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 나눌 은혜의 말씀은 히스기야왕의 위기극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자주 시험을 당하고 위기를 느끼는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말씀입니까?
히스기야는 위기를 잘 극복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더 큰 영광과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바라는 바이죠.
오늘 본문 말씀은 히스기야가 잔인한 앗수르제국의 침략에 어떻게 대처하고 승리했는지를 전합니다.
우리는 성경인물들의 전 생애를 볼 수 있기에 삶의 교훈을 찾아내기가 아주 쉽습니다.
그러라고 성경인물들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죠.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했는지는 실제 우리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위기들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에서 교훈을 받고 잘 지킨다면 많은 위기와 시험들을 잘 돌파하고 훨씬 더 행복한 삶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1. 본문은 성도들의 삶에는 항상 도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성경은 믿음의 길이 무사안일하고 만사형통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 속엔 하나님을 잘 믿었더니 평생 편안했다는 사람보다 오히려 고난을 통과했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욥은 물론이거니와 요셉도 다윗도 다니엘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
오늘 히스기야왕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히스기야가 최선을 다해 국가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 결과가 앗수르군대가 쳐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단단히 시험에 들 일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을 내다 어려운 일을 만나 씁쓸하게 퇴장합니다.
믿음의 삶에는 항상 도전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잘못할 때만 어려움을 만나는 게 아니라 잘 믿을 때도 위기는 종종 다가옵니다.
히스기야왕은 정말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했다고 성경은 평가합니다.
히스기야는 부친인 아하스왕이 우상숭배로 도배해 놓은 나라를 하나님 신앙으로 돌려 놓은 큰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아하스왕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도록 아예 성전문을 폐쇄했던 사람입니다.
대신 예루살렘 구석구석에 신당을 세우고 우상숭배에 열을 올렸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 집안에 한 가장이 십자가는 치우고 불상과 마리아상을 들여 놓고 집안 구석구석에 부적을 붙이고 굿을 했다는 격입니다.
나라는 점점 쇠락해 가고 가나안의 최약체가 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한 부친의 배신행위가 국가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아버지 밑에서 그런 아들이 나왔을까요?
그의 모친이 제사장 스가랴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죠?
그래서 왕위에 오른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성전을 수리하고 성전 문을 개방해 예배를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서에 명시한대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구석구석에 세워졌던 우상들을 다 거둬서 없애 버렸습니다.
이 일에 대해 앞 장21절에서 이렇게 칭찬합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 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이런 신앙이라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전쟁이 났다는 것입니다.
쳐들어 왔던 군대들도 떠나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쁘게 헌신할 때 황당한 일이 일어나도 놀랄 게 아닙니다.
성도들에게 항상 있는 도전을 준비하고 담대히 응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제국은 역사적으로 잔인한 정복전쟁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북왕조 이스라엘을 집어 삼키고 남왕국 유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잘했다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혼자만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악의 구조 속에서 사는 우리는 불가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세상구조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GM자동차회사가 철수한 군산 경제를 보십시오.
내가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어도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발목이 잡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회사가 부도나면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합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이 아니래도 그 고통의 결과는 스스로 떠안을 수밖에 없잖아요?
또 성경은 우리의 삶이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 전쟁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휴전도 없고 종전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죄성이 이런 모든 악에 반응하고 끌려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런 이유들이 항상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고 도전합니다.
잘하든 잘 못하든 살면서 어려움을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이 땅에 의인과 악인이 당하는 일이 별 차이 없는 것에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했던 북이스라엘도 앗수르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 돌아온 남유다 역시 거대한 정복전쟁의 역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두 나라의 결말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진작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은 그냥 현실적인 결과대로 앗수르의 잔혹한 칼날에 나라가 공중분해 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남는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방법을 성경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2. 히스기야가 이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은 신앙과 현실적 대응입니다.
히스기야의 현실적 대응은 그의 신앙 못지 않았습니다.
가장 신앙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히스기야는 현재 대항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언제든 우리가 위기 앞에서 할 일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3절부터 5절까지 히스기야가 침략에 어떻게 대비했나가 나옵니다.
삶이 위태로울 때 우리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지혜로 대처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전쟁에 대비해 제일 먼저 물 문제를 해결합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샘이 없습니다.
성 밖에 있는 기혼샘에서 성 안으로 흘러 들어온 물로 생활합니다.
앗수르가 성을 포위하고 그 물길을 막아버리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죠.
히스기야는 우선 성 밖의 샘물들이 침략자들의 식수가 되지 못하게 다 막아버립니다.
그리고 기혼 샘의 입구도 막고 물줄기를 지하수로를 통해 성 안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성 밖 기혼샘에서 성 안 저장고인 실로암못 까지 5백미터 길이에 달하는 지하의 히스기야터널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앗수르가 진군해 오는 말발굽소리 만큼 지하 암반을 파들어 가는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치열하게 들렸던 것이죠.
지금도 이 히스기야 터널의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또 5절에 있는 대로 무너진 성벽을 보수합니다.
망대를 높이 쌓고 성벽 바깥에 성벽을 한겹 더 쌓았다고 합니다.
또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군사력을 정비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다 대비한 것입니다.
한 때 과도한 기도만능주의가 교회 내에 유행했습니다.
