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다니엘의 기도(다니엘9장1절-10절)

남수연 2010. 9. 21. 20:15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가 하면 이 성경책의 분량 이상으로입니다.

연애할 때 이만큼 러브레터를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수 천년의 역사를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주님의 자녀들에게 말씀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들을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에게 말을 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나면 생후 2일 이내에는 엄마의 목소리를 확실히 구별하며, 더욱이 엄마의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태아 적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아기를 갖게 되면 배에 대고 아빠 엄마의 음성을 적극적으로 들려 주더라구요.

엄마들은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가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지 않습니까?

아이들도 어릴 때 부모 옆에 와서 귀찮으리만치 말을 걸어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매일 말을 걸어오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만 일방적인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틀림없이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실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인도를 받는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든든하고 실패가 없고 안전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조금 살펴보며 깨달음을 나누려 합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더욱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자하는 결단이 있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인 다니엘서는 다니엘이라는 선지자의 바벨론포로생활 체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치욕적인 일제36년의 강점기가 있다면 이스라엘엔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국치가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땅은 초토화 되고 살아남은 왕과 국민들은 포로가 되어 줄줄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제국에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온 인류가 하나님을 알 수 없어 혼돈 가운데 살 던 때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방문을 받은 민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율법과 계명을 지켜 거룩하게 살면 영원히 축복받은 선택받은 나라가 될 거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율법을 발로 차버리고 자기들 스타일에 꼭 맞는 우상을 선택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은 주의 종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합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향한 애타고 간절한 주님의 사랑이 끝없이 그들을 부르며 따라오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존심도 없으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13장 34절에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 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라고 하시며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간절한 권고를 듣지 않은 이스라엘은 BC586년에 잔인한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니엘은 이 때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서1장4절에 보면 바벨론제국의 느브갓네살왕은 점령국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뽑아서 교육을 시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가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한 정말 특이한 믿음으로 축복을 받아 바벨론제국의 최고 총리에 오르기 까지 놀라운 성공을 거둡니다.

그가 믿음을 지키려다 사자굴에 던져지고 거기서 살아남은 이야기는 다 알고 계시죠?

또 이 다니엘서는 신약의 요한계시록과 마찬가지로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은 인류의 종말에 대한 계시를 기록한 예언서로도 유명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 다니엘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본문2절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가 예루살렘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매일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포로생활이 그치고 곧 해방이 될 것이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레미야서에 기록 된 말씀을 보고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 구비된 성경이 아니라 파피루스나 양피지 같은 것에 기록 된 말씀이었죠.

다니엘이 어떻게 해서 이 두루마리 성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읽은 말씀은 예레미야서 25장 11절이었을 것입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경책에도 있습니다.

포로생활 이전에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나 70년이 지나면 그들을 긍휼히 여겨 이스라엘로 귀환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 말씀을 깨달은 때는 1절에 다리오왕이 즉위했던 해 즉, 역사적으로 보면 BC522년입니다.

지금이 포로생활 64년째이니 해방이 얼마 남지 않았죠.

그가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십니다.

물론 때에 따라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기도 하시고 꿈이나 환상이나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 이종사촌동생의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의 전도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 데 아무리해도 믿어지지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꾸었는 데 하늘에서 긴 보자기가 펼쳐져 내려오는 데 거기에 무슨 글씨가 써있었는 데 덮어놓고 믿어라였다고 합니다.

물론 할머니는 당장 덮어놓고 믿었고 그 아들은 지금 선교사가 되어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일반적인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니엘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고 믿음이 뛰어난 사람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하나님께 묻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모두 다 이 성경에 기록 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BC522년에 예레미야서의 그 말씀을 읽을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기록자를 통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실 때 이미 2천년, 3천년 후에 우리 중 누가 어떤 부분을 읽을 것을 알고 계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마틴루터가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말씀을 붙들고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할 것을 주님이 모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인 어거스틴은 술에 만취되어 문란한 생활을 하던 중 로마서13장 13절을 읽고 변화되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성경이 자기를 그대로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제가 대학 다닐 때 마그마라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조하문씨가 리드싱어였는 데 그는 대학가요제에서 해야라는 노래로 은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80년대 10대 가수와 골든디스크상을 휩쓸며 인기 절정을 달립니다.

탤런트 최수종씨의 누나인 최지원씨와 결혼하며 누구나 부러워 하는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삶이 화려하고 부족한 게 없어질 수록 그의 내면은 점점 공허하기만 해 갑니다.

결국 술과 마약에 빠져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 충동 까지 느끼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집사님의 권유로 성경을 읽다가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네게 주노라는 말씀이 강하게 그를 사로잡습니다.

결국 그는 한 손에 기타를 한손엔 성경을 들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캐나다 하나 교회의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어느날 공허하고 허탈한 가슴을 안고 성경을 들추어 보다 요한복음의 그 말씀을 읽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사로 잡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이미 성경에 다 기록해두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물을 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또 로마서 15장 4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 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말씀을 기록하셨고 또 성경을 통해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하나님과 말씀을 헌신 한짝 처럼 버린 이스라엘의 결말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잃고 자유마저 잃고 포로가 되어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5절에 보면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기 때문이고

또 6절에 보면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 다니엘이 읽었던 예레미야의 두루마리 성경을 받아든 이스라엘 왕이 취했던 과거의 망령 된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6장에 보면 왕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나 28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시 명령하십니다.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이 새로 기록한 두루마리의 말을 오늘 다니엘이 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이 어떠했나 또 한 군데 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왕 이후 급속히 타락하여 심각한 가나안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유대에 요시야라는 선한 왕이 나와 우상과 산당을 부숴버리고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역대하 34장 14절에 보면 성전을 개보수하기 위해 백성들이 헌금한 돈을 헌금함에서 꺼낼 때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왕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때 왕 앞에서 이 율법책을 읽어주자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율법 책이 어디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왕조차도 율법의 말씀을 난생 처음 들어봤다는 말 아닙니까?

