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노아의 예배 (창세기7장15절-22절)

남수연 2026. 1. 22. 16:37

오늘 말씀은 대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와 가족들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그리고 있습니다.

1. 앞에서 일어났던 노아시대 대홍수 사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홍수는 아담 창조 이후 약 천육백 년 정도가 지난 뒤입니다.

아담 자손들의 나이가 나오는 걸 적용해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을 보고 기뻐하신 것은 잠시였던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었죠.

성실한 관계라면 약속을 지키는 게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자신이 언약을 중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죠.

만일 나와 중대한 약속을 하고 고의로 어긴 사람이라면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넘본 치명적인 죄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이 하나님 앞에 사죄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한 뉘우침은 없었습니다.

이때 이미 죄를 깨닫지 못하는 죄인의 파렴치한 속성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모르면 타락하고 부패하는 것은 시간문제죠.

우리 양심이 죄에 대해 시끄럽게 경광등을 울려 주는 게 복입니다.

결국 천 육백여 년 만에 하나님의 심판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6장에 보면 하나님이 죄로 인해 부패한 사람들을 보고 슬퍼하셨다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고뇌가 홍수 심판 뒤인 21절에서도 여전히 나타나죠.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악한 죄인에 대한 미움이라기보다는 측은하신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장차 태어날 모든 세대는 볼 것도 없이 거대한 악의 집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대 결단을 하십니다.

다시 번성할 경건한 자손을 기대하며 노아 가족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대홍수로 악인들을 심판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도 대홍수에 같이 멸절된 것이죠.

 

세상은 노아시대 대홍수를 역사적인 사실로 믿지 않습니다.

만약 홍수가 있었다 해도 중동 지역에서만 있었을 거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구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지질학적인 증거들은 지구 전체가 격변했던 대홍수 사건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입니다.

지구의 모든 미스터리라는 것들이 창조를 믿고 성경을 믿으면 너무 쉽게 풀립니다.

홍수사건에 대한 성경말씀을 잘 묵상하셨다면 홍수 진행 과정이 얼마나 정확하게 기술되었는지 알 수 있죠.

홍수가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경과와 날짜가 다 나와 있거든요.

홍수가 시작 된 때는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217일입니다.

40일 비가 내리고 방주는 150일간 물에 떠다니다 아라랏산에 머뭅니다.

땅이 완전히 말라 노아와 방주의 동물들이 밖으로 나온 때는 노아 육백일 년 227일입니다.

대홍수의 총기간이 12개월 열흘인 것이죠.

대홍수는 설화가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그대로 받아 진술한 것입니다.

설화로 받아들일까 봐 실제 날짜까지 기록하게 하신 것이죠.

성경은 하나님의 직접 계시와 구전과 역사 기록과 성령의 감화를 받은 성도들의 진술로 기록된 것입니다.

대홍수의 증거들은 과학적으로도 차고 넘칩니다.

우리가 마치 설화를 믿는 것 같이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2. 하나님은 대홍수 심판 이후 다시 세상을 시작하십니다.

방주 안의 노아 가족과 동물들을 밖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전에 방주의 크기가 축구장 면적에 3층 정도의 규모라고 말씀드렸죠.

그 안에 칸칸이 들어 있던 동물들이 다시 땅에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를 방주 밖으로 내보내신 사인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오는 것이 사인이었죠.

나뭇잎이 나올 정도면 이미 땅은 굳었고 풀과 채소로 뒤덮여 있었을 것입니다.

주말 농장하는 분들이 질색하는 게 잡초와 풀이잖아요?

풀 뽑고 며칠 뒤에 보면 무섭게 자라있죠.

저희 베란다 화분에 있던 배롱나무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날라왔는지 지금 화분에는 잡풀들이 한가득입니다.

이제 풀이 자랐으니 동물들이 나와도 먹을 게 지천인 것이죠.

