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교회 안에서 회개에 대한 설교가 사라지고 있다는 염려가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온 성도들에게 회개해라 충성해라 이런 설교하기가 미안해서 주로 위로와 축복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교는 목회자가 성도에게 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하실 말씀을 설교자의 말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맨 처음 설교한 내용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회개할 것이 더 많고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볼 수는 없습니다.
회개에 대한 설교는 성도님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 대한 설교는 성도님들에게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을 정도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이와 비슷하게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들은 어떠했습니까?
그 곳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없이 그들의 극심한 죄와 타락으로 멸망당했습니다.
창세기18장20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였다 하였고
베드로후서 2장6절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소돔의 죄악 중에 가장 최악의 것이 동성애의 죄악입니다.
곧 소돔의 동성애 등의 죄악이 급속히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후세에 경고하기 위해 그 성은 멸망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지한 죄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미화시키고 옹호하는 입장의 드라마가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입장을 갖는 단체들은 올해 부산항에 남성 동성애자 710 명이 탄 초호화 크루즈선박이 부산항에 입항했을 때 입항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심판당할 죄에서 떠나라는 경고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메시지는 곧 축복의 메시지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임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의 삶 속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나선지자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세 때 활동한 예언자라고 열왕기하14장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멸망을 선고 받은 니느웨는 앗수르라는 나라의 수도입니다.
나훔서 3장은 니느웨가 얼마나 잔혹한 곳이였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스바냐 2: 15은 니느웨 성의 죄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괴롭히던 적대국이었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은 바로 이런 나라에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고 요나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당장 망해도 시원찮을 난폭한 원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기 싫어 요나는 니느웨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40일 후 원수 니느웨는 멸망할 테니 외국에서 한 두어달 있다 돌아올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다시스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세계의 끝으로 여겨지던 곳이므로 요나는 가능하면 멀리 하나님께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요나서의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선지자 요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 지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가 탄 배는 큰 폭풍을 만나 난파 직전까지 가고 뱃사람들은 이 큰 재난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제비뽑아 알아내자고 합니다.
당연히 요나가 뽑혔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는 요나를 쫓아와서 폭풍을 일으킨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뱃사람들이 요나를 바닷 속에 던져 넣자 순식간에 바다가 잔잔케 됩니다.
한편 요나는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두신 큰 물고기가 덥석 삼켜 그 뱃속에서 사흘을 뒹굴며 불순종을 회개합니다.
그러자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냅니다.
공교롭게도 니느웨의 어느 바닷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요나에게 임하고 요나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전도를 나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니느웨는 큰 성읍으로 걸어서 사흘 정도 거리라고 되어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니느웨 성은 성벽으로 둘러싸였고 지름이 긴 곳이 30킬로미터나 된다니 상당히 큰 성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러 가는 요나는 겨우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쳤다니 도시의 중심부까지도 못 걸어갔을 겁니다.
게다가 성의 없이 짧은 메시지도 참 야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보통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때는 너희가 이러저러한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이니 회개해라 이런 식으로 해야하는 데 요나의 메시지는 간단 명료합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성의 없는 메시지를 듣자 마자 그 악랄하고 포악한 니느웨 사람들이 대뜸 회개를 시작한 것입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왕도 그 보좌에서 내려왔고 조서를 내려 짐승까지 베옷을 입히고 다 금식 하라고 명을 내립니다.
이게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앗수르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했는 지는 고대 문헌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간단히 회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정말 희귀한 집단 회개의 역사가 오늘 본문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죄를 회개한 니느웨는 심판을 면하게 되죠.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10장 4절에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않으신다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4장 1절에 어리석은 자 또한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라고 한다고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하나님이 자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것이죠.
로마서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못보는 것이 오히려 자신이 죄인임을 입증하는 것인 데 그것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6장 9절에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 또한 죄 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죠.
