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도들의 예배와 신앙생활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광야시대에는 성막에서 제사하며 하나님을 만났죠.
가나안 정착 후는 성막이 몇 군데를 옮겨 다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 예루살렘 다윗성에 장막을 치고 법궤를 모셔 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오늘 성전을 짓고 봉헌식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민족 전체가 국교로 하나님을 섬겼잖아요?
성소를 단 한 군데 세운다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죠.
교회가 우리나라 어디에 한 군데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인정하신 예배 처소는 항상 단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성전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모든 교회는 다 한 분 예수님 안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대해서 이런 의미를 이해하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앞 5장에서부터 자세히 성전 봉헌식의 과정이 나옵니다.
아마도 성경 시대와 교회시대를 통틀어 이런 웅장한 예배는 없을 것입니다.
성전 봉헌식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솔로몬은 7년에 걸친 성전건축과 13년간의 왕궁 건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11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 솔로몬 시대로 치면 엄청난 규모의 건축을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5장을 보면 공사에 동원된 역군의 수가 18만명이 넘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공짜로 일을 시킬 수는 없잖아요?
백향목과 금과 은과 놋의 자재도 엄청났지만 역군을 부리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본문은 솔로몬의 심중에 있던 이 모든 것들을 형통하게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은 솔로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다윗의 평생 소원이었지만 아들이 지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죠.
하나님이 성전의 설계 도면을 다윗에게 주셨고, 다윗은 거기에 맞춰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칠 년 동안 솔로몬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정성을 다해 성전을 완공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형통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왕 때도 주변국들 사이에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 시대 왕들의 전쟁은 거의 연례 행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짓는 중에는 이스라엘에 전쟁 기록이 없습니다.
20년 간 그 땅에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던 것이죠.
우상숭배에 넘어간 솔로몬 말년엔 주변국들의 침략에 괴로움을 겪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 믿음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 없이 된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전 인생을 볼 때 최고의 황금기는 아무리 봐도 하나님께 대한 열정으로 성전을 짓던 때입니다.
우리가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고 내 믿음을 세워가는 지금이 우리 모두의 인생에 황금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2. 봉헌식은 7일에 걸쳐 행해졌고 이어서 7일간 초막절 성회로 이어졌습니다.
그 규모가 어땠는지 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5절, 솔로몬 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십이만 마리의 양이면 과연 어느 정도가 될까요?
노아의 방주 크기가 축구장 면적 정도 됩니다.
창조과학회에서 설명하길,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동물들을 평균 양의 크기로 계산했을 때 양 12만5천 마리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월드컵 축구장을 가득 채운 양과 소로 제물을 드렸다니 엄청나죠.
이 많은 제물을 모두 번제로 드린 것은 아닙니다.
7절에 보면 번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드렸다고 합니다.
레위기에서 화목제 배우셨죠?
화목제에서 하나님께 태워서 드리는 것이 세 가지, 기름과 콩팥과 간에 덮힌 꺼풀이었죠.
그 나머지 고기는 모인 국민들이 성회 기간 화목제 식사로 나누어 먹은 것입니다.
봉헌식은 솔로몬과 백성들이 준비한 대로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와 봉헌식에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단에 있는 번제물들을 사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와 성전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그 권능에 압도되어 제사장도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죠.
백성들은 하나님의 장엄함에 모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3절,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제사장이 서서 섬기지 못할 정도라면 분위기가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먼저 그들의 입에서 감사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삶의 은혜를 생각만 해도 감사가 나오죠.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사람에 대한 감사하고 다릅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 응집되어 온 몸으로 감사가 차오르죠.
우리가 하나님의 실존과 영광을 뵙는다면 그때는 어떤 감사가 나올지 참 궁금합니다.
예배 때마다 우리에게도 봉헌식 때 성도들의 그런 감사가 터져 나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또 하나님은 선하시도다,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합니다.
그 장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경배했지만 두려워서 떨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하심 중에 직관적으로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셨던 성경의 기록으로만 압니다.
그 선하고 인자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는 것은 천국 생활에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장한 봉헌식을 보는 우리 마음이 마냥 은혜롭지는 않죠.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결말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굉장한 헌신을 한 솔로몬이 나중에 우상숭배에 빠지잖아요?
그로 인해 불과 한 세대 뒤 솔로몬의 아들 때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죠.
크고 화려한 종교의식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아모스서에서 말일에 그리스도를 통해 만국이 예배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운다고 하십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다시 세운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의 장막은 그야말로 천으로 친 장막이었지만 다윗 평생에 거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제사를 드렸죠.
그것이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셨던 이유입니다.
우리 인생에 열정으로 예배하고 뜨겁게 헌신했던 때가 있으십니까?
우리 예배와 헌신이 과거에 세웠던 기념비뿐이라면 솔로몬의 말년처럼 헛되고 헛되다 되뇌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다윗의 장막처럼 순박하고, 또 점점 낡아진다 해도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진심과 사랑으로 예배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솔로몬의 낙성식은 진심이었기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십니다.
앞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오늘 읽은 부분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이 성전에 임재하시고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거기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12절,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그리고 솔로몬은 또 이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짓고 충성을 다짐하는 날치곤 기도 내용이 좀 불길합니다.
6장36절,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 넘기시면
솔로몬은 가장 뜨거운 헌신의 순간, 범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떠올린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가장 낮은 곳을 생각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착각합니다.
가수전인0씨가 40주년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공연 중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나이란 건 아무것도 아니다. 산다는 게 참 좋다. 나는 안 죽을 것 같다.
그런 게 솔직한 인간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안 죽을 것 같고, 이 자리에서 안 내려갈 것 같고.
앞에서 솔로몬이 한 불길한 기도를 보면 마치 예언이나 하듯이 그대로 이스라엘에 일어납니다.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성전을 향해 회개하며 기도할 때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13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을 때 받게 될 재앙이죠.
가나안땅은 대부분이 천수답이라 우로가 없으면 농사 지을 수가 없습니다.
왜 비가 내리지 않는지를 분명히 밝히시죠.
하나님이 하늘을 닫으셨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잘 지었다 해도 메뚜기가 휩쓸고 지나가면 나락 하나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다 피한다 해도 전염병이 퍼지면 죽음의 땅이 됩니다.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경험했잖아요?
이런 불행한 일들이 지금 성전 봉헌식을 하며 결사 신앙을 다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을 거라는 뜻이죠.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살면서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든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악한 길에 있나 돌아보십시오.
어느새 내 마음이 높은 자리에 앉지 않았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늘 구하는지 세상을 구하고 세상을 소비하는 데 치중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잘못을 깨우쳐 주실 때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구하면 언제든 회복시켜 주신다는 이 약속을 평생에 붙드시길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은 이 성전에 특별한 의미를 두십니다.
15절,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이 성전에서 하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천지 어디에든 계신 하나님이 꼭 이 성전에서, 혹은 이 성전을 향하여 하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16절입니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죠.
3장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이곳은 구약의 지명으로 모리아산입니다.
아시는 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곳이죠.
하나님은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암시하신 대로 모든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제물로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왜 내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을 것이며,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겠다고 하시는 지 아시겠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의롭고 착하고 헌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무슨 염치로 하나님께 구하겠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주님의 이름을 두신 우리 주나산교회에서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가 항상 하나님께 올려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5년9월24일 수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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