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하늘로 올려지시다 (누가복음24장44절-53절)

남수연 2016. 4. 7. 10:05

지난 주엔 부활절 계란을 나누며 거리 찬양으로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 전했습니다.

한 마음이 되어 수고하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특히 우리 어린이부, 청소년부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참여했는지 참 고맙고 대견합니다.

고사리 손으로 전하는 계란을 받지 않은 속 좁은 어른들이 있었다는군요.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게 무엇인지 우리 어른들 보다 훨씬 먼저 체험한 복된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봉사의 기쁨도 잘 배웠으리라고 믿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성경대로 믿고 힘써 전한 우리교회 모습에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셨으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몇 주간 요한복음을 통해 십자가의 대속적 형벌과 부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의 가장 굵직한 기둥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고, 증인들의 증언이 뒷받침된다는 것을 다시 살펴보며 신앙도 다들 견고해졌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의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세계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까지입니다.

부활과 승천은 목격자인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전해져 오는 것이죠.

신화가 아닌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납득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실은 증인들의 증언에 대해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이지 사실이냐 아니냐를 증명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 밖에 계신 분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이 사실을 믿느냐 아니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기사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빠져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입증하기 힘든 이런 승천사건을 알리려면 복음서를 쓴 사람들이 말을 좀 맞추면 좋았겠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짜 맞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랜 기독교 역사 속에서 그 누구도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 원전에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굳이 승천기사를 제자들이 뺐다면 그것은 부활한 성자하나님의 승천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대속을 완수하셨으니 다시 본래 영광의 자리로 승천하시는 것이고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자리는 당연히 하늘의 보좌였습니다.

누가가 오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유독 승천기사를 상세하게 쓴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절을 보면 이 글을 받을 사람이 로마인 데오빌로 각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을 상대로 쓴 것인 만큼 승천까지의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던 것이죠.

신약성경은 당연히 예수님의 승천을 기정사실화 합니다.

베드로사도는 편지에서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벧전3:2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4:14)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오늘 본문 50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베다니 앞, 즉 감람산에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다 같이 확실히 보았다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주님의 승천에도 목격자가 있고 증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가 기록된 당시엔 아직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바울도 그의 편지에서 오백여 형제들이 부활의 주님을 보았고 당시 대다수가 아직 살아있다고 쓴 바 있습니다.

제자들이 기록한 이 편지들은 사적인 생각을 쓴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오간 편지들이 아닙니다.

여러 교회에서 회람하며 공적으로 읽혀지고 감독들이 그 내용을 가르치고 설교하던 것들입니다.

당시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던 상황에서 부활이나 승천과 같은 사실이 진짜가 아니였다면 공공연히 써서 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승천은 구약성경에서도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의 승천을 시편에 기록했습니다.

시편68편에 18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아마 다윗 자신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승천과 성도들의 구원을 예언했을 것입니다.

또 다니엘은 자신이 본 기이한 환상을 다니엘서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죠.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7:13,14)

다니엘이 도대체 무엇을 본 것 같습니까?

바로 대속을 완수하고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그의 복음진술서의 마지막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도 이미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해 놓은 시가 있죠?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나님이 다윗을 자신의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게 아닙니다.

성부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을 우편에 앉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짝을 이루며 영적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을 좀 많이 인용합니다.

성공신화만 잔뜩 듣고 가는 것보다 백배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도 본문에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통해 증명하며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은 주님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을 예고했고 제자들은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신약에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의 승천을 알고 믿는 것은 구원받을 믿음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25절에서 승천하신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늘에 앉으신 것을 믿는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는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화롭고도 엄중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흠이 없으신 속죄제물이시오, 우리가 천국에 앉을 것을 보장해주시는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이것을 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증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해서 이 모든 것을 목격시키신 것은 이 일에 증인을 세운 것이라고 47절에서 말씀하시죠.

이같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모든 기록을 그대로 이루신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증인들에게 전해 들은 또 다른 증인들에 의해 복음은 마치 릴레이 경주처럼 지구 역사 끝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는 자신이 최초증인들을 이은 두 번째 증인이라는 것을 누가복음 서두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자기가 증인들의 말을 통해 믿었다는 것입니다.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제 데오빌로 각하가 믿을 차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자가 된 로마귀족들이 결국 삼세대, 사세대 증인이 되어 로마전체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 차례가 된 것입니다.

이 비효율적인 복음전파의 방식에 대해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증인입니다.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형벌과 부활과 승천하심에 대해 증인이 확실합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에 대해 기꺼이 증인이 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세상은 이것을 믿지 않지만 주님의 진심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이고 증인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고 주님처럼 하늘에 올랐을 때, 성경과 증인들의 말을 통해 예수님의 진실을 믿었던 게 얼마나 영광스런 복인지를 알며 우리는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증인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을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서 가장 많이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경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그만이지, 더 이상 무슨 성경공부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44절부터 47절까지 주님이 하신 일도 구약성경을 풀어 주님의 고난과 부활과 구속의 역사를 다시 깨닫게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만 증거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구약 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님이 성취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신화적인 분으로 알고 전할 것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예수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누군가에게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러저러하게 기도응답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참된 증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예수님을 알고,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분명해야 믿음도 되고 증인도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같이 밥을 먹고 기적의 현장을 눈으로 다 보았지만 과연 주님이 그리스도란 증인이 되었던가요?

