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스룹바벨성전이 완공됩니다.
그동안 에스라서에서 살펴 보았던 건축 과정이 다 기억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이해를 위해 잠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과 성전건축을 허락했던 왕이 고레스왕이었죠.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1차포로가 돌아옵니다.
인솔 지도자는, 유다도 총독으로 임명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였죠.
성전의 기초를 놓고 건축을 시작하려 할 때, 사마리아인들의 반대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맙니다.
그리고 십육 년 뒤에 하나님이 두 선지자를 보내셔서 미룬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시죠.
두 선지자는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 건축에 대해 예언했던 내용은 학개서와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관련된 스가랴서의 예언을 함께 볼 것입니다.
지난 주 5장에서는 다시 시작된 성전공사에 또 문제가 생겼죠.
유프라테스강 아래 영지를 총괄하는 총독 닷드내가 성전건축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여하심으로 성전 건축을 막지 못합니다.
닷드내 총독은 대신 페르시아왕 다리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고레스왕이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다는 유다인들의 말이 사실인지, 문서를 찾아 보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리오왕이 보낸 답장, 성전 완공과 봉헌식, 그리고 유월절을 지킨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다리오왕이 성전 건축을 허가하는 내용입니다.
1) 다리오는 고레스왕이 내렸다는 조서를 찾아보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1절,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페르시아 제국은 고레스왕과 그의 아들 캄비세스왕이 죽고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때 다리오가 왕으로 즉위합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리오왕과는 다른 인물이고, 세계사에서 다리우스1세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왕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도 이 다리오왕 이야기가 나왔었죠.
다리오는 고레스왕의 아들이 아니라 부하 장군입니다.
고레스 왕조를 이어가기엔 정통성 면에서 부담이 되겠죠.
그래서 고레스왕의 딸을 왕후로 맞이합니다.
고레스의 사위가 되었으니 왕조를 이어가는 명분을 갖게 된 것이죠.
그런데 즉위 초기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 문제로 상소가 올라온 것입니다.
고레스왕의 조서가 관련되었기에 이런 작은 사건에 발빠르게 대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문서 창고에서 고레스왕이 내린 조서의 두루마리를 찾아냅니다.
2) 3절부터 5절까지는 고레스왕이 내렸던 성전 건축 허가의 내용입니다.
이 고레스왕의 조서 내용은 앞에 1장에 나왔었죠.
본문은 다리오왕이 찾아낸 그 고레스칙령의 내용들을 다시 인용합니다.
조서에는 놀랍게도 성전의 규모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높이 육십 규빗으로 하고 폭도 육십 규빗으로 하라고 합니다.
60규빗은 30미터 정도니까 꽤 웅장한 규모를 허락한 것입니다.
또 돌 세 켜에 나무 한 켜를 놓으라고 하죠.
이것은 아마도 건축 방식인 것 같습니다.
본문에선 간단히 나왔지만 본래 고레스왕 조서엔 좀 더 상세히 건축 방식을 지정해 놓았을 것입니다.
고레스가 솔로몬 성전 양식을 잘 아는 이스라엘 제사장의 자문을 구해 솔로몬 성전 모습대로 재건하게 정해주었을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성전 건축의 경비를 다 왕실에서 내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건축이 중단되는 바람에 지원을 받지는 못했던 것이죠.
3) 이런 내용을 확인한 다리오는 고레스왕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라는 조서를 총독 닷드내에게 보냅니다.
다리오로서는 고레스왕의 정책을 이어간다는 명분을 세우기도 좋은 것이죠.
6절부터 13절까지에 다리오가 보낸 조서의 내용이 나옵니다.
우선 문제를 제기한 닷드내 일행들에게 건축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왜 상소를 했는지 뻔하니까, 방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놀랍게도 건축 경비를 다 지원해 주겠다고 합니다.
8절을 보면, 닷드내가 걷은 세금 중에서 필요한 만큼 ‘끊임없이’ 대 주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제사 드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제물들도 요구대로 날마다 주어서 왕궁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라고 합니다.
다리오왕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반과 암살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던 만큼 여호와 하나님께도 안전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죠.
조서 마지막엔 만일 성전 건축을 방해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덧붙입니다.
성전 건축을 막으려 했던 시도가 오히려 성전 건축을 확실히 보장하는 반전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 조서를 받은 닷드내는 즉시 명령대로 움직이게 된 것이죠.
2. 다리오왕의 조서가 오기까지 유다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1) 조서가 내려오기까지 유다인들은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명령하신 성전건축이 또 중단될 위기잖아요?
