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큰 용사 기드온 (사사기6장1절-24절)

남수연 2025. 10. 15. 22:29

https://youtu.be/y1YKn7zjaos

 

지난 주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왕 야빈과 시스라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그 뒤 40년 동안 땅이 평온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이 다시 미디안에게 굴욕과 압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삶이 평탄해지자 이스라엘이 또 하나님을 잊었다는 얘기죠.

이스라엘은 고통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사로 세워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어차피 또 우상숭배하고 타락할 거잖아요?

우리는 사사시대 끝까지 그랬다는 걸 다 압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오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사를 보내시면 팔십 년, 사십 년, 이십 년, 그런 기간 동안은 그래도 이스라엘이 구원받잖아요?

사사시대 삼백오십 년 암흑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계속 심판 속에 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벨론 포로 귀환 때는 페르시아왕 고레스까지 구원자로 사용하시죠.

그러니까 사사기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에게 초점을 맞춘 성경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 배신하고, 죄짓고, 괴롭게 사는 게 뭐 새로울 것도 없잖아요?

사사기는 그런 인간을 구원하실 구원자를 보내신다는 데 포커스를 맞춘 성경입니다.

그 큰 그림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사시대의 구원자인 사사들은 궁극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좀 모자란 사사일지라도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시키고 그 땅에 평온을 주시는 것입니다.

상징이죠.

사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우면 됩니다.

사람의 반복되는 죄에도 끊임없이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

그리고 사사가 된 구약의 한 성도가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게 되는지.

이게 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관점으로 오늘 말씀을 볼 때 큰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시는 때 이스라엘 상황과 배경을 먼저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을 괴롭힌 미디안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유목민족입니다.

이들은 가나안의 강대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에훗의 때는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하셨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약체가 되었는지, 대단치 않은 적에게도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약해지면 사소한 문제도 이기지 못하고 속이 들들 볶입니다.

본문 앞부분에 미디안 부족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 나오죠.

이 유목민들은 농사철에 가축까지 끌고 쳐들어 옵니다.

이스라엘 땅에 아예 장막을 치고 가축들을 풀어 농작물을 초토화 시키는 것이죠.

그들을 피해 이스라엘은 산에 굴과 웅덩이를 팠다고 합니다.

식물을 다 해치운 뒤 남은 것을 싹 쓸어가니 무얼 먹고 살겠습니까?

이름만 축복의 땅이지 정작 아름다운 소산은 다 뺏기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찢어지게 가난해지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도 하나님을 몰라서 안 믿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죠.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이번엔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이전엔 사사를 보내셨지만 이번엔 먼저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죠.

선지자는 왜 이스라엘에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며 가나안의 타락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걸 설명해야 압니까?

이제는 그걸 설명해야 안다는 것이죠.

왜 이런 고난이 닥친지도 모를 만큼 영적 암흑에 빠져있다는 뜻입니다.

내게 뭐가 문제인지를 아는 것만도 아직은 은혜입니다.

이 선지자의 말을 기드온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은 당연히 선지자를 기드온의 마을에 보내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의 회복은 먼저 말씀이 들려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저는 모든 성도님들의 귀가 열려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와 사사로 세우시는 과정에 대해서입니다.

이전 사사들은 그래도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면 어떻든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럴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직접 사사를 만들어 가시는 진기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드온 사사 만들기정도로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기드온에게서 내 모습을 보게 되겠죠.

기드온을 그냥 나라고 생각하십시오.

사람은 다 똑같으니까요.

 

1) 하나님은 기드온을 찾아 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서 교회에 나온 것 같지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오신 것을 아시죠?

하나님이 이렇게 찾아오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방문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기드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제2위격이신 성자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 대신 그냥 여호와라고도 합니다.

구약의 사사시대까지는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이렇게 친히 사람을 방문하고 대화도 나누셨습니다.

이후엔 점점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시대가 됩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성령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연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 이런 엄청난 초자연적인 구원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지 않고 직접 내려오셔서 기드온을 만나시는 것일까요?

천사는 메신저일 뿐이지 사람을 설득해 마음을 바꾸지 못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우리가 어느 목사의 설교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와 구원하십니다.

내가 믿게 된 것은 주님이 분명히 나를 찾아오셨고 지금도 함께 계시다는 증거임을 꼭 믿으시길 바랍니다.

