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이사야의 소명 (이사야6장1절 -13절)

남수연 2011. 9. 20. 18:21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한 번 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모습 한번 보고 음성 한번 들어보려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작정하고 기도원에서 간절히 주님을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못 봐서 못 믿겠다던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 복된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이 숨어계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시고 우리와 교제하고 축복하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은 이사야선지자의 눈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이사야선지자가 직접 목격한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아주 소중한 말씀 중 하나이죠.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만나고 보았던 하나님에 대해 증언합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은 허상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기꺼이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까이 오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길 원합니다.

다른 사람에겐 친근히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 내게 만은 왠지 빗장을 걸어 놓으신 분으로 느껴질 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고 말씀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그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섬기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먼저 오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보니 이사야선지자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분명히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니엘도 하나님의 모습을 분명히 보았고 다니엘서 10장5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에스겔선지자도 자신이 목격한 하늘 위 거룩한 하나님을 기록했고 신약의 사도 요한도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목격한 대로 기록한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의 영광과 장엄한 아름다움을 표현 할 단어가 마땅찮아 애를 쓰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그 평생에 오직 하나님만 사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니 주님은 지극히 높은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죄인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영의 눈을 열어주시면 바로 우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영광의 옷자락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영적인 눈과 감각이 열리면 높은 하늘로부터 이 땅의 구석 구석까지 내려와 덮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집니다.

지금도 우리 예배 가운데 보좌를 베푸시고 우리의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경배를 기쁘게 받고 계신 줄 믿습니다. 아멘.

2절에 보니 하나님의 주위에는 스랍들이 모시고 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스랍이라는 천사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역할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온 스랍 천사의 모습이 우리 생각과 좀 다르죠?

우리는 천사 날개가 다 둘이라고 생각하는 데 스랍 천사들은 날개가 여섯 개 달렸다고 이사야선지자가 본대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사실 날개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조류의 날개 같은 모양하고는 다를 것입니다.

천상의 세계가 이 땅의 세계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냥 본 것을 이 땅에 있는 모양에 빗대어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사도도 하나님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더라고 표현합니다.

영적인 세계가 우리가 사는 자연세계와 달라서 우리 단어로 나름 표현했지만 정확히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 생전 처음 보는 날개 여섯 달린 천사들이 2절에 보니 하나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 된 때 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데 아직도 하나님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두 개의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합니다.

죄를 짓지 않은 천사일지라도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 거룩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고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은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아버지의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3절에 보면 천사들은 하나님께 대한 찬사도 감히 직접 말하지 못하고 저희끼리 주고 받는 것을 봅니다.

아, 너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뵐 때 마다 절로 이런 찬사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어쩜 그렇게 훌륭하십니까 아무나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죠.

꽤 각별하고 친근한 사이에서나 칭찬도 찬사도 직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거룩하시고 멋지신 좋으신 우리 아버지하고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게 예사로운 일이 아니란 걸 아시겠습니까?

이사야 43장 21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찬송도 부르고 마음껏 감사의 말씀을 올릴 수 있는 특별난 존재들인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재롱도 부리며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때가 있죠?

하나님이 그런 기쁨을 느끼시려고 우리를 자녀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활짝 웃으며 기쁨의 찬송을 드리고 감사의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 드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 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를 체험하는 축복이 우리 예배가운데도 임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지않더라도 하나님은 이사야의 눈과 경험을 통해 성경 속에서 오늘 똑같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장1절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기록되어 있죠.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곧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언젠가 조하0 목사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목사님은 마0마라는 7080 세대의 아이돌 그룹의 리드싱어였습니다.

서울대, 연대 출신이 모인 엘리트 록밴드에다 조목사님의 잘 생긴 얼굴 때문에 인기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조목사님은 음반을 발표하며 많은 히트곡을 내고 스타가 되었지만 연예인의 허무한 인기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공황장애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며 심각한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멕시코의 국경지대로 혼자 달아나 권총을 한 자루 사서 자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형체를 모르게 죽어버리면 가족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죠.

죽을 날을 정해 놓고 떠날 준비를 하던 어느 날 교회 권사님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권사님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아이구 이 사람 큰일 나겠네. 성경을 좀 읽어보게 하시더랍니다.

