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다니엘의 예언 (다니엘서12장1절-13절)

남수연 2012. 6. 13. 14:43

성경은 예언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예언들은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다 이루어졌습니다.

성경 예언의 결정판은 첫째는 인류를 구원 할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한 예언들이고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과 인류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죠.

우리는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 중 가장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주시해야 하고 말씀을 통해 깊이 있는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올 것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0년 후다 30년 후다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측이 가능하다면야 도적같이란 말이 맞지 않죠.
성경적인 종말에 대해 이해하려고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이나 읽어보지만 아무리 읽어도 뭐가 뭔지 참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가 곧 내려놓게 되죠.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예언해 주신 내용이라면 주신 이유가 있을 줄 믿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마지막까지 이 글을 봉함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신약의 계시록에서는 때가 가까웠으니 이 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다니엘의 예언도 그 봉함했던 내용들이 풀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읽고 깨닫게 하실 목적이 없다면 뭣하러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겠습니까?

분명히 계시록에도 기록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5백년 전 일이고 예언의 성취는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예언의 성취가 코 앞에 임박한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여러 징조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종말에 대한 예언은 시간에 맞춰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리한 해석만 하지 않고 배워야 합니다.

성경적 종말의 시나리오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예언을 통해 믿음을 굳게 하고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알고 깨닫고 말씀대로 사는 것 만큼 우리 믿음도 성장합니다.

말세에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 것도 평안의 때 안전한 이 시대에 우리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가라는 주님의 격려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시대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기를 축복드립니다.

종말론적인 거시적 세계관을 갖고 우리 인생이 어느 시점에 있는지를 분별하며 항상 깨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먼저 본문의 전체적인 배경을 훑어 보겠습니다.

다니엘서를 기록한 사람은 다니엘이죠?

본문의 기록연대는 주전 5백년대 입니다.

그가 환상을 본 장소는 이스라엘이 아니고 바벨론제국의 힛데겔강가입니다.

오늘 날 티그리스강으로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죠.

다니엘은 이스라엘 왕족출신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가게 됩니다.

다니엘은 정말 위대한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살아났던 이야기를 우리가 다 알고 있죠.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을 받고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고 여러 왕조를 섬겼던 정치인입니다.

특히 이상과 꿈을 해석하는 은사를 받았고 그의 노년에 하나님이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의 운명과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를 환상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의 마지막 때를 보여주셨다는 것이죠.

신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들이 역사의 마지막을 예언했지만 다니엘의 예언은 더욱 구체적이고 집중적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도 계시록의 예언과 결부시키며 살펴볼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구조를 보면 1장부터 6장까지는 바벨론 왕궁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장부터 12장까지는 하나님의 사자가 보여 준 환상과 앞으로 될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대략은 장차 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킬 페르시아가 일어날 것과 그 뒤를 이은 메대란 나라와 로마제국이 등장하고 각축전이 벌어지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왕국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알렉산더대왕의 거침없는 정복전쟁과 그의 갑작스런 죽음과 클레오파트라 이야기까지 기가 막히게 정교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세계사와 맞춰서 읽다보면 성경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한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과의 큰 전쟁을 예고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전체 환상과 예언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첫 째, 인류역사의 종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비기독교인들은 이 땅이 영원토록 지속되리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과 세상에 종말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사야46장10에서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일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전 세계를 고통 속에 몰아넣을 가공할만한 전쟁에 대해 여러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아직 네 천사가 땅 사방의 네 모퉁이에서 전쟁을 상징하는 바람을 붙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막기 힘든 전쟁 본능을 보면 진작에 3차, 4차, 5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자멸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가 차기까지 역사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단지 마지막 날 일어나는 일들을 미리 보고 기록한 것이 아니고 그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이 전쟁의 배후에 있는 악한 세력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신다는 것이죠.

요한계시록 9장 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이로 인해 사람 삼분의 일이 죽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계시록16장16절에는 이 전쟁이 일어날 장소를 지목합니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인류 최후의 전쟁의 격전지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아마겟돈지역은 구약시대 부터 중동의 많은 민족들의 전투가 빈번했던 곳입니다.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우는 중동에서는 이미 다섯 번의 중동전이 일어났죠.

