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6장25절-40절 (기드온의 양털 시험)

남수연 2025. 10. 20. 21:03

https://youtu.be/3Hjl3IVAr_M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주 갤럽에서 발표한 정신 건강에 대한 통계를 보았는데요.

전날 하루 종일 걱정, 근심,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고 대답한 사람이 열 명 중 네 명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떻게든 대응하게 됩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일 더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 근심은 큰 도움이 안됩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에게도 일어날 일이 결국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해 지난 주 기드온 사사 만들기에 돌입하신 것이죠.

죄로 인해 벌받은 인간에게 삶의 환경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시시때때로 얼굴을 돌변해 싸우려고 덤벼들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믿음을 사자처럼 강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강하게 하고, 삶은 약간 힘을 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약한 데 힘만 쎄게 주고 살면 삶이 더 빡빡해지죠.

기드온은 옷니엘처럼 처음부터 완성형 사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 공감이 되고 공부가 되는 사사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서 기드온은 세 단계를 거쳐 사사로서 미디안과의 싸움을 준비합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 잘 적용되게 하시고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1. 기드온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우상의 제단을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1)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먼저 바알의 우상 제단을 헐라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당시 사람들의 신앙 상태에 말문이 막히죠.

5절 하반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기드온 아버지 집에 바알의 제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우상에 관련된 일을 했던 것이 생각나죠.

그때는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랬다 쳐도, 지금은 출애굽의 기적이 있은 지 불과 삼백 년 밖에 지나지 않았잖아요?

기드온이 바알 신당을 허물자 성읍 사람이 몰려와서 기드온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상을 파괴한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죠.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는 것만도 버겁습니다.

그런데 우상숭배하는 가문과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우상 숭배 때문에 생긴 것이니 우상을 없애는 건 당연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상에게로부터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속, 불교, 유교, 미신의 토양 속에서 자랐습니다.

신자들은 이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을까요?

이번에 목회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신자들이 점을 봐도 될까요, 안될까요?

설문조사에 의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50%가 점을 보는 것,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속인을 찾는 횟수가 일 년에 평균 2.7회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일반인들과 별 차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20대 청년 신자들의 경우 일 년에 4.3회 점을 보는 등의 무속 행위를 한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평균이기에 더 많이 보는 사람도 있고 아주 안 보는 사람도 있겠죠.

청년세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점집을 찾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점술가들이 그렇잖아요?

자기가 모든 걸 다 알고, 길흉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게 하죠.

우상숭배는 성공과 안위를 걱정하는 인간의 본성상 그만큼 끊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점보는 것 좋아하는 사람치고 절대 잘되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가 점을 보거나 액운을 쫒는다는 물건을 집에 두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안 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종교 행위에 속하지 않은 우상들이 더 많습니다.

성경은 나를 위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중시하는 것을 다 우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자기가 더 중요시하는 걸 선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과연 내게 우상이 없을지 두려운 일이죠.

아무리 아끼는 것도 항상 주님 아래에 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게 있으면 그렇게 살라고 두십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우상을 붙잡고 살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상을 파괴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25절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는 것은 이해가 되죠.

그런데 아버지 집의 수소 중에 꼭 짚어서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죠?

하나님이 집에 있는 동물이 몇 년 되었는지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둘째 수소라는 말이 본문에 세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수소를 제물로 바치게 하신 이유가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죠.

아버지의 농사짓는 소를 끌어다 제물로 바치라시는 건 아닐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기드온의 집이 성읍 전체가 제사하는 바알 신당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 같죠.

그렇다면 이 수소는 바알 제단에 제사할 제물일지도 모릅니다.

헛된 목석 우상은 찍어 버리고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고 제물은 마땅히 받으실 분에게 드리는 것이 구원의 시작인 것입니다.

강원도 정선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근처에 비닐하우스에서 개척교회를 하던 정목사가 있었습니다.

정목사는 강원랜드에서 재산을 탕진한 도박중독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도하던 중 청룡사에 교회를 세우라시는 감동이 옵니다.

절을 찾아가서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라는 전략까지 주시는 거예요.

잘못 들었겠지, 이게 말이 되나 넘겨버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청룡사 생각이 나고 4개월이 지나자 더 버틸 수가 없어 주지승을 찾아갑니다.

그렇지만 교회로 쓰게 절을 팔라는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지승 인생 스토리만 잔뜩 듣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두려움에 압도되었습니다.

순종하지 못했을 때 드는 그 두려움을 아실 것입니다.

다음날 다시 가서 주지승을 만납니다.

그리고 눈 질끈 감고 이 말을 해 버립니다.

이 절을 주가 쓰시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스님이라 하지만 이럴 땐 정신나간 자라고 욕을 퍼붓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지승이 가만히 있더니 데리고 나가 절을 다 구경시켜 주는 거예요.

