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야고보서 마지막 설교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성도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점검하고 믿음의 해결책을 주었죠.
그대로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야고보사도가 서신의 마지막을 기도로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그간의 모든 권고를 기도 없이는 행할 수 없다는 의미겠죠.
또 마지막에 강조하는 이 기도야말로 반드시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믿음생활이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기도에 대해 배우고 실제 우리 기도생활에 변화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우리 개인의 고난이 있을 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13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야고보사도는 점점 변질되는 성도들의 믿음에 한탄과 질책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약함을 아는 사도가 어찌 그들에 대한 연민이 없겠습니까?
편지를 마치는 성령께서 그런 곤고한 성도들을 부드럽게 보듬는 것 같습니다.
고난이 힘들지? 걱정하지 말고 기도해.
인생에서 크고 작은 고난은 평생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죠.
고난을 당할 때는 괴롭고 슬프지만 그 결과는 기대할만 합니다.
절망이라 생각했던 고난은 꽁지에 축복을 매달고 오기 때문입니다.
고난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기도하라고 한 다음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하라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난을 이를 악물고 생으로 견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사람 다 망가집니다.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하면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신다는 것이죠.
고난은 기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데, 기도는 또 고난을 통해서 배웁니다.
수도사들처럼 명상하며 기도를 배우는 게 아닙니다.
기도 좀 하는 성도다 하면 ‘고난이 많았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거의 맞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난을 통과하며 기도의 용사가 되고, 고난이 가져다 준 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이 일부러 만들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당하며 하나님 앞에서 울고 괴로워하는 것을 하나님이 마음에 깊이 담아 두십니다.
힘든 고난을 견뎌내면 즐거운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축복을 주시는 것이죠.
김천에 좋은 교회로 소문난 은혜00림교회가 있습니다.
최인0 담임목사가 부임해 올 때 성도들은 오십명 정도가 되는 시골의 작은 교회였습니다.
최목사는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교회에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성도들 중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느날 최목사와 성도 네 명이 자전거를 타고 추풍령 고개를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달리던 최목사 귀에 금속이 부딪치는 큰 소리가 뒤에서 들렸습니다.
옆을 보니 뒤에서 따라오던 성도가 날아와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어요?
약사였던 그 성도는 즉사해 몸이 이미 굳어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넋이 나갈 것 같은데, 뒤에서 여기 좀 와보라는 고함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신없이 뛰어가 보니 교사였던 성도는 도로에서 튕겨져 나가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경찰관이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다가 두 사람을 들이받은 것입니다.
사망한 두 사람은 교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집사였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목사가 가족들과 성도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두 달 뒤에 또 부목사의 아이가 급성신장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몇 달 안 돼 한 집사님의 어린 아들이 백혈병으로 또 떠났습니다.
정말 한 작은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천에는 은혜00림교회가 망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만에 교회로 돌아와 눈물을 훔치며 봉사하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불 같은 시련 속에서 한 사람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그렇게 시련을 통과하는 가족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며 기도했습니다.
마음의 지옥과 싸우고 있을 목사님을 위해 몰래 집 앞에 소고기를 갖다 놓고, 수박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은혜00림교회가 망했을까요?
지금 은혜00림교회는 새성전을 건축하고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환난이 있듯이 교회 안에도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고 더 위대한 믿음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에 큰 시련을 겪은 만큼 큰 위로와 복을 주십니다.
지난 주 고난을 이기고 복을 받은 욥의 결말이 그 증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다 만나는 고난도 우리에게는 손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를 배우고 영혼의 유익과 삶의 축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고난을 기도로 이기려면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항상 힘써야 합니다.
기도에 대해 간단히 정리를 해 볼 텐데, 이걸 들으시고 막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으셔야 합니다.
1)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식입니다.
사람들 간에도 자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서로 좋은 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한번 기도한다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라고 스스로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것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모집하신 게 아닙니다.
