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에스라의 귀환 (에스라7장)

남수연 2024. 10. 17. 22:06

https://youtu.be/nANaIcLB5WM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

그동안 에스라서에 에스라가 없었죠.

에스라서는 6장까지가 1차 포로귀환자들이 성전을 건축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7장부터 에스라가 등장합니다.

지난 주 성전이 완공된 뒤로 오늘 에스라의 등장까지는 또 성경 한 장이 넘어왔지만 무려 5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첫 귀환자가 고국에 첫 발을 디딘 후로는 거의 팔십 년이 지난 것이죠.

그동안 성전 건축의 주역들은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직 예루살렘에는 성곽이 없습니다.

도시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죠.

성곽이 있어야 밤이면 성문을 닫고,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그래야 주민들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잖아요?

그게 안되니 성전만 지어놓고 주민들이 들어와 살지 못했던 것이죠.

성전 제사는 정해진 제사장들이 매일 드렸겠지만 돌아온 사람들의 자손들은 점점 하나님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이 바로 에스라입니다.

오늘 에스라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 때 에스라를 보내신 주님의 뜻이 우리 마음에 잘 전해지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1. 에스라가 누구인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왕 시대에 페르시아에 살던 제사장 겸 학자입니다.

에스라서에 나오는 네 명의 왕은 고레스,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입니다.

에스라서가 분량은 많지 않지만, 네 명의 왕들을 거치는 긴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죠.

다리오왕은 지난 주 성전 건축을 허가하며 후한 조서를 내렸던 왕입니다.

그 아들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왕후로 맞았던 그 왕입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이 본문의 아닥사스다이지만 에스더의 아들은 아닙니다.

이 아닥사스다왕 때 에스라가 2차 귀환자들을 데리고 귀국한 것입니다.

낯선 이름들과 역사가 아직 어려우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긍정적으로 배우시길 바랍니다.

뇌과학자가 치매를 막으려면 인지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읽는 것이라고 했거든요.

신앙경력이 좀 되신 분들도 성경과 세계사를 함께 알면 잘 짜여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에스라의 신분에 대해서는 2절부터 5절까지에 조상들의 이름이 길게 소개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개할 조상들이 많다는 건, 명문 가정이라는 뜻이겠죠.

유명한 조상들을 가졌다는 건 시간이 지나도 후광이 되잖아요?

얼마 전 정해0 이란 배우가 자신이 정약용의 둘째 아들 후손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왠지 정해0 배우가 좋은 교육을 받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씨는 진즉에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죠.

그런데 부친이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로 잘 알려진 한승원작가라는 게 알려지며 어쩐지, 작가 집안이었군그렇게 더 인정을 하게 되잖아요?

5절 하반절에 에스라의 족보 제일 꼭대기에 누가 있는지가 나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이 정도 되면 유다인들에게 확실한 신뢰감을 주는 것이죠.

율법에는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들만 대제사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에스라 직계 족보에 나온 사람들의 이름들을 보면 그동안 성경에서 보던 이름들이 꽤 나옵니다.

에스라의 가문을 처음부터 이렇게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에스라이지만, 민족을 지도할 자격이 있는 정통 가문인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죠.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에스라는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이 족보는 앞으로 에스라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는 제사 업무와 함께 율법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3) 6절에서 에스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1)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입니다.

페르시아에 사는 유다인들에게는 사실 제사도, 제사장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나라가 망했는데 신앙과 율법을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정체성을 버린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에스라는 페르시아 종교와 언어와 문화가 더 익숙한 것이죠.

그의 생전에 한번 가볼까말까 한 곳이 이역만리 떨어진 아버지의 조국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통달한 학자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백성들에게 제사와 율법을 가르칠 날을 위해 율법을 연구했던 것이죠.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에스라가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졌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믿음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이 믿음이 됨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높은 관직에 오릅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하나님은 말씀에 충성된 에스라를 출세의 자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페르시아왕이 에스라의 제안은 무엇이든 받아줄 정도였다는 것이죠.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보면 에스라에게 율법대로 강 건너편 민족들을 재판하는 권한까지 줍니다.

이방 왕의 눈에도 에스라가 섬기는 하나님의 율법이 공정하다 생각했다는 것이죠.

