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아브라함의 웃음 (창세기17장15절-22절)

남수연 2026. 1. 31. 22:23

오늘 본문은 족장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그 사이 역사를 간단히 요약해서 오늘 본문과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대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해 민족들이 세상에 흩어져 문명을 이루고 살게 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하나님은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의 우상을 섬기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홍수로 심판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태초에 세우셨던 죄인들의 구원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실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성경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신앙생활 할 때는 그걸 잘 몰라서 대체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자꾸 나오나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가리키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죠.

그러니가 성경을 잘 이해해야 믿음의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12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믿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이주합니다.

이후로 그 언약을 여러 번 확인시키시고 점점 명확하게 해 주십니다.

22장에 가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거라는 뜻이 분명해지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칠십 오세였습니다.

오늘 본문171절을 보면 현재 아브라함의 나이는 구십구 세입니다.

그 사이 거의 25년의 시간이 흘렀죠.

아직도 이삭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고 한 개인으로는 상상못할 큰 약속을 받았지만 아브라함의 긴 신앙여정은 보통의 성도들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듯 아브라함도 여러 차례 믿음의 실패를 보이죠.

 

2. 그 중 하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죠.

이때가 가나안땅으로 온 지 약 십여 년 정도 지난 뒤입니다.

그때까지 자식을 기다리던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들을 얻은 것이죠.

아기를 낳지 못해 초조해진 사라가 자기 몸종을 통해서 자식을 얻자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라가 요구하는 대로 그냥 따라갑니다.

아닌 줄 알았기에 기도할 수 없었겠죠.

아마 아브라함도 기다리다 지쳤고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앞 16장 마지막에서 이렇게 일단락됩니다.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171, 하나님이 다시 찾아 오셨을 때 아브라함은 구십구 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단 한 줄 사이에 십삼 년, 이스마엘이 열세 살 되도록 세월이 흐른 것이죠.

그 사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이렇게 오래 하나님이 침묵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책망하시는 시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들은 얻었지만 이전과 다른 하나님의 침묵은 아브라함에게 불안과 근심이 되었겠죠.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네가 백 세가 되면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시겠다한마디만 하셨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을 통한 구속사의 큰 계획도 미리 다 알려주시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당장 보여달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또 모든 일마다 하나님 뜻을 구하고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죠.

그러면 늘 하나님의 뜻을 몰라 좌충우돌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앙의 구력이 좀 쌓이고 말씀과 기도생활을 착실하게 다져가다 보면 범사에 하나님 뜻을 자동적으로 찾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이 주님 뜻에 얼추 맞춰집니다.

그래서 왠만한 일들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뭐가 성경적인지를 알게 되는 편이죠.

박현0라는 크로스오버 가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아주 신실한 청년입니다.

팬텀싱어도 나오고 싱어게인도 나오고 그랬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가수의 본업과 신앙의 밸런스를 어떻게 잘 유지하냐.

그랬더니 박현0씨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마음이 늘 있기 때문에,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그런 고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이미 하나님 뜻에 잘 맞춰져 있다는 것이죠.

젊은 청년이 벌써 이렇게 신앙의 훈련이 잘 되었다는 데 놀랐습니다.

큰 문제에 대한 인도하심은 특별한 기도가 필요하죠.

그러나 일상에서 주님을 따르기는 쉽습니다.

꾸준한 기도와 말씀 훈련, 그리고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하나님은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언약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약속의 자손을 사라를 통해서 주시겠다고 하죠.

그러자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고 합니다.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에 이르되 백 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의 웃음이 불신의 웃음이었을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정도로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 약점을 농담거리로 삼지 않으십니다.

다만 너무 꿈같아 믿어지진 않지만 입에서 어느새 새어 나오는 그 웃음, 그 설레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 뭐 그런 말씀을요

그러나, 이미 심령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것들이 훨훨 벗겨지고 왠지 자꾸 웃음이 나오는 것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안에 믿음도 주시고 희망도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꾸준히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큰 기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를 들을 때 뭔가 작은 말씀이라도 마음에 와 닿으면 됩니다.

그 작고 세미한 음성이 계속 우리를 인도하시면 삶이 무겁고 답답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살면서 웃음이 나옵니다.

성도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맹목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면 , 이렇게 해야겠구나. 이런 뜻이 있으시네이렇게 말씀이 우리를 앞서 인도해 가십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나와 내 가족들에 대해 미래의 구체적인 소망도 주십니다.

이런 소망을 받으면 좀 긴 기다림도 인내 할 수 있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멀어진 십삼 년을 그냥 하루하루 살았을 것입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살면 똑같은 일상이라도 내일을 또 기대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연장자이신 성도님들도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린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끝까지 내가 감당할 비전을 주실 것입니다.

우선 우리 모두에게는 동일한 비전이 있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손을 낳고 믿음의 대가 내게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걸 다 이루고 하나님께 가시길 축복드립니다.

앞으로 미래가 긴 청년과 장년 세대는 더욱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내 미래의 비전을 받고 따른다면 내 모든 재능과 역량의 최대치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인생은 마지막 하루가 남았을 때까지도 사명을 갖고 살아가야 복됩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분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우리의 시간들이 그렇게 귀하다는 걸 알고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성도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다음 세대를 이어서 예배하고 복음 전하는 공동체가 되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예수님의 뜻 아니시겠습니까?

그걸 다른 누가 밖에서 들어와 이뤄주는 게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데려다 놓으신 우리 한사람 한사람 믿음이 장성해서 그걸 이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그런 말하죠.

내가 윤석렬이다, 내가 이재명이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말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주나산이다.

교회에 이런 비전을 가진 성도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아브라함과 끝까지 이루시듯, 우리에게 주신 비전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을 믿지 못해 이스마엘을 부탁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약속의 아들을 주시면 이스마엘은 어떻게 되냐는 것이죠.

이스마엘이 복을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내비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은 이삭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복을 약속하십니다.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실수를 끝까지 책임지라 하지 않으십니다.

십삼 년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아브라함은 충분히 괴로웠을 것입니다.

눈앞에 이스마엘이 자라는 걸 보면서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없이 낳은 아들이잖아요?

이스마엘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사라와 눈이 마주쳤다면 어땠을까요?

사라의 눈에서 섭섭함과 쓸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갈이 이스마엘에게 젖을 물릴 때 사라는 어땠을까요?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후회했을 것입니다.

하갈은 어땠을까요?

젖을 뗀 아들을 사라의 품에 안겨 줬을 때, 어미의 마음이 뻔하죠.

하나님의 침묵의 십삼 년, 아브라함 가정은 모두가 상처받고 위태롭고 살얼음판 위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 잘 보여주죠.

하나님이 그 힘들었던 마음을 모르셨겠어요?

아브라함의 고충을 아시기에 원하는 대로 이스마엘도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가 지난 날 분명히 실수하고 실패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평생 우리가 그 고통 속에 사는 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떳떳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후회하면서도 또 실수하고 죄지을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티끌 같은 존재인 줄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죄와 싸우고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애쓰는 걸 다 아십니다.

요한사도가 이렇게 성도들을 권합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의 실패와 죄는 늘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을 가까이하는 게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 아니라 그 이상도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과의 화목을 되찾았습니다.

다시 언약을 되찾고 그 입가에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우리가 생계를 위해 뭘 해야 할지, 내 가정과 일터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늘 고민이죠.

그러나 그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뜻을 매일 깨닫고 일상을 살아간다면 더 큰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6년1월28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