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사사 옷니엘의 구원으로 땅이 40년간 평온했습니다.
오늘은 사사 에훗과 삼갈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사들이 다시 등장했다는 건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다 적에게 된서리를 맞았다는 뜻입니다.
사사기의 반복되는 믿음의 탈주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본성상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하나님 믿는 것 아닙니다, 절대로.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갖고 오늘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왔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믿음을 주셨고, 그 믿음을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왼손잡이 사사 에훗과 이름도 낯선 사사 삼갈을 통해서 그 믿음과 은혜를 더해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1. 에훗이 사사가 될 때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해서입니다.
12절을 보면 알 수 있죠.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구원자 옷니엘이 죽자 이스라엘의 버릇이 또 나옵니다.
그렇다면 옷니엘 살아 생전 40년간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나님만 섬겼을까요?
옷니엘 한 사람의 영향력이 전 국민을 그렇게 이끌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중앙정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파별로 자치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근본적으로 바뀐 것도 아니고 철저히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무엇이 내게 더 유리할지 항상 하나님과 세상을 저울질하는 신자들이 보이죠.
옷니엘 때는 하나님께 붙는 게 유리하다 판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원자 옷니엘을 세우셨기에 그 시대에 평온을 주신 것입니다.
왕정시대에도 왕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백성들도 다 순종한 게 되고 그 땅이 평온합니다.
우리가 한 주간 평안하고 여러 가지 환난에서 벗어났던 게 의롭게 살아서겠습니까?
구원자 예수님 밑에서 평온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다 그렇듯이 사사기에서도 이 구원자의 대표 원리를 꾸준히 일관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듯이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믿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이 대표원리가 우리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기반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두가 죄인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가 의인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옷니엘이 죽자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죄가 다시 드러납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자들에게 가장 큰 악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서죠.
이스라엘이 정말 바알이 헛된 우상인 걸 몰랐을까요?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들은 적어도 바알보다 하나님이 신이신 것을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잖아요?
하나님을 믿기 싫으니 우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으니 인격없는 우상을 선택하는 것이죠.
그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회를 싫어하지 않으면서도 믿는 것을 거절하는 이유입니다.
옷니엘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자기를 위해서 바알을 섬기는 악을 행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압왕 에글론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12절하,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이스라엘보다 대적을 더 강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를 강하게 만들어도 대적이 더 강해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모았어도 새어나가는 게 더 많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나보다 더 강하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 놓으시면 애써 쌓았던 커리어가 붕괴되는 것 같잖아요?
13절을 보면 모압왕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 사람들과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칩니다.
우리 삶에 두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 아무도 버티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징계 받는 입장 이기에 이 3개국 연합군에 대패하고 종려나무 성읍을 빼앗깁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를 말합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정복의 첫 번째 승전고를 울렸던 기념비적인 곳이죠.
종려나무가 많은 오아시스 땅 비옥한 여리고를 전부 뺏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을 잃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그 땅에서 산다 해도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수확해도 모압에게 가혹한 조공을 바치니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달 받는 적은 월급, 소박한 보금자리, 내 사람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우리만큼 소중히 여겨주십니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에게 전부인 걸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이런 소중한 일상을 뺏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기분을 상하게 하신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닙니다.
그래야 영혼까지 잃는 파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지만 스스로가 하나님 백성되는 언약을 파기하면 구원에서 제외됩니다.
그렇게 두셨다면 구약성도들은 다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남겨두신 이방 부족들이 이스라엘이 그토록 아끼던 모든 것을 약탈하게 하셨습니다.
빈손이 되고 세상에서 실망해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 사사기의 신앙이 우리 본성 안에도 남아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18년간 모압을 섬기며 굴욕을 당합니다.
3. 그제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다시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에훗을 구원자로 세워주십니다.
15절상,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1) 에훗은 베냐민지파 사람이고 왼손잡이입니다.
베냐민지파에다 왼손잡이 에훗은 누가 봐도 영웅의 이미지는 아닙니다.
베냐민지파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작은 지파입니다.
유다지파와 에브라임지파가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파죠.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이 유다지파이고 신앙의 명문인 갈렙의 가문인 것에 비하면 에훗은 아주 평범한 신분입니다.
게다가 옷니엘은 왼손잡이입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왼손잡이를 좋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인구 대비 왼손잡이는 10%정도라고 합니다.
오른손잡이들이 주류인 문명에서 왼손잡이는 불편한 것도 많습니다.
우리 딸도 왼손잡이라 오른손으로 글씨 연습을 시키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양손을 사용합니다.
중동국가들이나 인도나 아프리카, 아시아 나라들은 이 왼손 사용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왼손은 용변 등의 청결 처리 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중동식사는 손으로 음식을 먹죠.
왼손으로 먹는 것은 당연히 금기일 뿐 아니라 왼손이 접시에 닿은 것만으로도 식욕을 잃게 하는 결례라고 합니다.
