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엘리야의 기도 (열왕기상18장36절-46절)

남수연 2010. 12. 21. 18:28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불임치료 공동연구진이 연구한 결과입니다.

포천중문의대 차광0교수는 1년동안 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은 환자 199명을 대상으로 특별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환자가 모르게 그들의 사진을 미국과 캐나다의 기독교인에게 보내어 그들의 임신을 위해 기도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기도 받은 불임치료 여성들의 임신성공률이 그렇지않은 여성들보다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동연구자인 로보 박사는

연구결과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발표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두 그룹 사이의 임신율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이전의 연구에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기도가 심장질환 환자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돌보신다는 확증인 것입니다.

기도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기독교를 아직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씀과 더불어 신앙생활의 기본 축이라고 할 만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바쁜 생활 중에 조용한 틈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기도생활이 자연스러워지기 까지 할 말도 없고 어색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해서 불경을 외우고 천 배를 하는 것이 30분 기도하는 것 보다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기독교의 신비요 진정한 기독교인의 기쁨과 능력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효력과 맛을 아는 사람들은 평생 기도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기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기도가 좀 쎄죠?

성경 가운데 엘리야를 필적할 만한 기도의 인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앞 장에서 그는 기도로 죽은 아이를 되살리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엘리야 같은 능력 있는 선지자의 기도를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를 권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5장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 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엘리야와 같이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문의 사건은 주전 878년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솔로몬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분열되죠.

이유는 열왕기상11장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외국인 아내를 많이 두었던 솔로몬은 아내들을 위해 각 나라의 우상을 위한 신전을 짓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그 여인들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아스다롯과 밀곰을 따르는 어리석은 우상 숭배에 빠집니다.

백성들이 그의 길을 따른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나님이 부족할 것 하나 없이 부어주신 복과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복을 받았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한 징계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라를 분국시키십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죠.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인류의 구속사역을 위해 선택 된 민족이 어이없이 두 개로 갈려버린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남쪽 유다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고 나머지 열지파는 북쪽 이스라엘로 분리됩니다.

남유다에는 성전과 제사장들이 있고 다윗왕의 혈통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은 쿠데타를 거듭하며 정권이 계속 바뀌다 남유다 보다 먼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마음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는 것이 두려워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열왕기상 12장28절에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은 극도의 종교적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혼잡하게 되어버립니다.

오늘 등장하는 아합왕은 이 북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입니다.

그는 바알을 숭배하는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바알종교의 합법적인 길을 열어놓은 왕입니다.

성경은 그를 최악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서에는 유다왕과 이스라엘왕들의 아슬아슬한 우상숭배와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왕들의 역사 사이에 끼어듭니다.

그는 느닷없이 나타나 아합왕을 향해 엄청난 선전 포고를 합니다.

열왕기상17장1절에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역사에 마침내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우리 삶에 불현듯 하나님이 방문해 오신 것과 같습니다.

때로 오늘 본문의 사건처럼 참혹한 기근 속에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시기도 합니다.

재난에 대한 경고는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죠.

그러나 엘리야가 가뭄을 예고한 후 삼년 반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들이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철저히 하늘의 비를 의지했던 농경 사회에서 비와 이슬이 없이 삼년 반이 지났으니 물 근원이 마르고 초목은 말라 비틀어져 인간도 동물도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농업의 신, 비의 신이라 믿었던 바알은 그들에게 비 한 방울을 내려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백성들은 오히려 더 바알에게 집착합니다.

왕비 이세벨이 본국에서 불러들인 바알 제사장이 450명이고 아세라 제사장이 400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일자리가 있었던 것은 그만큼 찾는 고객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돌이킬 줄을 모르는 그들을 향해 결국 하나님이 나서십니다.

자기 발로 돌아오지 못하는 자식에 대해 이번에도 아버지가 찾아 나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엘리야에게 임합니다.

열왕기상18장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재앙을 선포하고 아합왕을 피해 숨어있던 엘리야가 드디어 왕 앞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재앙의 원인이 하나님을 버린 데 있다고 책망하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백성들을 갈멜산에 모으라고 요청합니다.

갈멜산에서 벌어진 두 종교의 대결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둘 사이에 소를 잡아 제단에 놓고 어떤 신이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우는지를 통해 진짜 신을 가려내자는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믿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 인원이 많으니 힘을 합치면 뭔 일이 혹시 일어날 수 있을 것도 같고 어차피 저쪽도 하늘에서 불이 내릴리는 만무하다 생각했겠죠.