나를 아셨고,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이라는 값을 지불하고 데려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님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렸다’
그날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나 한 사람을 위해 고난받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이것을 느낌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기도를 통해서 그 관계를 점점 굳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모르던 하나님을 만난 서먹함을 기도가 아니면 어떻게 사랑스런 친밀한 관계로 만들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과 의지로 기도에 순종하면 성령께서 점점 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자녀로서의 강점과 특권을 다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으로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습니다.
숙련된 신자들도 기도하지 않으면 멘탈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하루만 지나도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 감정은 요망해서 아주 작은 바람 한 점으로도 마음 속에 거대한 토네이도를 만듭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종일 나를 격동시킬 때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기도는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여기도록 마음을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가 큰 짐에만 눌리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하찮은 일에 걸려 넘어지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강하게 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3)기도할 때 하나님께만 속한 보배로운 것들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어떤 문제로 기도할 때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어 보셨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것은 이 세상 지혜가 아니라 저 세상 지혜입니다.
기도하면 그걸 매일도 체험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진리를 배우고 이치를 깨닫는 것만큼 비상한 기쁨은 없죠.
또 마음의 평안, 용기, 능력, 기쁨, 자신감, 절제할 수 있는 힘, 관대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그냥 원래 있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기도를 통해서가 아니면 이런 좋은 것들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인생의 작은 시련들은 우리 힘으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환난도 있잖아요?
그런 고난을 우리 힘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큰 환난을 만날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도와줘도 한두 번이지 가족들도 한없이 도와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고난 자체가 누가 도와줘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시편50편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야고보사도의 무릎은 오랜 기도로 낙타의 무릎처럼 되었다고 했죠.
수많은 기도에 응답받지 못했다면 지금 성도들에게 고난 당할 때 기도하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니 우리는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5)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려면 정해진 기도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기도를 힘들어 합니다.
기도 훈련이 잘 된 분들도 기도가 쉬운 날은 거의 없습니다.
절박한 문제가 있을 때는 그래도 기도하기가 좀 쉬울지 모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매일 기도한다는 것은 더 강한 의지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기도는 무조건 하루 중에 정해 놓은 시간과 장소가 있는 게 최상입니다.
언제 주로 기도하냐고 물었을 때, 시간 나는 대로 아무데서나 한다고 대답했다면 아마 거의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는 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몸을 위한 운동도 시간 나는 대로 하면 지속하기가 어렵죠.
헬스장에 등록을 하거나, 하루 생활 중에서 시간을 정해야 운동도 꾸준히 됩니다.
기도는 시작할 때 부담되고,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런 루틴이 더 필요합니다.
현대인의 생활이라는 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가죠.
항상 일정하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기도의 유익을 아셨으니 기도할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시는 분은 가족들이 깨지 않은 아침시간도 좋고, 잠자기 전 기도시간으로 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시간이나 장소든 최대한 규칙적인 기도를 할 수 있어야 기도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도 시간을 할 수 있는 한 길게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도시간을 짧게 가지면 집중도 잘 안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맛을 알기도 힘듭니다.
기도에 내 사활이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에 더 힘쓰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특별히 병든 자에 대한 기도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이것은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에 주신 중보기도의 능력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 살면서 가장 당혹스럽고 무서운 게 아마도 덜컥 중병에 걸렸을 때일 것입니다.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야고보시대나 첨단 의료의 지금 시대나 건강 문제는 가장 큰 우환이죠.
이천 년전 가난한 가정에서는 의사를 찾아가지도 못하고 상비약으로 올리브기름 정도를 환처에 발랐습니다.
우리 어릴 때까지도 된장, 참기름, 이런 걸 상처에 바르기도 했죠.
야고보사도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교역자들을 청해 기름을 바르며 함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15장26절에서 말씀하셨죠.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의술과 약품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병의 원인을 치료한 신비한 작은 알약을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겠습니까?
