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서2장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도우신다)

남수연 2025. 5. 15. 22:21

이번 주 매일성경 본문은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각오로 유다인들을 멸절에서 구해낸 믿음의 여인이죠.

본문 5절과 67절을 보면 에스더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1. 에스더가 살고 있는 곳은 바벨론 땅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제국에 멸망하고 많은 유다인들은 포로로 잡혀갔죠.

그중에 모르드개와 모르드개의 삼촌인 에스더의 부모도 있었습니다.

수치와 치욕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에스더의 나이가 아직 어린 걸 보면 아마도 바벨론 땅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에스더가 어릴 때 죽었습니다.

붙잡혀 간 포로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 같았을 것입니다.

7절에 보면 고아가 된 에스더를 나이 차이가 많은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자식 같이 키웠다고 합니다.

이때는 고레스왕의 귀환 명령이 떨어져 이스라엘자손들 중 1차 귀환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입니다.

바벨론 땅에는 당시 이백만 명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중 1차로 고국에 돌아간 인원은 4만명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 된 뒤에도 일본이나 중국 등지에 살던 동포들이 다 귀환하지 않았었죠.

이미 타국에 삶의 터전을 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인들도 70년 세월에 바벨론 땅에 정착을 한 것이죠.

그때까지도 폐허로 남아있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일도 있고,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었겠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귀환자들은 스룹바벨과 학개와 스가랴를 중심으로 겨우 작은 성전을 완공해 놓은 시기입니다.

화려한 재건을 꿈꾸고 고국에 돌아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이죠.

아직도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진 채 사람이 살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고국이라고 돌아갔지만 맘 편히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유다 땅에 들어와 살고 있던 주변 민족들이 있었거든요.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처지였습니다.

바벨론 땅에 남은 사람들의 형편이라고 더 나았겠습니까?

10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유다 민족인 걸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예요?

유다인으로 사는 게 지금도 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예루살렘과 바벨론 땅에 둘로 나뉘어 살게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뭐가 보입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믿음을 따라 살지만 기대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은, 귀환자들의 삶과 비슷하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드러내지 못하고 사는 것은, 바벨론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과 비슷합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도 말씀하지도 않으시고 막후에 계십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한번도 안 나옵니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잖아요?
그러니까 에스더서는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나 우리 현실의 이야기로 느껴지죠.

그중 바벨론 땅에 살던 유다인들이 몰살 당할 위기에서 살아나는 대역전극을 에스더서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2. 그 사이 바벨론제국이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바벨론땅의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아하수에로왕 때 벌어진 일입니다.

1장엔 아하수에로왕의 왕후인 와스디가 폐위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왕후를 뽑기 위한 간택령이 내려집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남쪽으로 인도까지 총 127지방을 다스리는 대제국입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정복전쟁으로 페르시아에 편입된 것이죠.

그 모든 지방에 왕후 간택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때 아리따운 에스더도 왕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야망을 갖고 왕후에 도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8, ‘이끌려 가서라는 말이 자원한 게 아니라 뽑혀서 갔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흔한 포로 소녀의 가혹한 인생사 아닙니까?

태어나 보니 남의 나라였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습니다.

사촌오빠의 손에 자라며 인종 차별도 당했습니다.

에스더의 소망은 평범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소박하게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치 않게 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죠.

역사가 헤로토투스는 아하수에로왕 간택령에 뽑혀 온 처자들이 4백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왕의 눈에 들지 않으면 평생 후궁에 갇혀 살아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에스더서에서 에스더의 과거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에스더를 택하셨다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도 에스더에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나를 그런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인생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아야 했는지 그것을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잖아요?

지금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늘 황금기인 것이죠.

제가 어제 운동을 하려고 집 주변을 열심히 걷고 있었습니다.

커브가 있는 길을 돌아서니 커다란 반사경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걷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위풍당당한 거예요.

솔직히 개척교회 16년 차에 고민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뭐가 그리 위풍당당한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제가 돈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옆에 가도 꿀리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내 신분은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천국에 이 땅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크고 아름다운 기업이 있는 게 너무 확실하기에 누구에게든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살았던 인생도 중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순간부터 내 진짜 인생은 시작되는 거잖아요?

요즘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죠.

누가 선거캠프에 합류하는냐가 관심사더군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주님 나라에 참여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선캠프에 참여하는 것보다 못합니까?

열심히 하나님을 알고, 믿음에 힘쓰고, 지금 내가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봉사하고, 내 평생에 누구 누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할지 명단을 갖고 기도하고.

그런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흥미진진한 삶입니까?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은 떠들썩하기만 하고 훨씬 따분합니다.

마치 명절날 TV프로그램은 요란한 데 볼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것이죠.

 

4. 에스더는 민족을 구하는 일을 위해 뽑으셨고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 뽑으셨습니다.

지금 좀 가난하고 병들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있어도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일하고 계십니다.

구원하고 그냥 방치하시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나를 그 계획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지원해 주십니다.

간택 경연에 들어간 에스더에게는 이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눈에 띄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게 필요하죠.

127개 도에서 모인 미인들이라면 사실 미모는 다 출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에스더를 보는 사람들 마음에 들게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지원자들을 주관하는 헤개라는 내시의 눈에 에스더가 확 들어오게 합니다.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우리가 어려울 때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의 친절과 호의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십니다.

성경에서 그런 예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야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사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축복까지 다 받아내잖아요?

에서가 야곱을 벼르고 있다는 걸 알고 도망치죠.

삼촌집에게 가서 이십 년 세월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에서가 4백 명을 끌고 맞으러 나옵니다.

이게 환영하는 분위기입니까?

야곱이 두려움에 빠져 죽기살기로 얍복강에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형을 만나러 가죠.

그 사이 에서의 마음이 바뀌어서 서로 입맞추고 피차 울었다고 합니다.

원한을 가진 마음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 보셨습니까?

다윗이 왕국을 세울 때도 그랬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역대상 1222,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돕는 손길과 사람들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함께 하시는 성도님들이 있으셔서 우리 교회에 대한 주님의 뜻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5.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일을 관망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1,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

날마다라는 말에서 모르드개가 이 일에 얼마나 기대를 거는지 알 수있죠.

우리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날마다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잠언 2723절입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지금 내게 맡겨진 일에 마음을 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있는 일마저 점점 쪼그라들 것입니다.

잘 안된다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면 해 낼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포기는 최후에라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이 다른 문을 열어주시는 게 분명하지 않다면, 야곱처럼 얍복강의 기도로 매달려 끝까지 인도하심을 받아내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계속 에스더와 접촉하며 문제를 지시하고 풀어갑니다.

우리가 일이 돌아가는 걸 유심히 살펴보면, 이건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할 일을 하나님이 대신 해 주시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못 할 일을 해 주시는 것이지, 내 몫은 내가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나님도 거기에 지혜를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건강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면 건강에 도움 될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추면 하나님이 다음 계획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헬스클럽 관장이 매일 새벽마다 108배를 15년간 했었는데, 어떻게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집에 가사도우미 여사님이 있었는데 어느날 새신자초청예배에 와 달라고 초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너무 일을 잘해주셔서 만일 거절하면 그만 둘까봐 교회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일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잠언2229절에서 말씀합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모르드개의 이런 부지런함과 주도적인 태도는 결국 왕 앞에 서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원수인 하만과의 치열한 싸움을 이겨내고 총리가 되잖아요?

실력을 쌓으며 견디는 자가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는 결말을 보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우연히 왕후가 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 예수님 앞에 나왔던지 지금에 충실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이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