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1장1절-9절 (강하고 담대하라)

남수연 2018. 1. 3. 18:23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맞이하기 위해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올해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최근 있었던 제천 화재사건을 생각하면 참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사람이 그 날 일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오늘 운명을 달리한다는 것도 모르는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이렇게 송구영신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은 불투명한 내년을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해주시길 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 본문 말씀이 위로와 확신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 하나님의 보장과 확답은 말씀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곧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힘을 얻어 새해를 향한 걸음을 시작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말씀은 출애굽의 영도자였던 모세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내용입니다.

1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배경이 나옵니다.

출애굽의 영도자였던 위대한 모세가 죽고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진군할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뽑혔다는 것입니다.

1. 여기서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이 역사적 사건이 품고 있는 영적 의미입니다.

왜 성경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이라는 지역에 정착하게 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우리가 이 밤에 모여 듣고 있습니까?

이 일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은 아주 중요한 원리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백만이 넘는 대집단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 놓는 어마어마한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수많은 성도들을 이끌고 영적 가나안땅인 천국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원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의 이런 내용을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 역사도 모르는 데, 무슨 남의 나라 역사겠습니까?

성경은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책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데 맞추면 딱 들어맞는 것이 바로 성경해석의 기본적인 열쇠입니다.

이름에 있어서도 여호수아의 뜻은 예수의 뜻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말입니다.

구약언어와 신약언어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호수아가 필요했듯이 우리가 축복의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특히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여기서 보면 이미 그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이 두 부분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미 너희에게 준 땅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이 땅을 공짜로 주셨냐하면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너희 조상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가나안 땅에 관심도 없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맹세까지 하며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우리를 부르셔서 그 영광스런 천국의 기업을 그냥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오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때문에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듯이, 우리도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씨를 통하여 천하만국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에 근거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뤄놓으신 구원을 믿음으로, 단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진리를 우리 신앙생활에서 확실하게 붙들지 않으면 구원은 감정이나 신앙상태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습니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사를 받고 영원히 복된 천국을 믿음으로 이미 받았다는 이 진리를 오늘 더욱 확실히 알고 분명하게 믿게 되시리 바랍니다.

 

 

2. 다음에 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모든 과정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적인 삶의 모본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정복전쟁은 예수님의 구원을 예표하지만 여호수아 자신은 우리와 똑같이 구원을 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면에서도 본문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또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죠.

인간 여호수아에게 하신 오늘 교훈은 여호수아처럼 새해를 정복하며 살아야 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도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세상 일을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라고 면제 받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다 예배를 드리고 신앙을 키워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년에 세상일을 어떻게 잘 해내고 성공할지에 관심을 갖고 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잘 유지하며 살아갈 때 영과 육의 삶이 안정적이고 평탄하게 되는 것이죠.

본문에서 그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주시는지를 배우고 새해를 꼭 그렇게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1) 먼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것들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끌었지만 그것은 여호수아가 한게 아닙니다.

가나안 정복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여호수아서를 읽어보면 부족들을 정복할 때 모든 작전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실제로 그 전쟁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 5장에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주민들과 첫 번째 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있었습니다.

13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씀이죠?

바로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군대장관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성육신하시기 이전에 일하시던 성자하나님의 현현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주관자는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구원의 주권자가 예수님이신 것과 일치되잖아요?
여호수아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새해를,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삶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답이 나오잖습니까?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의 작전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여호수아에게 부소불위의 권세를 주십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야말로 새해에 우리 삶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대한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무슨 센 힘이 있다고 이 두려운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일 하나만 터져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새 가슴인데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역경이나 사탄의 시험이 우리를 넘어 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죠?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새해에 힘써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그것은 막연하고 모호한 게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제대로 시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2)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도록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7절과 8절에 아주 명료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하나님이 일러주신 말씀대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방식입니다.

그 나라의 법을 따르는 게 그 왕의 통치를 받는다는 뜻이잖아요?

제가 아는 집사님이 자기는 평신도라서 하나님의 말씀도 잘 모르고 뜻도 잘 몰라서 말씀대로 지키며 살기가 어렵다고 말씀하더군요.