조목사님이 아니 내가 큰 일 내려는 줄 어떻게 아시나 뜨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권사님 하신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나고 죽기 전에 그럼 성경이나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사서 요한복음 1장 부터 읽기 시작하는 데 5장 쯤에 가니 갑자기 성경의 글씨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글자들이 음성으로 변해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생생한지 아내를 향해 당신 나한테 뭐라고 지금 뭐라고 말했어?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가서 시선이 멎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 말씀이 그대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모든 두려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 말씀 읽기에 빠져 들었는 데 성경의 활자가 마치 활동사진 이 되어 움직이는 것 같은 체험을 하고 성경 속으로 점프해서 들어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즐기던 술, 담배를 하루 만에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번 성질 부리면 끝없이 가족을 괴롭히던 그 성질도 단박에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그의 고백을 빌리자면 주님을 만나고 끊은 것이 백 가지는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고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온 땅을 덮고 만물을 두루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감추어 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고생 하는 것, 작은 신음조차 놓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설교말씀을 통해 주시는 우리가 따르면 축복이 될 길과 방법을 따르며 좋으신 하나님만 신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다음은 하나님의 영광과 마주 본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행동했나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4절에 보면 천사들이 서로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때 성전의 문주가 흔들렸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전에 연기가 충만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느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먼저 자기의 죄를 깨닫고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의 영어 성경의 표현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재앙이다, 난 이제 결딴났다 라고 울부짖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죄인의 자격으로 절대로 봐서는 안될 하나님을 얼떨결에 봐버린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죠.

먼저 오늘 주인공인 이사야 선지자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1장 1절에 보면 이사야가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전통에 따르면 아모스는 아마샤왕의 형제라고 합니다.

이사야가 왕족으로 높은 신분을 가졌다고 추측할 수 있죠.

그는 웃시야왕 부터 시작하여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던 이스라엘 백성들하고는 분명 차별 된 선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임재 앞에 섰을 때 당장 심판이 쏟아질 죄가 드러나 두려워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다니엘서10장 8절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바벨론 총리로의 명성과 아름다운 그의 인격과 총명도 하나님 앞에서는 썩어 빠진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 경험을 한 이사야선지자는 이사야 64장 6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자기 행위와 인격이 더러운 옷과 같은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가 거룩한 하나님 임재 앞에 서 본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란 걸 깨닫는 것이 축복인줄 믿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 앞에 맞딱드린 이 난감한 이사야의 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됩니까?

6절에 보면 천사가 제단 위에 핀 숯을 가져다 이사야의 입에 대고 네 죄가 사해졌다고 말합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제단 위엔 지금 이사야의 죄를 대신한 제물이 타올라야 그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제물이 없으니 이사야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희생 제물 없이 제단에서 타던 숯이 그의 죄를 사라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 제단의 불은 인간의 죄와 악을 소멸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불입니다.

레위기 6장 12절을 보면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레위기1장 8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태울 때 놋그물에 제물을 그냥 놓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나무를 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나무 위에 달려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붙은 이 나무토막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심판을 당하신 우리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사야의 죄를 제거한 핀 숯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희생제물 없이 죄가 사해진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막에서 살펴보았죠.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희생제물이 대신 해 죽어야 죄를 용서받지 않았습니까?

희생제물 없이 죄가 사해진 것은 이사야가 그동안 알고 지켜온 율법으로 상상 못할 일이었습니다.

오늘 이사야가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구원받게 된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의 탄생을 가장 많이 예언하는 선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 모든 심판을 받으셨음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오직 주님의 공로로 영원한 나라 천국의 영광을 상속 받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히브리서 4장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십자가의 도리를 굳게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두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지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죄를 사함 받은 이사야의 감격은 오늘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요구대로 모든 것을 지켜야 했고 매일 속죄 제물이 필요했던 이사야에게 모든 죄가 일순간에 사해진 경험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감격에 얼떨떨하고 구름 위에 뜬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립니다.