계시록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앞으로 이곳에서 마지막 전쟁이 발발될 것입니다.

이 전쟁에 세계가 함께 전화에 휩쓸리고 큰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며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이죠.

중동 지역은 세계 석유매장량의 55%를 차지하며 세계의 주유소라 불립니다.

실제 중동전이 다시 일어난다면 오일쇼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란의 핵보유 시도로 인한 이스라엘과의 갈등으로 두 나라는 반드시 충돌할 거라고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란발 오일쇼크가 오면 유가는 70%이상 치솟게 된다고 하죠.

이미 세계의 강대국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자국에 유리한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북한에서 조차 4차 중동전에 개입해서 이집트 군의 전투를 도왔다는 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원하던 원치 않던 마지막 중동전에 뛰어들겠지만 결국 이 전쟁으로 세계3차대전이 발발하게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측이고 성경예언의 한가지 해석 입니다.

3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 경우를 가상해서 만든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정말 두려움이 스멀스멀하게 다가오는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영상의 시작은 슬프고도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주는 배경 음악 이 깔리고 평온한 일상 속에 어린 학생들이 공을 차고 학교에서 맑은 눈망울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바쁜 발걸음으로 분주히 오가고 도로마다 가득 찬 차들은 서서히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의 눈에 여기 저기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탄도미사일의 하얀 연기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 장면을 바라보다 우왕좌왕하며 뛰기 시작합니다.

핵폭탄의 가동장치들이 열리고 각 나라는 다투어 핵 폭탄을 쏘아 올립니다.

거대한 핵 폭풍과 함께 고층 빌딩도 자동차도 종잇장 처럼 구겨져 날라가버립니다.

창문으로 무심코 이 광경을 바라보던 여성의 모든 살가죽이 벗겨져 사라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겨지는 영상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스가랴가 14장12절에서 예언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 속에 살아남은 몇이 붙들고 오열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이런 전쟁이 지구 마지막 시기에 실제 일어날 것을 생각하니 평온한 이 세상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장면을 본 다니엘이 식음을 전폐했던 것 같습니다.

8장27절에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오늘 본문 1절이 이 마지막 전쟁에 대한 예언입니다.

개국 이래로 없었던 큰 환난이 있을 것이고 하늘의 군대장관인 미가엘이 일어나 악의 세력과 싸울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우리에게 역사의 마지막이 반드시 올 것을 알고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갖고 대비하라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종말의 시나리오를 잘 이해하시고 항상 천국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는 이 마지막 날은 곧 우리의 구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이 환난이 있을 때 예정되었던 성도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 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우리는 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인 줄 믿습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난리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면 실감이 날까요?

지난 일본 동북부 지진 때 미야기 현의 한 도시는 주민 7만명이 거주하고 있던 중 쓰나미 참사를 당했습니다.

사고 후 가족들의 생사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든 시청 게시판에 붙어있는 생존자 명단은 8,340명 뿐이었습니다.

생명책 명단에 우리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게 그런 기분일까요?

영생과 영벌로 구분되는 최후의 순간에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것은 정말 우리 전 인생을 통틀어 경험하지 못한 가장 꿈같은 기쁨이고 감격이고 영광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울고 있을 거라고 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흥분해서 돌아왔을 때 누가복음10장17절에서 말씀하셨죠.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미 죽었던 사람들도 깨어나 영생과 영벌로 나뉘어 질 것을 말씀하고 있죠.

성경은 일관되게 이 사실을 증언하고 예언하고 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항상 점검하고 돌아보도록 권고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은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따라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믿음을 잘 간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 큰 구원의 진리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행적 가운데 천국에서도 유효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의 성숙을 이룬 지혜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한 그 열매입니다.

천국에 간 것도 갚을 길 없는 은혜인 데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섬기고 봉사한 것을 영원히 기념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세상이 쫒는 돈과 명예와 쾌락과 행복을 최고의 목표로 삼지 않고 예수님을 섬깁니까?

바로 우리의 모든 수고와 사랑과 충성을 계산하고 계신 주님의 상급과 칭찬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일이나 어버이날에 자식들이 손에 들고 와 내밀었던 작은 선물들 다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우리 딸이 선물했던 부롯치며 목걸이며 향수며 다 기억합니다.