그러니 왼손잡이를 아예 께름직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왼손잡이에 대해 편견이 적은 영어권에서도 오른손을 right hand 라고 한 것은 오른쪽 손이 더 바르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베냐민지파에는 왼손잡이가 많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뒤에 보면 베냐민지파와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 간에 내전이 일어납니다.
20장16절에 보면 베냐민지파 중에 물매를 던지면 백프로 명중하는 칠백 명 용사가 있는데 다 왼손잡이라고 합니다.
베냐민지파 중에 왼손잡이 유전인자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옷니엘이 왼손잡이인 걸 이용한 작전이 모압왕을 죽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왼손으로 칼을 뺄 수 있도록 오른쪽 허벅지 안에 몰래 칼을 숨기고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죠.
왼손잡이 무사 에훗은 자기가 왼손잡이인 걸 모압사람들에게 드러냈을까요?
만일 왼손잡이 티를 냈다면 당연히 칼 차는 오른쪽을 수색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오른손잡이인 척 했다는 게 더 맞을 것입니다.
오른손을 왼손처럼 능숙하게 훈련한 것이죠.
이걸 뒷받침할 만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다윗왕이 사울왕을 피해 도망 다닐 때입니다.
그때 사방에서 다윗을 찾아와서 돕게 되는 데, 사울왕의 지파인 베냐민지파에서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합니다.
역대상12장2절, 그들은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베냐민지파에서 온 사람들이 양손잡이였다는 것이죠.
오른손잡이는 왼손 쓰는 훈련은 안 합니다.
양손잡이라면 대개 왼손잡이가 오른손 쓰는 연습을 한 것입니다.
에훗은 오른손을 훈련한 것이죠.
왼손잡이 셰프들이 스시를 만들 때는 오른 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생선 토막을 써는 방향 때문에 꼭 오른 손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왼손잡이가 오른 손으로 칼을 잡고 사시미를 뜰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습니까?
에훗이 왼손잡이라는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모압 병사들은 에훗이 왼손잡이인 걸 몰랐기에 에훗이 칼을 오른쪽 허벅지에 숨긴 것을 놓친 것입니다.
물론 왼손은 단칼에 상대의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만큼 연마한 것이죠.
2) 에훗에게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약점이 더 큰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평창 올림픽 때 한 드러머가 오픈공연 연주를 했습니다.
이분은 드럼 실력이 천부적인데, 젊을 때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원망도 많이 했지만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피나게 드럼연주를 연마해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어느날 부터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후로도 눈을 가리고 드럼을 연주한다는 거예요.
올림픽 공연 때도 천으로 눈을 가리고 감동적인 연주를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왜 눈이 보이는 데 눈을 가리고 연주를 할까요?
지금 장애는 사라졌지만 장애가 곧 불가능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두 팔이 없이 태어난 한 미국 여성이 비행기 운전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두 발을 이용해서 경비행기 운전을 하더군요.
발로 계란후라이를 하고, 빵을 구워서 스스로 식사를 해결합니다.
그 여성에게서 팔이 없어 불가능한 것은 단 한가지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자기 생활 모습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며 강연을 하는 데 불만이 가득했던 사춘기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걸 보았습니다.
에훗의 약점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오히려 강점이 되었습니다.
남들에겐 약점으로 여겨질 그의 왼손이 모압왕을 죽이는 비밀병기가 될 수 있다는 기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이 강점이 되게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부족함과 약점 때문에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 약함이 있고 약점을 아는 것은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럴 때 주님의 능력이 더 강하게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명 설교자들 가운데는 말을 더듬었던 사람도 있고, 학생 때 일어나서 책읽을 때 덜덜 떨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랬기에 더 주님의 능력을 의지했고 약점도 극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설교 때 사자후를 토해내는 한 목사님은 지금도 사석에선 다섯 명만 넘어도 말이 떨린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 약점과 부족한 것이 너무 많죠.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그것까지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으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에훗이 어떻게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고 모압군대를 전멸시켰는지도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본문에선 이 모든 것이 돌발적으로 일어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에훗은 이 전쟁을 위해 수년간 준비하고 함께 싸울 에브라임지파와도 전략을 세웠습니다.
에훗은 이날 거사를 위해 팔뚝 길이의 양날의 검을 제작해 오른쪽 허벅지에 찼습니다.
해마다 공물 사신의 역할을 했던 에훗은 왕이나 왕의 측근들에게는 크게 경계할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에훗은 공물 조공을 마치고 공물을 메고 온 사람들과 함께 돌아가다가 혼자 발길을 돌려 에글론왕에게로 돌아갑니다.
마치 하나님께 받은 비밀을 따로 전해야 하는 것 처럼 속여 왕과 독대하죠.
그 자리에서 단칼에 왕을 찔러 죽이고 안에서 문을 잠그고 탈출합니다.
신하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도망친 에훗은 미리 짠 전략대로 에브라임 지파가 모이도록 나팔을 붑니다.
에글론을 죽였으니 모이라는 것이죠.
에훗의 전술은 모압 장수들이 요단강을 건너 모압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막는 것입니다.