먼저 바알 선지자 450명이 의식을 행합니다.

다섯 시간이 넘게 제단 위를 뛰어다니며 바알을 부르고 응답이 없자 피가 흐르기 까지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바알이 응답할리 없습니다.

드디어 모두가 기진해서 쓰러졌을 때 엘리야가 제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불이 장엄하게 내려와 제물을 불사르며 살아계신 신이심을 친히 증명해 주십니다.

엘리야의 기도대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멋지게 보여주십니다.

겨루어 보나마나한 대결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엘리야의 기도가 능력 있게 응답되는 이유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기도가 오랜 시간 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가뭄을 선포하고 나서 숨어 지낸 시간이 삼년 반입니다.

6개월은 그릿시냇가에 숨어서 3년은 사르밧에 있는 과부의 집에서 은신합니다.

아합왕이 그를 찾지 않은 곳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3년 반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사방이 가로막힌 두려움과 답답함 속에서 그는 인내하며 기도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갔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 앞에 오늘 이렇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매일 기도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매일의 기도가 우리를 편안하고 기품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하나님을 느끼며 만족한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세상의 풍랑이 덮쳐올 때 주님 안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이겨내고 주님이 주시는 더 좋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밭을 갈던 한 농부가 쟁기를 땅에 박아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의 곁에서 한 천사가 대신 밭을 갈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바쁘셔서 기도할 시간을 내기 조차 힘든 게 우리의 삶입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27년을 해오며 가정을 돌보며 빠듯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쪼개어 하루라도 기도를 거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기도는 단지 시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기도는 영적인 문제이므로 악한 영의 방해가 극심한 싸움입니다.

우리의 영이 살기 위해 그 어떤 것이라도 희생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결단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어색하고 아무 느낌이 없는 기도일지라도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나갈 때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려 엎드리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대신 해주실 줄 확신합니다. 아멘.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의 기도에서 우리는 그의 기도가 겸손하고 또 끈기 있게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본장의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가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그의 혼신을 다하여 비가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고 축복과 응답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기도입니다.

만약 엘리야가 하나님의 불로 응답받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과연 비가 내렸을까요?

하나님이 뜻이 확실하다면 그때부터 더욱 해야 할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늘에서 정해진 하나님의 응답을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가 얼만큼 기도했습니까?

꿇어 엎드려 무릎에 머리를 넣고 일곱 번까지 비의 응답을 고대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겸손함과 인내의 기도 모습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먹여주고 입혀주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모면할 수 있었던 위기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우리는 사실 다 알지 못하고 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받은 모든 축복들은 그저 일시적인 축복으로 끝나버림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결코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성장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좋은 것 두 가지를 다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에게 기도하다 실망하지 말라고 오늘 엘리야에게 일곱 번이나 기도 하게하신 것 같습니다.

엘리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끈기 있게 기도하여 약속 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우리의 기도는 단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으시는 향기가 되고 응답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를 아실 것입니다.

뮐러는 기도 중에 고아원에 새 건물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15일간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기도에 전력한 지 35일이 지났을 때에도 응답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뮐러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벽에 걸어놓고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런 가운데 그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강한 반대로 시험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결코 물러서지 않았으며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첫 헌금인 1천 파운드가 들어왔습니다. 2백만원 정도 되죠.

그리고 기도를 시작한 지 65일째 되는 날 다시 1050 파운드가 들어왔습니다.

89일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내를 시험하신 후에야 적당한 장소를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새 건물의 첫 삽을 뜬 것은 기도를 시작한 지 447일 만에 응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도가 더디게 응답됨을 인하여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응답은 빠르게도 더디게도 오지 않습니다.

가장 정확한 때 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을 믿고 엘리야와 같은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기도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엘리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도였다는 것을 주목하기 원합니다.

37절에 보면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가 간절히 원한 것은 여호와야말로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 백성이 깨닫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사건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엘리야는 대결에 앞서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이 때 엘리야의 이 마음 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저 남자와 나 둘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이냐 묻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때 여자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나를 택한 게 아니라는 것 다 아시죠?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조상의 하나님을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고 가나안 모든 나라가 믿고 있는 바알을 믿는 것이 더 마음을 끌기에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친근하게 존재하는 세상 문화를 좇는 것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러워 머뭇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오늘 불타는 심령으로 이 엄청난 대결 앞에 서게 된 것입

니다.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영적으로 추하게 변해 버린 백성이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몇 달 전 인터넷에 조국과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칸 파병을 갔다가 전사한 미군 부부의 사연이 올라왔었습니다.

