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1장13절-25절)

남수연 2012. 9. 12. 14:16

하나님께서 정하고 복주시는 날 오늘도 풍성한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예수님 믿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까 참 좋으시죠?

미국의 사상가인 데이빗 소로우는 사람들은 다들 고요한 절망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절망은 사라지고 소망이 넘치는 인생이 된 줄 믿습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을 읽으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주실 진짜 은혜가 있으니 기대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아버지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살고 있지만 주님께서 주실 가장 큰 영광과 선물은 아직 우리가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대하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우리 미래에 남아있습니다.

그 선물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 눈 앞에서 개봉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롭게 변하고 상상도 못했던 아름답고 완벽한 천국에서의 삶이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어 고난 가운데 있는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놓치지 않도록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온전히 그 날의 선물을 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원어의 느낌으로 번역하면 허리를 졸라매고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날마다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마음을 풀어 놓고 평안히 쉬기를 기대하며 교회에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네로황제의 극심한 박해를 앞두고 있는 초대교회의 형편은 안락하게주님 안에서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영적싸움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매일 정신없는 하루 하루를 살다보니 영적으로 깨어있기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바쁜 삶일수록 작더라도 꾸준히 영적훈련의 시간을 갖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오히려 우리 주변의 일상도 훨씬 쉽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자녀가 된 다음은 끊임없이 성장하도록 하나님은 권하십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가진 거듭난 성도들이기에 믿음이 정체 되고 자라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편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새 생명은 더 힘찬 신앙과 더 깊은 영적 은혜와 하나님의 숨결을 체험하길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는 것이죠.

우리 성도님들과 제가 하나님을 섬기며 다들 믿음이 성숙해 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 2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의 믿음의 정진으로 영혼과 심령이 강건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계속해서 지켜야 할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시 한번 마음의 허리를 굳게 동이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고 말씀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좀 불편해지죠.

사람들은 자연적으로는 거룩하기 싫어합니다.

거룩하려면 이 세상의 모든 재미와 즐거움은 다 끝장나는 것 같죠.

인간미가 다 사라지고 종교성만으로 채워진 것을 거룩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구별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죄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모든 자연과 문화와 문명들은 사람이 누리고 행복하라고 주신 것이죠.

이 세상이 마귀적인 문화와 사상으로 변질된 것이 문제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우리가 즐겁고 감사하게 누려야 할 축복들입니다.

요즘 오전 기도회에서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모형과 양식을 칫수부터 색깔까지 아주 꼼꼼하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성막의 기물 하나 하나가 얼마나 기품 있고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촛대나 휘장이나 성소의 말뚝하나 까지 조형미와 예술성이 정말 뛰어납니다.

제사장의 의복을 만들 땐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만든 금실을 다른 실들과 섞어서 짜라고 하셨으니 그 옛날에 얼마나 놀랍습니까?

인간의 모든 미적 감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들로 규모 있고 아름답게 사용하며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님들의 삶의 터전이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사탄은 얼마나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지 모릅니다.

미신을 숭배하는 나라의 신당이나 점치는 곳 가보면 정말 미의 테러입니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문화를 보면 사탄의 영감의 정체가 반드시 드러나는 걸 보게 되죠.

무질서하고 요란하고 미를 깨뜨리고 죄성을 자극하고 영적으로 더럽습니다.

지저분하고 더럽게 방치된 곳은 인간의 마음이건 어떤 장소건 간에 악령이 거처하길 좋아합니다.

기독교원전 번역가이고 주0장로교회를 섬기는 조0훈목사님은 실제로 그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조목사님은 어려서부터 늘 고독하고 외로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내성적이 되어 학교에서도 외톨이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조목사님은 인기 있는 행동을 좀 해서 친구도 사귀고 자신감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학급회의 시간이 되었는 데 기회라 생각하고 손을 번쩍 들고 안건을 내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학교를 사랑해야 합니다.

학교에 5분 일찍 나오는 것입니다.

5분 일찍 나와서 휴지나 깡통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으면 …”

그런데 갑자기 폭소가 터져 나오고 박수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처음엔 잘 해서 박수가 나온 줄 알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지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또라이’ 된 것입니다.

대인공포증이 생기고 점점 현실세계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될 정도의 정신상태가 불안전했습니다.

그런데 몸에서 점점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천호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때는 자취방이 너무 더럽고 기묘한 냄새가 나서 주인 아주머니가 경찰에 신고를 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면서 악령이 떠나는 체험을 한 뒤 옷과 몸에서 나던 냄새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귀신을 좇으실 때 더러운 귀신이라고 많이 말씀하셨죠.

