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고린도전서4장1절-7절 (판단하지 말라)

남수연 2026. 6. 15. 22:25

고린도교회에 일곱가지 정도의 문제가 있다고 지난 주 말씀드렸습니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고린도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사도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때 바울사도는 당장 방문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직접 방문하기 전에 급한 대로 이 편지를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분열이었죠.

고린도교회는 바울사도가 개척해서 일 년 반 목회한 뒤 아볼로가 와서 사역을 맡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고린도교회에 들렀던 것 같습니다.

그후 고린도교회 내에 이들 중 누가 더 좋으냐로 파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고 그리스도파로 갈라진 것이죠.

지금도 원로목사파다, 신임목사파다, 그렇게 갈라진 교회들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진보, 보수의 갈등이 도를 넘는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같은 정당 내에서도 서로 폭로하고 분열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안 좋죠.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TV프로들도 많습니다.

부부든 가족이든 서로 마음이 갈라져서 다투는 걸 보면 삶의 질이 뚝 떨어지는 걸 느낍니다.

인간다움을 다 상실하는 게 다툼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화목하지 못한 성도들에 대한 바울사도의 해결책입니다.

사람 관계는 거의 매일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신경 쓰이게 합니다.

고린도교회에 내린 솔루션을 우리 교회 생활과 삶에 잘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1. 바울사도는 먼저 사람 위주의 신앙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예수님은 간 곳 없으시고 사람들끼리만 소란을 피우고 있죠.

사람 중심이 되면 고린도교회처럼 됩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신뢰할 분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인기있는 목사들이 시무하는 교회는 이런 함정에 빠질 위험이 많습니다.

물론 성도들과 목사가 서로 신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파, 아볼로파라니 이것보다 사역자에게 겁나는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한 말에서, ‘일꾼이라는 단어는 로마시대 전함 바닥에서 노 젓는 노예들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북소리에 맞춰 쓰러질 때까지 노를 젓잖아요?

일꾼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노를 젓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이죠.

가장 올바른 일꾼은 예수님이 몰고 가시는 방향으로 지하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일꾼들이 돋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이 잘 드러나는 교회입니다.

사람이 드러나다 보면 고린도교회처럼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게 무슨 잘못이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에 대비되는 육체의 열매 속에 당짓는 것이 들어갑니다.

당 짓는다는 것 속에 이미 차별과 판단과 우월감이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게 육체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님의 은혜로 움직여야지 사람이 나서기 시작하면 적은 수가 모여도 하나 되기 힘듭니다.

우리교회가 예수님만 드러나고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가장 친하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2. 성도들은 각자 예수님께 충성할 때 불화가 없습니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바울사도는 복음 전하는 일꾼으로서 모든 일에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역시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예수님의 일꾼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꾼들은 군소리 없이 맡겨주신 분께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충성하면 교회가 시끄럽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봉사를 시작했지만 인간의 본성상 그 마음이 변질되기 쉽죠.

어느새 나를 내세우고, 인정받고,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됩니다.

그런 마음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성도는 없다고 봅니다.

그걸 알고 나의 봉사와 헌신을 감찰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가정에서도 우리는 예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잘하고 나면 은연 중에 우리는 보상을 원하게 됩니다.

가족 중에도 좀 더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사람에게 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억울한 마음이 생깁니다.

가족에게 충성하면 보상 대신 배신의 쓴 맛을 보게 됩니다.

가족들에게 배신당하면 충격과 아픔이 더 큽니다.

사람이 혈육을 챙기고 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러나 그것까지도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교회든 가정이든 봉사하고 나서 화평 하려면 주님께 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이 명령하셨기에 사랑한다, 봉사한다 생각하면 댓가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실컷 일해 놓고 섭섭한 마음 때문에 다툽니다.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모두가 다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귀한 헌신이 예수님께만 드려지길 축복드립니다.

 

3. 이렇게 분열된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남을 판단하는 죄에서 나왔다고 바울사도가 진단합니다.

바울파들은 아볼로파를 판단했고 아볼로파는 바울파를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바울을 판단하고 아볼로를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나는 아볼로의 설교가 더 지식적이라 좋더라.

