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7장1절-25절 (보리떡의 승리) 기드온과 삼백 용사

남수연 2025. 10. 30. 22:46

전쟁은 병력이 많고 최신 무기를 가질수록 유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쟁에 있어서는 그런 조건이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오늘 기드온과 미디안 연합군의 전쟁이 그걸 증거합니다.

기드온의 병력은 3백 명이었고, 무기는 횃불과 항아리와 나팔이었습니다.

이런 인원과 장비로 칼을 든 135천명의 적군을 상대해 승리한 것이죠.

우리의 믿음의 삶도 전쟁입니다.

아니라고 하실 분은 없으시겠죠.

지난 한 주도 지독한 전쟁을 치르고 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전쟁은 그냥 우리의 인생이나 문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 기드온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앞에 있는 문제들을 잘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은 이 전쟁을 위해 삼백 명의 군사를 추리십니다.

그런데 왜 삼백 명의 군사로 이 전쟁을 하게 하시냐는 것입니다.

이걸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디안 연합군이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자 기드온도 전쟁을 위해 군대를 모집했죠.

네 지파에서 모인 병력이 원래는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미디안연합군은 이스라엘의 4배 정도입니다.

큰 차이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그래도 한번 붙어볼 만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많다고 줄이라고 하십니다.

기드온이 어떻게 모아 온 사람들인데요.

하나님 말씀에 기드온은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뭔가를 빼 내실 때는 이유가 있으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이 괜한 노파심에서 기드온에게 이런 지시를 하셨을까요?

사람은 자기의 공이 조금만 들어가도 주인공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 속에 있는 이 마음을 잘 아시죠.

그래서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우쭐대지 못하게 하려고 얼마나 신경 쓰시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내가 세운 공로인데도 영광을 얻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줄이라고 하시니 기드온이 싫어도 어떡하겠습니까?

전쟁이 두려운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진영을 빠져 나가는 데 돌아간 사람들이 무려 이만 이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만 명이 남은 것이죠.

사람들이 우수수 빠져나갈 때 기드온과 남겨진 병사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만 명도 많다고 또 걸러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명령했다면 기드온이 항아리를 발로 차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 마시는 모습을 통해 이 전쟁을 치를 사람들을 선발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물 먹는 모습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두 종류로 나뉘죠.

어떤 이는 손으로 개울 물을 떠서 마시고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개울물에 바짝 대고 들이키듯 마셨습니다.

손으로 떠서 먹은 사람이 삼백 명, 얼굴을 대고 먹은 사람이 구천칠백 명이었죠.

기드온은 속으로 제발 구천칠백 명을 주실 것을 간절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백 명을 데리고 전쟁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기드온과 삼백용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선발 기준을 정하셨을까요?

그걸 맞추려는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물 마시는 방법의 차이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떻게 마시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 숫자가 더 적으냐에 있으셨던 것이죠.

 

2) 병사를 줄이신 또 다른 이유는 이걸 통해 기드온과 병사들을 시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시험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은 항상 한 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기드온과 남겨진 삼백 명의 믿음을 시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뭐가 많이 있으면 진짜 의지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돈도 의지하고, 건강도 의지하고, 내 커리어도 의지하고, 하나님도 의지하고.

필요한 것과 의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들은 빼내고 들어낼 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시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시험하는 게 아니라 사탄도 그걸 알고 시험합니다.

그래서 건강도 건드리고, 재정도 시험하고, 일터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걸 치면 믿음도 삶도 다 무너지는 걸 아는 것이죠.

욥도 그렇게 시험했잖아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도 의식적으로 거기에 대한 의존도를 자꾸 낮춰야 합니다.

세상 것을 의존할수록 그것을 잃을까 봐 불안과 걱정이 커집니다.

하나님은 의지해도 잃을 염려가 없으니 더욱 담대해집니다.

동료 구천 칠백 명이 돌아갈 때 남겨진 삼백 명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내가 뽑혔다고 뛸 듯이 기뻤을까요?

함께 의기투합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날 때, 남겨졌던 경험이 있다면 그 쓸쓸하고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다 떠나고 얼마 안 남았네

왜 나만 남기셔서 이 짐을 감당하라고 하시지?’

이걸 믿음으로 견디는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견디는 사람들이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죠.

그러려고 하나님은 먼저 이들이 무얼 믿고 이 싸움을 하려는지를 드러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기드온도 삼만 이천명이라면 해 볼 만하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면 만 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했던 것이죠.

삼백 명 가지고는 그런 생각이 절대 안 들죠.

원래 이 전쟁은 몇만 명이 모이든 이스라엘의 힘으로 해 낼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칠 년씩이나 산중에 숨어서들 살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좀 모이니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이 착각하는 것이죠.

다른 걸 의지해서 될 일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그걸 아예 포기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행로에서 하나님은 틈틈이 그 시험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그렇게 많이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될 것 같다 안 되고, 주실 듯 했다 안 주시고.

