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뜻을 정한 다니엘과 세 친구 (다니엘서1장1절-9절)

남수연 2011. 10. 4. 18:16

성경 속에서 우리는 참 부러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환란의 때에 당당하게 그 믿음의 실력을 인정받고 이 땅에서우리가 좋아하는 성공과 명예와 축복을 보상 받는 것을 보게 되죠.

우리가 읽은 본문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적국에 포로로 끌려간 상황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장과 두려움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당당하게 하나님을 신앙한 청년들이 불신과 세속에 포위 된 현실 속에 있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줄믿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은혜를 받고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니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속으로 깊이 한 번 들어가 오늘 기록된 말씀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먼저 본문의 시대적 배경을 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 중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본문은 멸망을 앞 둔 남쪽 유다의 형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 등장하는 여호야김왕에 대에 성경은 다른 업적은 볼 것도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백성을 타락시킨 악한 자라고 평가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인류 구원의 뿌리가 되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가나안의 우상들을 선택하게 되죠.

우상과 미신 숭배의 결과는 비참합니다.

미신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미혹하는 악한 영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평생 억압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최근 지진과 원전사고로 혼란에 빠졌던 일본 사람들이 심각하게 미신에 빠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일본경제신문에 의하면 일본 최대의 점 콘텐츠제공업체인 미디어코보사의 2011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87억6000천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도쿄의 길거리 점집 중 제일 유명한 점술가 '신주쿠마마'를 만나려고 손님들이 줄을 선다는 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점의존증이라고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점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병리현상이죠.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려고 점집을 찾았다 어느새 습관이 되고 마음 속 두려움은 오히려 점점 커지게 됩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시 점집을 찾는 일을 반복하며 한 달에 400만원 넘게복채로 쓰는 사람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미개하고 원시적인 부족들의 경우 지금도 악한 영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위협하고 실제 주술을 통해 사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그들과 영적인 큰 전쟁을 치르는 경우도 많이 있죠.

가나안의 미신종교들도 사탄의 세력 아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음엔 단순히 오늘의 운세 보듯이 우상 신전을 찾아다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신 종교에도 상당한 이적이 나타납니다.

곧 그들은 미혹하는 악령의 역사로 사이비 종교에 빠지듯 걸려든 것입니다.

미신에 깊이 빠진 사람들의 경우 인격이 손상되고 비정상적인 불안감에 빠져 있는 것을 봅니다. 어제뉴스에도 무속인의 점괘가 나쁘다고 칼을 휘두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이런 우상과 미신 종교에 빠져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나라 전체가 심각한 불의와 비정상적인 범죄로 더렵혀지자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선지자들을 통해 백성에게 계속 전달됩니다.

그러나 무지한 백성들로부터 왕에 이르기 까지 경고의 메시지는 농담거리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오늘 바벨론 왕에게 패배한 여호야김왕 만해도 그렇습니다.

당시 우리야란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경고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이 그를 잡아 죽이려고 하고 선지자는 애굽까지 몸을 피신해 도망합니다.

예레미야26장23절을 보면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기가 막힌 왕 아닙니까?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거절한 그들은 결국 경고한 대로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나라를 뺏기고 맙니다.

이 악한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는 역대하 36장 6절을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까지 약탈 해 성전 기구들을 싣고 의기양양하게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고 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고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역사도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패배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대적이 승리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의도가 역사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이유 없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야김이 전쟁에 지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적인 왕이 된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거절하고 회개하라 촉구하는 주님의 사랑을 악으로 갚은 결과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왕족과 귀족과 쓸 만한 인물들은 모두 바벨론에 볼모로 잡혀가고 맙니다.

오늘 이 네 청년들이 그렇게 해서 바벨론에 잡혀 오게 된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그 중 뛰어난 소년들을 골라 바벨론의 학문을 가르치고 왕궁에서 자기를 보좌할 인재로 키웁니다.