일을 뛰어나게 잘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 사장이 좋아할까요?

교회만 다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면 좋아합니다.

정직하잖아요?

돈 맡겨도 안심이 되고, 근무시간 확실히 지키고, 성실하게 일하잖아요?

신실한 성도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걸 남들도 압니다.

하나님의 도덕적인 기준이 세상사람이 봐도 높다랗잖아요?

그러니 그대로 살기만 하면야 사람들이 왜 싫어 하겠습니까?

에스라가 변덕스럽고 의심 많은 아닥사스다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얻은 이유는 단지 일에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인재들이 다 모인 페르시아 왕궁에 에스라보다 나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에스라의 신앙과 인격을 신뢰한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랬잖아요?

다니엘을 시기한 궁중의 대신들이 흠을 잡아내려고 탈탈 털었지만 단 한 개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며 자기 직업에 충실하다면 사회에서 더 인정받는 게 오히려 당연합니다.

아닥사스다가 얼마나 에스라를 신임하고 존중하는지는 조서의 내용에 잘 나타납니다.

에스라처럼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킴으로써 존경받고 인정받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이 에스라를 그런 지위로 인도하신 것은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1) 고국에 돌아온 사람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느헤미야처럼 에스라도 고국 동포들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성전은 지어졌지만 제사장의 맥이 끊어져 가고, 율법을 가르칠 사람들도 부족하다는 것이죠.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말씀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마다 다 커다란 성전을 짓고 제사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소원과 복을 빕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종교입니다.

역사가 흘러가면 폐허가 된 성전만 덩그러니 남는 것이죠.

종교의 경전이 있다 해도 그것은 전부 사람에게서 나온 말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예배만 있고 끝이면 그것은 종교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시는지를 듣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말씀을 많이 하시는 하나님이신지 이 두꺼운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죠.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 성전을 세우셨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 안에서 예배하는 천국 자녀들이 어떻께 살아야 할지를 계속 가르치셨잖아요?

그게 세상 종교와 우리의 하나님 신앙과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법과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대체 누군지도 모르는 신을 섬기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선택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4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하나님이 죄인들과 다르시듯, 하나님의 법도 세상법과 다릅니다.

십계명만 해도 당시 가나안의 부족들의 관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지만, 당시 나라들 중 우상신의 형상이 없는 종교가 없습니다.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시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신의 형상을 마음대로 조각해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이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안 하고 쉬라는 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일을 더 해야 더 잘 먹고 더 편히 산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정욕대로 살던 시대에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신 규례와 계명을 보면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을 원수처럼 대적했던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배만으로는 온전하게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게 아닙니다.

말씀대로 지켜야만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형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죠.

 

2) 에스라는 고국에 돌아가 율법을 가르칠 것을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이나 여가를 즐기는 일은 결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 없이 출근해야 합니다.

또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생활을 하는 데 무슨 결심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것은 결심해야 합니다.

평생 주님을 따르는 것은 계속 내 스스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 나오길 결심한 것이죠.

기도도 결심하고 하는 것이고 성경도 결심하고 읽는 것입니다.

사랑도 결심하고 하는 것입니다.

결심하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다음으로 인도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동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고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는 대로 네 스스로 결심하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믿으면 뭔가 쉽게 될거라는 생각은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잖아요?

죄악에 오염된 세상에다 우리를 그냥 두시고 질병과 가난과 멸시와 실패와 염려에 노출되게 하십니다.

신비로운 것은 그 속에서 우리의 죄의 습관들이 벗겨지고 점점 세속과 다른 천국 자녀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이 벗겨지는 게 아니라 죄의 습관이 벗겨지는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을 믿다 보면 시련 중에 내 본성이 낙심하게 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뭔가 더 잘되고 무거운 삶의 짐도 당장 좀 벗어나길 당연히 기대하죠.

그런데 아무 반전도 없는 내 인생을 보면 하나님도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교회도 안 나오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믿었으면 하나님도 좀 알아서 잘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아닐 때 장성한 믿음일지라도 섭섭한 마음이 들고 믿음의 의지가 꺾이기도 하죠.

그런 시험 든 마음을 하나님은 위로도 안 하십니다.

