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뒤로 하고 새해를 바라보는 첫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지나온 일년을 돌아보면 잔잔한 행복도 있었고 때로 속상하고 울적한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과 사건 속에 하나님이 신실하게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일년을 잘 달려와 이 자리에 도달한 줄 믿습니다.
오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입니다.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바울사도의 마지막 여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바울을 인도하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기도 하기에 우리의 지나온 일년을 빗대어 볼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노정의 드라마 같은 한 편의 일화를 통해 우리의 일년을 떠올리며 또 새해를 담대히 맞이할 믿음을 갖게 되길 축원드립니다.
바울사도는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설교에서 들어 온 대로 드로아교회에서 유두고 사건도 있었고,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모아 석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죠.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해 사도들을 만나고 선교여행 중에 모금한 거액의 연보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예견했던 대로 바울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몰려온 유대교 과격주의자들에게 붙잡혀 현장에서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이 폭동의 소식을 들은 로마군대가 현장에 급파되어 바울을 그들의 손에서건져내어 정식 법정에 서게 하는데요.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며 로마시민권자의 자격으로 로마황제 앞에서 공식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상소를 합니다.
미국국적을 가진 한국사람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식이죠.
그래서 죄수의 신분이 되어 로마행 배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선교를 꿈꿔왔지만 자유의 몸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묶인 채 로마를 향하고 있으니 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오묘합니다.
거기에다 바울일행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보름을 사투를 벌이며 표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한 섬으로 헤엄쳐 올라와 구사일행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장면을 떠올려 보면 바울의 마지막 여정이 정말 재난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죄수의 몸이 되어 압송되어 가는 와중에 태풍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난파 된 배에서 겨우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진 험한 노정이 힘겨운 재난영화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이 기획하고 감독하고 계셨다는 것을 누가는 행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황제 앞에 설 것을 예고하셨고, 이 큰 풍랑에서도 배에 탄 사람들을 모두 바울의 손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생사를 넘나들던 태풍 속에서 함께 승선했던 선원들과 군인들과 죄수들이 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과정은 우리가 보다시피 결코 만만한 일정들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야만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구원의 신비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생명을 맺는다고 하신 것은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년 중에 구원의 생명이 잉태되거나 자라났다면 그것은 푸근하고 안일했던 시간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부르짖던 시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울사도의 일기에 이런 수난들이 빼곡히 적혀있듯이 우리의 2016년 일기를 뒤적여 보면 서러운 일 위에 악재가 겹쳤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저도 전에 서원이에게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우울한 일과 더 우울한 일이 있는데 무슨 이야기부터 들을래?’
그런데 그 때 그 우울했던 일들이 뭐였는지 지금은 생각도 안 납니다.
그걸로 인해 제 생활이 크게 힘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라왔기에 바울이 광풍을 이기고 자기의 사명을 이뤄갔듯이 지금 우리도 많은 시험과 우울한 일들을 이기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바울의 유라굴로 광풍이 그렇듯이 우리를 휘둘렀던 사건과 사람들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항해에서 조타 핸들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셨기에 우리는 풍랑 속에서도 안전하게 한 해를 지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주님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새해에도 안심하고 출항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배는 난파되어 깨져버렸지만 사람들은 드디어 코 앞에 나타난 섬으로 헤엄쳐 올라가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1절을 보니 그 섬은 멜리데였다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멜리데는 지금의 몰타왕국이라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나라입니다.
지금도 몰타왕국에 가면 바울 만이라는 해변이 있습니다.
바울과 선원들이 구조되었던 오늘 성경 속 해변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생존자들을 맞아들인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의 이상한 점을 포착했습니다.
2절에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했다’고 하죠.
원어를 직역하면 ‘보통이 아닌 친절을 보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원주민들의 일행들을 대하는 친절이 예사롭지가 않았다는 것이죠.
바닷물에 쫄닥 젖어 해변에 올라와 떨고 있던 그 시각, 비까지 내리고 날씨도 추웠다고 합니다.
이미 계절적으로 겨울로 접어든 시기였거든요.
배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275명이라고 앞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일이 불을 피워주고 따뜻하게 맞이 했다는 것입니다.
지치고 힘이 빠진 날에 누군가에게서 예기치 않은 따뜻한 위로와 환대를 받아 보셨죠?
이런 사건들이 우리의 힘겨운 일년의 사이사이에 용기를 주지는 않았던가요?
제가 아는 전도사님이 커피 사업을 하다 십억원을 날리고 신학교에 오셨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된데다,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는 밀리지, 자기를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학교식당에서 밥값도 여러 번 내 줬습니다.
그런데 이 전도사님에게 어느날 한 권사님이 겨울 양말이 가득 담긴 쇼핑백을 건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니, 지금이 몇 월인데 아직도 여름 양말을 신고 다녀요, 감기 걸리지 않게 발 따뜻하게 해요’
그런데 그 소리에 하나님이 차디찬 자기의 발목을 보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빚에 시달리며 지치고 꽁꽁 얼어 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따뜻하게 녹더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또 몇 주를 버텼다고 하더군요.
때로 큰 기도제목이 응답되어 감격스럽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은 더 오래 기억이 남는 것 같습니다.
광대하고 크신 하나님의 의외의 섬세한 손길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꼭 맞는 사랑의 표현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험난한 항로에 지친 바울일행을 따스하게 환대하는 원주민들의 영접을 통해서 그들도 틀림없이 하나님의 자상한 손길을 느꼈을 것입니다.