무슨 소리냐 바울사도의 설교가 더 영적이다.

사역자들을 판단했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성도들을 무시한데서 파가 나뉘는 것입니다.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수 정당을 판단한 것이고,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 사람들을 판단한 거잖아요?

예수님도 비판을 당하셨으니 비판 당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봉사나 행동이나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이든 친한 사이든 자꾸 옳은 말하면 조만간 관계는 틀어집니다.

우리가 주일에 서로 얼굴을 보면 다 보이잖아요?

한 주간 얼마나 마음 고생 하며 몸이 시달리다 왔는지 그 피곤한 얼굴을 보면 다 짐작이 되죠.

서로 수고했다, 잘 오셨다, 그런 따뜻한 눈빛과 웃음이 오가면 됩니다.

주일예배 끝나고 갔는데 누군가의 태도나 말이 영 마음에 걸려서 불편하면 안됩니다.

물론 실수한 것이지 고의로 불쾌하게 할 성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HSP라고 불리는 성격이 있습니다.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초민감자를 말합니다.

그야말로 오감이 다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성격은 사람들 만나는 데 엄청난 에너지와 감정이 소모됩니다.

어디가면 주변 환경부터 사람들 미세한 얼굴 표정이나 말투가 다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 약간 이상한 표정만 해도 왜 그랬을까, 내게 안 좋은 감정이 있나 계속 그 생각을 하게 되죠.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남을 편하게 해 주려는 배려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우리 속에 똑같은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교만하다 판단하는 그 사람 마음에는 교만이 없습니까?

누구를 무엇으로 판단하든 사람 마음 속에는 다 똑같은 게 들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교만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다는 건 그 악을 안다는 거잖아요?

교만이 아예 없다면 남의 교만도 알 수 없는 것이죠.

전에 신간 소설을 낸 차인0씨가 인터뷰를 하는 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소설 속에 극강의 빌런이 나오던 데, 그런 사람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차인0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다 네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표현한 게 어려울 건 없습니다.’

맞는 말이죠.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분이 독실한 크리스찬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비판하고 판단해 봤자 그런 의미에서 내 얼굴에 침 뱉는 것이죠.

 

바울은 자기에 대해서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남의 판단과 비판에 우리는 민감하죠.

그런데 나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서 괴롭게 하는 게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종일 사람들 관계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집에 와 마음 속으로 계속 복기하고, 내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나를 못 살게 구는 것이죠.

왜 그것 밖에 못했나, 왜 그런 실수를 했나,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나를 괴롭힙니다.

저도 자신을 많이 판단하는 성격입니다.

그것도 결국 내 뜻대로 안된 것에 대해 불만족이지 믿음과는 별로 상관이 없더군요.

좀 더 잘할 걸 하는 마음도 내 실력이 원래 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매일 듣고 또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남을 판단하고 편을 가르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죠.

사실은 우리가 다 예수님께 판단 받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을 드러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대로 행한 각 사람에게 칭찬도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구원받는 것으로 퉁치는 건 아니라는 뜻일 것입니다.

각자가 말씀대로 행하며 주님께 충성한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다는 것이죠.

 

얼마 전에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하는 20대 자매가 당근마켓에 짠한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반찬 살 돈이 없어서 맹물에 밥만 말아 먹으며 산다는 거예요.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며 반찬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좀 도와달라는 글이었습니다.

글이 올라온 지 1시간도 안 돼서 주민들의 도움이 이어졌습니다.

반찬과 고기, 라면과 즉석식품들을 들고 와 자매를 격려했습니다.

문 앞에 조용히 음식을 두고 간 이웃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가끔 이 자매를 챙겨 줄 것 같습니다.

사람들 마음엔 못된 것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과 긍휼이 온전치는 않지만 양심에 남아 있는 것이죠.

고린도전서를 묵상을 하다보면 성도들이 왜 이렇게 옹졸하고 미숙한지 속상합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 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 성품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성도들처럼 비판하고 판단하는 대신 아버지의 자비로움을, 예수님의 화목을 이루며 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