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요셉의 꿈과 고난 (창세기39장19절-40장8절)

남수연 2012. 3. 2. 10:11

 

성경의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많은 영적원리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게도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요셉도 혹독한 역경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역경을 이기고 애굽의 총리가 된 영광 탓에 그의 고난이 좀 약화 되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고난은 왠지 미화되고 좀 낭만적으로도 보이기 마련이죠.

그러나 그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각종 고난의 쓴 맛을 다 맛 본 사람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곧 살해 될 곤경에 빠지는 데 그것이 바로 같이 먹고 뒹굴고 자란 이복 형제들의 손이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낯선 나라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10년 종살이에 모함까지 받고 감옥에 3년을 갇히는 절망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 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가나안 땅에 지독한 기근으로 굶어죽을 상황에 놓인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애굽으로 불러 생존하게 하는 역할이죠.

하나님은 그에게 형제들보다 먼저 애굽으로 가서 온 가족을 초청해 죽음에서 건지는 역할을 맡겼던 것입니다.

히브리노예가 고대문명이 화려하게 꽃피웠던 이집트의 총리가 된 이 4천년 전 이야기가 신빙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009년 9월 25일 이집트에서 요셉이 살던 시대의 많은 동전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실제로 일부 동전에는 성경대로 요셉의 이름과 그의 초상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고고학자 타베트 박사는 동전 앞 뒤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앞 면에는 요셉, 뒷 면에는 사브낫바네아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장을 더 넘기면 창세기41장4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가 요셉의 이름믈 사브낫바네아라고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요셉의 이야기는 실제임이 입증된 것이죠.

다만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이룬 성공이야기 속에서 고난만 좀 빠져 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더 신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게 고난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고난 중에도 도우시고 마침내 뜻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는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를 더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가는 길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이것을 이기고 마침내 축복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들을 구할 지도자로 형제 중에 요셉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그것을 알아 차리도록 어린 시절 별들과 하늘의 해와 달까지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실은 그 꿈 이야기로 화가 폭발한 형들에 의해 미움을 받고 그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죠.

요셉 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현재의 나로 태어나게 하실 때는 우리에게 꼭 맞는 인생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꿈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어렴풋하나마 이 꿈의 그림을 마음에 그려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새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부모라면 자녀들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 갖게 됩니다.

부모는 그래도 자기 자식에 대해 장단점을 제일 많이 알고 재능도 잘 압니다.

이 땅에서 그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하면 우리 애가 참 보람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겠다는 생각들이 다 있죠.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식들이 그 꿈을 갖도록 세뇌도 시키고 은근히 강요도 하기 마련입니다.

자식들이 커지면 대개 자기 주장이 생기며 부모와 충돌하게 되는 일이 많죠.

우리가 부모라도 판단이 불완전하고 자녀들은 아직 어려 편한 길을 원하니 자녀들 인생이 대개는 우리 원했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가지신 꿈은 실수가 없고 잘못 판단 할 수가 없는 줄 믿습니다.

내게 가장 알맞은 인생과 일을 하나님은 이미 계획해 두셨고 거기에 맞는 재능과 성격과 환경도 얼추 맞추셔서 이 땅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신 능력으로 꿈을 성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최우선의 꿈이시죠.

그리고 우리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과 자녀들과 청년들 모두가 주님이 정하신 가장 만족한 진로를 발견하고 그 길로 인도 받길 기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바른 판단력을 갖고 인생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지혜와 인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셉은 일찍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꿈을 통해 깨닫고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어떤 환경과 부정적인 여건이라 해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믿고 따라간다면 그 끝엔 반드시 성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저도 반드시 목회에 성공할 것을 소망하며 달려가고 있으니 우리 성도님들도 반드시 경영하는 모든 것에서 성공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아멘.

요셉은 모든 역경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주님이 주신 위대한 계획을 성취할 수 있었던 줄로 믿습니다.

0용기목사님이 불광동에서 가마니를 깔고 천막교회를 할 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영양실조에 누렇게 뜬 14살 소년이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다 닳아빠진 얇은 옷을 입고 벌벌 떠는 소년의 손에는 까치 집 처럼 지저분한 머리에 콧물을 질질 흘리는 여동생이 붙들려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소년이 시력까지 잃어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걸 알았습니다.

