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서6장 (역전이 시작되다)

남수연 2022. 3. 23. 02:18

https://www.youtube.com/watch?v=oMc_dkps_-E 

오늘도 성경 본문을 좀 꼼꼼히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이라는 신앙의 큰 틀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보통 숲 전체를 본다고 하죠.

에스더서 같은 경우는 한 사람 하만의 음모로 이런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비현실적입니다.

한 사람의 악인이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겠다는 이 스케일은 한 사람의 악인에게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릇인 이스라엘을 진멸하려는 사탄의 도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무력화시키시고 구원을 이루어 가시냐를 보는 것이죠.

또 하나 성경을 읽는 방법은 숲의 나무를 보듯이 찬찬히 묵상하며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은 나무를 기르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성경 속 인물들에서 나 자신이 보이고 내가 처한 삶이 보이고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죠.

에스더서를 통해서 그런 은혜를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더가 왕을 위해 준비한 두 번의 잔치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번은 부족하고, 세 번은 과한, 딱 두 번의 잔치.

에스더에게 주신 최고의 지혜인 두 잔치 사이의 ’그날 밤‘에 하나님의 지원 작전이 펼쳐집니다.

그동안 하만의 악한 기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에게 드디어 역전이 시작됩니다.

물론 하만이 내린 왕의 조서는 그 순간에도 제국의 가장 먼 곳 인도까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의 섭리가 판세를 뒤집고 계셨습니다.

성도님들의 믿음과 삶에도 역전이 일어나길 축복드립니다.

오늘은 본문의 등장인물 세 명과 ‘그날 밤에’ 에 일어난 일을 대조해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아하수에로왕은 ‘그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1절,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그 날 밤에 에스더서의 등장인물 중 깊이 잠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참극을 멈춰야 할 에스더는 내일 두 번째 잔치를 앞두고 기도로 밤을 지새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일은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모르드개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 하만도 그 밤 잠을 설치고 있었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왕을 찾아가 모르드개를 교수대에 매달도록 청원할 생각에 선잠을 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왕도 ‘그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원문대로 직역하면 그 날 밤에 왕에게서 ’잠이 달아났다‘입니다.

잠이 달아난 밤을 지새보셨을 것입니다.

잠이 달아나는 이유는 대개 생각이 많을 때입니다.

매일 잔치와 술과 후궁들에 빠져 국정을 대충 돌보던 왕이 그날 밤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하만이 조서를 내리던 당시 왕의 상태를 2장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골치 아픈 한 민족을 모조리 말살하자는 하만의 제안에 왕은 그게 어느 민족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하만에게 반지를 빼주고 모든 걸 맡겼습니다.

어쩌면 그리스원정의 실패로 무기력증에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낮에 왕후 에스더가 찾아온 일, 잔치에 하만과 함께 초대된 일, 에스더가 아직 입을 열지 않은 청원에 대한 궁금증, 내일 잔치에도 또 하만과 함께 오라 한 일.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잠이 다 달아나 버린 것입니다.

특히 왕에게 걸리는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왕후가 특별히 마련한 연회에 또 하만을 같이 초대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왕후의 소청이 하만과 관련 된 것이 분명해지죠,

그리고 또 하나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만을 너무 키웠나 하는 불안감이었습니다.

왕후의 연회에 번번이 왕과 비등하게 초대될 정도라면 하만의 위상이 너무 높아진 것이잖아요?

하나님이 그날 밤 왕에게 잠은 달아나게 하시고, 달아났던 정신은 되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왕이 신하에게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와서 읽으라고 하죠?

이것은 단지 잠을 청하려고 지루한 책을 읽힌 것이 아닙니다.

성경 읽으면 잠이 온다는 분들도 계신 데, 왕이 그런 목적으로 궁중 일기를 가져오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만에게 반지까지 빼 주고 모든 것을 위임했던 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가 몰랐던 정치적 사건들이 혹시 궁중일기에 기록되었는지를 체크해 보려고 했던 것이죠.

그리고 신하가 궁중일기를 읽어 내려가던 중 한 군데서 왕이 낭독을 멈추게 합니다.

2절,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는지라

이것은 2장에서 잠깐 언급했던 내용인데 기억하십니까?

모르드개가 두 명의 내시가 왕을 암살하려 모의하는 걸 적발해 보고한 5년전 사건입니다.

왕을 암살할 역모라면 역모자들이 철저히 음폐했을 텐데 왜 그렇게 쉽게 모르드개에게 발각이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사건 전체를 계획하고 섭리하고 계시다는 증거인 것이죠.

이런 음모에서 왕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로입니다.

특히 왕들은 늘 암살의 두려움에 살았기에 이런 일은 아주 민감한 사안입니다.

고대 왕궁이란 게 진짜 내 편이 누군지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대개 암살은 측근들이 저지르잖아요?