본문 5절에 보면 심판의 메시지를 받은 니느웨 사람들이 한 첫 번째 행동은 즉시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자신의 악행을 참회하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은30에 팔았던 유다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제사장들에게 돈을 돌려주지만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택합니다.
뉘우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선을 쌓고 남을 위해 고된 봉사를 하고 수행을 하고 욕심과 번뇌를 버려도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은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1000만부가 넘게 팔린 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 라는 책의 저자인 멀린 캐로더스 목사는 불량청년이자 군 탈주범으로 감옥생활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눈엔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쌍하게만 보였습니다.
바깥 세상의 재미를 모르고 이런 창고 같은 곳에서 밤을 허비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찬송이 시작됐고 그는 찬송가를 부르는 시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귀에 바짝 대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렸습니다.
너는 오늘밤 나를 믿기로 결심해야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뭐라고?"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반드시 늦고 말 것이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섬광처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구나. 하나님이 나를 알고 찾아오셨구나.
왜 이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예,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는 아이젠하워 장군의 경호를 맡다가 군목이 되어 군부대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성령 사역을 펼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 얻을 회개는 오직 세상을 향하였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속죄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모두 다 회개에 이르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 속엔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일개 전도자의 외치는 소리 그야말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말 하나로 12만명이나 되는 니느웨 성읍 전체가 회개하고 뒤집어졌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니느웨의 회개를 보면 사도행전2장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명이 회개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또 1900년 대에 있었던 미국 로스엘젤레스 아주사거리의 대 부흥의 광경이 떠오릅니다.
도시 전체가 집단으로 회개하는 이 역사는 아주사에 있었던 놀라운 성령의역사와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니느웨 성읍의 회개와 구원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표적을 대라는 유대인들에게 마태복음 12장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 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니느웨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주님께서 인류를 위해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니느웨의 대 각성 속에는 성령 강림에 의해 놀랍게 전개 될 구령 사역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요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둘기 라는 뜻입니다. 이 괴팍한 선지자에게 웬 걸맞지 않은 이름입니까?
그가 얼마나 성급하고 화를 잘 내고 잘 삐지는지는 3장에 아주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비둘기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요나의 이 사역은 곧 성령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서 속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놓으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치밀하게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인도해 가시는 지를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단지 전 인류에 대한 계획 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구원은 어떻습니까?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고, 그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을 듣게 하였고, 나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 준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나와 만나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해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아시고 구원의 때를 준비해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런 사랑의 하나님께 할 것은 한가지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구속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신 우리 아버지께 돌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가 해야 할 두 번째 회개는 우리의 온전치 못한 행동에 대한 회개입니다.
본문8절에 보면 니느웨사람들은 즉시 하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각각 악한 길과 그 행한 강포를 회개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그 방향을 돌이킨 사람들이 할 일은 악한 행실을 회개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그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사람은 그동안 살아왔던 죄의 방식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34절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 명령하십니다.
시편 5장4절에도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 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일찌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 나는 참 죄인이다, 나는 참 못됐다, 나는 참 악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당신은 그것보다 더 악하다고 하는 사실을."