선택 된 소년들에겐 왕의 상에서 나온 진미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돌한 네 청년이 하나님께 바쳐진 마음을 우상의 제물로 더럽힐 수 없다고 왕의 음식을 거절하기로 뜻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있을 법한 얘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혀가 살아있는 것도 다행이고 왕의 사람이 될 기회가 주어진 것도 하늘이 내린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걸 일컬어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때 다니엘의 나이는 겨우 15살 정도로 추정합니다.

본장21절을 보면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고레스 원년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이 끝나고 본국으로 생환 된 때입니다.

다니엘이 85세까지 살았다고 생각해도 잡혀갔을 때 나이가 15살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어린 청년들이 어떻게 목숨을 내건 뜻을 정했는지 참 기특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미 나라는 빼앗겼고 누가 보건 하나님은 패배했고 바벨론의 우상 신 마르둑이 승리했다고 볼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넘기심은 이미 그들을 떠났고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무모하게 보일 믿음의 도전을 시작했고 다니엘서 내내 그들의 도전은 계속 이어집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보여준 맹랑하고 당찬 신앙이 너무 신기해 그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길 원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거름더미가 되도록 짓밟히고 살육당한 전쟁을 눈으로 목격하고 이곳에 끌려 왔습니다.

1000킬로가 넘는 거리를 4개월 이상 걸어서 끌려갔을 바벨론이 얼마나 두려운 곳이었겠습니까?

게다가 느브갓네살 왕의 궁중에서 특별 관리를 받게 된 이들이 소신껏 행동하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들이 오늘 무모하리 만큼 용기 있는 결단을 하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벌리신 하나님이 그 손을 거두시자 그들에게 즉시 닥친 것은 패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이 명백하다면 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결사항전의 믿음을 보이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켜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면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자기 혼자 왕의 진노를 각오하고 진미를 거절하고 박한 식물을 먹는 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어찌 보면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무도 포로 된 그들이 왕의 음식을 먹는다고 뭐랄 사람이 없을 텐데 무엇이 이 청년들로 죽음을 각오한 뜻을 정하게 한 것일까요?

그것은 이 어린 청년들의 하나님께 대한 의리이고 우상을 섬기다 멸망한 민족에 대한 거룩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눈에 보이는 우상의 집을 드나들며 복을 비는 비루한 모습을 그들이 보며 자랐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돌아서셨고 그 땅에 웃음과 행복도 사라졌습니다.

자기 백성에게서 돌아서는 하나님의 뒷 모습을 믿음의 젊은이들이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쏟아 부은 진노보다 더 쓰라린 하나님의 아픔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하나님아버지를 여전히 사랑하고 신뢰하는 자기들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힘없이 쳐진 아버지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들이 오늘 뜻을 정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자신의 믿음을 더럽히지 않으려한 것은 결코 이 땅에서 잘되고 복 받는 것을 계산한 행동이 아닙니다.

왕의 하사품을 거절한 오만방자해 보이는 행동의 결과로 그들이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냥 하나님 편에 있고 싶은 것, 그들을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자신의 가슴을 열어 그 사랑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게 그들의 마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 계십니까?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 돌을 던지는 무지한 사람들 앞에서 아파하시는 주님과 함께 서 계시겠습니까?

주님의 고난이 바로 내 죄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만이 처지에 상관없이 주님 편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하는 것은 더디기만 하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원망의 탄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청년들이 맨 발로 포박되어 먼 길을 끌려갈 때 처량한 처지에 왜 눈물을 흘리지 않았겠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 때 6백만의 유태인이 학살되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엘리 위젤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밤이란 소설에서 산채로 용광로에 던져지고 교수형에 처한 어린이가 30분 넘게 생과 사를 넘나들며 사투하다 죽는 현장을 기록합니다.

유대교를 신봉하고 탈무드를 공부하던 그는 20세기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학살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죽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나는 원고요, 그는 피고다"

똑같은 상황에서 오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망국의 슬픔을 삼키며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리고 죽겠다고 각오합니다.

