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24장14절-21절)

남수연 2012. 12. 19. 14:16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2414-21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서 천 명의 부모들에게 물었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말한다면 무엇입니까?’

천 명 중 750명이 '마지막 소원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백 프로 공감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본문은 여호수아가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백성에게 남긴 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1세대가 다 광야에서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을 밟았으니 그는 회중의 최고령자였고 아마 백세가 넘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 둔 백발 노장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막 정착한 축복의 땅에서 후손들이 쫒겨 나지 않고 영원히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었겠죠.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친 이스라엘은 지파에 따라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 이제 안식하려고 합니다.

오늘 모임은 말하자면 정복전쟁의 해단식 같은 자리라고 볼 수 있겠죠.

모든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젠 안전하게 성읍에 거주하며 기름진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게 되어 모두가 흡족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고별설교의 내용을 보니 백성을 각 기업으로 돌려보낼 여호수아의 마음에 불안감이 엿보입니다.

앞으로 너희가 섬길 신을 선택하라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불안했던 예측대로 결국 이스라엘은 한 세대만에 다른 신을 선택하고 가나안 땅에서 파경을 맞이합니다.

그는 이 땅에서 복의 근원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누가 뭐래도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신앙의 결단을 표명합니다.

자식 같은 백성들이 자기의 선택을 따르길 얼마나 갈망했겠습니까?

요단강을 발로 밟고 가나안 땅에 입성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벌의 대역사를 수행했습니다.

가나안 부족들은 자식을 우상에게 인신제물로 바치는 반인륜적 행위와 돌이킬 수 없는 부패와 타락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가나안의 패역한 종족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입주시키신 것은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여 공의로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을 예표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구약시대 사용하던 히브리어 발음이고 신약시대의 헬라어로 발음하면 예수가 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백성을 이끌고 들어간 여호수아는 천국에 우리를 이끌고 들어가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인 것이죠.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축복의 삶을 위해 오늘 후손들에게 준 교훈은 영적인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시고 영의 귀를 열어주셔서 복된 원리를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길 원합니다..

 

먼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려면 우상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 땅 까지 들어갔는 데 이제서 다시 하나님만 섬기라니 무슨 말입니까?

14절에 보니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을 이제는 치워버리라고 말하죠?

이스라엘이 아직도 조상들이 모시던 각종 우상들을 은밀히 섬기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까짓 목석으로 깎아 만든 우상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이스라엘이 끊지 못하고 끼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이 숭배하는 만물에는 악한 영이 깃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적이나 불상이나 무속 도구들을 제거하는 데 보통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집 앞에 고목나무 하나 베고도 집에 흉한 일이 생겼다느니 하는 말이 생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상도 그래서 만만히 볼 일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주변나라들이 섬기는 이런 여러 우상신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신들을 쭉 나열하죠.

조상 아브라함이 강 저쪽 갈대아 땅에서 섬기던 신, 애굽의 노예생활 때 섬기던 신, 그리고 지금 가나안에 들어와 대면한 이 땅의 신, 이것들을 하나님과 동등한 신들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시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한 결코 우상숭배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왜 아직도 과거의 우상들을 버리지 못하고 끼고 있었겠습니까?

하나님만으로는 안심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죠.

하나님도 우리를 도우시지만 이 우상들도 나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우상숭배는 불상에 절하고 제삿상에 절하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내 인생을 의탁하기에 충분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방편이 더 믿음직합니까?

이것이 우상숭배의 척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많은 것들을 우상처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지했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놓아야 할 때 얼마나 두렵습니까?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평판을 잃고, 한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가 정말 의지했던 것이 하나님만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효력을 발휘하는 여러 가지 우상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이 단절하지 못했던 우상숭배 행태를 가볍게 비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보다 위기에서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를 더 의지하고 그걸 위해 하나님 섬기는 게 항상 뒤로 밀린다면 이게 바로 그들의 우상숭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스팩 쌓으려고 주일예배를 빠지며 학원 다니면 그게 우상입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 입시에서 주일날 본 토플시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너희 속에서 그 우상들을 치워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수아가 이 우상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진짜 주인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비인격체인 돈을 어떻게 인격체인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도 돈 같은 비인격체로 여기고 있다는 예리한 통찰을 하신 말씀입니다.

돈과 하나님을 둘 다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천지를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고 정말 살아계셔서 나를 인도하신 것을 사실은 잘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성령의 깨닫게 해주신 은혜로 바로 알게 되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과도 맞바꾸며 믿음을 지키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멀찍이 따르는 것은 결국 그 믿음이 시험 받을 때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우상의 권력과 힘을 따르게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바로 이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결국엔 틀림없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오직 우리가 섬길 유일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게 해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또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된 삶을 원한다면 어느새우리 안에 자리 잡은 우상을 살피고 날마다 치워버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은 마귀가 꼭 교묘하게 이용해 우리를 넘어뜨리는 방편으로 삼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만족하게 끌어안고 있던 우상들이 결국은 수치를 당하게 하고 낭패거리가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항상 내가 집착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자꾸 맡기는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돈이 우상이면 하나님 앞에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꾸 돈을 묵상하고 있지 말고 부하게도 하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셔야 합니다.