조목사님 교회에서 병자들이 많이 나았다는 소문을 들고 눈을 뜨기 위해 천막교회를 찾아왔던 것이죠.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 생각이 들던지 간절히 기도하고 안수했는 데 눈이 떠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눈을 고치지 못했는 데 소년이 천막교회에 머물며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놀랍게 축복하리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결국 하나님의 손을 잡고 그 꿈을 좆아 미국으로 건너가서 꿈을 이루고 장애인으로서 최초로 백악관 정책차관보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지난23일 소천하신 0영우박사님입니다.

혹시 내겐 꿈이 없다고 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런 분도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나를 복된 인생으로 설계하셨다는 것을 믿었는 데 우리가 더 나은 인생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어떤 형태이든 축복 된 인생을 우리에게 계획하신 줄 믿습니다.

1953년 예일대학교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다음 내용의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당신은 인생목표를 구체적으로 적은 종이를 갖고 있습니까?’

조사 결과3%의 학생들만 그렇다고 말했고 97%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20년이 지난 1973년 예일대학교는 그 학생들의 대한 경제력을 다시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목표를 확실하게 가졌던 3%의 재산이 나머지 97%의 재산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통계가 나왔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꿈꿀 때 우리 인생이 반드시 성공하지 않겠습니까?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내 처지가 바라는 것을 이룰 아무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루실 모든 능력이 있으십니다.

기도하며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묻고 미래의 그림을 구체화시켜 가시길 축복드립니다.

지금 아무 것도 없다고 무작정 사는 삶에는 더 나은 소망이 없습니다.

하버드대학 심리학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정년퇴임한 미국인 중 60%가 근근이 살아가고 27%는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은 모두 목표가 없거나 불확실한 목표를 가졌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가정을 위한 성공적인 꿈을 꾸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고 기도로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아님을 갈수록 느끼실 것입니다.

꿈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밥벌이하기도 힘겨운 세상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우리 자신도 꿈이 있어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가 우리의 길을 묻고 매일 인도를 구하십시오.

반드시 우리의 길을 비춰주시고 안개와 같이 불투명한 미래에 우리가 좇아 갈 축복 된 꿈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 비전을 받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요셉과 같이 그 꿈을 이루시는 성도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요셉이 꿈을 이루는 여정에 고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7살의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 애굽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넘겨지게 되죠.

사랑받던 부잣집 아들의 인생이 곤두박질 쳐 종이 되었을 때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라고 기록합니다.

분명 잘못 기록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해 가실 때 잘될 때 만 형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밝을 때만 아니라 어두움에 던져질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꼭 믿으시길 축원드립니다.

비록 종의 신분으로 주인을 섬겨야 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하게 하셔서 주인의 신임을 받게 합니다.

결국 주인 집의 모든 재무를 요셉이 담당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분명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했는 데 어느새 꿈을 향해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떼나 쫓아다니던 요셉이 이집트 바로왕의 친위대장 집에서 가정총무를 맡으며 장차 재무장관이 될 경영 수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혹한 처지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 일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든 하나님을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생각지도 못한 미래의 큰 자산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케 되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한 요셉의 태도도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과 고난 가운데 있든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부분,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 큰 자식을 밥벌이도 못하는 무능한 인간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부모는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을 절대 대신해줘선 안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죠.

우리 일터에서건 주님의 일이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셉이 종의 신분으로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인정을 받게 하고 그의 손으로 하는 일에 손실이 없게 축복하시는 것이죠.

성도님들이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충성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할 때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수고하여 얻은 모든 재물이 흩어지지 않고 알맞게 모이고 보람있게 쓰여지길 축복드립니다.

요셉은 10년 동안 이렇게 종의 자리지만 형통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나 성도를 넘어뜨리려 하는 악한 세력의 유혹과 시험의 손길은 언제고 우리 가까이 틈을 엿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부분입니다.

하필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마음을 두고 그를 유혹하며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고난 가운데에서는 유혹에 더 약해지기 쉽습니다.

어차피 종살이 노예 신분이고 주인집 마님의 요청을 들어주는 게 종으로 마땅하다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죠.