마음이나 몸이나 집이나 더러운 곳은 악한 영이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아무리 고상하고 품위 있게 시작해도 세속적인 문화 속에서 노는 사람들은 끝이 지저분하고 결국 추한 게 다 드러나고 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거룩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중에서 더러운 마귀에 속한 것으로 부터 분리되고 내 속에 있는 죄성으로부터 분리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행실을 통해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고 말씀하시잖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은 그렇게 모호하고 아리송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모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리고 주시는 세세한 규칙을 보면 아주 현실적인 것들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해 거룩히 지켜야 할 것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와 헌물에 대한 것들로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거룩도 역시 사랑에 근거한 실질적인 행동들입니다.

예를 들면, 추수할 때 다 베어가지 말고 한 고랑을 남겨두어 가난한 사람들이 좀 가져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거룩입니다.

요즘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우리 월급타면 얼마나 빠듯합니까?

그런데 기독교TV를 보다 화상으로 다친 아이가 치료비가 없다는 걸 듣고 긍휼한 마음이 일 때 ARS를 누르는 그런 것이죠.

하나님과 우리 가족과 이웃에 대해 매몰차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힘써 행하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하시는 거룩입니다.

그리고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않는 것이라고 14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거룩이 그렇게 신비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죠지 휫필드라는 18세기의 유명한 복음전도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웃에서 살았던 한 늙은 여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그가 했던 어떤 설교 때문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에 그가 우리 집에 머물면서 보여준 한결 같은 일상의 아름다움과 친절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신앙을 갖게 된다면, 휫필드씨가 믿는 하나님을 믿을거야.‘

매일의 평범하고 아름다운 행실을 통해 우리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잠잠한 성도들의 삶이 바로 거룩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행실을 말씀에 비추어 하나 하나 바로잡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점점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살기를 원할 때 우리를 자녀삼으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우리가 포기한 세상의 즐거움에 비할 수 없는 축복으로 부어주실 줄 믿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둘째 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꼭 살아야 하는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성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전 생애를 인도하시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자신을 바쳐 전심으로 양육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은 그 이상입니다.

우리가 자식을 낳아 우리 평생 얼마나 아이들의 인생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양육합니까?

나이별로 배워야 할 것들 빠트릴까봐 종종걸음으로 어린 것들을 끌고 다니던 때가 다 있었습니다.

늙스구레한 부모들이 대학입시설명회를 들어보겠다고 자리도 없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듣고 있는 걸 보면 같은 부모로서 참 연민이 느껴집니다.

장차 자식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노심처사하며 이리저리 고심하며 어떻게든 그 길로 이끌길 원합니다.

자식들이 어디 부모 마음대로 따라주기는 하던가요?

조금만 자아의식이 생기면 바로 우기기 시작하니 자식들과 평생 실랑이를 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피곤하고 자식도 짜증 날 이 촘촘하게 짜여 진 우리 자식들의 인생 플랜이 다 무엇때문인가요?

우리는 그들의 부모이고 자식이 잘 되길 바라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나 한 사람을 마치 유일한 자식인 것처럼 그렇게 일 대 일로 양육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잘 안 믿어지십니까?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바로 내 속에 거주하신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우리를 가르치고 도우시잖아요.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고 위하시니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들입니까?

베드로사도는 우리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과 성도들도 성령을 모신 귀한 분들이니 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자연적으로 타고난 죄성들은 사실 희생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자연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함부로하지 않으시죠.

그게 곧 내 인격이고 내가 벗어 버리기 힘든 육화되어 버린 옷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가 아버지를 순종하는 자식의 마음으로 하나씩 버리고 하늘에 속한 생명과 조화를 이루도록 변화되어 가기를 기다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따르던 못된 사욕을 따르지 말고 거룩한 행실을 가지라는 것이죠.

자식이 철이 들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죠.

가만히 거칠고 주름진 어머니의 손을 만지고 어깨를 문지를 때는 자식이 철이 났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철이 날수록 하나님께서 어떤 희생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8절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조상에게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헛된 행실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은 우리 철없는 자녀들을 위해 맏아들을 피 흘리게 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원죄가 가진 무서운 죄악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심판도 억울하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도 실감하지 않는 것이죠.