자식이 우상이라면 자식을 내 맘대로 하려고 안달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하나님게 맡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건강이 내게 우상이라면 내 건강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믿음으로 염려되는 마음을 단련하고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 과신할 게 뭐가 있습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도 아무리 내가 지키려고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우리 중 누가 건강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나이 들면 세 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사고를 피해갈 수 있습니까?

조심한다고 사고가 피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상을 더 의지하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없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 데 기쁨이 부족하고 삶의 풍성한 복도 없는 것 같습니까?

주님이 약속하신 배에서 생수가 흐르는 축복은 어디가고 낙숫물 같이 겨우 겨우 떨어지는 은혜에 목이 마른 것입니까?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가장 큰 축복인줄 믿습니다.

그것만으로 만족이 되십니까?

하나님은 훨씬 더 광대한 축복과 능력 있는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의 광활한 땅을 믿음으로 취하라고, 하나님이 싸워주시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내 인생을 내 머리로 계산하고 하나님을 완전하게 신뢰하지 못하기에 영적 삶에서 패배하고 육적인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인생과 내 모든 소유는 구원과 맞바꾼 것입니다.

구원도 받고 이 땅에서 내 인생과 소유도 다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출발입니다.

구원받은 내 인생이 이젠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서 우리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경영하시는 인생은 미련한 우리가 꾸려가는 인생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담대함, 평안, 지혜, 너그러움, 향상 된 능력 같은 좋은 은혜와 은사를 풍성하게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의 우상을 분별하고 단호하게 치워버리는 영적인 훈련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좋은 것은 영적이나 육적이나 훈련 없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해 그렇게들 훈련을 하지 않습니까?

이것 없이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 책임지실줄 믿습니다하는 내 마음의 훈련이 우상버리기 훈련입니다.

그래서 하용조 목사님은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물건이 생기면 얼른 남을 줘버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집착하는 게 많아질수록 내 속에 우상이 쌓여가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스승이고 인도자 되신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을 잘 살펴보며 내가 집착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안심하고 하나님 앞에 내려 놓기를 순종할 때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믿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음 우리가 매일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섬기려면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17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우리도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단합니다.

첫째는 애굽의 종살이를 면케 하신 하나님, 둘째는 큰 이적으로 광야에서 우리를 보호하신 하나님, 셋째는 가나안 부족을 쫓아내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그들이 기억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 은혜를 기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영적 애굽에서 죄의 종 되어 살던 우리를 구원해주신 사실입니다.

내 죄의 값으로 당할 지옥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당하고 나를 살려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죽은 다음 반드시 가야 하고 영원히 살게 될 다음 세상이 뜨거운 불꽃 속이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내 눈을 사로잡는 세상의 우상을 배격하고 하나님만 섬길 수 있는 것이 무슨 대단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닐지 모릅니다.

지옥의 형벌과 삶이 무섭고 싫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맛이 밋밋하고 시들해지는 것 같을 때,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내밀 때, 천국도 하나님의 은혜도 왠지 마음에 닿지 않을 때 지옥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마터면 내가 영원한 생을 보냈어야 했을 끔찍하고 두려운 곳을 벗어났다는 사실이 우리를 다시 겸손히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할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참 부끄러울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죄와 오점을 가지고도 천국에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 그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두번째는 기적으로 우리를 인도해오시고 우리가 지나온 모든 일에 보호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만 신뢰하며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어떻게 40년을 지나왔는 지 생각할 때 마다 정신이 아뜩해졌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광야를 지나보셨나요?

때로 인생은 우리를 광야로 몰고 갑니다.

내가 어떻게 그 길을 지나왔나 생각하면 등줄기가 아직도 서늘해 지는 것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탈출구가 없을 것 같은 절망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위기의 시절이 인생에 찾아옵니다.

내 잘못된 행동의 결과이기도 하고 죄악 된 인간사에서 당할 수 밖에 없는 시련일 수도 있습니다.

시련의 와중에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을 놓칠새라 정신없이 쫓아갔는 데 뒤돌아 보니 어느새 터널 밖이었습니다.

지금 고난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다면 반드시 이 문제도 벗어나게 될 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처에 얼마나 많은 원수 같은 사람과 환경과 고통들이 우리를 두렵게 했습니까?

과거의 기도제목, 눈물로 부르짖었던 일들이 지금 어떻게 해결되고 문제들이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 지를 기억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은혜를 확신할 수 있지 않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서 독수리가 그 새끼를 업듯이 이스라엘을 업어서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고 오셨고 앞으로도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자꾸 기억할 때 하나님만 믿으면 어떤 역경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여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삶 속에서 더 깊이 체험하며 믿음의 길로 굳게 나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를 본문에서 생각해 봅니다.