그러나 고난에서 벗어나 꿈을 이루려는 사람은 죄와 악을 이겨야 합니다.

죄악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떠나 인간적인 판단대로 행동하면 그것이 후에 더 큰 고난을 자초하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직장에서의 업무도 기업을 운영하는 일에도 죄악과 불의가 섞이면 반드시 결말이 안 좋은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악한 방법과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절대로 동시에 일하시지 않는 것을 기억하시 바랍니다.

결국 어느 것을 더 신뢰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죠.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었고 반드시 그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에 그 길에 죄를 혼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운 방법을 선택할 때 당장은 상황이 더 악화되고 더 망가지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집요하게 요셉을 유혹하던 보디발의 아내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요셉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고 요셉은 그의 손에 옷을 벗어둔 채 도망쳐 나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욕망을 채우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는 그를 집안 사람들과 남편에게 고발하고 요셉은 어이없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인생이 또 한번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죠.

졸지에 주인집 아내를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친 파렴치범이 되 버리고 노예도 부족해서 깊고 깊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버린 것입니다.

시편105장18절에서 요셉의 고난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다

쇠사슬에 꼼짝 못하게 매여 어두침침한 감옥에 던져지고 무거운 감옥 문이 철커덕 잠길 때 요셉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우리가 조금만 남의 오해를 받아도 잠을 못이루고 가슴이 진정이 안되는 데 요셉의 심정이 얼마나 분하고 또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얼마 전 40년만에 살인 누명을 벗게 된 0절교회 0원섭목사님의 이야기가 보도되었었죠.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더군요.

0목사님은 박정희대통령이 5.16쿠데타에 성공한 직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가락동에서 전도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여름성경학교현수막을 직접 제작했는 데 주제가 모여라 동무야 여름성경학교로 였습니다.

동무라는 말 때문에 다음 날 파출소로 불려가서 취조를 받고 왕십리 분소로 끌려가 엄청나게 매를 맞고 풀려났습니다.

그 충격으로 전도사생활을 접고 한 동안 사진 활동만 했습니다.

그 후 돈을 벌어 목회를 하기 위해 춘천으로 가 만화가게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TV가 흔치 않아서 시청권을 팔고 아이들에게 여로란 드라마나 동물의 세계 같은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경찰서장의 열 한살 먹은 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주머니에서 만화가게의 시청권이 나온 것입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박정희대통령은 이런 악질적인 범죄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정해 놓은 시한 내에 반드시 범인을 잡으라고 지시합니다.

당연히 정목사님이 용의자로 잡혀가게 되었죠.

그리고 온갖 폭행과 고문을 견디지 못해 5일 만에 거짓 자백을 하게 됩니다.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 판명 되었는 데 B형인 목사님을 범인으로 확정하고 무기형이 선고된 것입니다.

정말 기가막힐 일이죠.

분하고 억울해서 펄펄 뛰다가 죽을 상황이죠.

그러나 목사님은 감옥 안에서 죄수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검정고시교육도 시키며 모범수로 생활하다 16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됩니다.

그 사이 생계를 위해 돈을 벌러 다니던 사모님은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었습니다.

목사님은 석방 후 자신의 누명을 벗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던 중 동아일보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도움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이번에 드디어 무죄판결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정말 인생에서 이런 덫에 걸리는 것은 생각조차 끔찍한 일이죠.

그런데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이런 상황이 오늘 요셉에게 닥친 것입니다.

고난이 주는 의미가 너무 많아 때마다 원인도 다르고 목적도 다릅니다.

요셉처럼 안락한 종살이에 만족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목적을 잃었을 때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 힘으로 갈 수 없는 능력 이상의 삶으로 인도하실 때 고난의 문을 통과한 후 축복하기도 하십니다.

확실한 것은 모든 고난은 우리의 영혼과 인생에 유익을 주기 위해 허락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감당할 만한 고난만을 주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 의미심장한 단어가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0절을 보면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

사기꾼이나 생계형 범죄자들이 아니라 왕의 정치범들이 수용되는 곳입니다.