신명기17장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장차 왕을 세울 때 해야할 일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가운데서 거하길 원하셨지만 주님의 소망은 인류 역사를 통해 철저히 외면당해 왔습니다.

말씀을 직접 받은 유대인들이 말씀을 팽개쳤고 신약시대에 말씀을 맡았던 중세 카톨릭에선 성경 읽는 것을 금지할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묵살하였습니다.

사실 이 성경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직접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도 어찌보면 종교개혁 이후 400여년에 걸쳐 지금에야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나 읽혀지고 있고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의 대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때를 예언한 하박국의 2장14절에 기록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또 예레미야 31장 34에 이르신 대로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미국의 노예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노예들이 얼마나 성경을 존엄하게 여겼는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어떤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하지만 예수, Jesus란 단어를 간신히 익혀 성경책을 놓고 손으로 짚어 가며 예수란 말을 찾아가며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 귀함을 모르고 되는대로 사용하는 이 성경책 한 권을 전하기 위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순교한 개신교 순교자는 토마스선교사입니다.

그는 조선에 대한 선교의 열정과 그리움으로 한국에 들어갈 방편을 물색하던 중 미국 상선 너널셔먼호에 통역관을 자원합니다.

그러나 그가 꿈에 그리던 평양 대동강가에 다다랐을 때 상선은 대원군의 군대와 대치하던 중 화전에 맞아 불 길에 휩싸입니다.

불타는 배 위에서 그는 성경책들을 강가로 던져댑니다.

배에서 뛰어내린 그는 분격한 군민들에게 결박되고 타살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헛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한 사람에게 건낸 한문 성경책으로 그 사람은 구원을 받고 복음전도자가 됩니다.

그가 던진 성경책은 돌고 돌아 후일에 장대현 교회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어두움과 가난이 창궐했던 조선에 하나님의 말씀이 빛으로 임하는 기적이 그의 목숨을 버린 댓가로 일어난 것입니다.

구 소련당시에도 복음 전파가 금지되어있었기에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선교사들은 유학과 방문 등의 명목으로 소련에 입국하며 배낭에 은밀히 성경을 숨겨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때로는 검색과정에서 드러나 그들은 즉시 비밀 경찰에게 끌려갑니다.

발견되지 않은 성경책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시장 같은 곳에 슬쩍 던져집니다.

그들을 뒤따르던 비밀 경찰에 의해 역시 그들은 체포됩니다.

그러나 성경책은 암시장에서 워낙 비싼 값에 거래되기에 불살라지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암시장으로 빼돌려집니다.

젊은 선교사들이 단 한 권의 성경책을 던지고 남은 평생을 수용소에서 보낼 동안 그들이 던진 성경은 암시장을 돌고 돌며 누군가의 손에 넘겨집니다.

성경책은 분철되어 여러 지하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을 주의 말씀으로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 전했던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귀한 말씀을 만홀히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고물 취급한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축복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심판의 경고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편 아모스 8장 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 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라고 기록 된 말씀이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는 경고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점점 고갈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유명한 큰 교회 설교에서도 은혜를 맛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가 임할 때 우리의 삶이 생기를 얻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갈들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함으로 물 댄 동산 같이 충만한 기쁨의 삶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본문에서 또 한가지 나누고 싶은 것은 말씀을 깨닫고 드린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깨닫자 금식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이제 6년만 지나면 해방이 올 텐데 사람들을 모아 기뻐하며 잔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는 기도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신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이 말씀을 따라 다니엘은 이미 예언 된 축복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수많은 약속과 축복의 말씀을 우리를 위해 성경에 기록해 두었다할지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구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기도하며 약속을 내 것이 되도록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다니엘의 기도대로 이스라엘은 6년 후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멀리 장래에 있을 일을 다니엘에게 알려 주십니다.

뒤이어서 나오는 23절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응답을 들고 다니엘을 찾아옵니다.

그 응답에는 뜻밖에도 메시야 왕국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묻지도 않은 메시야의 구원을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말씀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의 70년 포로생활 뒤에 있을 예루살렘 귀환은 더 먼 훗날에 있을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너만 알고 있어 그리고 성경에 기록해 라고 은밀히 전해 준 말씀은 이것입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바로 이 약속대로 우리를 위해 예수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말씀을 깨닫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의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말씀들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끊임없이 지시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설교가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신약과 구약을 비틀어 짜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떨어진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은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고 한 줄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아니겠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에게 얘기합니다.

악한 영이 더러운 생각과 두려운 마음과 염려와 근심과 미움을 우리 마음 속에 슬그머니 집어 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생각을 주장하고 인도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삶은 무지해서 용감한 삶입니다.

그 발은 올무에 걸려 넘어지고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슬픔과 환난과 고생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70년이 지나면 우리를 회복시켜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고난의 시간이 지나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위로를 얻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본문9절의 말씀대로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회복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서를 기록한 이 다니엘의 지혜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는 말씀을 묵상하는 자였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또한 말씀으로 양육하여 지혜와 명철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정로를 걷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을 대로 풍성한 말씀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