연 2011. 3. 15. 18:06

 

 

이스라엘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왕을 꼽으라면 당연히 다윗왕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히스기야왕은 주전 700년 경 살았던 분열왕국 남쪽 유다에서 다윗 왕에 버금가는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25세 때 유다의 13대 왕으로 즉위해서 29년을 통치하고 54세에 죽었습니다.

그 당시 왕들이 쿠데타와 전쟁으로 단명한 것을 생각하면 꽤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겠죠.

주전700년대 일이고 주변국의 정세로 보면 이집트와 앗시리아 등 열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온갖 우상과 가나안의 혼합 종교로 타락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18장에 성경은 그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본문의 앞 장과 역대하에 기록 된 25살 젊은 왕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보면 이런 평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선왕 아하스는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을 불살라 인신제물로 몰렉신에게 바친 광적인 우상숭배자였고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하고 이방신의 제단을 쌓았던 왕입니다.

그의 뒤를 이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이런 나라 전체를 뒤집어 엎어놓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더럽혀 놓은 성전을 깨끗이 하고 나라의 모든 우상을 부수고 율법과 유월절 제사를 회복시키는 대대적인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런 히스기야왕이 오늘 본문에 보니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본문의 1절을 보면 그 때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지금 유다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풍전등화 같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데 이 모든 난국을 뚫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야 할 히스기야왕이 죽게 된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칼로 무를 자르듯 냉정한 하나님의 선고가 야속 했는지 히스기야왕은 자신의 충성과 헌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서 통곡합니다.

통곡하는 히스기야왕의 절망과 애통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그의 기도가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 살다 이런 곤혹스런 환경에 빠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질병과 고난과 하나님의 어떤 뜻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풍족하게 내려주시고 우리 영혼이 윤택해지는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나눌 첫 번째 내용은 히스기야의 중병의 의미입니다.

성경은 아무 설명 없이 1절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전국적인 종교개혁을 수행했던 히스기야에게 갑작스레 닥친 중병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질병과 고난의 이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통해 우리를 다루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 뒤를 잘 살펴보면 히스기야의 믿음이 끝까지 온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죄인이었고 하나님이 손을 놓으셨을 때 교만한 속내가 드러났던 사람입니다.

히스기야 나라를 다스린지 6년 째 되던 해 앗수르는 북쪽 이스라엘을 침략해 멸망시켰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젊은 히스기야는 패기와 믿음이 충천해 부친이 섬기던 앗수르를 배반하고 조공을 거부했지만 주변 모든 나라를 제압하며 점점 세력이 커가는 앗시리아 제국을 보는 그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왕 위에 오른지 14년 되던 해 앗수르가 유다를 1차 침공해 옵니다.

열왕기하18장 13절을 보면 히스기야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앗수르를 물리 치시겠다고 예언하십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앗수르왕에게 굴복합니다.

유다의 46개 성읍들을 함락하며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인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조공으로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금 한 달란트는 보통은 33kg정도라고 합니다.

삼십달란트면 약 1000킬로그램의 금이니 엄청난 양이죠.

1톤 아닙니까?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고 모자라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왕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로 우리를 억누르는 문제의 존재감은 너무 크고 하나님은 멀리계시다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문제가 터 질 때 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사태를 해결해보려고 전전긍긍합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보다 작으시고 우리 문제 보다 작으시겠습니까?

우리 눈이 나를 위협하는 문제만을 주시할 때 문제는 언제든 하나님 보다 커져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겨우 돌려보냈던 앗수르는 2년 후에 2차 침공을 가해 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은 수단과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문제는 더 복잡하게 얽히며 어려운 상황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주석가들은 앗수르의 1, 2차 침공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이 위기 속에 설상가상 죽을 병 까지 걸린 히스기야는 비로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결사적으로 매달립니다.

2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기도였음을 알 수 없습니다.

이젠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죠.

우리 앞에 있는 질병이나 곤혹스런 문제를 대할 때 그렇지 않습니까?

내 힘으로 겨우 겨우 꾸려나갈 만하면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감당 못할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서 하나님 향해 두 손을 드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은 항상 막다른 골목 앞에 서 계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나 겨우 우리들을 만나실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 히스기야의 중병의 의미 속에는 그것을 통해 그의 믿음을 다시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 게 됩니다.

그는 이 중병으로 다시 믿음을 회복해 다시 하나님만을 붙들게 됩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2차 침공 때 히스기야는 외교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앞에서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18만5천의 적군을 멸하셨고 예언하신 대로 앗수르는 신흥 바벨론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우리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질병이나 점점 악화되어만 가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를 온전한 믿음으로 인도해 가실 줄 믿습니다.