청년들이 오늘 우리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혹독한 환경과 시련이 온다 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 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든 환경은 하나님의 방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잘못 평가하지도 않으십니다.

고난과 실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주님의 은혜를 힘입고 끝까지 실마리를 풀어가는 사람에게 결과는 승리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도 낙심해 지친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여전히 하나님 편에 서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오늘 다니엘과 친구들이 뜻을 정한 두 번째 이유는 그 음식이 결국 바벨론의 종이 되게 할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소년들이 지급받은 음식은 바벨론 왕이 그들의 신 마르둑에게 성대하게 제사하고 물려낸 것입니다.

함께 발탁 된 유대 청년들은 보장 된 기름진 식사와 왕궁의 식물들이 사뭇 만족스러웠을지 모릅니다.

한창 혈기가 왕성한 청년들에게 포로 신분으로 상상 못할 고기 반찬과 포도주가 얼마나 끊기 힘든 유혹이었겠습니까?

처음에는 다니엘 또한 왕의 식탁에 순응하며 음식을 먹었을 수 있습니다.

8절에 다니엘이 뜻을 정하였던 때는 이미 시간이 흘러 환관장과 어느 정도 교분이 쌓이고 신임을 받게 된 다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동무 청년들처럼 점차 바벨론의 음식에 길들여지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결한 심령이 혼탁해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술이 얼마나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지 우리는 잘 압니다.

잠언 20장1절을 보면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죽지 않으려면 회개하라고 경고했을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는지 이사야 22장 13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오늘 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농담으로 아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 떠드는 것과 꼭 같지 않습니까?

그들에 대해 하나님은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이사야22장14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과 청년들은 우상의 술과 고기로 우상 숭배한 부모 세대와 꼭 같이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단합니다.

아무리 철이 없고 의지가 약하다고 걱정해도 우리 젊은이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과 믿음에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장년층들 마음은 동의하지만 말씀대로 살기 참 힘들어 합니다.

식솔은 딸렸지 직장에서 눈치는 봐야지 세상적인 습관들은 내 옷처럼 몸에 딱 맞지 어떻게 믿음대로 결단하고 살겠습니까?

저는 우리교회에 다니엘과 같은 청년들이 많이 모이고 뜻을 정해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말씀으로 양육 받고 다니엘 같은 믿음과 지혜가 출중한 청년들로 성장하길 축복합니다.

청년들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이루어 나가리라 믿습니다.

우리 장년층들은 청년들의 믿음의 패기를 보며 또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그들의 길을 안내해 주시길 축복드립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가 청년들의 믿음을 축내듯이 세속적인 문화와 불신앙적인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 믿음의 뿌리를 약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름진 음식과 지나친 즐거움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온전한 정신으로 우리 구원을 사탄에게 뺏기지 않도록 단단히 붙드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이 청년들의 아름다운 믿음에 어떻게 응답하셨는 지살펴 보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역시 그들의 믿음과 우리의 기대대로 은혜와 축복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 하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행할 때 우리의 삶은 결국 해피엔딩일 수 밖에 없는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과정엔 목숨을 담보한 위기와 긴박함이 있지만 하나님은 가장 알맞은 인도와 응답으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왕의 고기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식을 했던 네 청년들의 건강은 본장의 15절을 보니 이런 판정이 나왔습니다.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채식이 몸에 좋아서 그랬을까요?

아마 단식을 했다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의 행위를 기뻐하시고 이런 결과를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본장의 19절에서 삼년이 지나 왕 앞으로 불려나간 네 청년들이 어떤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바벨론의 신학문과 문화를 가르치려고 네 청년을 불렀지만 그 결과는 바벨론이 자랑하던 지식으로 무장한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았다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우리 자녀들 아무리 좋은 교육 시키려고 갖은 애를 써도 지혜로운 자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바벨론의 학문이 아무리 뛰어나고 아무리 앞서간다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포로 청년들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김용0 교수의 딸 김미0가 터키의 이슬람사원에서 누드사진을 촬영하다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누드 예술가인 김씨는 강박장애에 시달렸던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 위험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누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술계가 폐허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 작가로 인정한다지만

시편 119장 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최근 그의 아버지 김용0교수는 중용을 강해하며 중국의 중용사상이 한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그렇게 동양적인 것을 강조합니다.