또 짓다 말게 생겼으니, 이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냐는 의혹이 들 수 있는 것이죠.
이 사람들이 뭐에 홀려서 기계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성령께서 특별한 경우에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지만, 보통은 올바른 결정을 위해 약간의 힘을 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 감정이 항상 성령에 감동되어 고조된 상태로 사는 게 아닙니다.
내 인간적인 생각과 믿음의 선택 사이에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잘 믿다가도 한 순간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닥치면 금방 실망감이 들고 인간적인 생각을 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따르는 쪽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말씀과 기도로 내 의지와 믿음도 강화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낙담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스가랴서에 나옵니다.
스가랴선지자가 건축 중단의 위기 앞에서 불안해 하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다시 말씀을 전합니다.
스가랴4장8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절,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니 반드시 건축이 완공된다는 것이죠.
그 말씀을 듣고 힘을 얻은 유다 장로들은 건축 허가만 떨어지길 바랬을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대보다 훨씬 넘치는 조서를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를 건축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귀환 공동체가 부담하기에 건축 비용은 만만치 않은 것이죠.
그런데 건축 비용 전체를 지원받게 된 것입니다.
또 다리오왕의 건축허가서를 다시 받았으니 이젠 누구도 방해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성전 예배가 시작되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의 제물을 누가 계속 부담할 것인지도 문제잖아요?
어린 양을 매일 두 마리씩 준비해야 합니다.
지원할 왕도 없고, 성전의 재정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잖아요?
제물의 비용 문제도 깨끗이 해결이 된 것이죠.
우리의 기도가 항상 이렇게 응답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종종 그렇게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다리오왕을 감동하셔서 이런 지원을 약속하게 하신 것은 그만큼 귀환공동체의 형편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 북한 압록강 일대 큰 수해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었죠.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주 수해지역을 다시 방문해 살림집을 최상의 수준으로 완공하라고 다그쳤다고 합니다.
현장 사진을 보니 안쓰럽게도, 건설 현장에 흔한 중장비 하나 없이 사람들만 바글바글했습니다.
저희 집 뒤에도 아파트를 새로 짓고 있습니다.
현장에 중장비만 움직이지 사람은 별로 안 보이는 것과 너무 대조되더군요.
당시 성전을 건축하는 게 수해 현장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나무를 해오고, 돌을 떠오는 일들이 중노동이잖아요?
또 건축을 위해 각자의 생업을 미루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순번제로 한다 해도 상당한 기간 보수 없이 노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전 재건이 버거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귀환자들이 순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복되지만 주님을 따르기 위해 정말 사력을 다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때로 힘에 부쳐 쉬고 싶기도 하고 한발 물러서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마냥 보고만 계시는 것 같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는 걸 오늘 다리오왕의 넘치는 조서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스가랴선지자를 통해서 귀환자들이 받을 축복도 보장해 주십니다.
8장11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12절,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하나님은 그 이상의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 삶이 지금 같이 질서있고, 깨끗하고, 안전하고, 평안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간증 프로를 보았는데요.
한 청년이 악귀가 보여서 고통을 받다 예수님을 믿고 벗어난 간증이었습니다.
청년은 아주 냉철한 무신론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투를 그려주는 직업을 가지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비주의 명상에도 깊이 빠져 들게 됩니다.
타투 문양들이 기묘하잖아요?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신비주의 명상에도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어느날부터 많은 악귀들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병원에 가 봤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무속으로 넘어가 귀신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악귀가 조화를 부리면 아무 의식도 없이 자기 몸을 자해하기도 했습니다.
악귀들이 협박하고 유혹하는 말을 걸어오고, 급기야는 자취방의 물건들까지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합니다.
어느날은 친구들이 놀러왔는데 함께 편의점에 다녀온 사이에 집의 물건들이 난리가 나 있는 걸 보고 친구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청년 혼자의 망상이나 환영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저도 이렇게 물건까지 움직이는 악귀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도움으로 교회에 나가 믿음을 갖게 되고 지금은 거의 그런 현상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제가 청년의 경험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릴 보호하시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악귀들이 저렇게 우리 삶을 다 휘저어 놓을 수가 있겠구나.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고 성경이 가르치셨잖아요?
제가 최근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데, 자전거에 두 번이나 추돌을 당했습니다.
얼마 전 한적한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발 뒷꿈치에 뭐가 와서 꽤 강하게 충돌을 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 보았습니다.
한 여자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그냥 제 발 뒷꿈치에 추돌하고 나서 멈췄던 거예요.