세상적인 방법 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로 문제를 해결 해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세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아멘.

 

두번 째로 히스기야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간절하고 진실했으며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본문4절에 보니 죽음을 예언하고 나간 이사야가 성읍을 다 빠져나가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5절에 보니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겠다고 즉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와 통곡을 들으시자마자 응답하려고 황급히 이사야를 불러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일부러 뜸을 들이고 애를 태우시지 않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버르장머리를 고칠 때까지 무한정 응답을 지체하겠습니까?

그걸 못해서 우리 아이들이 다 저렇게 된 것 아닙니까?

특히 우리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시길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수많은 병자들이 가까이 오는 걸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질병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시고 눈물 흘리셨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15장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인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스런 질병이 생길 때 하나님은 의술을 통해서 낫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치료가 신속하게 하시고 의술로 불가능한 병도 치료하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신유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대로 치유도 없습니다.

혹시 안수기도로 병을 고치는 현직 내과의사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안수로 병 고치는 내과의사」란 책을 쓴 안0성교수입니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의학박사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버팔로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동료 의사의 음해로 쫒겨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는 하나님 주무시냐고 항변하며 차라리 얼어 죽겠다고 맨 발로 눈 밭에서 기도하며 떼를 썼습니다.

그런데 얼어 죽기는 커녕 온 몸에서 열이 나고 너의 장막을 옮겨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집에 돌아와서 몇 군데 병원에 이력서를 보냈는 데 뉴욕 소재의 유명한 마운트 사이나이 대학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거기가 워낙 대단한 병원이라 자기 실력으로 어림없다 생각하고 지원서를 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면접을 끝내고 궁금해서 확인을 해보니 자기가 보낸 우편물이 잘못 배달되어 이 병원으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는 그곳에서 내과 전문의로 근무하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의 내과를 개업해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기도를 하다 밤마다 진통제를 몇 알 씩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던 무릎의 통증이 한 순간에 치유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기도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한 그는 새벽마다 환자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로 25년을 활동하며 현대의학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대하며 좌절을 느끼던 그에게 그 때부터 희한한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환자의 간청에 억지로 등 떠밀려 기도를 했는 데 그만 그 자리에서 병이 나아 버린 것입니다.

한 번은 16년 동안 건선이라는 피부병으로 온 몸이 각질로 뒤 덮힌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는 데 다음 날 피부가 깨끗해졌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건선은 치료가 정말 어려운 질병입니다.

의학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병원에 나오라고 해 확인하고 나서야 자기도 믿었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노트에 1800명의 빼곡한 중보기도대상자들의 순위를 정해 놓고 기도합니다.

0순위는 가장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어서 바쁜 중에도 매일 빼 놓지 않고 기도하는 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환자들입니다.

그는 자연과학을 공부한 의사이지만 성경에 기록 된 일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안 박사의 병원은 지금 낮에는 일반 환자들을 치료하는 내과 병원이지만 저녁에는 또 다른 아픈 사람들이 찾아와 병 낫기를 기도하는 기도원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죄악이 가득한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원치 않는 질병이 항상 우리를 괴롭게 할 것입니다.

아무리 치료해도 완치가 힘든 게 현대 질병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5장15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우리와 가족들을 괴롭게 찌르는 가시와 같은 질병들이 생길 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에 지체하지 않고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도 며칠 전 위통으로 하루 종일 고생을 했습니다.

위가 약해 한 번씩 고생합니다.

여러 번 기도를 했는 데 잠시 낫는 것 같았다가 다시 아프더군요.

제 위장병에는 매실즙이 비교적 잘 듣습니다.

아픈 위를 겨우 달래가며 퇴근 후 매실즙을 사가지고 교회로 와서 뜨거운 물에 한잔 타서 마셨습니다.

그런데 한 잔을 채 마시기도 전에 위의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매실이 무슨 약이라도 됩니까?

본문 7절에 보면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어떤 것도 명약이 되어 우리의 모든 치료가 신속하게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아파서 잠을 설치는 아이들 옆에 붙어 앉아 물수건을 얹어주며 밤을 지새듯이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긍휼히 여기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안우성박사는 자기가 기도할 때 치유되는 확률이 50%정도라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그 자리에서 낫기도 하고 며칠 후에 낫기도 하고 어떤 병이 낫고 어느 사람의 병이 낫지 않는 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병의 가볍고 중하고 상관없이 어떤 병은 낫고 어떤 사람은 오래 기도해도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병이든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질병과 문제를 어떻게 다루실지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긍휼히 보시고 우리의 질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셋 째로 오늘 본문에 숨겨진 구속사적인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히스기야는 단지 그의 생명을 구해주길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좀 의외입니다.