심재숙집사님이 다혜자매가 미국에서 돌아올 때 마다 선물을 사오면 꼭 저한테 자랑하시더군요.

다혜가 어릴 때 쓴 공책 하나도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이 그렇지요.

유치원 때 우리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달아줬던 종이 카네이션 하나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게 부모들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드린 예배를 낱낱이 기억하십니다.

팍팍한 인생 속에서 구별하여 드린 조그마한 헌신도 기특해 하고 크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었던 전도의 말 한마디를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고 복음을 전하는 마지막 때를 보내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세 째로 마지막 때에 당할 지극히 큰 환난을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마지막 때 성도들을 향한 큰 환난이 얼마나 극한 것인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질 때 까지 계속될 거라고 합니다.

11절에 보면 그 때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예배가 금지가 될 영적인 큰 박해를 의미합니다.

이 예언은 이중적인 예언입니다.

한 가지 예언으로 여러 시대의 여러 사건에 반복해서 예언이 적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 이루어진 사실을 보며 뒤에 있을 사실도 확실하게 일어날 것을 더 강력하게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첫 번 째로 이루어진 것은 다니엘이 죽고 3백년 뒤 주전 140년에 있었던 로마의 안티오쿠스4세의 침략 때입니다.

안티오쿠스4세가 2만2천명의 군대를 몰고 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많은 유대인을 살육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을 침략해 성전에 제우스신상을 세우고 유대의 모든 제사와 절기들을 금지시킵니다.

그리고 제물로 바쳐서는 안 돼는 돼지의 피를 성전 제단에 뿌리며 망령 된 행각을 벌입니다.

그는 안식일 예배와 할례를 금하고 율법서를 불태웠고 금지한 것 중 한 가지라도 어기면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의 탄합에 많은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반면 끝까지 안식일을 지키며 저항한 사람들은 잔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이 두 번 째로 적용 된 것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때입니다.

예수님이 다니엘의 예언을 다시 인용하시며 이 환난을 예언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장14 다니엘의 기록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승천하신 후 40년 뒤 로마의 디도장군이 성전에 황제의 깃발을 꽂고 성전을 짓밟고 10만 이상의 유대인을 죽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한 많은 성도들이 로마군 진입 직전에 예루살렘을 탈출해 생명을 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예언이 두 사건에 정확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완전한 종말에 대한 부분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이 또 다른 세 번 째 앞 일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죠.

마지막 세 번 째 사건은 인류 종말의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때에도 11절의 말씀대로 매일 드리는 제사 곧 예배를 금지하고 극심한 성도의 박해가 삼년 반 동안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일어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를 폐하고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고 계시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왜 사탄의 세력이 유독 예배를 금지하는 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사탄이 집중적으로 훼방하는 것이 성도에겐 가장 중요한 것임이 뻔하지 않습니까?

예배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속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예배로 언약을 맺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최우선 순위를 우리는 예배에 두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이, 예배드리는 가정이, 예배드리는 민족이 복을 받습니다.

주일의 개념없이 쉬지 않고 일하는 민족치고 잘 사는 민족이 없습니다.

이미 각 처에서 예배가 금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공립학교에서 성경과 기도를 금지한 결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공립학교 내에서 종교 활동을 할 수 없고 일요일에는 예배장소로 쓰일 수 없다는 법적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뉴욕시 공립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던 대부분의 교회들에 퇴거 명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크리스마스(미사)란 말을 못하게 하고 휴일이란 뜻의 홀리데이라고 하는 나라가 청교도의 믿음으로 시작했던 미국입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미션스쿨에서 예배가 금지 되고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0노현교육감이 공표한 학생인권조례16조에 따르면 학교는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 때문입니다.

예배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 나중에 직장을 정할 때 주일성수하지 못하는 곳은 기도해봐야 합니다.

김0환 목사님이 군시절에 취사병이었다고 합니다.

이등병 취사병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손에서 물이 마를 날이 없고 더운 데 어찌나 고생을 했는 지 모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대장의 개인 요리사로 뽑혀가게 된 것입니다.

방도 따로 있고 고기고 쌀밥이고 마음대로 먹으며 연대장 밥만 해주면 되니 얼마나 기가막힌 축복입니까?

