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사기에서 세 명의 사사를 거쳐왔죠.
옷니엘, 에훗, 삼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은 왼손잡이 사사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암몬족속에게서 구원하셨습니다.
80년간 땅이 평온했습니다.
에훗이 죽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와 악에 빠집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 시대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주 수요기도회에서 나누었던 왕정시대 르호보암도 마찬가지였죠.
하나님은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에 대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나를 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버려 애굽왕 시삭에게 팔았다고 하죠.
하나님이 진짜 버리셨을까요?
네가 나를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린다.
이런 말은 지독히 사랑했던 관계에서나 하는 말입니다.
그것도 아직 미련이 있을 때 하는 말이죠.
진짜 싫어하고 무관심하면 이런 말 안 합니다.
사사시대 350년간 반복되는 배신과 징계와 회개와 구원은 하나님이 그런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끝까지 데려가서 완전한 구원자인 예수님께로 데려다 놓으시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에게도 사사기 성도들의 죄의 본성이 남아 있기에 이 반복되는 사이클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사사시대 350년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이룬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살만하면 죄짓다 무너뜨리고, 또 살려주시면 죄짓다 무너뜨리고.
사사시대의 끝에서 그 완전한 파국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없고 편할 때도 예수님을 꾸준히 따라가지 않으면 그 사이클에 끌려들어 간다는 걸 사사기에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힘을 얻고 철병거로 우리를 학대하려는 세상을 이길 힘도 받게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1. 드보라사사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에훗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하고 20년 간 가나안왕 야빈의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1절,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이 눈에 띄죠.
아무도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마음 속을 아십니다.
그리고 신자들도 그것을 어느 정도 알면서 주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한다는 것이죠.
육아 예능 보면 아이들이 엄마 눈치를 슬슬 보며 사고를 치잖아요?
슬금슬금 하나님께 멀어지던 이스라엘은 에훗이 죽자 봇물 터진 듯 쏜살같이 우상숭배와 타락에 빠집니다.
신앙으로 지도받지 못하면 악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주일예배와 수요기도회, 매일성경 묵상, 그리고 매일의 기도는 우리 안팎의 악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화염검과 같습니다.
창세기3장에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신 두루 도는 불꽃 검 같은 것이죠.
성경은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다는 것과 율법을 버렸다는 것을 똑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말씀이 금하시는 죄와 악에 조금이라도 저항합니다.
오늘 다시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에는 사람 이름과 낯선 지명들이 많이 나와서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난해한 성경은 아닙니다.
등장인물은 가나안왕 야빈, 군대장관 시스라, 여선지자 사사 드보라, 사사 바락, 겐족속 헤벨의 아내 야엘입니다.
이 이름만 기억하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왕 야빈의 손에 파셨다고 합니다.
야빈은 이스라엘 북쪽에서 가나안 여러 부족이 연합된 나라를 다스리던 왕입니다.
야빈에게는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었다고 하죠.
현재 우리나라 전차가 2800대 정도라고 합니다.
당시로서 야빈은 엄청난 군사력을 가진 것이죠.
이때가 사사시대의 중반에 접어든 때입니다.
주전 1200년쯤 될 것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이때 가나안은 철기문명 때입니다.
최초의 철기문명을 만든 민족이 힛타이트족이라고 학창시절 세계사에서 배웠던 기억이 혹시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힛타이트족이 바로 성경의 헷족속입니다.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했던 가나안 일곱 부족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세계사가 증명하듯, 당시 가나안 부족들은 철병거를 만들 정도로 철기 문명이 발전했던 것이죠.
반면 이스라엘은 수십 년씩 가나안 나라들에 억눌려 철기 문명에 진입하지 못한 것입니다.
강대국들은 이스라엘이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철공들을 남겨두질 않았 죠.
야빈왕은 군대장관 시스라를 앞세워 이십 년간 이스라엘을 학대합니다.
학대한다는 단어는 비틀어 짠다는 뜻입니다.