절을 팔 마음이 있다는 것이죠.

절을 교회로 내주시는 게 괜찮겠습니까물었더니 주지승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했다면서요

이렇게 해서 절을 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정목사에게 매입금 3억은 커녕 계약금도 없었습니다.

1년 반이 지나도록 길이 열리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 달 전, 정목사가 한 기독교 유튜브채널에 초대되어서 절에 교회를 짓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후 헌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데 불과 십 일도 안 돼서 절을 매입할 돈이 다 채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터에 교회가 들어서게 된 것이죠.

절의 외관을 최대한 살려서 예배당으로 쓰겠다고 하더군요.

청룡사가 있는 민둥산은 꽤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입니다.

그동안 불경소리가 흘러나오던 스피커에서 찬양이 나오는 걸 등산객들이 신기해 한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절을 교회로 바꿔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상의 제단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제단을 세우길 원하신다는 상징입니다.

우리는 우상숭배자들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버리지 못하시겠다는 걸 보여주시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알을 이토록 열심히 섬기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구원하시잖아요?

정목사도 하나님의 그 마음이 느껴져 쉽지 않은 일에 헌신했다고 합니다.

오늘 기드온이 바알 신당을 부수고 하나님의 제단을 쌓은 것과 너무 흡사하죠.

우리에게 아직 은밀히 섬기는 우상은 없을까요?

그게 우상이 되면 하나님은 결국 다 부수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하찮게 여겨서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끼는 것도 하나님 아래 두는 게 더 안전하다는 걸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기드온은 우상을 파괴하라는 말씀을 듣고 망설이다 하루를 보냅니다.

성읍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하잖아요?

그래서 밤에 열 명의 종을 데리고 말씀대로 실행합니다.

열 명의 종을 데리고 있었던 걸 보면 집안이 꽤 유력했다는 걸 알 수 있죠.

다음날 예상대로 성이 발칵 뒤집힙니다.

아침 일찍이 마을 사람들이 바알신당이 훼손될 걸 발견했다고 하죠.

사람들이 매일 아침 일찍 바알에게 와서 빌었나 봅니다.

신당과 우상을 파괴한 범인이 기드온이라는 게 곧 밝혀지죠.

기드온은 마을 사람들에게 죽을 궁지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순종한다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거든요.

바알 신당을 섬기던 기드온의 아버지가 기드온 편에 섭니다.

아들이라서만이 아닙니다.

원래 가나안 우상숭배는 아들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 편에서 서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감동은 마술에 걸린 듯 사람 마음이 바뀌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성과 판단이 바르게 움직이게 감화하시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정신이 얼마나 현명해 지는지를 보십시오.

31절부터 아버지가 사사처럼 변론합니다.

바알이 만일 신이라면 자기를 모욕한 자를 스스로 벌해야 마땅하지 않니?

왜 너희가 나서서 바울을 변론하니?

그렇다면 바알을 어떻게 신이라고 하겠니?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이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죠.

이 사건으로 기드온에게 별명이 생깁니다.

바알과 다투었다, 여룹바알입니다.

이제 기드온이 하나님 편에 선 것은 만천하에 공표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편에 선 것을 주변 사람들이 다 인정하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2. 마땅히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영적 전투가 시작됩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더 이상 뺏기지 않고, 대적을 이기며 살게 되는 것이죠.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연합해 이스라엘을 치러 옵니다.

이전에 도적떼처럼 이스라엘을 약탈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입니다.

세 나라가 모여 이스라엘을 치고 아예 노예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것들이 나를 종으로 삼겠다고 달려듭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이들에게서 구원하시려 기드온을 준비시키신 것이죠.

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죄와 세상과 악에 대항하는 영적 전투는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이제 성령께서 기드온에게 이 전쟁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던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시편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하나님께 싸움의 기술을 배워야 다윗처럼 승리합니다.

세상 원리대로 싸워야 유리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승리의 비법은 성경 말씀과 성령님의 지혜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아름다운 승리의 간증은 넘쳐 나잖아요?

 

대적들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공격 준비를 합니다.

여기서 골짜기는 좁은 협곡이 아닙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야를 말합니다.

제가 성지순례 때 예수님 고향 나사렛에 갔다가 거기서 멀지 않은 이스르엘 골짜기에도 가봤습니다.

그런데 골짜기가 아니라 끝없이 넓은 평야더군요.

이스르엘 평야 옆에 므깃도가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인류의 마지막 대전쟁이 일어난다는 아마겟돈입니다.

이곳은 또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전쟁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구약 성경엔 이 므깃도에서 벌어진 전쟁들이 많이 나옵니다.

7장에 보면 이스르엘 골짜기에 모인 미디안의 수가 십삼만 오천 명이라고 나옵니다.

