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심판을 결정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오려면 내게로 돌아오라 고 회개를 촉구하고 기다리시던 하나님은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음으로 인해 결국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정말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치 않는 자에게 반드시 임합니다. 다윗왕 이후 유다의 멸망까지 무려 500여년을 기다리셨지만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심판을 결정하셨지만 그 마음은 눈물로 가득하시네요.
자녀를 키우다 심판의 매를 들어보셨지요
아이는 맞는 곳이 아파서 울고 부모는 마음이 아파서 같이 울며 때립니다.
우리 학교에 이모군은 학교에서 부적응, 기절초풍 반항으로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입니다.
언젠가는 눈 언저리 핏줄이 다 터져서 검붉게 되고 얼굴이 팬더 같이 되어 나타나 아이들이 무섭다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마귀의 형상 같았지요
이유인즉슨 날마다 아이의 기행에 시달리던 엄마가 너죽고 나죽자고 목을 졸랐다는 데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같던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식을 죽이려고 들었겠어요
요즘은 자기가 고아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그 엄마가 이제부터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했답니다. 정말 자식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오죽하면 자식이 웬수라 했겠습니까?
망나니 자식, 방탕한 자식, 집나간 자식, 부모를 홀대하는 폐륜 자식을 징계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이 말씀은 내 딸 내 백성을 위해 소리 내어 슬피 울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 십니다.
하나님도 너무 너무 소리 내어 울고 싶으셔서 한없이 울 수 있도록,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도록 머리 전체가 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2절에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시겠다고 하십니다.
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집 중에 함께 거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이제 집이 없는 나그네처럼 광야로 나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전 포고로 이어집니다. 자식의 패악이 극도에 달하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부모가 가출할 때가 가끔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너무 속상하셔서 가출하신답니다.
3절부터 하나님을 못견디게 하는 이스라엘의 죄상이 언급되는 데 그동안 살펴 본 죄가 우상숭배였다면 여기에서 지적하는 죄악은 이웃에 대한 악행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말이 진실되지 않고 거짓을 말하고 속이는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3절 그들이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고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4절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5절 이웃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고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6절 네 처소는 궤휼가운데 있도다 (궤휼은 기만, 사기)
8절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이와같이 9장에서 책망 받는 죄악은 이웃에 대한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거짓말을 하고 남의 악행을 말하고 헐뜯는 것을 넘어서 점점 고의적으로 형제를 속이고 기만하는 행위를 한탄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도 1계명부터 4계명 까지는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 까지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어느 집이건 빈부와 귀천에 상관없이 행복하고 귀한 가정은 부모에 대해서는 효를, 형제 간에는 우애가 돈독한 가정인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벌 그룹들도 집안 단속에 열을 올리며 형제 우애를 과시합니다.
우리나라 재계서열 13위에 있는 두산그룹 아시죠? 초대회장 부터 4대에 이르기 까지 내노라하며 형제애를 과시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잘 나가는 것 처럼 보이던 그 집안이 삐걱 거린 것은 박용오 전회장이 두산산업계발을 분리해서 자기에게 달라고 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 운영진이 그것을 들어줄리 만무하고 그러자 박용0 회장 측에서 두산그룹 경영진이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해서 운영해 왔다고 폭로해서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되버렸었죠
결국 박용0 전회장은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새로 시작한 사업에도 실패하며 작년 11월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만 형제애가 모범적인 것 처럼 보이던 집안은 졸지에 콩가루 집안에 저주받는 집안으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혈육 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4절에도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라고
형제 조차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슴없이 속이는 인간의 사악함을 지적합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왕자의 난을 기억하시죠? 정권을 잡기 위해 동생마저도 죽이게 하는 태종 이방원의 악행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말이나 소하고야 살 수 있겠습니까. 물론 초코하고야 살고 있지만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를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인간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 배만 위한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한 후 즉시 하나님을 피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사랑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악행도 그 두가지, 즉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것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악행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너희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네 자신만을 위하는구나. 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정말 집요하고 끈질기고 무한한 것 같습니다.
지극히 이타적인 사람도 그 이타적인 내면을 바라보면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그 발로인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의로운 행위를 했다고 합시다.
그 동기를 보면 상대방을 사랑해서라기보다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고 자기가 옳다 생각하는 것을 위해 즉 자기를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 동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과 심판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물론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때 곰곰 생각해 보면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한 것 같고 이웃에 대한 나의 마음은 너무나 냉담합니다.
어제 천안함 희생자의 추모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남의 기쁨과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남의 슬픔과 함께 울지 못하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서도 너희는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 자는 집을 모래위에 지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이기심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 모범 답안은 역시 우리의 순종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물을 드리다가도 형제와 화목하지 않으면 가서 화목하고 돌아와서 예물을 드리라고요.
형제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기 전에 무조건 가서 화해하라고 말씀합니다.
때론 그것이 위선된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로서의 사랑을 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까칠한 사람이 있으면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고 피하고 싶은게 우리 마음이고 나를 억울하게 한 사람에 대한 원한은 절대로 풀고 싶지가 않지만 하나님은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게다가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시니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만 순종해야하는 게 우리의 의무이고 그렇게 순종하는 우리를 볼 때 하나님은 이제사 우리를 장성한 아들처럼 대견하게 여기십니다.
저의 요즘 기도제목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풍성하게 해달라는 것과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제 석촌호수에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싱겁게 헤어졌지만 이런 저런 모습으로 어울리며 부딪치며 우리 성도들이조금씩 하나가 되어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사랑이 내가 잘되기 위한 이기적인 이유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잘 대해 주는것이 나를 인정해 달라는 역시 이기적인 동기가 되지 않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7절에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라고 결심하십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등 떠밀어 주신답니다. 하나님이 한 번 떠 미시면 벼랑으로 확 떠미셔서 엄청 곤두박칠 치는 것 아시죠?
이 나이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다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시고 능력도 주시겠다하시고 다만 사역의 보람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밤도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나아가는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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