화제의 주인공인 캐롤라인 병장은 아프칸 근무 중 탄저균 테러 공격으로 심각한 병을 얻게 됩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실명 위기에 처한데다 얼굴과 몸은 부어올라 엄청나게 뚱뚱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발병 이전의 그녀의 사진을 보니 정말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였습니다.

그러나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캐롤라인은 조국을 위해 군 복무를 계속 희망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에 있던 그녀의 애인인 브라운이 자원입대하여 아프칸으로 옵니다.

그리고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단 한군데도 찾아볼 수 없게 된 캐롤라인을 지켜주기 위해 결혼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후 탄저균 투병을 하던 캐롤라인은 사망했고 그녀의 남편 브라운도 폭탄 공격으로 전사하고 맙니다.

남편의 진실한 사랑에 많은 사람이 감동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이미 다 잃어 버리고 죄악 속에 뒹굴며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아셔야 합니다.

때로 죄인의 마음을 돌이키려 애쓰며 사소한 행동에도 감격해 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이 사건 이후에도 극악한 죄를 저지릅니다.

그의 궁전 주변에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진 나봇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이 탐나 나봇에게서 그것을 사려했다가 거절당하자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도 않고 드러누워 버립니다.

그걸 본 그의 사악한 아내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아 남편에게 주니 그는 그걸 차지하려 신이 나서 내려갑니다.

그의 악행을 보고 엘리야를 통해 심판을 예언되자 그는 두려움에 떨며 식음을 전폐합니다.

풀이 죽어 베옷을 입고 다니는 그를 보고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뭐하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우리 하나님 참 속도 없으십니다.

아합이 어떤 자입니까?

왕이란 자가 바알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여 온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인물입니다.

땅을 매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의로운 나봇을 죽인 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가 단지 죽음과 재앙이 두려워 전전 긍긍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대뜸 뜻을 돌이키십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약자인 걸 봅니다.

하나님의 그런 사랑이 없으셨다면 사실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입고 이 자리에 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엘리야가 위대한 것은 그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죄인과 하나님을 중재하길 자처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보면 세례요한의 탄생을 예언한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하리라

엘리야의 심령이 하나님의 마음을 죄인에게 돌아오게 하는 마음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죄인에게 알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게 하여 하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 바로 엘리야의 사명인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통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아버지께 향하여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엘리야가 기도대결을 벌이며 왜 직접 비가 올 것을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가뭄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은 데 비를 내리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번제물에 불이 임하기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발생한 이 기근의 심판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먼저 죄악을 속할 속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속죄물과 회개는 하나님이 오시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그것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도 없습니다.

본격적인 기도대결이 시작되기 전 엘리야가 한 일이 있습니다.

32절에 보면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속죄물을 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다는 것입니다.

39절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자 이 놀라운 광경에 겁을 집어 먹은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백성들의 회개가 예배를 통해 번제물을 받으신 후에야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를 청산합니다.

신명기13장7절의 명령대로 바알 선지자들을 처단한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가 단을 쌓아 예배를 회복한 뒤 백성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 온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예배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그렇게 진정한 예배를 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킨 후에 드디어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생수와 같은 비가 쏟아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메마르고 갈한 심령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 줄 은혜의 생수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고 예배의 단을 쌓는 것입니다.

아합같은 악한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제 풀에 기가죽어 밥도 않먹고 하나님 보시라고 베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만 보고도 하나님은 그 심판을 돌이키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가 아버지께로 마음을 돌이킬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하늘의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막혔던 우리의 문제들도 받으시고 시원한 해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혹시 머뭇거리고 계십니까?

머뭇 머뭇하는 신앙으로는 진정한 믿음 안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풍성한 은혜의 맛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선택이었는지가 증명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오늘 엘리야에게서 우리는 기도를 배웠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말합니다.

기도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을 기도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누가 스펄젼에게 성공의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믿음과 기도위에 서계십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더욱 기도하여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엘리야 같은 주님의 일군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