8절에 보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대변해 줄 사람을 찾는 주님의 음성에 그는 즉각 자원합니다.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누었던 조하0 목사님은 은혜를 체험하자 사명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자 우선 음악적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가스펠 뮤지컬에 출연하고 찬양 사역을 시작했지만 혹시 하나님이 목사가 되기를 원하시는 건 아닌가 생각하면 아직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며 한창 호응을 받던 조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만일 신학공부가 하나님의 뜻이면 주제곡을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 두 개가 다 무산되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당시 강0우씨와 함께 준비하던 드라마 두 개가 갑자기 다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결단을 못한 그는 드라마 음악을 내려 놓고 이번엔 찬양음반사를 차리는 것으로 사명을 대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만일 신학교 가는 게 하나님 뜻이면 내일 모든 직원들이 한 명도 출근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다음 날 사원들이 다 일이 생겨 단 한 명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한 직원이 전화를 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출근을 못하겠다고 하는 말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기도에 맞춰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셨다는 생각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신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왜 걱정했나 정말 좋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아무 가식 없이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며 부르는 찬양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놀라운 주님의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전 조목사님이 얼굴에 생긴 검버섯을 빼지 않고 콘서트며 방송출연이며 나오는 것을 보고 정말 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그가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란 걸 말해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방법이 참 다양하시죠?

케냐 선교에 일생을 헌신한 임은0선교사라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어느 날 이웃 집 언니의 손에 이끌려 부흥회에 참석했는 데 하필 언니가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하며 강대상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잡고 있던 언니 손을 놓치 못해서 얼떨결에 같이 딸려 나갔습니다.

청년이 된 어느 날 이민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그 때 그 일이 생각나며 강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를 선교사로 보내시려면 성경책을 폈을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이사야 41장 말씀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딱 폈는 데 바로 그 말씀이 딱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미국인 남편을 만나 케냐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선교사로 파송받을 때 조0기 목사님과의 인터뷰에서 자매는 왜 아프리카와 같이 위험한 곳에 가려느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곳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성도님들 모두 동의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과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길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가는 우리의 길이 제일 위태롭고 험난한 길임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오프라 윈프리는 그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보다 아파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남보다 설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보다 부담되는 게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이렇게 이사야 선지자는 자원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냄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러나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촉구하는 음성을 농담으로 알았다 멸망하고 맙니다.

11절의 말씀대로 강대국에 나라를 뺏기고 죽고 남은 자들은 먼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13절의 말씀입니다.

나무가 잘리고 남은 그루터기 보셨지요?

납작하게 남아 있는 그루터기는 단단하게 밟혀져 나무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날 것이라는 소망의 메지지가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폭풍우가 몰아닥치면 이젠 모든 것이 끝났구나 절망감에 간신히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바라던 좋은 것들이 다시는 싹을 티울 것 같지 않은 낙심에 빠질 때가 우리 앞에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낙담함에 있을지라도 우리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임업 용어로 그루터기에서 자라나온 싹을 맹아라고 말합니다.

산불에 모든 나무가 타 죽은 다음이나 벌목 다음에 싹이 나 다시 숲을 이룬 것을 맹아림이라고 합니다.

나무에 있는 대단한 생명력이죠.

그런데 모든 나무가 다 맹아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같은 참나무과 식물들이 죽은 그루터기에서 강인한 새 싹을 티운다고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둘 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것 아세요?

대충이 없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싫어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죽음으로 포로로 끌려가고 밑둥만 남은 그루터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루터기에서 싹을 티우는 거룩한 씨가 있다고 13절에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이 때로 그루터기처럼 남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고목 같은 우리 인생에 새 순을 키워 줄 거룩한 씨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 씨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스가랴 6장 1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를 이렇게 예언합니다.

53장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오직 주님만이 생명이 다한 그루터기 같은 우리 인생에 싹이 나게 하고 꽃이 펴 열매 맺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이사야는 모든 게 보장 된 왕족의 신분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한 거친 삶을 선택합니다.

삼년 동안을 벗은 발과 벗은 몸으로 살며 온 몸으로 이스라엘의 패망을 증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톱에 잘려 죽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이 누릴 천국의 삶을 생각할 때 그에게 죽음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주님께만 영광돌리는 삶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모두 사명자입니다.

우리 가정과 직장과 내 인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내 평생에 단 한 영혼을 구원하든 헐벗은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나눠 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든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답답한 현실만을 바라보면 이사야와 같이 부정한 입술로 불평을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전에 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여전히 우리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계획을 갖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우리를 향한 축복의 사명을 발견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기도하며 나갈 때 실족할 뻔한 우리 걸음이 다시 견고해지고 미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오직 믿음의 도리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실 때 어떤 낙담과 절망 가운데도 새로운 싹을 주시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해주심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