환난이 우리를 쥐어짜면 잘 나갈 땐 입 밖에 내지 않던 주여, 아버지, 이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가 그런 것입니다.
서로 악을 행하고 강자는 짓밟고, 약자는 억눌려 사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이런 악을 아십니다.
그걸 고치기 위해서 옆구리에 가시를 두신 것입니다.
가나안왕 야빈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악이 차오르는 동안 야빈은 철병거 9백 대를 만들며 점점 강해진 것이죠.
우리의 옆구리를 찌를 것들은 주변에 널렸습니다.
내 안에 있는 악과 외부의 악이 강해지지 않도록 항상 말씀의 통제를 받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은 드보라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4절,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절,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1) 드보라는 여선지자이며 사사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통로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드보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죠.
사사로서의 드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판합니다.
히브리어 ‘사사’에는 재판관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판의 기준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입니다.
드보라는 사람들의 문제를 율법으로 판결하고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어두운 사사시대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알고 가르치려 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드보라인 것이죠.
신약시대 이후 성도들은 드보라보다 더 나은 선지자고 사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드보라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해도 우리만큼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이 두꺼운 하나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잘 모른다 해도 드보라보다 더 확실히 복음을 압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받을 수 있습니다.
드보라 같이 누군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삶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분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이 왜 여자를 사사로 세우셨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실 때 당연히 차별을 두지 않으십니다.
다만 여자와 남자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적절히 일하게 하실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는 당연히 전쟁에 나서야 합니다.
드보라가 선지자이고 사사라 해도 나가서 전쟁하기엔 부적합합니다.
아무래도 힘이 있고 무술이 훈련된 남성이 전쟁을 이끄는 게 좋죠.
이런 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여선지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셨을까요?
그것은 옷니엘, 에훗, 삼갈, 역대 사사들 이후 이스라엘에 그만한 믿음과 열정을 가진 남성들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사시대가 진행되며 점점 더 심각하게 이스라엘의 믿음이 붕괴되고 있다는 뜻이죠.
바락은 어떤 사람입니까?
만 명을 이끌만한 장군이지만 뒤에서 보여주듯이 믿음이 부족합니다.
이제는 사사 둘을 합쳐야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대가 악할수록 성도들은 힘을 합쳐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바락에게 믿음도 주시고 능력을 주시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 일도 체계적으로 장시간 훈련해야 어느 수준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방글라데시가 세계에서 빈곤율이 1위잖아요?
그런데 의류산업이 세계2위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건지 이상하죠?
그것은 우리나라 의류업계가 50년간 방글라데시와 동반 성장을 목표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처음에 방글라데시 청년 130명을 초청해 의류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단순 재봉 기술뿐 아니라 생산관리, 품질검사 같은 공장 운영의 핵심 노하우 전체를 전수합니다.
그 뒤 방글라데시 현지 공장에서 OEM방식으로 노스페이스 같은 글로벌 블랜드의 제품을 생산합니다.
그렇게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모든 기반을 철저히 닦았기에 방글라데시가 지금 세계 2위 의류산업국이 된 것입니다.
그 기간이 오십 년이 걸린 것이죠.
가치가 있고 훌륭한 것은 다 그런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믿음은 가장 좋은 질료인 말씀과 그에 대한 순종이 쌓여 갖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은혜 한번 받았다고 갑자기 좋은 믿음이 되지 않아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시며 어디서든 볼 수 있게 하고 가르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에 이르러는 법 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바락은 만 명을 거느릴 수 있는 군사 훈련은 되었지만 믿음은 드보라를 의지할 만큼 약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드보라의 믿음과 바락의 군사 능력을 함께 사용하신 것이죠.
하나님은 약점으로 승리하게도 하시지만, 약한 자들의 강점을 모아서 승리하게도 하십니다.
우리가 약점이 많지만 강점들을 모아서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의 나라를 이뤄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사사 바락이 누구인지, 어떻게 야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를 살펴봅니다.