여전히 네가 결심하고 일어나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선물 같은 위로와 은혜를 주시면 힘이 날 것 같은 데, 믿음을 보시려고 할 때는 위로도 잘 안 주십니다.

내가 이렇게 슬픈데, 내가 이렇게 견디고 있는데, 뭔가 도움을 주시겠지 할 때는 오히려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때도 다시 결심하고 덤덤하게 믿음의 길을 가면, 슬그머니 주님의 위로와 선물을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은 사자가 새끼를 기르는 것처럼 우리를 기르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믿는 것도 힘들고, 내 신앙도 성장하지 않고, 내 생활도 반전이 없을까 고민하십니까?

예수님은 네가 결심하고 나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내 신앙이 덤덤해 보여도 괜찮습니다.

저력이 있고 끈기있는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하루하루 결심하고 주님을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갖고 페르시아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페르시아 수도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천오백 킬로미터가 넘습니다.

그 먼 길을 넉 달 걸려 2차 귀환자들을 데리고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어

이 말은 평탄한 인생이 아니었단 말이죠.

에스라의 귀향의 여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2개월이면 될 여정이 4개월이나 걸렸다는 것은 과정 중에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짐작하게 하죠.

그것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가르치고자, 안락한 삶을 내려 놓고 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공이 보장된 의사가 실제로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나잖아요?

그런 삶을 사는 성도들을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만 누리고 사는 게 성도로서 최선의 삶은 아니잖아요?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좀 낮은 자리에서 수모도 당하고, 험한 길을 택하기도 하는 것이 은혜 받은 우리에게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원이라는 기독교앱을 만들어 운영하는 25살 천재청년사업가가 있습니다.

김민0대표입니다.

왜 천재라고 하는지 8년 동안 해 왔던 창업 경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연소로 금융위원장상, 여성가족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청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2살에 설립한 회사는 100억 가치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잘 나가던 회사를 경영하던 중 이 모든 게 바뀌는 날이 옵니다.

2년 전 할로윈데이 때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이게 현실인가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많은 청년들이 쓰러져 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필사적인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사람들이 죽어 있는 모습이 현실 같지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들어 심폐소생술을 하다, 들것에 실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청년들이 다 천국에 갔을까?

나는 지옥에 갈 청년들을 한 사람이라도 구했나?

그러고 나서 보니 교회에서 청년들이 사라져가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깊은 고민과 기도 끝에 청년들의 신앙을 위해 초원이라는 성경 앱을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과 성경에 대한 질문을 하면 요즘 핫한 AI 기술로 즉시 답을 하는 앱을 만든 것입니다.

이 앱을 통해 현재 수만 명의 청년들이 성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초원은 아무런 수익도 없는 사업이고 후원으로만 운영됩니다.

그러나 개역개정 성경을 사용하는 비용과 쳇지피티 운영체제를 사용해야 하기에 엄청난 비용이 필요합니다.

작년에만 15억을 썼다고 합니다.

그 사이 김대표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고, 차를 팔았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직원들도 내 보내야 했습니다.

김대표가 한번은 초원경영의 어려움을 유튜브 영상으로 올렸더군요.

매우 낙심한 듯 보였습니다.

이제 겨우 25살인 청년이 말씀 사역 좀 해보자고 수억씩 벌 수 있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좁고 험난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죠.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후 하나님이 필요한 만큼 매달 후원금을 주셔서 꾸려가고 있다는 영상을 올렸더군요.

한달 한달이 여전히 어렵지만 하나님만 바라보니 하나님이 꾸려주시는 것 같다고 하는데 얼굴은 훨씬 밝아보였습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궁에 출근하며 억대 연봉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혼자의 신앙에도 흠이 없었습니다.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율법을 마음껏 연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안됩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도 마음에 별 부담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알고 있었잖아요?

6,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걸 에스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헌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봉사하는 게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많이 받으시고 가정과 교회와 내가 속한 사회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을 믿게 된 성도들은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에스라가 부유하고 존경받는 자리를 떠나 가난하고 무지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려고 떠난 것도 그런 것입니다.

보통의 성도들에게는 세속적인 세계관에서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복된 헌신의 길을 위해 에스라가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해야겠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신앙은 매일 결심하는 것입니다.

내 경건한 믿음을 위해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가족과 이웃과 교회를 위해서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우리교회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 말씀대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