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할까요?
네, 맞습니다.
한국인 삶의 만족도 조사 결과, 돈이 많을수록 행복하다는 게 통계로 드러났습니다.
수입과 삶의 만족도의 상관 관계를 나타내는 막대그래프는 정확히 소득이 높아질수록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걸 보여주더군요.
소득이 낮으면 아무래도 사는 게 힘들죠.
쓰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쓰는 데 뭐가 신나겠습니까?
TV에 광진구에 있는 호텔형 실버타운에 임장 간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대형 평수의 경우 보증금이 10억에 한 달 내는 돈이 488만원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입주 어르신들을 보니 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라고 억지로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돈이 많던 적던 구원 받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현재 상황이 무엇이든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그건 남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느끼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나를 행복하다 생각해도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것잖아요?
야고보사도가 오늘 돈 문제로 불행한 성도들을 엄중하게 바로잡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이 돈 문제로 겪는 시험이 크다는 것이죠.
오늘 말씀이 우리의 경제생활을 믿음 안에서 잘 이해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1. 성도들의 경제관념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 중에는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어디나 돈 버는 데 탁월한 사람들이 있죠.
그 사람들이 자기 사업 잘 되는 걸 자랑스럽게 떠벌이고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사업 이야기를 하며 자기들끼리 있는 티를 냈을 것입니다.
멀리 야고보사도에게까지 소문이 들릴 정도였던 것이죠.
13절,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 말씀은 잘 나가는 사업가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며 마음으로 따라가는 일반 성도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당시에 그렇게 돈 잘 버는 사업가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이 더 많고 다들 정해진 수입으로 살잖아요?
월급쟁이들은 한 달에 단돈 십만 원 정도 추가 소득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주식이다, 코인이다, 사업이 대박이 났다, 이런 소리는 먼 나라 이야기죠.
그런 성도들이 돈을 잘 버는 사업가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것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죠.
가난한 성도들이 더 벌지는 못하는 처지에서 돈에 대한 갈증만 커진다면 그건 최악입니다.
얼마나 삶이 불행하겠습니까?
나의 경제환경과 한계에 대해 믿음으로 잘 해석해야 합니다.
사회학자들 말로는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이미 성인이 되어 월급을 얼마 받을지가 정해진다고 하잖아요?
전부는 아니지만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을 것입니다.
내 가난은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를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일까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부모를 꼭 찝어 주신 출생들이 꽤 많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모태에서부터 우리를 조성하셨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출생에 개입을 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에서는 내 삶이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주신 기업이라고도 하죠.
우리가 이것저것 부지런히 손을 대며 살아온 것 같지만, 돌아보면 이런 인생의 궤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출생 뿐 아니라 사는 환경에도 개입하신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힘들게 태어난 우리의 출생을 적어도 하나님이 아시고 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했다 해도 하나님은 그걸 아십니다.
이 모든 걸 감안하셔서 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날 대차대조표를 작성하실 것입니다.
힘들지만 따박 따박 살아온 우리 인생이 절대 억울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은 지금 누리는 걸 나중에 영구히 누릴 것이라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것 기대하지 않으면 저도 이렇게 못 삽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자색 옷을 입고 혼자만 호의호식하던 부자에게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하죠.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오늘 본문이 미래를 합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뻔한 수입이지만 계획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하는 상대가 세상의 사업가들이 아니잖아요?
세상이라면 당연히 자기를 위해 자기가 삶을 설계하는 것이죠.
당시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태도로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는 걸 문제삼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생각대로 경제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두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 사람이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커녕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이잖아요?
어느 하루도 내가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는 날은 없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매일 똑같은 사람을 본다 해도 분명히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큰 타격이 없는 작은 일들만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서서히 문제가 커지든, 갑작스럽게 재난을 만나든, 우리가 언제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에 누군가의 간증 중에서 큰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전재산을 날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건설 붐이 한창일 때 아버지가 자금을 다 끌어다 모래를 사서 한강변에 산처럼 쌓아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뒤 엄청난 태풍이 오고 며칠 간 장대비가 내려 쌓였던 모래를 다 쓸어가 버렸다는 거예요.
이후로 아버지가 재기하지 못하고 폐인처럼 살았다고 하더군요.
최근 트럼프대통령이 여기저기 관세 폭탄을 터트려 전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어쩔 수 없이 다방면에서 변화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에 직장을 잃는 분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자영업과 소상공인들은 우리나라 정치 상황까지 더해져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내 힘으로 돈 번다는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영역과 경제활동의 영역을 별개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내 영혼을 맡기듯이, 내 일하는 영역과 재정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기도하고 사업하시고, 직장을 위해 기도하고 출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업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야곱이 어떻게 목축에 성공해 거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코치하신 덕분이잖아요?