6절상,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1) 바락은 납달리지파의 용사입니다.
2절에 가나안왕 야빈이 하솔에서 통치했다고 하죠.
바락의 고향 게데스와 야빈의 도성 하솔은 아주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북쪽에 있는 바락의 지파가 야빈에게 받는 괴로움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합니다.
6절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절,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드디어 짐승처럼 학대받던 야빈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죠.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너를 구원자로 택하셨다는 말씀에 바락의 반응은 미온적입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만 명이라 해도 철병거 9백 대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 좀 해본 사람은 금방 답이 나오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설령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 해도 믿음은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랬잖아요?
하나님이 가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라고 하셨을 때 핑계를 대며 선뜻 응하지 않았잖아요?
바락에게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더 믿어지는 것이죠.
바락이 믿음 없다고 누가 흠을 잡겠습니까?
보이는 것이 너무 확실한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겠습니까?
우리 같아도 아마 현실을 더 신뢰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바락은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대체할 방안을 찾습니다.
선지자 드보라가 함께 전쟁에 나가달라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부족할 때는 약속을 굳게 잡은 사람이라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라도 믿으려고 애쓰는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바락과 함께 하시잖아요?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 바락의 이름을 올려 주십니다.
드보라는 선뜻 바락의 요청대로 함께 이 전쟁에 동행합니다.
이렇게 연합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교회와 우리 가정에서 일어나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은 작전을 지시하십니다.
먼저 바락과 만 명의 무리들을 다볼 산으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다볼산은 갈릴리 호수 북단에 위치하는 산입니다.
신학자들은 이 다볼산이 예수님의 용모가 빛처럼 변화하셨던 변화산으로 추정합니다.
바락이 다볼산에 만 명의 민병대를 모으면, 하나님은 시스라의 군대를 기손강으로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쪽 병력은 원하는 대로 다볼산에 모을 수 있겠지만 적국을 내 작전대로 모을 수는 없죠.
하나님이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시스라가 철 병거 구백 대를 이끌고 기손강으로 모이죠.
하나님의 계획을 누가 가로막겠습니까?
그렇게 다볼산 위에 있는 이스라엘과 기손 강가 평원에 시스라의 군대가 대치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변변한 무기도 없는 민병대 바락 군대와 철병거 군단이 어떻게 싸웠을까요?
철병거가 진을 친 이 기손강은 우기를 제외하면 강이 완전히 마릅니다.
중동지역엔 와디라고 부르는 이런 강이 많이 있습니다.
건기엔 강 주위 넓은 평원에서 철병거로 싸우기에 최적입니다.
시스라는 아마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이스라엘이 산에다 진을 쳤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손 강가에서 기다리다 아래로 내려오는 무리들을 철병거로 밀어 버리면 되죠.
이스라엘은 스스로 독안에 든 쥐가 되는 전술을 쓴 것입니다.
시스라의 대군이 집결한 것을 보고 드보라가 말합니다.
14절,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드보라가 이 말을 할 때도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그 능력이 무리들의 용기를 백배나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마다 그런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시스라의 전략대로 되는 것 같죠.
그때 하나님이 시스라의 병거와 군대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5장에 있는 드보라의 찬양을 보면 기손 강이 그 무리를 표류시켰다고 합니다.
상류에서 갑자기 내린 폭우로 순식간에 강물이 쏟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강물은 범람하고 평원은 순식간에 진창으로 바뀐 것입니다.
진창은 철병거에 최악입니다.
시스라의 자랑이었던 구백 대 철병거가 진흙탕에서 우왕좌왕합니다.
당황한 보병들은 이스라엘이 가까이 밀려오자 서로를 적으로 알고 싸워서 자멸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군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렸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창에 빠진 철병거를 두고 시스라는 걸어서 도망합니다.
이렇게 바락은 전쟁에서 이기고 가나안왕 야빈을 진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이용해 심판하시는 내용은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죠.