본문 뒤에 이어지는 성경에서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이 붙잡혀 온다는 소문을 듣고 바울이 오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바울을 맞이합니다.
이 때 바울이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냈다고 누가는 바울의 태도를 관찰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위한 일군으로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바울이지만 인간 바울은 성도들의 위로와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죠.
우리도 성도들의 미소와 칭찬의 말, 건강을 걱정해주시는 위로와 정성껏 준비해주신 한 끼 교회밥을 먹으며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교회이고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의 기도와 격려를 통해 시련을 이겨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어려움에 있는 성도들을 서로 돌아보고 챙겨주신 우리 모두에게 모든 교회를 사랑하시고 성도들 돌보시는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축복을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훈훈한 분위기가 급반전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울이 모닥불에 나무 한 묶음을 던져 넣었는데 그 속에 독사가 숨어 있다 뜨거움에 놀라 바울의 손을 물고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일입니까?
은혜로운 성경강론의 열기가 뜨겁던 드로아교회에서 졸고 있던 청년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을 때,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구조 된 안도감과 따뜻한 섬사람들의 동정을 받으며 마음을 추스르던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경악을 했을 것입니다.
‘걱정마시오, 우리가 다 구조될 것이고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의 하나님이 어제 내게 말씀하셨소.’
이렇게 말했던 당사자 자신이 독사에 물려 죽을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일이 잘되어서 하나님께 기쁘게 영광을 돌렸는데, 그 일의 결과가 너무 예상밖으로 흘러가며 오히려 괴로운 일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한고비를 넘어 겨우 안심하고 숨을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 다시 걱정거리가 생기고 근심하며 전전긍긍할 일이 생깁니다.
때로 너무 거듭되는 고난이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걸 보던 사람들의 반응이 얼마나 차갑게 변하는지가 본문에서 드러납니다.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자로다 바다에서는 어떻게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막는구나.
이런 오해까지 받아야 하냐는 말이죠.
고난 중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말은 하지 않지만, 주변사람들이 우리를 차가운 눈초리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입니다.
마음을 추스릴 의욕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바울은 이번에도 마치 무심하듯 독사를 불에다 툭 털어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덮치는 사건들을 이렇게 툭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실력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어떤 고난이나 역경이 닥쳐올 때도 내 삶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심장이 떨리고, 두려움이 엄습할지라도 곧 주님께 시선을 향하고 더 멀리, 더 크게 사건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올해도 우리가 이렇게 믿음을 강화하고 연단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온갖 뒤숭숭한 수식어가 다 붙은 2017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셔서 넉넉히 이겨나가게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붓던지, 독이 퍼져 갑자기 쓰러져 죽을 걸로 알고 수근거렸지만 바울이 멀쩡한 걸 보고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은혜를 베풀던 원주민들이 이걸 보고 바울을 신처럼 여기는 상황으로 전세가 완전히 뒤집어 진 것이죠.
이 기적적인 일로 인해 멜리데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수월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위기의 순간을 주님과 함께 잘 넘기면 그 뒤에 반드시 뜻밖의 기회도 옵니다.
때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은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의 신앙이나 누군가의 신앙에 득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이 일의 결과가 이랬으면 좋았을 걸하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실패였고, 낭패였던 일이 오히려 신앙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잘 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런 일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도 낙담하지 말고 끝까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새해도 잘 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소식이 그 섬을 다스리는 보블리오라는 로마의 관료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보블리오는 특별히 바울과 누가 일행을 초대해서 사흘이나 그 집에서 성대하게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묘하게도 마침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앓고 있었습니다.
나의 시련의 때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순간 역시 그 사람에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기에 간절히 안수하고 기도해 보블리오의 부친은 하나님께로부터 치유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의료시설이 미비했던 섬사람들이 다 바울에게 와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 사는 것에 급급하게 지난 일년을 보낸 것 같지만 우리의 기도와 섬김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을 통해 주변의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떠올리고 마음을 여는 복된 삶을 다 사신 줄 믿습니다.
새해에도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 우리 가족과 직장에서 만나는 분들, 그리고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을 고치는 우리와 한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11절을 보면 바울 일행이 석달을 이 멜리데섬에 머물며 겨울을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주일도 아니고 삼개월 동안 멜리데섬 사람들이 바울 일행의 쓸 것을 대주며 후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눈치 안보고 편히 삼개월 겨울을 보내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것은 우리의 예측을 뛰어 넘으십니다.
새해를 생각할 때, 이런저런 문제들과 두려움이 앞서고 어떻게 또 한 해를 꾸려나갈지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추운 겨울을 멜리데 섬에서 대접을 받으며 편히 지내도록 최상의 선처를 해두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 때 보블리오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섬사람들이 다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고 합니다.
보블리오는 멜리데의 첫 감독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몰타왕국에는 보블리오 성당이 세워져 이 작은 섬마을에 바울과 함께 찾아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기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바울이 다시 로마로 향해 배를 타고 떠나고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인생 항로 역시 계속될 것입니다.
바울의 남은 여정을 위해 든든히 쓸 것을 채워주셨던 하나님께서 올해 믿음의 항해를 잘 감당하도록 모든 것을 예비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사명을 향해 담대하게 배에 오른 바울처럼 새해에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과 맡겨진 일들을 향해 주님과 함께 당당하게 출발하고 모든 일을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6 송구영신예배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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