 

2) 특히 하나님은 인생의 역경 중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마침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도주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아를 감싼 단단한 세계관에 틈이 벌어지는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다.

그때가 아니면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보통 타작마당은 바람이 잘 부는 넓은 평지에 있어야 하죠.

타작하는 날, 사람들은 모여 이삭을 털고, 소가 끄는 수레로 껍질을 벗기고, 알곡을 얻어 창고에 쟁입니다.

그런데 땅을 파서 만든 포도주틀 안에서 몰래 곡식 몇 단을 타작하고 있는 것이죠.

타작하는 날의 기쁨과 행복을 잊은 지가 칠 년입니다.

이런 상황이 언제 바뀔지 기약도 없습니다.

행복했던 일상, 활기찼던 일터,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사람, 인생의 행복이 잊혀진 것 같아도 끝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그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문제는 구원받은 지금은 다르냐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마음이 상하고 두렵고 힘들 때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그렇게라도 주님은 오셔서 절망적인 상황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을 거십니다.

12절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매

포도주틀에서 몰래 이삭을 털고 있는 기드온과 큰 용사는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죠.

기드온도 그 말이 너무 과한 인사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원문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큰 용사여이런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당연히 큰 용사가 될 수 있잖아요?

기드온은 미디안의 대군을 멸하는 큰 용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욱하는 성격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베드로를 보자마자 너는 장차 반석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죠.

교회를 박해하던 바리새인 사울에게 예수님은 너는 이방의 구원을 위해 내가 택한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하십니다.

이것도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믿고 미디안 도적 떼보다 더 두려운 죄와 사망과 절망적인 환경을 이겨낸 용사들입니다.

또 우리가 인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에 비해 지금 얼마나 큰 용사가 되었습니까?

세상에서 성도보다 강한 자는 없습니다.

성도인 우리 자신을 시시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이나 우리나 늘 현재의 환경과 부족한 나를 보죠.

예수님과 함께 하면 다 이길 수 있다는 걸 미리 보는 게 믿음입니다.

그게 우리를 매일의 싸움에서 큰 용사처럼 싸우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4) 기드온은 자기를 큰 용사라고 부르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는 낯선 사람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면 지금 내 꼴이 뭐냐는 것이죠.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지금은 왜 우리를 버리셨냐고 따집니다.

기드온이 아주 몰랐겠습니까?

그냥 하나님을 탓하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병들고 궁핍하고 현실이 절망적일 때 누구에게 불평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가 우리 원망과 불평을 들어주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불신의 원망과 신자들의 원망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오는 하소연 같은 것이죠.

하나님의 선하심을 오래 경험한 성도들도 진짜 어려우면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원망했다, 죄송했다, 그러다 보면 그래도 하나님 계신 게 너무 감사하고 또 힘을 내게 되는 것이죠.

기드온에 항변에 하나님은 굳이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왜냐고 원망하는 우리 마음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너의 힘으로 상황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기드온이 듣기엔 더 당치않은 말씀이죠.

무슨 힘이 있어 칠 년간 그 밑에서 꼼짝 못한 미디안과 싸우겠습니까?

그것도 이 너의 힘으로구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쓰시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믿음, 지금 내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드온의 미약한 그 힘으로 미디안의 대군을 이기는 것입니다.

과거 혹독한 고난과 맞서 싸운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누가 날 도와줬습니까?

우리에게 뭐가 더 있었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신 그 힘으로 싸워 이겨낸 것입니다.

한 젊은 약사의 이야기를 좀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분 아버지가 25년 넘게 알콜중독과 조현병을 앓고 있습니다.

집과 병원을 수도 없이 오가다 지금은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참다 못해 이 약사가 8살 때 집을 나갑니다.

조현병 아버지 밑에서 어린 아들이 얼마나 고달프고 무서웠겠습니까?

얻어 맞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도 어눌해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 취급을 당합니다.

아버지의 증세는 자기 신체 부위를 칼로 자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번은 두 눈을 본드로 붙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인생은 오늘 학대받는 이스라엘의 절망보다 덜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학생 때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여전히 자신의 미래는 암울했지만 살아야 하잖아요?

하나님께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서울대 약대를 들어가고 약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너무 순하고 마음이 착해서 그런 불행을 이겨낸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곁에서 힘이 되주지 않으셨다면 도적떼가 들이닥친 인생을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잘 이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사정은 모르실거야, 내 인생에 무슨 소망이 있겠어?