주일이 가까워 연대장에게 저는 꼭 교회에 가야 되니 허락해주십시오 말씀드렸습니다.

연대장이 눈을 크게 뜨더니 신앙생활은 평상시 하고 일요일엔 내가 서울 올라가야 하니 자넨 당연히 여길 지켜야지 하더랍니다.

군인이 명령에 불복할 수도 없고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죠.

그날 밤 새벽4시까지 하나님 제가 언제 쌀밥먹여 다랄고 했나요, 전 예배드려야 하니 제발 절 여기서 빼내주세요 하며 울며 불며 매달렸습니다.

새벽에 간신히 잠이 들었는 데 전화가 울려 깜짝 놀라 깨서 보니 해가 중천에 떠있는 것입니다.

연대장이 밥도 못 먹고 출근을 한 것이죠.

전화에서 육두문자가 날라오고 잠시 후 집 앞에 짚차가 대령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다시 부대 취사병으로 돌아가는 데 왜 그리 눈물이 나고 감사한지 동료들은 억울해서 우는 줄 알았겠죠.

그 분의 그런 원칙과 믿음이 결국 하나님의 복을 받아 주의 일을 크게 하고 높여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들 살아 생전에 법적으로 예배가 금지되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불이익과 체포명령이 내려지는 때가 온다면 그래도 교회에 가시겠습니까?

누가 자신 있게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와 자녀들의 세대에 이런 시련이 없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10절에 보면 이런 시련으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끔찍한 환난이 있어도 이미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믿는 바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나의 선택과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생명책에 우리를 기록하고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에서 뺏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환난의 시기에 우리 믿음을 어떻게 장담합니까?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 손에 우리가 다 붙들려 있기에 악한 자가 우리 영생을 결코 뺏아갈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히려 우리 인생에서 이런 끔찍한 환난의 때가 온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우리 믿음을 더욱 정결하고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성도에게 이런 고난과 환난이 늘 삶 속에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마땅히 정결하고 거룩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를 깨끗하게 씻기시길 원하십니다.

더러운 옷을 입히고 더럽혀진 아이 얼굴을 씻기지 않는 그런 부모는 없습니다.

전도서 7장 3절은 말씀하죠.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세상의 형통함 보다는 고난과 역경을 지날 때 우리 믿음이 연단이 되고 정결하고 깨끗한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곧 다가올 마지막 때 예수님의 신부로 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거룩해져가는 것이죠.

영광스런 주님 앞에 우리가 신부로 설 때 우리 모두는 불구자나 다름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손을 활짝 펼치고 계신 주님 앞에 설 때 최소한 우리를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고 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럽혀진 옷을 입고 죄로 오염된 모습으로 고결하고 아름다운 신랑 곁에 선다면 우리가 너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루 하루 우리가 죄를 멀리하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내 죄를 씻으려고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을 이기고 계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을 멀리하고 성경이 말하는 죄를 좀 짓지 않으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할 때만 성결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사랑해서 손을 활짝 벌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어디서든 십자가를 보실 때 마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셔서 손을 활짝 벌리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임을 생각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날마다 현재 진행형으로 느껴질 줄 믿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좋고 감사할 때 다른 사람에게 우리 신랑 되신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사소한 믿음의 행동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참 힘이 듭니다.

오늘 이렇게 하나님아버지 앞에 나와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 성도님들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 날 이 큰 환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어차피 심판을 통해 영원한 형벌을 받을 텐 데 왜 마지막 전쟁과 환난을 허락하시겠습니까?

믿는 성도들의 연단과 믿지 않는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죠.

그러나 계시록에 기록 된 천재지변과 전쟁을 통한 징계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방했다고 슬프게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10절의 말씀처럼 악한 사람은 여전히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박국2장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마지막 때엔 더욱이 미혹하는 세상에서 한 발 나와서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고통당하는 때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시험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를 통해 더욱 하나님께 나가고 믿음을 굳게 하십시오.

종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이런 고난을 통해 더욱 정결하게 하며 깨끗하게 되어가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거룩한 신부가 되도록 죄를 멀리하려는 귀한 성도님들의 마음에 더욱 견고한 믿음과 축복을 주셔서 마지막 때 모든 시련을 넉넉히 이기게 해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