5절부터 6절 까지를 보니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낫게 해주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해주고 십 오년의 생존을 보장해주고 예루살렘 성을 대적에게서 구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덤으로 마구 주십니다.

오늘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신유의 기적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5,6절 대로 이루시겠다는 증표로 주신 것이 좀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본문 뒤이어 나오는 8절에서 11절 까지를 보면 히스기야가 정말 자기 병이 완치될 것에 대한 증표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증표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로 하나님이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해주신 것입니다.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구가 거꾸로 돈다는 뜻이예요.

이게 올바른 정신으로 이해가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렇다면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무렴 열왕기 기록자가 이런 말도 않되는 사건을 역사서에 기록해서 공신력을 떨어뜨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많고 많은 표적 중에 우주 천체를 거꾸러 돌리는 엄청난 기적을 단 한사람 히스기야를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겠다는 증표로 주셨을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증표라는 것이 보통 일어날 일보다 작은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입니다.

약속보다 엄청나게 큰 증표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죠.

그 말은 오늘 히스기야에게 약속한 응답이 우주를 움직이는 것 보다 사실은 더 큰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히스기야의 숙명과 그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인류의 구속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지금 한껏 범죄 하여 나라가 결단 날 위기 앞에 놓인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며 변치 않는 구속의 의지를 보이십니다.

그리고 6절에도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이죠.

여기서 내 종 다윗이란 말 역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암시입니다.

1절에 기록한 대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가 바로 우리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의지로 살리시고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시겠다는 구속사적 뜻이 오늘 사건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5절에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요한복음2장19절부터 21절까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말씀이 연결이 되십니까?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초자연적인 신비로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복음이 담겨있는 소중한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등장해서 활약하는 이사야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성경 이사야서를 통해 메시야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을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7장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이 초자연적으로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서53장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53장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예언했죠?

그동안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희미하게 드러나던 메시야의 모습이 오늘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던 이사야와 미가선지자들을 통해 점점 확실하게 계시됩니다.

같은 시대 미가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미가 5장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오늘 하나님께서는 병으로 죽고 살지 못하게 된 히스기야를 다시 회생시키심으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을 몸을 살리셔서 하나님의 성산에 거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한번 계시 하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을 통해 하나님께 나갔을 때 결국 구원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돌파구가 없어 죽을 것 같은 문제들을 안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나갈 때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 응답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자 존 웨슬리는 “모든 축복 중에 제일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을 더 살고 결국 묘실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안달하며 구하는 것들도 다 스러져 갈 것 들입니다.

다만 질고와 역경과 기도 가운데 만나게 된 예수님 만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모교회의 이0나 목사님이라고 있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중병의 고통으로 잠 한번을 편히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이 목사님의 마음도 고통스러웠죠.

어머니는 고통 중에도 침대에 누운 채로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찬양하곤 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두 손을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여러 가지 옛날 일들이 스쳐 지나 갔습니다.

열이 끓던 이마를 짚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이었습니다.

가난했던 날 부지런히 음식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먹이시던 어머니의 손이었습니다.

평생 고단한 짐을 놓지 못하고 살아 온 파리하게 늙은 어머니의 손을 보는 순간 그는 감정이 복받쳐 오름을 참지 못하고 침대 발치에 앉아 온 심령을 다 쏟아 부으며 기도했습니다.

저 고통 가운데 계신 어머니를 더 붙들어 놓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뜻이라면 천국으로 인도해주십시오.

그러나 단 몇 시간만이라도 어머니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어머니로 하여금 편히 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그의 기도 속에 문득 예수님이 곁에 서신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그 기도는 어리석구나. 내가 벌써 네 어머니의 고통을 내 육신에 이렇게 짊어졌지 않았느냐?

그렇군요. 주님 하는 순간 어머니께서 아. 아픈 게 다 사라졌다 라고 탄성을 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더 이상 고통 없이 잠을 주무시고 신장이 치료돼

이틀 동안 15㎏ 이나 되는 소변을 보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기도제목 또한 시원하게 해결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C S 루이스가 기도에 대한 강연을 마친 후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기도의 응답은 결국 우연의 일치가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기도를 그치면 그 우연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도로 우리 문제를 해결 받고 기도로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날 때 우리 삶이 수많은 고통과 질병과 환란이 있는 세상 속에서 기쁨과 평안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에 하나님은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와 가족에게 있는 문제와 질병을 놓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을 확신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