14절에 말씀하죠.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첫째는 하나님은 경외하며 섬겨야 합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한없는 존경으로 인해 생기는 두려운 마음입니다.

이 장엄한 우주를 만드시고 만물을 무한한 지혜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비하면 우리는 티끌이요 먼지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광대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죄인의 옷을 입고 내려오셔서 나를 섬겨주셨다는 걸 생각할 때 우러나는 한없는 존경심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경외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인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끝까지 우리를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한없는 인자와 자비의 어깨에 기대 밥을 먹고 말씀을 듣고 이야기를 하며 이 땅에서 주님과 동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모습을 보았던 그 사랑했던 제자 요한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요한계시록1장에 천국에서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런 영광스럽고 존귀와 영화로운 분이시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너무 좋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제 마음이 가장 기쁩니다.

그리고 이거 아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기복신앙을 싫어해도 복이 임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17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 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시편 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 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잠언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년세는 짧 아지느니라

잠언1923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약속한 축복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사람에게 보장 된 축복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경외해서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며칠 전에도 계란후라이를 먹으며 우리가 얘기했습니다.

우리 어릴 때 만 해도 계란도 얼마나 귀했어요?

도시락 뚜껑 열었을 때 이런 계란후라이 하나 얹혀있으면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죠.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이 복 받는 것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나님만 경외하는 민족과 개인이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는 온전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흠이 없이, 또 전체를 드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도 우리의 마음에 일부만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 드려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드리려는 마음 그것이 온전한 마음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하나님께 헌금하기 위해 어머니가 다리미로 돈을 다리는 것 보신 분들 있을 것입니다.

김정택 단장도 항시 토요일이면 헌금을 다리미로 다리고 있던 어머니를 보며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이런 외형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다리미로 돈을 다리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아버지께서 보실 때 쓸데없는 짓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제가 교직에 있을 때 어버이날 감사편지를 쓰게 하고는 봉하지 않고 제출하게 합니다.

그 속에 꼭 이렇게 편지 쓰는 개념 없는 남학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날 축하합니다. 그런데 용돈 좀 올려주세요. 안녕히계세요.’

18년 만에 처음 받은 어버이 날 아들의 편지를 인터넷에 공개한 부모가 있더군요.

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어버이날인데 효도 방학도 안주는 학교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 어버이날은 빨간 날이 아니어서 일을 못 도와 드리게 하는 것일까요.

앞으로 쉬는 날에는 일을 많이 도와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돈도 아껴쓰도록 하겠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도록 노력할테니 핸드폰 쫌 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를 쓸려고 하니 할 말이 없네요.. 그만 쓸께요.

이런 편지 받고 웃어넘기는 부모 마음에 그래도 좀 섭섭함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의 온전한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때 얼마나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는지요.

정성을 다해 찬양을 준비하고 성도들을 위해 사랑으로 섬기고 예배를 위해 피곤한 몸을 이기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나왔을 때 우리의 마음을 받으신 아버지의 그 기쁨이 성령님을 통해 우리 속에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의 아버지 되신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를 더욱 경외하며 섬기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 하나님을 섬길 때는 진실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람끼리의 관계에서도 제일 기분 나쁜 것은 상대가 나를 진실하고 진지하게 대하지 않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상대에게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바엔 차라리 교제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 대접을 받을 순 없지만 최소한 가족에게 그리고 내가 각별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면 당연히 진실 된 대접을 원하겠죠.

하나님은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신 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 성의 없이 대하신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식사할 겨를도 없이 힘든 사역 중에도 최선을 다하시고 마음을 주신는 걸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치우쳐 살다가 아쉬운 게 있어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갈 때도 양심도 없는 자식이라고 홀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모든 것을 주시고 사랑한 우리에게 진실한 대접을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19절에서 여호수아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질투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른 무엇에도 뺏기고 싶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과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미국 퓨리탄리폼드 신학교 총장인 조엘비키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부모님의 결혼 50주년을 맞아 다섯 명의 자녀들이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는 데 부모님께 감사한 내용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기념식 날 발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섯남매 모두 감사한 내용이 똑같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어머니께는 기도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아버지께는 가정예배를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다고 합니다.

그 중 형제 하나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다섯 살 때에 보았습니다.

그 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때에 기독교는 진실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라면서 방황한 적은 있지만 기독교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를 가진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보이지 않는 어떤 분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이스라엘은 다행히 여호수아의 간곡한 설교를 듣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서약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들의 전쟁에서 적들을 이기게 하시고 그 세대가 다 가도록 평안과 축복을 아끼지 않고 내려 주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왔을 때 다음세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사사기는 기록합니다.

여호수아는 오늘 그들에게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쳤지만 그들은 후손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시고 기도하는 부모들 되시길 원합니다.

솔제니친은 기도의 문이 닫힐 때 축복의 문도 닫힌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내려놓는 훈련을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세상적인 염려에 매일 짓눌려 사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염려하는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이죠.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심하는 우리에게 가나안의 모든 평안과 축복으로 영원히 동행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2년12월16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주일예배 설교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