그래서 회개는 단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패하여 죄를 범할 때 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새로운 법이 생겨 죄의 법을 대적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고 죄와 악행을 계속하면 성령님은 탄식하시고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은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영적 육적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시편 66장 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예레미야 5장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우리의 죄가 그저 있는 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우리의 자녀가 심각한 몹쓸 행동을 했는 데 개의치 않고 용돈을 올려주고 선물을 사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은 심각하게 죄를 책망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범죄할 때 마다 손이고 발이고 찍어 버려야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겐 손이고 발이고 눈이고 남아나는 게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백체를 차례로 찍어버린다 해도 결코 죄를 없이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범죄했을 때 우리를 깨끗케 해주시는 주님의 방법은 고귀한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범죄할 때 우리는 주님의 죄사함의 보혈을 들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
우리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바라볼 때 거듭해서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되지만 우리의 삶이 여전히 죄를 좋아하고 죄에 대해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6장15절16절의 말씀을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나 자신을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드리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앞에 나가 우리의 지은 날마다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케 해주시고 다시 죄를 대적할 새 힘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세 번째는 요나와 같은 불순종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특별나고 끈질 긴 것인지 그는 몰랐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죄인을 돌이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개념치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미운 그들이 심판당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철없는 큰 아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집나간 막내를 생각하며 밤마다 문을 슬쩍 비껴 열어놓는 마음을 이 무정한 형이 알 턱이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죄인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게만 하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할 때 성령께서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장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죄인을 하나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그 마음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영화배우 황수정, 최철호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데 얼마전 최철호씨가 여자친구를 구타하는 사건으로 드라마 동이에서도 도중하차하고 이 영화의 개봉도 연기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화의 제작자인 윤감독은 오래전 우리에게 친숙했던 TV드라마 오박사네 사람들, LA아리랑을 집필했고 장나라가 주연한 오 해피데이란 영화를 제작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부와 인기를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며 탕자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민속 문화를 중흥시킨다고 수많은 무당과 어울렸고 무속을 예술적으로 포장하는 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영화제작사를 설립하게 되었는 데 한 무속인이 자금설립자금을 대겠다고 하자 본격적으로 주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의 일과는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이었고 교회내의 작은 실수가 드러나면 메스컴을 통해 대대적으로 기독교를 매도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무속인을 상대하고 무당이 굿을 해도 소용없이 그는 집과 전 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루하루 불안과 초조로 영혼이 메말라 가고 있는 데 희한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이야기, 하나님이야기, 교회이야기였다고 합니다.
어찌나 화가 더 나는지 그들이 준 성경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당신이나 잘 믿으라고 소리지르고 저주하며 여전히 귀신을 믿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전도사 두 분의 인도로 기도를 하게 되었는 데 묘한 체험을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서울 약수동에 있는 신일교회를 다녔던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용서하였다,”
그리고는 피투성이 되신 주님께서 꼭 안아주시는 장면이 환상처럼 지나쳤고, 갑자기 입이 하마 입처럼 벌어지며 눈물로 죄를 회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그날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사명을 받았고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소풍이라는 선교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구원받기까지 하나님은 개그우먼 서00자씨, 활동사진 대표 조00씨, 성형외과 부원장 권00 집사, 전00 목사님과 사모님 등 5명의 적극적인 전도자를 붙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를 보내주었던가요?
주님은 지금 우리를 누구에게 보내고 계십니까?
베드로후서3장9절에 심판이 속히 임하지 않는 이유를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5장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찌 인간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저는 며칠 전 기도를 하다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아 여전히 심판 가운데 있는 영혼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는 데 갑자기 눈을 감은 제 앞에 주님이 앉아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게 느껴져 깜짝 놀랐습니다.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주님의 애통하는 영이 눈물을 마구 떨어뜨리며 우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눈물이 너무나 황송해서 같이 울었습니다.
주님은 내 백성이 회개하지 않아 너무 슬프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만 우리의 인생을 세상에서 돌이켜 주님께 돌아가도 좋지 않을까요?
멸망의 길, 멸망의 영을 좇아 가던 삶은 그동안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이제 남은 날들은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위해 드려도 좋지 않을까요?
에스겔39장 26절에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
나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간절한 부탁을 모른 채 살다가 천국에 이르러 부끄럽게 죄를 뉘우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 3장에서 요나는 하나님이 과연 니느웨를 어떻게 손 보실는지를 보기 위해 성 밖에 앉아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이럴 줄 알았다 하나님의 심판이 솜방망이식이라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쏘아붙입니다.
요나서 4장10절에 하나님은 요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십니다.
주님의 이 오래 기다리신 마음이 있기에 우리가 오늘 회개하고 구원을 선물로 받은 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을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경고 하셨습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
아직 멸망당할 영혼이 내 곁에 있지는 않습니까?
올해가 가기 전 그 영혼이 구원얻기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시는 성도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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