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매일성경 본문이 창세기입니다.
창세기는 모든 만물의 기원을 우리에게 알려주죠.
새해 첫 수요기도회에서 우리 근본을 살피고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조정하는 게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나에 대해 진술합니다.
성경 외에는 어디서도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기원에 대해 알려진 것은 모두 상상과 가정입니다.
증거나 실험을 통해 사실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믿는 진화론도 가설입니다.
엄청난 비약과 상상이 들어간 가장 비과학적인 가설이죠.
사람이라면 살면서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생겨났고,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모든 피조물의 영원한 주인되심을 창세기 첫 장에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 사실이 옳다는 것을 꼭 증명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당당히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창조를 더 확신하고,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올 한해를 살아가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세 가지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걸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연 만물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은 불법자들입니다.
26절상,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1) 사람을 하나님 형상으로 만든 것은 분명하신 목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록 피조물이지만 하나님과 공통된 부분을 갖게 지으셨다는 거잖아요?
이유는 하나님과 통할 수 있고 깊이 교제할 수 있게 지으셨다는 것이죠.
천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을 그만큼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이죠.
심지어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선택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탁월한 피조물을 만드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인간이 어떻게 선악을 선택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 보셨을까요?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는 그런 모험이나 호기심이 들어간 게 아닙니다.
가장 인격적인 피조물을 창조하시며 꼭 필요한 자유의지를 주실 때, 이미 치르게 될 배신과 희생을 아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실패했고 하나님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셔야 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 형상이라는 게 납득이 안 가죠.
어디 하나님 형상이 있습니까?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창조 시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3절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고린도후서4장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복음서를 통해 살펴보는 주님의 인격이 본래 창조하셨던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우리를 보면 여전히 예수님과는 너무 거리가 멀죠.
그렇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미 회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겉사람에도 이뤄지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2) 26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속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대한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라고 말씀하시잖아요?
하나님이 여러 인격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죠.
성부하나님이 창조의 주역이지만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곧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진술하죠.
또 창조사역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격 하나님의 공조를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 분이 존재하시나 생각할 수 있죠.
26절을 잘 보면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계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으로 만들자고 하시잖아요?
우리는 복수지만 형상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자연스럽게 삼위 하나님이 하나의 형상임이 드러나는 것이죠.
삼위 하나님이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시라면 하나의 형상이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선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17장에서 이렇게 기도하시죠.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듯,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하며 교통하게 하시려는 것이죠.
새해에는 이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사람들 간에도 서로 교제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동일하게 하나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형상을 주셨으니 서로 교감하고 교제하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수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간 관계도 파괴했습니다.
타락한 죄인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각각 그런 마음으로 함께 사니 관계가 괴로움이 되는 것이죠.
심지어 사랑해서 만난 아내와 남편조차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나마 잘 사는 부부라면 아마 갈등을 겪으며 부단히 노력한 결과일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러더군요.
결혼한 지 30년이 됐는데도 아직 아내를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아내가 ‘됐어’ 그러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만해야 할지, 더 하라는 건지 때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남자들에게 이런 말이 있다고 하죠.
헤어진 첫사랑이 잘 살면 배가 아프고, 첫사랑이 못 살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첫사랑과 같이 살면 머리가 아프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정말 그렇게 서로에게 골치 아픈 존재로 창조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죠.
왜 서로가 그렇게 다르고, 상대방 마음을 모르겠고, 관계가 자꾸 틀어질까요?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서로 자기 자신 중심으로 머리를 굴리니 상대방을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는 게 좀 외람되지만 하나님은 참 쉬우십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 없이 깊고 높고 오묘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나 지혜가 쉽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마음이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사랑하시거든요.
사람 관계에서 생각이 복잡한 것은 사랑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순수하고 완전하고 그래서 단순하십니다.
나를 복잡한 마음으로 시험하고 계산하고 그러지 않으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자식들이 왜 우리를 쉽게 봅니까?
우리가 자기들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이죠.
제자들이 예수님 옆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어려워하고 눈치 보기는커녕 성질낼 것 다 내고 할 말 다 하면서 따라 다녔습니다.
신자들도 하나님 눈치 안 보고, 불성실하고, 버릇없이 믿지 않나요?
하나님 사랑을 믿기에 맞을 짓도 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섬기는 무당들을 보면 귀신이 그렇게 무섭다고 합니다.
그 속을 종잡을 수 없으니 늘 비위 맞추느라 힘들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우리에게 쉬우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철들면 부모 사랑을 알 듯이 신자들도 철이 들어야 하나님 사랑을 알고 경외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올해는 우리가 더 가까이하고 사랑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와 너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고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좀 쉬운 사람처럼 보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목에 힘 빡 주고, 인상 쓴다고, 사람들이 대단히 여겨주지 않습니다.
사람들 불편하게 해 봤자 나중엔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은 사람이 자연 만물과도 관계를 갖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천지의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위임을 받은 것이죠.
물론 하나님은 이 창조세계를 우리가 누리도록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여러 가지 오묘한 맛을 만드셔서 우리가 맛난 음식들을 즐기잖아요?
꽃도, 나무도, 동물도, 심지어 쓸데없이 많이 만드신 것 같은 저 하늘의 별들까지도 우리가 누리고 즐길 수 있잖아요?
나는 자연인이다 진행자 윤택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자연인이 누구냐고 묻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자연인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한때 300억을 가진 부자였다고 합니다.
물려받은 땅이 많은 데다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된 것이죠.
쓰고 싶은 대로 다 쓰며 살았다고 합니다.
사치와 호사를 부리며 사기도 당하고 투자로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남은 돈이 0원이었다고 합니다.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죽어야겠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무에 목을 매려는 순간 산 아래로 보이는 석양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넋을 놓고 보다가, 내일 죽자 생각했습니다.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어요.
또 목을 매려는 데 이번엔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과 새소리와 숲 속의 아름다움에 벅찬 행복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산에 눌러앉아 자연인으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이 주는 삶이 너무 행복해 삼백억 갖고 살던 때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는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절망 중에도 자연에 기대어 살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사람이 파괴한 자연생태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운동가가 있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 것이죠.
성도들이 세상에서 악을 제어하듯이, 환경을 보존하는 역할도 성도들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도 이 세상에서 내게 재어 주신 구획 안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경작하고 경영해야 할 일터를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잠언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잠언 27장23절,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내게 주신 기업과 일터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그 보상이 내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올해도 하나님과, 사람들과, 내가 사는 환경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6년1월7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브라함의 웃음 (창세기17장15절-22절) (1) | 2026.01.31 |
|---|---|
| 노아의 예배 (창세기7장15절-22절) (1) | 2026.01.22 |
| 창세기50장 (요셉의 유언과 죽음) (2) | 2023.10.10 |
| 창세기49장 (야곱의 축복) (1) | 2023.10.03 |
| 창세기 46장1절-34절 (하나님의 설계도) (0) | 2023.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