우리 성경은 한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영어가 아닌 한글 성경을 우리가 가지고 있잖아요?

어디를 펴서 읽어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해라 얼마나 상세하게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지키고 살 것을 만 가지로 기록해 놓았다고 하시잖아요?

호세아 812절입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본문 말씀도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늘 읽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묵상은 한가롭게 눈을 감고 공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묵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배가 고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짐승이 음식물을 격렬하게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읽되 내 영혼의 양식이자 그 말씀의 통치를 받고자 간절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정말 그 말씀대로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번 그대로 지켜보자며 산 적이 별로 없습니다.

말씀을 읽었다 해도 덮은 다음엔 내 습관과 세상에서 쓰는 방식으로 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길이 평탄하지 않고 형통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할 때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렇게 밝혀 놓으셨잖아요?

여호수아가 가서 차지할 땅은 그렇게 호락호락 한 땅이 아닙니다.

군사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의 일곱 종족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일입니다.

그 전쟁은 그들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전술을 연구하라고 하지 않고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대로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고 우리가 행할 길을 밝히 깨닫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5장에서 여호수아가 왜 본격적인 전쟁을 앞 둔 장정들에게 집단 할례를 시킵니까?

율법이 할례를 행하라고 정해 놓으셨잖아요.

당장 나가 싸워야 할 군인들에게 할례를 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대로 순종하고 할례를 행했을 때 하나님이 전술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 나가서 싸워야 할 첫 번째 전투인 여리성 전투에서 성을 일곱바퀴 돌고 외치라는 게 하나님의 전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은 무너졌습니다.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이 삶의 전술을 지도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올해 이렇게 성경말씀을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꾸준히 읽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므로 형통한 삶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형통한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7절과 8절에 형통하리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먼저 우리는 이 본문의 형통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으로 잘 되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세속적인 형통과 하나님 안에서의 형통이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형통은 그 중 어느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 안에서의 형통입니다.

그걸 구별하지 못하면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왜 세상적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지? 하는 의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도 형통하다고 했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형통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바로 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형통하다는 단어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형통한 것은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 안에 있으면 어떤 상황이라도 형통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조할 때 우리의 삶은 형통하고 점점 더 형통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형통하고, 세상적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알맞은 형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본문의 7절과 8절에 형통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 데, 8절의 형통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하나님의 주권이 이뤄지는 것을 말하지만 7절은 아닙니다.

7절은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네게 명령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지혜롭게 행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말씀을 늘 읽고 지키다 보면 시세를 읽을 줄 아는 안목이 생기고 상황에 대처할 지혜가 생기고, 올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말씀을 잘 읽고 따름으로 이렇게 큰 지혜를 받아 삶을 능력있게 경영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시편 119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대 사명을 앞두고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함께 하겠다 거듭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잖아요?

사실 여호수아는 그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40년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했던 12명의 정탐꾼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정복이 가능하다고 보고했었습니다.

저들은 우리 밥이다, 빨리 가서 차지하자고 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마음이 이렇게 약해져 있습니까?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물론 나이가 들면 마음이 좀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죠.

여호수아는 그래서가 아닙니다.

40년 전에는 모세가 그 모든 책임을 지고 있던 때입니다.

책임자로 있는 것과 명령을 받아서 행하기만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적게 벌어도 월급쟁이가 오너보다 어떤 면에선 마음 편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는 온 식구가 거의 한 방에서 잤잖아요?

잠결에 부모님이 두런 두런 생활비 걱정, 등록금 걱정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을 믿고 그냥 잤습니다.

책임을 지고 앞장서서 헤쳐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누군가 힘도 있고 믿을만한 사람이 길을 가르쳐주고 끌어주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과거엔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가 그렇게 이끌었지만 이젠 여호수아가 그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앞장 선 자의 두려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고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새해 다른 이들의 삶의 짐을 져야 하고, 또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새해 기대되는 일들도 있겠지만 일상은 늘 어려움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짐과 삶의 무게들을 생각할 때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염려와 걱정이 앞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곧 하나님의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맞추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를 이길 대적은 없습니다.

또 오늘 주신 말씀대로 성경을 늘 가까이 하고 그대로 지키며 살아간다면 새해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2017송구영신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