그런 경험들 있으시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의지했던 게 무엇인지 드러나죠.

미국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신학교를 마치고 사역을 준비하던 중 타도시에서 모르는 한 집사님이 찾아옵니다.

몇 가정이 모여서 교회를 시작하려고 하는 데 꼭 좀 목사님이 오셔서 맡아 달라는 거예요.

그 집사님과 얘기해 보니 믿음도 좋았고, 교회를 세울 비전도 너무 확고했고, 사회적인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먼 도시로 나가 개척을 한다는 게 부담이 되었기에 처음엔 거절합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계속 설득하는 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집사님만 곁에 있어도 그래, 할 수 있겠다.’

그 집사님이 앞장 서주면 수월하게 목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그 교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뒤에 이 집사님이 학위를 받고 다른 도시로 일자리를 얻어 떠났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 가정이 떠날 때, 자기가 의지한 게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죠.

저는 기드온의 믿음보다 이 삼백 명 용사의 믿음이 신기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만나기나 했지만 이들은 아니잖아요?

엘리야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배신했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니다, 내가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길 것이다말씀하시잖아요?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남기시고, 연단하시고, 함께 주님의 전쟁을 하게 하신다는 걸 알 수 있죠.

나만 남겨진 것 같을 때, 내 편이 없는 것 같을 때, 그 고독 속에서 우리를 주님의 전쟁을 위해 강하게 훈련하시는 것이죠.

믿음의 싸움을 피한다고 나만 평화롭게 살지 못합니다.

암몬이 쳐들어 오고 미디안이 쳐들어 와서 다 뺏어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내 삶을 위해서도 용사가 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하나님은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한 가지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스탭에 맞춰 전쟁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작전엔 항상 사람에 대한 고려가 있습니다.

이사야 401절은 메시야의 구원을 이렇게 진술하죠.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밤이 되자 삼만이천 명이 북적댔던 이스라엘 진영에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기드온과 남은 병사들이 어떻게 그 밤에 잠이 들겠습니까?

본문을 보면 이 모든 과정에서 기드온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죠.

기드온은 하나님께 불만도 많고 말도 많았던 사람이잖아요?

이런 전쟁은 못하겠다고 투덜대지도 않습니다.

양털 시험을 더 해 보겠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과 너무 다른 상황을 주시면 우리도 침묵하고 싶죠.

하나님을 부정할 수는 없고, 그럴 때 사람들은 무언의 저항을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말이 없어지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죠.

기드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하실 일도 믿었지만 이 불가능한 전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것이죠.

하나님은 기드온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이번엔 구하지도 않았는 데 증거를 보여주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질그릇 같이 연약함을 주님은 아십니다.

수만 명이 왔을 때 드디어 강한 용사가 된 것 같던 기드온은 삼백 명이 남았을 때 다시 옛날의 기드온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미디안이 두려워 포도주틀에서 몰래 타작하던 그 기드온이 어디 간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장담했던 베드로도 여종의 말 한마디에 나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밤에 일어나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라 하십니다.

이 전쟁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시겠다고 합니다.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절상,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은 무슨 소리시냐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 괜찮다고 하지 않습니다.

두려웠던 기드온은 증거를 보기 위해 미디안 진영으로 은밀히 잠입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리떡 꿈 이야기를 듣게 되죠.

잠들지 못한 미디안 군사 둘이 한 사람은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하고 한 사람은 해몽을 합니다.

꿈에 보리떡 한 개가 굴러 오더니 미디안의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인절미 한 개가 군용 막사로 굴러 들어와 막사를 무너뜨렸다면 기억날만한 희한한 꿈이겠죠.

꿈 이야기를 듣던 다른 병사가 망설임 없이 해몽을 내놓습니다.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으니라 하더라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더 용기를 얻죠.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당진에서 어렵게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하더군요.

목사 가정이라 해도 여느 가정 같은 아픔이 다 있잖아요?

한번은 아내와 함께 걱정스런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12살짜리 아들이 옆에서 듣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가만히 와서 무릎에 앉더니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그거 다 생각 속에서 지워. 그게 안 지워지면 예수님한테 지워달라고 해.

그 어린 아이가 들어도 그건 생각에서 지워버리면 될 문제라는 것이죠.

우리 근심 중에는 단지 생각에서 오는 게 많잖아요?

그 어린 아들의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성경을 읽는 데 이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골로새서24절 말씀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시는구나.

근심과 걱정이 생길 때마다 지우고 제해 주시길 기도했더니 큰 염려의 짐을 내려놓으며 살게 되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스탭에 맞춰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책망을 통해 우리의 전쟁을 인도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믿음과 덕을 세우는 말을 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하나님의 작전에 따라 전쟁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전술로 우리의 전쟁을 이끄십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특별한 전술과 간섭이 아니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전쟁도 내 힘으로 만만하게 해 볼 전쟁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하면 문제에 맞는 지혜를 반드시 주십니다.

끝까지 기도하지 않아서 듣지 못할 뿐입니다.