천국 같은 환경에서 다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7절 하반절에서 말씀하죠.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눈 앞에 펼쳐진 희망찬 광경을 보며 노아가 그 눈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 암울한 홍수의 심판 속에서 노아가 얼마나 마음이 위축되고 두려웠겠습니까?

앞으로 우리 가족들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온갖 상상을 했겠죠.

그런데 눈 앞에 펼쳐진 푸른 풀과 수목의 싱그러움을 볼 때 세상이 마치 하나님의 선물 같았을 것입니다.

노아가 풀어 놓은 야생동물들은 힘차게 사방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닭과 소와 양과 염소 같은 가축은 곁에 두었겠죠.

내일부터 당장이라도 닭은 계란을 낳아 줄 것입니다.

양과 염소는 젖을 낼 것입니다.

소는 밭을 갈아 주겠고, 챙겨 놓았던 종자들을 뿌리면 땅은 먹거리를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악인들에게 심판은 대홍수에 함몰된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의 심판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이 땅에서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때로 우리 잘못이나 재난으로 인생이 뿌리째 뽑힐 것 같은 환난을 당하기도 하죠.

그러나 그 환난 뒤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좋은 날들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인생의 몇 번의 고비마다 이제는 끝이구나, 미래가 안 보이는구나.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더군요.

다시 웃을 날이 오고 행복한 삶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 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미 하나님이 주신 영생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3.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구원받은 자가 할 것은 예배입니다.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그런데 노아의 예배는 번제였습니다.

번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제사입니다.

아직 레위기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이죠.

노아는 모든 사람들이 홍수 심판으로 죽는 것을 보았잖아요?

그렇게 죽었어야 할 자기가 살아있잖아요?

하나님이 왜 자기만을 구원하셨겠습니까?

물론 성경이 노아를 당대의 의인이라고 했지만 노아가 의로워서 구원받은 것은 아니죠.

68절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물론 노아는 하나님이 인정하셨던 의인이 맞습니다.

에스겔 14장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비록 노아다니엘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세 사람이 자기 생명은 건질 수 있을 의인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실제로 의인 다니엘은 하나님의 환상 앞에 섰을 때 어땠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8,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인간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욥은 어땠습니까?

자기의 고난이 부당하다고 세 친구 앞에서 자기 의로움을 강변하던 욥은 하나님 앞에 서더니 이렇게 말하죠.

욥기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노아는 자기 의로움 때문에 구원받은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눈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죽어가는 데, 누가 나는 내 의로움 때문에 구원받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만 아는 믿음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함께 알 때 믿음이 온전해 집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심판과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번제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임을 고백하는 제사입니다.

제물을 죽여 그 믿음을 고백하되, 나는 살아있는 제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물을 대신 바치고 나는 이전처럼 똑같이 산다면 그게 뭡니까?

평생 번제를 바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의 피의 제사를 드린 사람은 살아있는 제물로 삽니다.

내가 살았다고 주장하던 것이 서서히 죽고 순종하는 제물처럼 살게 되죠.

 

사실 제사는 자기 것을 희생해서 드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희생된 것은 결국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내 것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희생이나 제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받은 것인데요.

결국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신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이죠.

우리는 수많은 죄인들이 영벌에 들어갈 때, 예수님의 의를 힘입고 영생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앞에서의 예배는 진심과 정성을 다하겠죠.

그날에 하나님께 드릴 감격의 예배를 지금 이 땅에서도 똑같이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예배 모습에서 그런 진심을 느낍니다.

형식적인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말라기1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너희들이 차라리 예배하러 오지 않았으면 좋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더러운 떡을 드리고, 병들고, 눈멀고, 불구가 된 제물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우리의 예배에 오늘 노아와 같이 피의 제물이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바쳐진 제물처럼 나를 부인하고 순종하는 삶의 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최고와 최선을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우리 영혼이 말할 수 없는 힘을 얻습니다.

예배에 성공할 때 우리 삶도 믿음의 힘으로 하루 하루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1월7일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