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역대하12장1절-11절 (나도 너를 버리노라)

남수연 2025. 10. 1. 20:13

요즘 주일설교에서 사사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이 다스리는 왕정시대가 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까지 단 세 왕만이 통일왕국을 통치하죠.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뉩니다.

4대 만에 분열왕국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오늘은 르호보암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인물 중 성공한 사람이 많을까요, 실패한 사람이 많을까요?

70%가 실패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 르호보암도 실패한 인물입니다.

 

* 1절에서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졌다고 합니다.

비록 북이스라엘에 10지파를 뺏긴 상황이지만 르호보암은 즉위 후 3년 동안 열심히 왕권을 세웁니다.

나라가 강성해진 이유는 자기 힘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 왕이 된 여로보암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절기마다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러 왕래할 거잖아요?

그렇잖아도 북이스라엘은 쿠데타로 세운 나라죠.

정통 다윗왕조는 남유다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왕래하다 보면 마음이 남유다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 두 군데에 신전을 만들고 금송아지 우상을 세웁니다.

다른 신을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이 금송아지가 여호와라고 하는 것이죠.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먹혔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늘 말씀하시는 하나님보다, 말 못 하는 금송아지도 괜찮았었나 봅니다.

지금도 신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데 무관심하다면, 금송아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후로 금송아지 우상 섬기는 데서 한번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라가 앗수르에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금송아지 우상을 섬깁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하나님에 반발하는 제사장들을 파직하고 사이비 제사장들을 세웁니다.

결국 제사장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남유다로 내려올 수밖에요.

우리나라도 그런 역사가 있죠.

북한이 공산화되며 성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잖아요?

그러면서 남한 쪽 교회가 크게 부흥된 것과 비슷한 것이죠.

1117절에 그때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신앙의 부흥은 곧 삶의 부흥입니다.

성경 역사를 통해서 늘 듣지만 신자들은 그 둘이 같이 간다는 걸 잘 잊어버립니다.

오히려 믿음에 집중하면 세상에서 뒤쳐질 거라 생각하죠.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할 가짜 뉴스입니다.

 

* 문제는 그 다음, 르호보암이 강성해지자 마음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1절하,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나라가 좀 돼 가는 것 같자 르호보암은 헛된 자만심에 빠집니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급하던 일이 해결되고, 삶이 평탄해지면 어느새 믿음이 해이해지죠.

나중엔 이제까지 먹고 산 게 정말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인지,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인지, 우연히 잘 된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르호보암이 그런 것입니다.

내 리더십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나를 따르는 거지.

내가 훌륭해서 한 지파만으로도 남들이 넘보지 못하는 강국을 만들었지.

과연 그렇습니까?

2절을 보면 르호보암이 하나님께 범죄하자 바로 애굽 왕 시삭이 치러 올라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로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지난 몇 년 간 남유다가 강성해졌다지만 상대적으로는 절대 약소국입니다.

진작부터 애굽 왕 시삭은 새 왕조를 일으켜 북진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치러 올라오지 않은 게 이상한 것입니다.

열 지파를 가진 북이스라엘의 군사력과 남유다의 군사력은 비교가 안됩니다.

십대 일이잖아요?

전력에서 완전 열세인 남유다를 치러 얼마든지 밀고 내려올 수 있었죠.

내려오지 않은 게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발을 묶어 두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별일이 없으면 하나님도 쉬시는 것 같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신 결과가 우리의 평안입니다.

이 정도로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연히 되는 게 아닙니다.
르호보암이 애굽의 북진정책에 대비해 그렇게 군사력을 키웠지만 결과는 허사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파죽지세처럼 밀고 올라와 예루살렘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이후 북이스라엘과도 평생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원수가 불같이 일어나면 정말 우리 힘으로는 속수무책인 상태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사는 것이 내가 강성하게 되는 것임을 꼭 기억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마음이 돌아선 것에 대해 하나님은 선지자 스마야를 보내 경고하십니다.

5절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도 르호보암을 버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을 등지고 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읽어보면 이 말씀이 우리를 송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먼저 버린 쪽은 르호보암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먼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배신한 아담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친 것은 제자들이었고 그들을 다시 찾아 나선 것도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놓으시면 다른 것들이 달려듭니다.

역대서를 보면 하나님을 반역한 이스라엘 모든 왕들에 대해 따라다니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평생에 전쟁이 있으니라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이 그래서 끝없는 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는 인생은 삶의 전쟁터에 대적들이 밀려 들어옵니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나님께서 넘기시는 데 어느 지원군이 구원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안되게 하시면 정말 모든 방법을 다 써도 안됩니다.

 

* 그러나 르호보암과 방백들이 선지자의 전언을 듣고 뉘우쳤다는 것입니다.

6,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하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겸비하여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작정하신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뉘우치고 겸비해도 하나님은 거기서 구원할 구실을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잘못하고 혼난 자식이 미안해하는 것 하나면 부모 마음은 눈 녹듯 풀리잖아요?

우리가 항상 뉘우치고 회개하는 게 그만큼 중요합니다.

분명히 매일 잘못하면서 살 거잖아요?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게 죄인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상태인 것입니다.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보다 나와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하는 게 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내 자체가 죄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매일 회개와 뉘우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내어 주셨는데요.

그런 우리이지만 회개하는 마음에 하나님은 항상 용서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잘못을 없던 걸로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취약한 단점에서 오는 죄는 거듭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결과가 비참한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죄는 반복됩니다.

수치를 당하고 눈물을 쏙 빼지 않으면 절대 죄와 싸우지 않죠.

7절에 보면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만 섬기면 하나님도 조금만 도와주십니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들을 분명히 남겨두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조금 뉘우친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애굽왕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마귀를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걸 잘 비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힘든 점은 단지 내 본성이 싫어하고 내 죄와 싸우는 게 싫어서일 것입니다.

그래도 나하고만 해결하면 되잖아요?

나 자신하고만 해결하는 문제가 그래도 제일 쉽습니다.

그걸 감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세상과 해결하고, 세상과 싸우다 져서, 세상을 섬기게 됩니다.

악한 사람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 우리보다 훨씬 쎕니다.

앞뒤로 꽉 막힌 환경에서 먹고 살기 위해 세상에 비굴하게 조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226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면 주님이 계신 천국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과 평강이 그래서 우리 마음에 있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아버지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신다고 하시잖아요?

그러니 항상 겸비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섬김으로 세상에서 굴욕을 당하지 않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생이 어떤지 9절에서 인상 깊게 보여줍니다.

애굽왕 시삭은 결국 예루살렘까지 치고 들어옵니다.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을 모조리 약탈하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뺏어갑니다.

솔로몬왕이 전성시대에 금으로 5백 개의 방패를 만들었죠.

금으로 방패를 만들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전쟁 무기에다 멋을 부릴 정도로 태평성대라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국을 감히 침입할 자들이 없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의식주에서 전쟁 무기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화려하고 부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그 금방패를 다 뺏긴 것이죠.

부친의 영광도 끝났고 더이상 태평성대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놋방패를 만들어 매일 광을 냈지만 패배자의 초라함만 드러내는 것이죠.

열왕기서에는 르호보암이 결국 하나님을 제대로 배신하고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가나안성도의 수가 10년전엔 10%였는데 현재는 27%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10년 뒤엔 40%가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교회에 안 나오는 성도가 과연 구원받을 믿음이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모든 이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금씩 멀어진 르호보암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참혹한 역사는 왜 반복될까요?

말은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늘 르호보암의 믿음의 실패가 결국 그 인생과 삶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을 잘 배우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25년10월1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