암살을 막았다면 그 사람은 진짜 믿어도 될 내 편인 것입니다.

그리고 2장에 보면 모르드개가 적발한 음모를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에스더가 왕에게 보고합니다.

왕후 에스더 역시 믿을만하단 신임을 받게 된 것이죠.

어떤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그게 운명을 가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연한 것일수록 거기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개입된 경우가 우리 인생에서도 허다하잖아요?

그런데 왕이 모르드개에게 상을 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정도의 공이라면 큰 상을 내리고 높은 관직을 내렸어야 맞는 것이잖아요?

신하들에게 확인하니 역시 모르드개에게 아무 포상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왕은 갑자기 충신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높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적당한 관직을 내리면 될 텐데 본문을 보면 왕의 마음이 갑자기 모르드개에 대한 고마움과 호의로 주체할 수 없이 다급한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도록 감화하시는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보니 중요한 일은 다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대부분의 성도들은 근근이 믿음을 지키며 돈 벌고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겨우겨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앞날의 위험을 미리 대비해 주시고 챙겨주시지 않는다면 숱한 위기들을 어떻게 넘어왔겠습니까?

우리가 대비하고 해결하는 것들은 빙상의 일각입니다.

문제의 수면 밑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지원과 역사하심이 받쳐주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성도의 믿음과 담대함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2. 바로 ‘그날 밤에’ 예고도 없이 하만의 몰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젯밤 모르드개를 매달겠다고 높다란 교수대를 마당에 세운 하만은 왕의 윤허를 확신하며 이른 아침 왕궁을 찾았습니다.

모르드개를 깨끗이 해치우고 가볍게 왕후의 잔치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모르드개의 공로를 보상할 생각에 잠겨있던 왕은 일을 맡길 신하를 찾던 중 하만이 와 있다는 말을 듣고 집무실로 부릅니다.

왕은 하만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6절,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이 말을 듣자마자 하만은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라고 확신합니다.

왕이 존귀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 나 밖에 더 있으랴.

하만이 이렇게 착각하는 바람에 일이 기묘하게 전개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왕이 하만을 떠보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전 왕과 하만의 관계라면 이래야 맞는 것이죠.

‘내가 어제 밤 궁중일기에서 5년전 모르드개가 나를 암살할 음모를 적발했다는 기록을 보았노라. 그때 아무 상도 내리지 않아 이제라도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해 주고 싶은 데 어떤 방법이 좋겠는가?’

이래야 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누군지를 감춘 채 하만이 착각할 만한 말로 하만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떠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만이 덥썩 그 미끼를 문 것입니다.

사람이 덫에 걸릴 땐 대부분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성향 때문이잖아요?

하만은 덫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자기가 꿈꾸던 황홀한 영광을 왕에게 제안합니다.

그 사람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워 수산성을 돌며 퍼레이드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존귀하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왕처럼 대우하겠다고 반포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왕의 면전에서 이런 제안을 눈치 없이 하겠습니까?

왕이 이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이 자가! 결국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지난 주 하만의 계략을 무력화 시킬 에스더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죠?

수년간 뗄 수 없이 유착되어 왔던 왕과 하만의 사이를 벌려 놓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왕이 하만을 지금처럼 신임하는 한 에스더의 청원이 먹히기는커녕 오히려 왕후가 폐위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략적으로 왕과 하만을 계속 함께 초대함으로 왕이 경계심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왕이 하만의 정체를 완전히 알아내고 불신하기엔 아직 역부족입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5년전 부터 해 놓으셨던 일이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만일 모르드개가 5년전 암살 음모를 적발하지 않았다면, 만일 그때 상을 다 받아버렸다면, 만일 그날 밤 왕이 단잠을 자서 궁중일기를 읽지 않았다면.

에스더의 전략은 위태로웠고 다음 날 모르드개는 교수대에 매달려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은 환경과 사람을 통해 서서히 덫을 만들고 어느날 마수를 드러내 궁지에 몰아 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이미 아시고 대항할 무기와 전술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우리는 에스더처럼 기도로 그걸 받아 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이런 인생의 격전지에서 잃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싸움을 통해 인생이 무서운 줄 알게 되고, 일을 감당할 우리의 한계를 알게 되고, 기도로 싸우는 전략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분명히 옛날보다 더 많은 것을 지켜낼 수 있게 된 줄 믿습니다.

왕은 하만의 제안에 대해 엄중히 명령합니다.

10절,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여기서 왕이 하만에 대한 심중을 굳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만을 아낀다면 굳이 하만에게 마부 노릇까지 하라고 하겠습니까?

콧대가 있는 대로 높아진 하만에게 한방 먹이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하만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 당사자가 모르드개인 것도 충격인데, 자기에게 마부 노릇이나 하라는 왕의 처사가 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만은 굴욕감에 일그러진 얼굴로 모르드개에 대한 임무를 행하고는 번뇌하며 급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갑자기 급변한 상황을 아내와 친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들이 불길한 말을 할 때 그의 마지막을 재촉하듯 궁에서 내시들이 들이 닥칩니다.