서양종교인 기독교의 사상이 사악하다고 눈에 독기를 품는 그의 딸은 왜 미국계인지 좀 의아하기도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린 나이에 또 청년의 때에 일찍 주의 말씀을 배우고 그 뜻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복된 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뜻을 정하고 당장의 안위와 보장 된 출세를 믿음과 맞바꾼 사랑스런 청년들을 최고로 보장해 주신 줄 믿습니다.

다니엘서3장30절을 보면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다니엘서2장48절입니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을 삼았으며

또 다니엘서6장28절을 보면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그가 느브갓네살 왕 치세 아래서 뿐 아니라 대를 이은 왕들에게 인정받고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축복은 당연한 것입니다.

작은 것에 순종해 갈 때 점점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영적인 풍성한 깨달음과 복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만 섬기고 높이는 네 청년에게 영적인 축복 뿐 아니라 이 땅에서 강성하게 하는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독립운동하다 순국한 자손들이 아직도 해외에서 유리 방황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는 보도가 광복절을 즈음해서 꼭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잘 섬기던 사람의 자손들이 걸식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청년 때 일찌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희생적인 믿음을 지켜 온 부모님을 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나 모릅니다.

정말 별거 안하는 것 같은 데도 그런 사람들은 잘 되고 잘 풀리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부모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믿음의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우리 청년들도 오늘 뜻을 정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로 작정하면 다니엘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전 이런 믿음을 기복신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주시기를 원하시지 저주와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우리가 오죽하면 자식들에게 매를 들고 벌을 세우겠습니까?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도 올바르게 잘 자라는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것이죠.

생업을 축복해주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지갑을 열어 구제하고 사랑한다면 왜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지식과 학벌로 교만해지지 않는다면 왜 주님께 지혜를 바라며 최선을 다하는 자녀들을 좋은 학문의 길로 인도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믿음이 좋은 것이 다 만사형통으로 통한 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나는 나를 사랑하고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내 자녀들에게 얼마든지 이런 축복을 주고 싶으시다는 뜻인 줄 믿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네 청년이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왕의 상에서 나오는 사탄이 훑고 지나간 음식에나 침을 흘리고 바벨론 학문에 통달해 왕의 눈에 들어보려고 줄을 섰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그건 반드시 줄을 잘못 선 것입니다.

쟁쟁한 각국의 청년들이 경합을 벌이는 바벨론의 왕궁에서 인정받고 지위를 누리려면 그야말로 간이고 쓸개고 신앙이고 다 내놓아야 했을테죠.

전력투구해 바벨론 왕궁에서 한 자리 간신히 얻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기특한 믿음으로 인정받는 축복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앞으로 줄서면 영적 육적 축복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또 17절에서도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영0선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매일 11명의 선수들과 함께 기도 모임을 갖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기를 치렀다고 합니다.

월드컵 신화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시겠죠?

월드컵이 끝나고 6개월 동안 유럽 축구에 진출하기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수비수인데다 체격 조건이 유럽 축구에는 전혀 맞지 않아 주변사람들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에 감동이 몰려오고 눈물이 나며 성령의 깊은 임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뚜렷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유럽으로 보내 주겠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확신이 왔습니다.

성경책에 얼른 2002년 10월 며칠이라고 써넣었다고 합니다.

혹시 하나님 마음이 바뀌실까봐.

2주일 후에 히딩크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고 5주 후에 아인트호벤으로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우리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나 댓가 없이 이런 헌신과 희생이 오가는 것이죠.

우리 성도님들과 우리 자녀들이 이런 믿음의 결단과 행동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니엘과 같은 축복도 풍성하게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