이렇게 주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찾아와 구원하신 하나님은 과거의 환난을 이기게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강한 팔이 되어 주십니다.

나 스스로 강해지려 하기에 더 인생이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는 게 더 큰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3. 기드온은 점점 대화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인식해 가기 시작합니다.

1) 물론 하나님을 아는 것과 신뢰하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도 이런 설교를 듣는다고 그대로 믿음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잖아요?

현실적으로 미디안의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기드온이 속한 므낫세지파도 이스라엘 중에 작은 지파입니다.

자기 가문도 미약하고 자기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내가 나선들 누가 돕겠냐는 것이죠.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께서 말씀합니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은 처음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을 때 아마도 선지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으니 네가 승리할 것이다.

이런 말을 선지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 만나던 때를 아실 것입니다.

맨 처음 세례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따라갔던 제자는 요한과 안드레입니다.

안드레가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고 난 뒤 형제인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죠.

예수님을 처음 볼 때는 평범한 사람으로 봅니다.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마음을 열고 들으면 예수님이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 유일하게 진리와 진실을 말씀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들으니 주님을 모르는 것이죠.

사마리아성 우물에 물 길러 나왔던 여인도 그랬죠.

주님과 이야기를 나눈 여인이 충격을 받고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말하죠.

이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으러 나왔을 때는 그닥 내 인생의 중요한 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과 믿음 생활 속에서 점점 주님을 알아가며 우리도 정확한 고백이 생긴 것이죠.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그 고백을 듣고야 마실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사자에게서 특별함을 눈치챈 기드온은 그것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뒤에서 계속 보겠지만 기드온은 상당히 치밀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럴만한 존재인지 예물로 테스트해 보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합니다.

18,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기드온에게 나타나신 주님이 우물가에서 여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주님과 똑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모습은 어떻든지 주님의 인격과 성품은 영원히 변하지 않잖아요?

기드온은 가서 예물을 준비합니다.

19절에 보면 준비한 예물이 나오죠.

염소 새끼 하나를 삶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듭니다.

한 에바는 23킬로 정도 됩니다.

20킬로 쌀 포대를 생각하면 되겠죠.

그 많은 가루로 떡을 만들었다니 양이 엄청났을 것입니다.

염소 새끼 한 마리와 그 많은 무교병을 보면 단순히 접대를 위한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죠.

기드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 궁핍했던 살림을 생각하면 기드온이 최선을 다한 예물을 준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이 준비한 예물을 받아 불사르고 사라지십니다.

 

3) 하나님의 정체가 드러나자 기드온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이제 죽은 목숨이다 싶어 외치죠.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기드온 스스로도 하나님 앞에서 죽을 죄인임을 직감했기에 두려워한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괜히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티끌만큼도 죄가 없다면 하나님을 보아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 하기 전 아담과 하와가 그랬잖아요?

기드온은 그 두려움 속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때 다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안심하라는 단어가 샬롬, 평강이라는 뜻이죠.

하나님의 심판에서 죽지 않는 것, 심판의 두려움이 없는 게 샬롬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이 샬롬을 주신 것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주노라

어떻게 하나님을 본 기드온이 죽지 않았습니까?

기드온이 본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시대에서도 이미 죽을 죄인들의 중재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도 창세 전부터 준비되었다는 뜻입니다.

구약성도들도 다 예수님의 대속 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두려움이 없는 것이 진정한 평강입니다.

기드온은 그 평강을 얻고 그 자리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단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평강을 주신 여호와의 사자, 성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단인 것이죠.

죄로부터 하나님의 평안을 받은 사람은 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의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그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예배의 자리를 떠납니다.

우리 모두 평강의 주님을 만나 영원히 예배의 단을 쌓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구원을 위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기드온을 용사로 만드시듯이 우리를 용사로 만드신 이야기입니다.

현실의 고난 가운데서 기드온이 가졌던 질문, ‘하나님은 왜, 하나님은 어디에이 질문은 우리들이 자주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믿지만 보이는 세상 속에 삽니다.

이 두 세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시련들에 하나님은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십니다.

내가 함께 할테니 너의 그 힘으로 승리하라고 하십니다.

현실의 벽은 우리 힘으로는 넘을 수 없이 높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벌써 그 해답을 알고 시편18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주님을 의지해 높은 담을 뛰어 넘고 항상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