아담의 범죄로 인해 시작 된 인류의 원죄의 개념은 자연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영적진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를 원죄에서 구원했다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못된 행실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하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원죄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행실이 못됐다는 것이죠.

그것도 인정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어쨌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조상에게서부터 물려받은 못 된 짓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내 못된 행실이 조상 때문이라고 해도 결국 내 인생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의 욱하는 성격을 물려받아 흥분을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상해했다면 그 벌은 당연히 내가 받는 것이죠.

어쨌든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남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못된 행동을 해왔고 그게 끊을 수 없이 지속된다는 것이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그 죄의 유전을 끊고 심판받을 못된 행실을 끊을 수 있도록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 질긴 우리 죄의 성품은 하나님과 원수 될 일만 행하고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은이나 금을 아무리 들여도 인간 본연의 죄의 유전자를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아무 죄도 없이 무오한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고 내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감당 못할 은혜이고 내 존재의 자긍심을 갖게 합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자랑하고 누리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맏아들을 보내시고 우리를 자녀 삼으셨으니 순종하는 자녀처럼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혈기와 매정한 마음과 벌컥 화 내는 것과 될대로 되라는 무책임과 방탕한 마음들을 잘 추스르고 내 속의 죄를 골라내고 분리시켜 버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어느 교회에서 40대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의 신앙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배우자의 신앙에 대한 평가”를 하라고 했는데 전체 152명 중 배우자의 신앙이 ‘성숙한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명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4명이었습니다.

‘부족하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124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숙과 거룩함은 우리 가족들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22절의 마음으로 뜨겁게 형제를 사랑하라는 권면은 곧 우리 가족에게서부터 시작되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구원 그 이후 더욱 성숙하고 거룩한 믿음으로 성장해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 순종해서 우리 행실을 돌아보고 바르게 행동할 때 성령께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4장 5절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항상 성경을 읽고 꾸준히 기도하는 삶이 우리를 귀하고 아름답고 고상한 성도의 모습으로 이끌어 주리라 믿습니다. 아멘.

 

다음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17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내가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마음대로 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서 각자의 인생을 결산할 날이 곧 옵니다.

알고 보니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분, 나의 주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생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판결 받고 그 죄의 값을 스스로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 땐 더 이상 내 죄를 대신 져주실 분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참 용감하게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입니다.

오늘 이 베드로전서는 그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섬겼던그가 로마에서 순교당하기 바로 전에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도 고린도후서 5장10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전도서12장14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선한 일이건 악한 일이건 그 행한 것을 따라 상과 벌을 받는 다는 것이죠.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이 땅에서 지은 악한 행실을 반드시 회개하고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고 옳지 않은 행동을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선악간의 심판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17절에서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거하는 우리의 나그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행한 것이 천국에서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 땅에서 두려워 할 것은 어려운 환경도 사람도 미래도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한 무엇도 우리를 해치고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마지막 날 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 앞에 가져가게 될 내 죄의 습관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 7장1절에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로서의 죄악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기도가 응답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은밀히 지적하실 것입니다.

죄를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은 우리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맛없는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깨달은 죄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포기하고 결단할 때 성령께서 생수와 같은 기쁨으로 우리를 칭찬하고 격려하십니다.

회개가 많을수록 삶이 더 힘차고 생기 있고 즐거워지는 것은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기질로 인해 짓게 되는 모든 죄와 나쁜 습관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고쳐나갈 때 막혔던 축복의 통로가 열릴 줄 믿습니다.

마지막 때를 가르치는 요한계시록 22장 11절 말씀은 우리를 긴장하게 합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우리를 거룩한 자녀로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거룩에 대해 우리 삶에서 노력해야 할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거룩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평생 더 깊고 더 온전하게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축복의 자녀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신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도 직감적으로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자신은 유랑자 신세라는 것을 압니다.

이 땅의 것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장차 우리가 누릴 것들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여기선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고 행복을 느낄 때 조차 내면에 언뜻 아쉬움과 허무가 지나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고 곧 지나가 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땅에서 느끼는 잠깐의 행복은 바로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삶의 일부를 미리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주님이 오셔서 주실 실존하는 천국의 아름다운 삶이 있음을 믿고 온전히 바라라고 주님께서 오늘 베드로사도를 통해 우리를 격려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어떤 고난 중에 어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다시 한번 힘을 내어 마음을 추스르고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믿음으로 서기를 바랍니다.

우리 행실을 날마다 말씀에 비추어 거룩하게 바로 세울 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도 마음껏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충만한 축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