요셉이 왕의 친위대장 집에 팔려간 것도, 누명을 쓰고 노예의 신분이면서도 왕의 신하들이 갇히는 옥에 갇히게 된 것도 다 우연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때 당장은 눈치 채지 못하게 군데 군데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하십니다.

1975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어느 날 미국 전 법무장관 손버그는 우산을 쓰고 하얀 지팡이에 간신히 의지해 학교로 향하던 낯선 한국인 `맹인' 유학생을 차에 태워주게 됩니다.

그날 그들의 30년 우정이 시작되었고 그가 0영우박사를 부시대통령에게 추천 해 백악관 차관보에 오르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역경 속에 이겨나갈 방법과 도움의 손길도 예비하시는 줄 믿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감옥에 던져진 상황에 이번에도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아무리 빛이 들지 않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것 같은 험악한 일이 일어났다 해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으면 형통한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에게 의미 없는 고난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소망을 버릴 수 밖에 없는 감옥에 갇힌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절에 보니 하필 그 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하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 또 하나의 복선이 깔린 문장이 있죠?

3절에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그들이 하필 요셉이 갇힌 감옥에 함께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위대장은 아내를 겁탈하려 했던 그 요셉에게 이 둘의 시중을 맡겨 섬기게 합니다.

분명 절망은 더 깊어지고 환경은 더 어려워진 것 같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곳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 기록된 대로 두 관원장이 어느 날 꿈을 꾸고 괴로워할 때 그 꿈을 해석해주게 되는 것이죠.

요셉의 꿈 해석대로 한 사람은 사형을 당하고 한 사람은 복직이 됩니다.

이것이 줄이 되어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에 오르게 되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빨리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 된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방법이 아니라면 언제 요셉이 애굽에 유학을 와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진급시험을 보고 등용되어 언제 총리가 되겠습니까?

개콘 유행어로 안 돼, 아니겠습니까?

나이지리아의 한 소년이 현 우리나라에 와서 국무총리가 되는 것 보다 요셉의 이 상황이 더 불가능한 일이죠.

하나님은 이 모든 고난을 통해 요셉을 훈련시키고 속성으로 연단을 시키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혹독한 시련 가운데 있다면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 고난은 우리를 연단시켜 반드시 더 나은 축복의 삶으로 인도할 줄을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 어떻게 이런 고난을 이겨냈을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의 은혜죠.

하나님은 절망 중에 우리가 쓰러져 영 망하라고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의지해서 낙망하지 않고 견디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관계이든 믿음은 교제에서 옵니다.

알지 못하는 대상을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죠.

요셉이 혹독한 시련 가운데 절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신뢰할 만한 교제가운데 있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요셉이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했던 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본문8절에서 요셉이 관원들에게 해석은 하나님께 있으니 꿈을 말하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없다면 뭘 믿고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듣고 기도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런 신령한 지혜와 명석함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소홀하면 삶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지고 미래도 더욱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요 빛이라고 하는 것이죠.

말씀을 꾸준히 읽으며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성도들에겐 어느 덧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남다른 지혜와 통찰력이 생깁니다.

학력이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매일의 경건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과 능력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예지력이 있었는 지 아십니까?

그는 죽을 때 유언하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실 것이니 그 때 자기의 유골을 메고 가나안에다 안장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3장 19절에 모세가 그대로 행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그림을 다 보고 있었다는 것이죠.

고난가운데 혹은 우리의 평범한 삶 가운데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문제의 열쇠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오는 풍성한 은혜와 기쁨이 얼마나 좋은 지 말로는 절대 표현하기 힘듭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더욱 사모하고 지혜와 총명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 두 번 직장이나 사업이나 건강으로 실패를 하고 나면 어느새 신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이런 시련이 우리 인생에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면 오히려 염려와 근심에 빠져 우을증과 공황장애 같은 또 다른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지시길 축복드립니다.

어려운 환경과 시련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이 모든 두려움과 고난을 이길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죠.

시편105장에 18절에서 요셉의 고난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하나님의 때가 되고 그 뜻이 이루어질 시기까지만 고난이 있었던 것이죠.

우리 인생 가운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닥치는 시련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시편119장71절은 말씀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리고 로마서8장 18절의 말씀으로 축복드립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인내로 고난을 이기시고 꿈을 이루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