얼룩무늬 양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야곱에게 가르쳐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우리 생업에서 대표로 모시지 않는 게 가장 큰 손해라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일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잖아요?
내일 일을 아시는 하나님께 내 경제활동을 꼭 기도하며 인도받으시길 축복드립니다.
2) 우리의 생명은 반드시 끝이 있고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업에 변수가 끼어들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사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도 직장생활 하던 중에 하루 만에 사람이 생사를 달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미술교사가 방학 때 네팔로 여행을 갔다 차가 전복되어서 가이드와 함께 사망한 적이 있습니다.
문상을 갔는데, 본인이 죽고 없으니 처음 보는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떤 분은 학교에 출근하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직장 동료는 밤중에 남편과 함께 건널목에 나란히 서 있었는데, 신호가 바뀌자 도로 위로 한 발 내려선 남편을 신호 위반 트럭이 치고 지나가 사망했습니다.
한순간 옆을 보니 남편이 없더랍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은 같이 근무하던 교사의 세 살 난 아들이 후진하는 덤프트럭에 치여서 사망했던 사건입니다.
저의 수업을 받은 학생이 그 다음날 체육 시간에 숨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 전날 방학 전 마지막 수업시간이라 시간을 좀 남겨서 그 반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 학생이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직도 그 눈빛이 기억이 납니다.
누가 자신의 죽음의 날을 알았겠습니까?
마치 기세를 부리던 아침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은 이땅을 떠납니다.
그러나 야고보사도가 그런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전도서에서 인생이 헛되다고 한 것은 젊을 때 하나님을 떠났던 솔로몬의 후회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생이 무상하니 무계획으로 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이렇게 짧고 유한하지만 내세는 영원하다는 걸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짧고 유한한 이 땅의 삶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년을 살 것처럼 나를 위해 벌고 비축해 두는 게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얼마나 남았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세는 시편90편에서 우리 인생의 날 수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내일은 보장된 나의 날이 아니니,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성실히 일하며, 주어진 삶을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나갈 날을 항상 잊지 않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그러니까 돈을 벌고 인생을 계획할 때 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15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 하나님이 내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좀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뜻이라면 성사되길 축복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그렇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 자녀들과 청년들이 특히 인생을 계획할 때, 하나님의 뜻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제가 가는 이 길을 인도해 주세요’
내 인생이니 내가 마음대로 해 보겠다는 건 결국 이기적인 욕심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전에 본죽 사장인 최복0대표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본죽이 성공하기까지 최대표 가정이 정말 숱한 고난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몇 년을 5백 원짜리 호떡을 팔면서 하루 4,5만원 수입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에 본죽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가맹점 중 한 곳에서 반찬을 재사용하다 걸린 것입니다.
게다가 국산 재료라고 표기하고 중국산을 썼다고 합니다.
본죽 회사 이미지가 땅으로 떨어진 것이죠.
음식업종에서 그 정도면 거의 망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 힘든 사건이 터지고 나서 본죽이 가맹점 관리에서 여러 가지를 고쳤다고 하더군요.
본사에서 가져가는 게 많으니 가맹점들이 그런 사고를 친 거라는 걸 기도하다 호되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오랜 시련을 통해 연단 된 믿음의 기업인인데도, 돈을 벌다 보니 어느덧 욕심을 내서 기업을 운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가맹점주들의 형편을 먼저 생각했더니 다시 제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눈 앞에서 일하지 않을 때 우리도 너무 쉽게 작은 이익에 욕심을 내고 양심을 팔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일 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 뜻대로 잘하고 있는지를 자꾸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만 일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일터가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16절,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사람이 일이 잘 풀리고 돈이 들어오면 오만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허세와 허풍도 늘어납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수명이 10년에서 12년이라고 합니다.
잘 나가던 회사들이 왜 망하는지 이상하죠.
대개 사업이 잘 되면 확장을 하잖아요?
이런 저런 사업 확장을 하고 투자하다 어디선가 막히면 연쇄적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앞 롯데마트가 있던 작은 사거리에 서로 마주 보고 큰 식당이 두 개 있습니다.
주인이 같습니다.
그 식당이 몇 년 전에 바로 우리교회 맞은 편에서 영업을 했다고 합니다.
한우고기를 직접 사서 구워 먹는 정육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너무 올려서 개롱역 쪽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이전하고 대박이 난 것입니다.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작년에 먼저 식당 하나를 더 오픈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앞 롯데마트 자리에 또 한우 국밥집을 개업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식당이 둘 다 이 근처에서 제일 넓은 것 같습니다.