허둥지둥 요단나루로 도망온 모압 장군과 용사들을 기다렸다 죽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날 에훗과 에브라임 사람들 손에 죽은 모압 용사가 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모압의 압제에서 벗어나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을 누리게 됩니다.
옷니엘 때는 40년인데, 왜 에훗의 때는 두 배의 긴 평온을 주셨을까요?
에훗의 전쟁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성들의 순종을 보셨던 것이죠.
함께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 때 우리는 거의 안 믿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삽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형제들과 함께 예배하고 믿음의 교제를 하면 ‘아,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지’ 라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하고 함께 싸우면 더 많이 승리하고 평안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4. 다음 사사는 삼갈입니다.
삼갈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설명만 나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삼갈도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31절,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에훗의 구원이 있은 뒤에 삼갈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합니다.
에훗이 이스라엘의 동쪽에서 구원했다면 삼갈은 블레셋과 맞닿은 서쪽 지역을 구한 것이죠.
삼갈의 출신은 에훗보다 더 미천합니다.
어느 지파인지도 나오지 않죠.
아낫의 아들이라고만 나오는데, 아낫은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면 할아버지가 우상숭배자인 가나안 출신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삼갈을 사사로 세우신 걸 보면 삼갈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이죠.
삼갈은 소를 기르는 사람이었고 민족들 중에 특별히 지도자로 인정받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에훗처럼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마음도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무술을 연마했겠죠.
삼갈은 칼싸움을 못했기에 소모는 막대기를 휘둘러 블레셋 군대 육백명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주지 않으신 것을 내 놓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러신다면 적어도 믿음을 주십니다.
왼손잡이 에훗에게는 믿음을 주셨기에 열정으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죠.
내 배경과 지능과 학력과 조건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대로 살라고 이렇게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큰 일만 좋은 것이고 큰 일에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게 아닙니다.
큰 일을 해야만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선지자의 동역자인 바룩에게 말씀하셨잖아요?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우리가 만족하지 않고 불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목표와 기대치를 너무 높였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게 급성장 시대를 겪은 우리 민족의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전에 우리나라에서 사는 핀란드 청년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비판하더군요.
핀란드 사람들은 성공해서 남들보다 더 잘 살려는 마인드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만족하며 산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지나치게 경쟁하며 남보다 잘 살려는 게 좀 이상했다고 합니다.
급성장 사회를 지나며 우리 국민들은 뭐든지 크고 화려하고 남들보다 앞서가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목표가 크다고 다 그만큼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다면 목표와 기대치를 좀 낮게 잡으면 어떨까요?
어차피 100% 해 내지도 못할 건데, 바라는 것의 70%만 목표 삼아도 되지 않을까요?
10억 모으시고 싶다면 7억 정도 어떨까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루지 못해 매일 실망하는 것보다 좀 낮추고 조금이라도 이루어가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아니면 백프로 목표를 향해 노력하되 결과는 70%정도에 만족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적당히 살지는 않을 거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없는 걸 쥐어짜서 크게 일을 벌이는 데 관심이 없으십니다.
있는 그대로도 얼마든지 좋은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삼갈을 사사로 세우시기 위해 칼을 잘 쓰게 훈련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삼갈은 자기 소를 지키고 양을 지킬 정도로 성실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냥 자기와 이웃의 터전을 위협하는 블레셋 군대를 막아냈을 뿐입니다.
물론 그런 삼갈을 도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죠.
한 사람이 어떻게 육백 명을 막겠습니까?
어차피 사람들의 능력은 다 그만그만 합니다.
탁월한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삼갈에게서 배웁니다.
내게 주신 소박한 삶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고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면 어지간한 원수와 문제들은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수의 공격들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게 지혜와 능력을 주심을 믿고 현재 내 삶과 믿음에 충실한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의 약점 속엔 강점이 함께 있고, 강점 속엔 약점이 함께 있습니다.
강점 안에는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할 때 더 쉽게 무너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강점만으로 살면 교만 때문에 무너지고, 더 강자를 만나면 좌절합니다.
약점만 조심할 게 아니라 강점에는 더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약점 때문에 자꾸 발목이 잡히십니까?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다른 모든 게 더 강해집니다.
에훗처럼 약점이 오히려 승리의 전략이 되는 축복도 주시길 원합니다.
에훗은 왜 자신을 혹독히 훈련하고 발각되면 죽을 게 뻔한 위험한 일을 했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데 조공 바치며 살아야지 어떡하겠나.’
‘몰래 곡식이나 빼돌려 먹고 살 궁리나 하면 되지.’
다 그렇게 살았다면 하나님이 누구를 사사로 부르시겠습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 약점이 많지만 더 경건한 믿음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 순종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점이 있음에도 순종한 에훗의 그 왼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약점과 부족한 것들이 예수님을 믿는 지금의 내가 되게 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또 그런 나를 우리 가정에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 직장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내가 에훗이고 내가 삼갈입니다.
약점으로 항상 주님을 의지하고, 강점은 더 기르고 연마해서, 내 인생과 이웃과 하나님나라를 위해 가장 가치 있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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