1) 이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가 세상 무기와 다릅니다.

16절을 보면 군사들이 무엇을 가졌나를 알 수 있죠.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게 하고

전쟁 무기인 칼이나 창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작전엔 칼이 필요치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이 작전은 미리 기드온에게 지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백 명이 각각 나팔과 빈 항아리와 횃불을 준비할 수 있었겠죠.

2) 전쟁의 전과정은 간추려서 나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 첩보작전처럼 디테일합니다.

사람끼리의 전면전이던 고대엔 야간 전투를 하지 않죠.

하나님은 야밤에 침투하게 하십니다.

항아리에 숨긴 횃불은 몰래 이동하는 아군의 앞을 안전하게 비춥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들키지 않고 미디안 경계까지 침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하시는 전술은 엘리사의 전투에서도 나옵니다.

아주 가까이 접근한 시간은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이었다고 하죠.

그때는 사방에서 보초들이 걸어다니는 소리와 말소리에 묻혀 이동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작전대로 기드온이 이끄는 선발대가 나팔을 붑니다.

그 신호에 따라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들고 외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잠들었던 미디안 연합군은 큰 소란에 깨어납니다.

삼백 명이 함께 불어대는 나팔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혼비백산 했겠죠.

이스라엘이 급습했다 생각하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도망치다 부딪치는 서로를 적으로 알고 칼을 휘두릅니다.

22절에 보면 하나님이 저들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고 하죠.

이렇게 12만 명이 자멸합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냥 진영 밖에 둘러서서 소리치고 나팔 불고 횃불을 휘두르기만 한 것이죠.

분명히 전쟁을 했지만 누구도 내가 싸워 이겼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작전도 세우시고 직접 전쟁도 하신 것이죠.

3) 이 전쟁은 당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신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까지 알아야 기드온의 전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구원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미디안의 진영을 무너뜨린 보리떡은 누구일까요?

사람들 눈에 보이기는 기드온이지만 미디안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보리떡이 기드온이라면 기드온에게 무슨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기드온은 미디안 장막 안에도 안 들어갔잖아요?

미디안을 섬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하찮아 보이는 보리떡은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리떡처럼 대단찮게 여겼잖아요?

그렇지만 보리떡 같은 몸으로 심판과 사망과 사탄의 진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 미디안에 대승을 거둔 전쟁을 미디안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이 절박할 때 그들의 기도에는 미디안의 날처럼 구원해 달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사야서는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예언들을 많이 담고 있는 예언서죠.

94절을 보면 메시야가 이렇게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메시야가 오셔서 구원하실 것을 미디안의 날에 비유하잖아요?

이어서 예수님에 대한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오늘 미디안을 꺾은 구원자 하나님과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이렇게 연결해 놓으신 것이죠.

구약시대의 모든 구원자들은 예수님의 면모와 정보를 한 조각 퍼즐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완전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죠.

우리가 신뢰하며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 문제는 하나님이 우려하셨던 대로 내 힘으로 이겼다는 기드온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승하신 전쟁에 칼도 휘둘러보지 않았으니 장정들이 성에 차지 않은 것이죠.

나서서 공을 세워보겠다는 마음이 기드온에게 불같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돌려보내신 사람들을 다시 불러 전쟁에 합류하게 합니다.

기드온은 남은 만이천 명을 소탕하기 위해 이젠 스스로 전쟁을 진두지휘합니다.

본문 뒷부분을 보면 기드온이 폭주합니다.

기드온은 자기 전쟁에 대해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왕과 장군들이 남았으니 언젠가는 다시 쳐들어오지 않겠냐는 것이죠.

기회가 왔을 때 잡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길 거라 명분을 세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 이천 명을 살려 두셨다면 그것도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다시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잖아요?

하나님이 가나안에 남겨둔 부족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하고 전쟁을 가르치실 목적이라고 앞에서 말씀하셨죠.

남겨진 적이 있냐 없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멀리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대적을 데려다 놓으실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 명성을 위한 전쟁을 하나님의 전쟁으로 교묘히 위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엔 하나님이 기드온의 전쟁에 대해 침묵하십니다.

기드온의 남겨진 전쟁에 대해선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뺄셈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 남보다 우월한 것으로 교만해질 것을 만지시는 것입니다.

항상 그 교만한 본성이 내게 있다는 걸 부정하지 말고 삼가며 낮아질 수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구원과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힘은 보리떡 한 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리떡 예수님께 찰떡같이 달라붙어 적진을 향해 막 굴러가야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뛰어난 전술가는 없으십니다.

싸움의 기술과 전략은 우리를 위해 이 성경에 다 기록해 주셨습니다.

성령과 말씀이 우리에게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을 들으라고 할 때 칼을 들겠다고 우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라고 하시는 데 미워하는 게 그런 것입니다.

나는 칼을 들겠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늘 우리의 구원과 승리하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일러주시고, 순종할 때 승리를 안겨 주심을 믿고 잘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