임대료도 만만치 않겠죠.
그걸 보며 좀 걱정이 되더군요.
젊은 사장이 너무 공격적인 사업을 하는 게 아닌가.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사람이 한 가지 일이 잘되면 모든 게 잘될 것 같은 자신감이 붙잖아요?
그러다 자칫 수렁에 빠지는 것이죠.
그래서 경영학에는 ‘성공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일이 잘 될 때 사람이 위험하지, 잘 안될 때는 그렇게 크게 위험할 일이 없습니다.
전에 김동0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이분이 꽤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유명한 스타 목사잖아요?
그러다보니 먹고 사는데 쪼들려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을 자기 능력으로 과신하는 마음이 어느새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서 힘든 일이 있었겠죠.
‘내가 어디 가면 밥 세끼 못 벌어 먹으랴’
그 말을 뱉고 아차 싶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너 이자식’, 그러시면 나는 죽었다 싶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면 내 힘으로 밥 한끼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진짜 무서울 정도의 느낌으로 깨달았다고 합니다.
지금 내 직장에서 일하는 게 시시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 직장에 들어갔겠습니까?
어디든 다른 직장 못 들어가겠냐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계획이 있다면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하며 뜻을 구하는 게 우선입니다.
행여라도 내게 주신 일터를 업신여기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월급이 좀 적어도, 일이 좀 맘에 들지 않더라도 불만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아니한가’ 그렇게 나를 타이르고 지금 내게 주어진 직장과 일터에서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4. 우리의 돈으로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사람이 행해야 할 선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은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냐는 것이죠.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는 마음 속에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맥상 여기서 ‘선’은 이웃에 대한 물질의 사용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5장에 보면 우려했던 대로 그 부자들이 가난한 일꾼들을 착취하는 문제가 터집니다.
물질 사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옵니다.
죄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말씀들입니다.
무이자로 돈을 꾸어주어라, 담보를 잡을 때 형편을 참작해라, 추수 때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이삭을 남겨두어라.
가난한 이웃의 생계에 대해 무관심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심판의 외적인 이유로 어려운 이웃을 돌아 보았냐를 따지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내가 힘들 때 네가 돌보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주님의 고난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해진 수입 중에서 구별해 헌금을 드리며 하나님도 섬겨 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은 가장 먼저 성도들이 해야 할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그러고 나면 더 돕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여력이 없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베풀 수 있는 힘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 베푸는 것을 내게 베푼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꾸어준 것을 내게 꾸어준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갑을 좀 열면 작은 선이라도 베풀 지폐 한 장이라도 또 나옵니다.
그걸로 유튜브 광고에 나오는 컴패션 같은 단체에 한 어린이라도 후원할 수 있잖아요?
2만원이면 커피 몇 잔 덜 마시고 점심 좀 싼 걸로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작은 기부라도 동참하면 마음이 뿌듯하고 새로운 기분이 납니다.
어떤 방법이든 교회와 이웃에 계속 선을 행하며 사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더 많이 베풀 수 있도록 우리 믿음과 삶을 축복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통계조사는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돈이 많지 않은 우리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은혜의 삶이기에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돈이 많아도 믿음 안에서 행복하려면 항상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기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다 쓰는 것보다 나누는 게 더 행복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믿음으로 잘 사는 배우 중에 신애0씨가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남편 차인0씨와 함께 기부도 많이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배우죠.
전에 이경0씨가 차인0씨에게 우스개 소리로, 배우면 연기로 유명해야지 기부로 유명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신애0씨에게 명품백이 하나 없다고 주변 친구들이 타박을 좀 했나봅니다.
나도 명품백 못 살 건 없다 생각하고 백화점에 가서 하나 구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방을 보는 데 아무리 봐도 내 가방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환불하러 갔는데, 직원이 흔쾌히 환불처리를 해 주더랍니다.
신애0씨가 미안해 하니까 뜻밖에도 하는 말이, 어제 이미 환불하러 올 것 같았다고 말하더랍니다.
어떻게 알았냐니까, 가방을 사서 들고 나가는 얼굴이 하나도 행복해 보이질 않았다는 거예요.
돈이 많고 호사스럽게 써야만 행복한 게 아니라는 걸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체득해 가는 것입니다.
내 경제활동 능력에 너무 자만하지도 너무 위축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너무 돈, 돈 거린다고 돈이 많아지지도 않습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지금처럼도 잘 살 수 있고, 더 많은 것들도 이것저것 잘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듯, 경제활동에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인도받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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