증인이 되기는커녕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자기들이 믿지를 못했잖아요?

예수님에 대해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을 똑바로 알지 못했기에 계속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오해한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증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올바로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45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이 마음을 열고 성경을 깨닫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동일하게 성경을 가르쳐주셨지만 그들이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그 때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셨다는 것이죠.

이순간도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과 같은 이야기들이 내게 찰싹 달라붙지 않는 먼 이야기로 들린다면 대개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본적인 성경지식이 아직 너무 부족하거나 아니면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이 마음을 열어주셨다는 것은 단지 마음에 감동을 주셨다는 게 아닙니다.

아담 이후 닫혀있던 영적인 영역을 되살려 하나님과 진리를 지각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치시며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깨닫게 하셨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합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주님께 집중하고 기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성경이 진리임을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과거 제자들처럼 우리 중 누구도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 이전의 제자들처럼 사회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나님을 알아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며 배운 것들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받아들입니다.

제자들은 민족신앙인 유대교의 왜곡된 관점으로 메시야를 이해했기에 항상 그 눈이 가려져 있었고 귀가 닫혀져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우리 문화와 사회에 침투된 미신과 유교와 불교와 세속적인 가치관이 얽히고설킨 마음의 율법이 각자에게 있습니다.

신앙도 대개는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맴돕니다.

초파일에 절에 가듯이 교회에 나오고 치성 드리듯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살아왔던 방식과 생각에 따라 각자가 신앙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현대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하셔도 다들 자기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 판단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의 본 뜻을 따라 계속해서 나를 새롭게 갱신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려줬더니 바리새인들과 종교인들은 이를 갈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자신을 바꾸지 않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동안 우리는 매일 매일 성경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우리 자신을 변혁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저도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보면 매일 성경을 새롭게 깨닫고 생각을 바꿔가고 행동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육년 전에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깨달은 바에 의하면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하는 것이 똑같다면 그건 완전하다는 게 아니라 성장이 멈춰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셔서 점점 더 하나님과 나와 현세와 내세의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시길 기도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증인이 되기 위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은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진리대로 순종하고 살아갈 능력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천국의 보좌로 승귀하실 예수님은 구원의 복음을 제자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과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 없이는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성공을 위해 부단히 자신을 계발하라고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극대화시키도록 훈련하고 최고로 끌어 올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내 안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덧입는 것입니다.

문명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연적인 성품과 실력을 끌어내 죽자고 달라 들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세상방법이 당연히 빨리 먹힙니다.

주일에도 나가서 일하면 당연히 돈을 더 많이 벌겠죠.

다행히 삶에서 불길한 재앙도 만나지 않는다면 어쨌든 노력한 만큼 일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선하고 영원한 것들은 성령님과 함께가 아니면 절대로 생산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구속사역을 시작 하실 때, 먼저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계속 성령으로, 성령으로, 성령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능력으로는 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증인의 사명을 본성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세상일에 능숙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본성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결과적으로 보면 십중팔구 자기 일과 자기 영광이 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지도를 받고 성령님께 의지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대체 어떻게 성령님의 지도를 받느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성령님은 말씀과 기도 가운데 우리를 지도하십니다.

말씀과 기도는 신자들의 살아가는 매일의 방식이고 이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진심으로 성령님의 지도를 받길 매순간 원하면 성령께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주님의 인도를 보여주지 않으신다면 죄가 아닌 경우엔 무엇이든 선택해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보이지 않게 역사하고 계시며 이런 가운데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돌아간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주님을 죽인 종교인과 관료들이 자신을 끌어가 죽일 수도 있는 곳입니다.

마피아 조직을 보면 증인을 막 죽여 없애잖아요?

그런데 진리를 발견하고 목격했기에 현세의 그 무엇도 그들을 막을 수 없고 그 기쁨을 뺏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들이 누구를 만났는지 그 행동이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녀오면 누구를 만나고 오는지 가족들이 다 알아봐야 하는 것이죠.

사방에서 우겨싸임을 당하고 하늘이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있을지라도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도 이들과 마찬가지 기쁨과 능력으로 살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한 우겨 쌓였다고 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 죽고, 누가 증인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진리를 깨닫는 것도, 현실을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도 성령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몇 주 동안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는 진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그냥 교회에 다니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증인들이 그랬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 진실이라는 것을 목격하거나 목격자의 증언을 잘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은 우리 삶의 한 구석진 부분이 아니라 우리 인격과 삶 전체를 드라이브해서 천국의 영광으로 한 걸음씩 진격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럴 때 꼭 말이 아니라도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증언하게 됩니다.

우리 믿음이 이렇게 아름답고 축복된 믿음으로 점점 더 성장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2016년4월3일 주일설교 남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