지난 주에도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팔꿈치를 확 치며 학생이 탄 자전거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집 주변을 자주 걸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게 단순히 사람들의 부주의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뭔가 해를 끼칠 악한 세력들이 노리고 있다는 것이죠.
사람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어떤 사건으로, 방법은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시고, 큰 재난에서 건져주시지 않는다면 악귀들이 어지럽혀 놓은 그 청년의 방처럼 우리 삶이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위기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을까요?
그동안 그런 위기를 잘 넘어 왔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해 줬다 생색내지 않으시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형편도 절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내가 성전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포로 귀환자들이 만난 어려움, 방해들도 수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서 믿음 세우기를 계속 해 나간다면 오늘 다리오왕의 조서를 내리신 것처럼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3.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하는 내용입니다.
1) 15절, 다리오 왕 제 육년,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한 뒤 4년 반 만에 성전이 완공됩니다.
4년 공사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일이 진행되는 중에도 당연히 또 다른 갈등들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성전을 완공했는지 14절에 나오죠.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권면이라고 한 단어는 계시,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우리도 믿음의 성전 건축을 굳세게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필사적으로 성전을 짓고 있었지만 당시 제국의 왕들이 지은 거대한 건축들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규모였습니다.
또 안팎을 금으로 둘렀던 솔로몬 성전에 비할 때 얼마나 초라합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때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또 생각해 보니 ‘성전에 모실 법궤도 없네?’
‘나라도 없는데 성전만 짓고 있네’
처음엔 성전 건축을 한다는 것에 기뻤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실적인 각종 의혹도 생기는 것이죠.
그럴 때 스가랴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
스가랴4장10절,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우리는 작은 일을 계속할 때, 나 자신일지라도 멸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스룹바벨 성전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신 예수님을 가리키잖아요?
그러나 주님이야말로 그 손에 다림줄을 들고 성전되신 자신에게로 들어올 사람들의 경계선을 정하실 것입니다.
현실적인 회의감 속에서도 4년 간의 건축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계속되는 학개와 스가랴의 메시지와 성령님의 감동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흔들리지 않고 해 나가려면 말씀을 통해 계속 지도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내 감정만을 본다면 살면서 세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항상 뒤로 물러나 머리 속으로는 일어나지 않은 더 큰 것의 상상 속에서 가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지금 초라해도 이것이 우리 진짜 인생입니다.
이 작은 일들을 치열하게 해 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권면합니다.
2) 드디어 성전 봉헌식을 올립니다.
16절,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20여년 간의 숙원이었던 성전 재건을 마치고 봉헌식을 할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성전을 세운다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보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만들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죠.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신 보조가 있으십니까?
또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드려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속죄할 제물을 바쳤으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평안히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속죄의 제물, 용서, 축복’이란 관계를 하나님이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봉헌식을 하며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17절,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바치라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셨겠습니까?
이로부터 4백여년 뒤 예수님은 단번에 모든 죄를 사하신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10장17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항상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 나가 은혜와 복을 얻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재건 된 성전에서 첫 번째 절기인 유월절을 지킵니다.
유월절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아 집집마다 피를 바른 날 밤에, 애굽의 장자들이 죽고 나서야 바로가 이스라엘 종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삼백 년 노예생활에서 자유민이 된 것을 감사하며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성전 봉헌식을 마치고 그 유월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내는 유월절이 본래 해방절의 의미에 맞습니까?
지금 귀환자들은 자유민이 아닙니다.
주권도 없고, 왕도 없고, 땅도 없습니다.
지금 포로의 자손들이 드리는 유월절은 본래의 의미에는 맞지 않죠.
그런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며 어떤 바램을 가졌겠습니까?
우리에게 다시 해방과 자유를 주시길 기도했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다윗의 자손인 왕이 와서 평강으로 다스릴 것을 계속 예언해 왔습니다.
그걸 기다리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이 유월절 양이 되시고 나서야, 죄와 사망의 종 되었던 우리를 완벽하게 해방시키고 구원하시게 된 것이죠.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고 나서야 비로서 죄와 사망의 두려움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구약성경은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설명하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스가랴서를 보아도 성전 건축으로 시작한 예언이 결국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연결됩니다.
스가랴서9장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누구를 예언하고 있는지 아시겠죠?
만일 구약성경이 없이 예수님이 오셨다면 어떻게 주님이 우리의 대속자라는 것을 확증하셨겠습니까?
에스라서가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렇게 배우고 나면 성경을 볼 수 있는 원대한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 깊이 남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이스라엘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기념관처럼 지어 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보좌에 하나님을 모시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또 스가랴서에서 성전을 짓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장16절,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절,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죠.
우리의 창조주시고 구원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참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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