그만한 병력이 모일만한 곳이 이스르엘 평야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 진영을 바라보니 메뚜기 떼 같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싸울 의욕을 상실하고 숨죽여 있는 것이죠.

이때 기드온이 군사를 모으는 나팔을 붑니다.

34절하,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아비에셀 사람들은 바알 신당을 부순 기드온을 죽이겠다던 기드온의 가문입니다.

그들이 감동이 되어 제일 먼저 기드온을 따르게 된 것이죠.

기드온은 인근의 므낫세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지파에 전령을 보냅니다.

그랬더니 거기서도 많은 무리들이 기드온에게 나옵니다.

8장에 보면 네 지파에서 모인 사람들의 수가 32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굉장한 숫자이지만 사실 이것은 한 지파의 군사력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부름을 받았지만 안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죠.

이 네 지파는 미디안 연합군이 모여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인접한 지파들입니다.

전쟁에서 지면 자기와 가족들이 어떤 환난을 당할지는 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보태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죠.

매일성경 본문이었던 역대하 20장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여호사밧왕 때 지금처럼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이 공격해 옵니다.

남유다의 군사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기드온과 똑같은 위기인 것이죠.

이때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 사람들을 모으고 그 앞에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의지하는 이스라엘에 대승을 안겨주시죠.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던 장면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어린이까지 빠짐없이 다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이죠.

그 전쟁에서 지면 아내와 어린 자식들까지도 참혹한 환난을 당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피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전쟁하고 있는 데 어린아이 같은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죠.

나는 믿음도 없다, 가진 것도 없다, 건강도 나쁘다, 그냥 살아가는 것만도 힘들다.

모두가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에게 있는 것마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이 작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장년들은 이젠 내 인생 다 쪼그라들고 쓸모없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남은 것들이 얼마 없기에 더 소중한 것입니다.

남은 건강이 얼마나 소중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너무 귀하니 더 찬란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나이가 먹으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은 게 뇌과학적으로 사실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젊을 때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정보들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죠.

같은 걸 봐도 젊은이들보다 훨씬 덜 보인다고 합니다.

같은 시간 안에 하는 일도 적어집니다.

그러니까 한 게 별로 없는데 시간만 빨리 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우리의 남은 시간에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에 더 소중합니다.

이 귀한 것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타고난 게 이것 밖에 안된다고 낙심하지 말길 바랍니다.

청춘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습니까?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은 얼마나 귀합니까?

그 모습대로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면 결코 후회 없는 인생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기드온에게 모인 사람들은 다 용감하고 싸움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뒤에 보면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그때 이만 이천 명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두렵지만, 용감하지도 않았지만, 나와 가족을 위해 나왔던 것이죠.

우리가 함께 믿음을 세워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곧 나와 내 가족들의 구원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성도들의 전쟁에는 인간의 약점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결전을 앞둔 사사기드온에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고,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있어도 사람이기에 흔들립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사람이 천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기드온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십육만 명이 모일 만큼 판이 커져 버렸습니다.

과연 나를 통해 승리를 주실지 그게 어떻게 확신이 서겠습니까?

성도들이 종종 빠지는 의구심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 싸움에 함께 하시냐는 것이죠.

기드온은 불안한 마음에 하나님께 승리의 증표를 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양털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그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 양털 증거를 보았다고 기드온의 불안이 사라졌을까요?

기드온은 끝까지 불안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증거를 보여주시면 잘 믿을텐데, 그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우리는 또 불안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과 우리를 이해하시기에 책망하기보다 평안을 얻도록 응답해 주시는 것이죠.

걱정과 두려움은 수시로 몰려올 것입니다.

그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평안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이 사례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증표로 이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이것이 하나님 뜻인지 저것이 하나님 뜻인지 증표를 달라는 방법으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더 맞는 것을 결정할지는 이미 성경에 다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특별한 사인이 없으시다면 성경에 원칙을 고려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면 됩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열심히 살고 있다면 내 뜻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느 쪽을 결정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느 쪽을 결정하든지 계속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했어도 이후 잘못 살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하나님은 짜여진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는 자율주행으로 우리 인생 행로를 정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목적지인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지도를 갖고 따라가면 어느 길도 괜찮습니다.

혹시 실수로 잘못 선택한 길로 접어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좋은 길보다 나쁜 길을 선택한 게 더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십니다.

어떤 길에서든 예수님을 놓치지 않으면 다시 우리를 돌려 놓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믿음을 지키며 복되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보다 더 높은 우상이 있나를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작은 힘이라도 하나님나라를 위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사용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곧 선택입니다.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이것인지 저것인지, 지금인지 나중인지, 선택에 실패하면 인생에 큰 어려움이 닥치죠.

말씀을 잘 배워 선악을 분별하고 안전한 길을 잘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 선택을 존중하시고 그 길에 반드시 도움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