14절,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봇물 터지듯 하만을 향해 덮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의 패배이지만 악의 마음을 한정 없이 키워 수많은 생명을 학살하려고 한 하만 개인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악은 어느 때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언제냐일 뿐입니다.

 

3. 그날 밤, 사면초가에 빠져있던 모르드개에게는 역전이 시작됩니다.

모르드개의 입장에선 5년 전 큰 공을 세웠지만 아무런 상을 받지 못했던 게 아쉬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큰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렇게 기도하고 매달렸는데, ‘하나님은 내게 너무 무심하시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모르드개는 하만의 집에 높다랗게 세워진 교수대를 멀리서 바라보고 내 운명은 여기서 끝이구나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나의 수고가 잊혀지고, 때로 오해받고, 외면당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알고 계시면 됩니다.

결과를 보면 왕이 포상을 잊어버린 것도 이때를 위한 것이었잖아요?

지난 주에 보스턴에 있는 서원이가 미국 정부에서 발행한 2000불짜리 수표사진을 하나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왔더군요.

2019년에 서원이와 사위가 각자 월급에서 세금을 냈는데 그걸 부부관계로 처리하면 일부 환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40페이지 서류를 챙겨서 제출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영 소식이 없어 환급이 안되나 보다 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주 갑자기 2백만원 넘는 환급금을 수표로 보내왔다는 거예요.

그동안 코로나가 터져 정체된 행정업무를 순서대로 하다 보니 2년 전 일이 이제사 처리가 된 거랍니다.

얘들이 필요한 게 많았는데, 하나님이 찾아 주셨다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2년 전에 받았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돈인데 지금 필요한 때 받아서 그 기쁨이 더 큰 것 같더군요.

오늘 모르드개의 뒤늦은 보상에서 애들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 계산되지 않은 게 있으시다면 다 돌려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뒤늦은 보상에 대한 모르드개의 기쁨은 본문에서 잘 안 나타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왕과 하만의 성격과 심리는 고스란히 읽혀지는 데 모르드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에스더서 기록자는 모르드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2절에서 모르드개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모르드개가 포상을 받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그의 직무처인 대궐 문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신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희로애락의 극단을 잘 오가지 않는 편입니다.

에스더서의 카메라에 잡히는 모르드개는 그냥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다인 모르드개이고, 늘 변함없이 대궐문에 앉아있는 모르드개입니다.

신앙의 경륜이 좀 쌓이다 보니 그런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성도는 의외로 평범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다지 자기의 영특함을 번득이며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 그 사람의 특별한 개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부드러운 공기처럼 잘 어우러져 큰 존재감도 없어 보이죠.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신기하게 하나님이 드러나고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위대하심을 말로써 알리는 것일까요?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이 실제 계신 것처럼 살지 않는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내 행동을 통제하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결정권자라는 게 내 삶에서 보여져야죠.

우리 믿음이 진짜이면 타인의 눈에도 ‘누가 진짜 계신가?’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란하게 봉사하고 신앙에 열심을 내지만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만 더 드러나는 경우는 정작 하나님의 권위에 나를 순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에서 하만의 성격은 장마다 톡톡 튀어 나오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이 오랫동안 하나님께 조준되고 하나님께 겸손히 조율된 삶을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부럽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죠.

내면에서 치열하게 죄와 싸우는 사람만이 결국 이런 합의와 평화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던 그런 성도들이 큰 시련에서 견고함과 투지와 능력을 보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이미 일상이 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부터 오는 것이죠.

모드르개와 에스더가 하만이라는 절대 권력과 악에 이렇게 맞서는 것은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에겐 살 떨려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틀어 보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과 일하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렇기에 이 큰 민족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겸손히 예수님을 따르고 삶에서 성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에 참 감사합니다.

우리가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의 믿음은 더욱 다져지고 견고해져 예수님이 함께 일하실만한 주님의 동역자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우리는 모든 것을 대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그 앞에 닥칠 이 끔찍한 일을 상상도 못할 때 이미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할 모든 비책들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똑같으십니다.

단 문제와 맹렬하게 싸울 때 하나님의 응답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은 효율이 극대화되는 시점에 맞춰 일하십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구원은 늦지 않게 도착했고 즉시 역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면 언제고 이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만은 사탄의 미혹으로 자기 안의 악을 무한정 키웠던 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 안에 하만이라는 죄를 무한정 키우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대궐 문에 앉은 말단 모르드개와 포로소녀 에스더를 통해 유다민족을 구원하신 것은 이것이 영웅신화가 되게 하지 않으시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영웅이 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겸손한 사람과 함께 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고 겸손한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

이 사순절에 겸손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을 본받고, 모르드개처럼 항상, 한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시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