상대와의 능력 차가 별로 없었다면 당연히 맞붙어 싸워 이기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총부대와 장갑차 부대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인 이 경우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개입하셔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능력으로 대처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가 우리를 건져주시니까요.
우리의 지난날, 내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철병거들과 싸워 이겨낸 것이 그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시스라를 죽이고 승리를 확정하는 영광은 야엘이라는 여인에게 뺏깁니다.
바락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락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이 어느 정도 문제 삼으신 것입니다.
앞으로 40년간 백성들을 다스릴 바락이 사사로서 더 강한 믿음 갖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시스라를 죽이는 공로는 야엘이라는 한 여인에게로 돌리십니다.
바락에게 없었던 믿음이 야엘에게 있었다는 뜻입니다.
야엘은 겐족속 헤벨의 아내로서 이방여인입니다.
겐족속은 미디안에 거주하던 모세의 장인의 민족입니다.
모세를 따라 가나안땅에 들어와 가나안 정착 뒤에 유다지파에 귀속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갑 가문이 바로 겐 족속에 속합니다.
조상 레갑의 명령대로 포도주를 먹지 않고, 장막에서 살았던 레갑 자손들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셨잖아요?
겐 사람들이 꽤 지조 있는 부족인 것이죠.
그런데 11절에 헤벨이 유다지파와 살고 있는 자기 족속을 떠나 납달리 땅으로 와서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시스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죠.
지조 있는 부족의 큰 배신이죠.
헤벨이 어떤 면으로든 꽤 유력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스라와 사업 관계일 수 있겠죠.
진창에 빠진 병거를 버리고 걸어서 퇴각하던 시스라는 동맹인 헤벨의 장막을 지나게 됩니다.
그때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밖으로 나와 시스라에게 들어오라고 합니다.
원문으로 보면 야엘이 아주 적극적으로 시스라를 들어오라고 합니다.
평소 헤벨과 돈독한 관계였기에 의심 없이 장막으로 들어간 시스라는 우유까지 얻어 먹고 잠이 듭니다.
잠 안 올 때 우유를 마시라는 처방도 있죠.
작정하고 재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친절을 베풀던 야엘이 살금살금 다가와 잠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천막용 쇠말뚝을 박아 시스라는 기절한 채로 죽게 됩니다.
시스라를 죽인 방식은 잔혹하지만 단번에 생명을 끊을 방법은 이것 밖에 없잖아요?
칼이 있다 해도 시스라 같은 용사를 단번에 죽인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야엘은 기지를 발휘해 말뚝을 이용해 단 한 방에 시스라를 죽인 것이죠.
여인이 왜 시스라를 죽였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야엘이 죽일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엘에게 시스라의 생명을 맡기신 것이죠.
남편 헤벨은 유다지파를 떠나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시스라편에 섰지만 야엘은 아니었습니다.
야엘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볼 줄 아는 믿음의 안목을 가진 사람인 것이죠.
야엘은 하나님이 시스라의 악을 가만두지 않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마치 기생라합이 하나님을 선택했듯이, 야엘도 이날 하나님의 편에 설 기회가 오자 용감하게 실행했던 것입니다.
5장에서 드보라는 이 야엘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24절,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사시대에서 우리가 발견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소유하지 않으실 때 다른 악한 세력이 나를 소유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났던 이스라엘은 당할 만큼 당하고 나서야 그걸 깨닫는 것이죠.
우리에게 보내주신 유일하고 완전한 구원자, 사사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우리가 만족하고 우리 땅이 평온함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세 사람이 함께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들처럼, 그리고 지금 우리처럼 협력해서 하는 것입니다.
약점이 많은 우리들은 혼자는 내 믿음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서로의 강점으로 약한 성도들을 받쳐주며 함께 건강하게 지어져가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의 승리는 예수님이 주심을 알고 모든 영광과 공로를 주님께 돌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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