병들어도 병원 안가고 기도하고, 직장 구할 생각은 안하고 철야만 하고, 힘든 집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기도원에 다니며 은혜만 받으려는 현실회피형의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현실이 그만큼 절망적이기도 했었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참담한 현실에서 믿음으로 도망가라는 게 아니라 믿음의 뿌리를 현실에 박고 현실을 끌고 가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재정문제가 심각하면 기도만 하지 말고 실제적인 수입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현실적 방안에만 주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히스기야의 생애가 중복 기록된 열왕기서를 보면 처음에 히스기야가 인간적인 방법만 썼다가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 사건 이전에 이미 앗수르의 1차 침략이 있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고 침략을 중지해 달라는 굴욕 외교를 합니다.
궁중 재산과 성전의 금은 기물들을 다 긁어 모아 조공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결국 금과 재물만 받아먹고 오늘 다시 공격이 재개된 것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히스기야가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적 방법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죠.
먼저 하나님을 의뢰하며 그리고 스스로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장차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장년들은 직장에서 생존하고 능력있게 일하기 위해 계속 자신을 계발해 가야 합니다.
주부들은 가정의 재정을 고려해 규모 있는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건강의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을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싸움은 어떻게 결말이 났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히스기야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승리를 이끈 것은 히스기야가 대비한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의 방책으로 앗수르제국을 이긴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결말을 보면 히스기야의 군대는 앗스르 군대와 접전 한번 못해 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열왕기서의 기록을 보면 병사 18만5천명이 가보니 다 죽어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결국 우리가 모든 것을 대비하되 승리로 이끄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써 준비하고 해나가지만 그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해주시는 부분이 훨씬 더 많잖아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감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 힘으로 안되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어떻게 이런 믿음의 담력을 갖고 전쟁에서 승리했는지를 생각하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에 대한 체험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에서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해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분명히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7절에서 공포에 질린 국민들을 위로하는 그의 말에서 믿음이 느껴집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앗수르의 힘은 육신의 팔에서 나오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시는 팔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복해서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자는 것이죠.
성안의 백성들은 항복하면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도자의 오판으로 국민들이 몰살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어떻게 이런 담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이 진짜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다는 것만 알면 뭐합니까?
그 하나님이 현실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아야죠.
이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생존하심을 알았고 자신의 위기에 응답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경에는 히스기야가 직접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모세를 통해 전해주신 율법서와 선지자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닙니다.
예배드리고, 성경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서 이렇게 응답하시고 일하신 하나님이 내게도 똑같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에 신앙을 회복할 때 매일의 예배 뿐 아니라 유월절을 대대적으로 지켰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특히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은 율법의 핵심이 무언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때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집은 심판의 사자가 건너 지나가고 양의 피가 없었던 이집트에는 장자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속죄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온갖 죄로 더럽혀진 자들에게 속죄가 없다면 구원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속죄 받았으니 담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속죄를 바로 깨닫고 믿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담대함이 생긴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을 지킬 때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신다는 담력이 생깁니다.
히스기야는 힘써 율법책에 기록된 것들을 지켰잖아요?
우리 믿음이 늘 연약한 중에 있다면 십중팔구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 부족해서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큰 담력을 줍니다.
성경에 그 많은 말씀들을 다 알지도 못하고, 안다 한들 어떻게 항상 지킬 수 있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말씀 중 하나만 떠올려 보십시오.
그동안 들었거나 읽었거나 몇 가지 계명은 생각나실 것입니다.
그것 한 두 개만 꾸준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다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이 있습니다.
한 두 가지만 진실 되게 지켜도 나머지 계명들이 다 따라서 지켜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고, 하나님의 팔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한 가지라도 지켜야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고 참 믿음이 생깁니다.
요한일서에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너희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때, 비로서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심을 알 수 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다 보면 뜻밖에 수확을 얻게 되는 데, 그것은 ‘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합니다.
앗수르 군대가 진짜 눈앞에서 성을 포위하고 공포에 질릴 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합니까?
20절입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셨더라.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는 기도하고 또 성도들과 함께, 목회자와 함께 기도할 때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은 응답을 보내신다는 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의 삶에는 끝없는 도전이 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도전에 응전해야 합니다.
평소에 이런 위기를 위해 꾸준히 우리 믿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알리나 자기토바라는 피겨선수의 경기를 볼 때 정말 탄성이 나오더군요.
해설자가 ‘저것이 바로 연습의 힘’ 이라고 말하더군요.
믿음도 생활도 연습의 힘입니다.
오늘 히스기야가 예배를 회복하고, 율법대로 지키고,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어떻게 위기를 이겨냈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살면서 이런 저런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어떻게 자녀들 잘 키우고 가정의 행복을 지켜나갈지 그런 것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분명히 그런 일들에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단지 그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있다는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고 위기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위기가 올 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22절, 23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들은 결과적으로 나와 타인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위기를 믿음으로 이길 때 큰 유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처럼 형통할 때는 감사하며 믿음을 훈련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는 그 믿음을 발휘해 돌파함으로 더 좋은 것들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육신의 팔이지만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에라도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굳게 하나님을 믿으시고 승리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18년2월28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
'역대상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하24장15절-25절 (여호야다와 요아스의 무덤) (0) | 2018.02.13 |
---|---|
역대상12장16절-22절 (날마다 도우시는 하나님) (0) | 2018.01.03 |
역대하16장1절-10절 (아사왕의 실책) (0) | 2017.03.21 |
역대하15장1절-9절 (아사왕의 개혁) (0) | 2017.03.15 |
솔로몬 성전 낙성식 (역대하7장11절-18절) (0) | 2016.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