약의 효과를 통해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올리브기름을 바른 교회 지도자들의 기도에도 병이 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목사와 중직자들과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사들의 치유기도를 고맙게는 생각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 때문에 우리 목사들에게도 환우들을 위한 치유기도는 부담입니다.
기도 받고 벌떡 일어날 수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여전히 병세가 나쁠 때 참 민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환우들이나 가정에 문제가 생겨 기도할 때 바로 응답되지 못한 경험들이 목사들에겐 트라우마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경험입니다.
이 분은 충북 괴산에 있는 조그만 교회에 담임목사로 시무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대부분 과수원과 밭농사를 합니다.
어느날 기도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과수원에 가서 축복기도를 해 드리자.
그래서 장로님, 권사님들 과수원을 찾아가서 엄청 쎄게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나무에 손을 얹고 또 땅에 손을 짚고 ‘올해 과수 농사가 갑절로 잘 될지어다.’
그런데 얼마 뒤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풍이 한번도 지나간 적이 없는 이 산골 마을에 역대급 태풍이 세 개나 지나가는 이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태풍 중에 밤새 걱정하다 급히 과수원에 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에 과일이 다 떨어져 멀리서 봐도 바닥이 새빨갛게 보였습니다.
얼마나 면목이 없고 미안했겠습니까?
그렇게 기도와는 정반대로 과수 농사를 망친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을에 콩 농사가 유래 없는 풍작을 이뤘습니다.
성도들이 과수 농사에서 손해 본 걸 다 만회하고도 남을 수입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당장 효과가 없는 것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성경에서 병자들이 일순간에 낫는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13절에서 고난 당하는 자의 기도가 당장 응답 되지 않는 것처럼 병자들을 위한 기도 역시 당장 응답 되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치료 과정과 효과를 잘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만성 질환일지라도 꾸준히 저와 함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2) 그런데 질병이 찾아왔을 때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병이 죄를 지어서 생기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죄를 범해서 생기는 병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죄에는 오히려 개입하시고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그렇지 않다 해도 보통 병이 들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16절에 보면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하죠.
우리가 말씀나눔교제를 할 때를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단점을 고치지 못하는 게 제일 문제다, 나는 이런 죄를 버리지 못해서 속상하다.
이런 연약함을 이제 서로 알고 있잖아요?
질환이 생기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서로의 단점과 죄를 긍휼히 여겨주시길 함께 중보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중보기도의 응답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18장19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함께 드리는 기도를 주님께서 더 잘 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서로 중보하며 기도하는 게 자기 문제를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잘 응답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그만큼 예수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기도응답의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저희 세대 성도님들은 TV드라마 야망의 전설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최수종씨와 유동근씨가 형제로 나왔죠.
당시 50.1%라는 기적의 시청률을 찍었던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 연출자가 김영0 PD입니다.
연속 히트하는 드라마를 만들던 김피디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내와 딸들을 만나러 미국으로 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두개골을 잘라 내고 뇌수술까지 했지만 코마상태에 빠져 4개월을 식물인간으로 지내게 됩니다.
의사들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다니던 교회 성도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병실을 찾아와 기도했습니다.
병원에서 교회 담임목사를 불러서 제발 오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고, 의사들이 포기한 김피디를 하나님은 4개월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성도들의 간절한 중보기도를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한편의 드라마 같이 보여주신 것이죠.
김피디는 본업에도 복귀했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이전 같은 활동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들이 직접 주인공이 된 단막극을 찍어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TV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중보기도의 힘을 믿고 고난과 질병 중에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가족, 중보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가 있다는 걸 항상 감사하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형제들의 연합의 기도를 통해 함께 고난을 이겨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고난에 지레 겁을 먹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크고 작은 시련은 기도로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 무엇보다 기도할 시간을 꼭 정하고, 실행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우리 가정에서 의인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입니다.
가족들을 위한 중보기도에도 하나님이 응답하심을 믿고 기도의 짐을 잘 지셔서 모든 가족들이 구원받고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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