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도 없이 캄캄한 암흑 속에서 갇혀 절망한 사람을 위로 할 말은 과연 무엇일까요?
37세 한창 나이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실명이란 청천벽력 같은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어떤 말이 그에게 소망을 줄 수 있겠습니까?
미국 이민을 앞 두고 미래의 부푼 꿈을 꾸던 한 남자는 실명 앞에서 모든 인생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앞이 보이지 않는 그를 버리고 딸 둘을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교회 문 앞에 하나님은 없다라고 써 붙였던 반항아였습니다.
아버지를 가난한 목사로 만들어 가족을 고생시킨 하나님이 미워 일부러 교회에서 멀찍이 떨어져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빈 집에서 절규하며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던 그에게 어느 날 새벽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내가 어디든지 너와 함께하겠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어줄 것이니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
하나님의 음성은 그를 절망 속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빈 집을 떠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서울역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구두닦이 껌팔이 거리의 소년들이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배움을 동경하던 소년들은 그가 한 때 학생을 가르쳤단 말에 선생님이다라고 소리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학을 시작했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앞 못보는 맹인이 눈 뜬 학생들을 위해 미아리에 진흥야간중학교를 세웠습니다.
야학이 유명해지고 교장이 맹인이란 소문이 나자 시각장애인들이 하나둘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게 교회가 되고 재활원이 되었습니다.
안0한 목사님의 새빛교회 입니다.
이장호 감독은 그의 이야기를 낮은데로 임하소서란 영화로 만들어 대종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날 새벽 안목사에게 들려주신 말씀대로 어디든지 그와 함께 했고 단 한번도 그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간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가 처음 미국으로 간증하러 가기 전 어머니가 계신 시골 집에 들렀습니다.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어머니는 여비에 보태 쓰라고 그의 손에 미국돈을 쥐여 주셨습니다.
1달러였습니다.
미국인 선교사에게 받은 1달러가 큰 돈인 줄 알고 25년을 소중히 간직했다 미국 가는 아들 손에 쥐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그 1달러를 생각하면 어머니의 사랑에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안목사는 독일에 갔을 때 아직 시신경이 살아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하면 80%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기뻐서 일주일을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 동의 사인을 하려는 순간, 보고 싶은 마음이 구름 걷히듯 사라졌다고 합니다.
맹인이 아니면 누가 상처받은 맹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같이 눈먼 사람의 말이 그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수술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사역을 시작한 지 32년이 된 안목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목사는 야구팬이라고 합니다.
야구장 가면 1루 쪽 스탠드에 앉는 데 딱, 치는 소리 나면 안타인지 아닌지 다 안답니다.
투수 교체 시기도 거의 맞힌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는 보는 것과 못보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준 그는 진짜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강하고 담대하란 말씀을 들어야 할 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바로 본 서의 저자인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가 죽고 후계자가 되어 가나안 정복을 완수해야 할 임무 앞에 서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이스라엘백성은 광야에서 40년 훈련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이 전쟁에 능통한 가나안 부족을 상대 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에게 오늘 강하고 담대하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절실하게 필요한 줄 믿습니다.
가나안 정벌의 영웅 여호수아와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말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우리는 염려와 두려움에 가득 찬 새 지도자 여호수아를 만나게 됩니다.
내일이 염려되고 하루 하루가 힘들어 낙심하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인간 여호수아입니다.
그가 싸워야 할 가나안 전쟁은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싸워야 할 영적 전쟁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에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천국의 상속자가 된 우리에게도 날마다 우리 죄와 싸우고 악한 영과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싸움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승리의 전략을 가르쳐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이 시간 우리에게도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여호수아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여호수아는 출애굽 직후 그들이 들어 갈 약속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2명 중 하나입니다.
열 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병력이 뛰어난 가나안 부족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가나안 정벌이 불가능하다고 비관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해서 그 땅은 정복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열 명의 현실적인 보고를 믿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다 죽게 되었다고 통곡을 합니다.
이것이 광야 40년 유랑생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세대 중 누구도 가나안에 들여보내지 않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이만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대단했고 모세에겐 충성 된 시종이었습니다.
출애굽 40년간 오직 하나님과 모세를 충성되게 순종하며 따랐던 그 여호수아가 드디어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과업은 녹록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존패가 달린 대장정을 앞두고 모든 것은 불투명하게만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 막중한 임무를 앞 둔 여호수아의 마음 속 깊은 두려움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6절에 강하고 담대하라 7절에 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9절에 한번 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많이 두려워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들 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만은 우리 마음의 걱정과 두려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길 원하십니다.
여호수아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위대한 지도자인 상관 모세의 죽음입니다.
신명기 34장10절에 보면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 탁월한 영도력을 가진 상관 모세의 뒤를 이은 자기를 볼 때 초라함과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을 믿고 따를 때와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 간다는 것도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누구의 인도와 도움 없이 내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때 우리 마음에도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미래를 비롯해 결단해야 할 가정의 문제들이 수시로 닥쳐옵니다.
회사의 업무도 때로 감당하기 힘든 과중한 부담에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풍랑 앞에서 맥이 탁 풀려버릴 때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막중한 부담이 우리 앞의 문제들과 비교할 수 없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받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각자에겐 누구나 똑같이 최악의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두려움엔 또 가로막힌 요단강이 있었습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 요단을 건너라고 말씀하십니다.
3장15절에 보면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요단강은 지금 언덕에 넘치도록 만수위에 도달해 있습니다.
유랑민족 이스라엘에게 무슨 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요단을 건너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세가 출애굽 때 홍해를 가르고 건넜듯이 너도 요단을 가르고 건너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자기가 그렇게 다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믿음으로 병도 고치고 기적이 일어난 얘기를 듣고 그 현장에 있었다 해도 그게 어디 우리 믿음이 됩니까?
막상 내 문제로 기도하면 자신이 없어지고 막막하고 의심이 생기는거와 마찬가지로 그는 엄청난 믿음의 도전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여호수아에게 있는 큰 두려움은 완악하고 목이 뻣뻣한 민족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광야 40년 동안 수없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이스라엘을 보아왔습니다.
모세도 때로 하나님 앞에 이 백성이 어디 내 백성입니까?
왜 저에게 이 짐을 맡기시냐고 하소연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것은 여호수아에게 큰 시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지금 최고의 지도자 모세를 잃고 30일을 애곡한 집단 히스테리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모세가 회중 앞에서 여호수아를 세우고 안수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후계자라고 전권을 이양했다해도 그들이 과연 인정해 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어렵게 하는 그 어떤 문제보다 사람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잘 해결이 된다 하더라도 건너가서 치러야 할 전쟁은 또 어떻습니까?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에게 무슨 최첨단 무기가 있겠습니까?
빈약한 무기로 어떻게 강인한 무기로 무장한 전쟁으로 다져진 가나안 부족을 상대해 싸울지도 막막했을 것입니다.
정말 여호수아가 몇 날 밤을 새우며 진 영을 왔다 갔다하는 모습이 상상이됩니다.
오늘 여호수아의 두려움을 생각하니 성경의 위대한 인물이라도 우리와 같은 두려움을 가진 연약한 인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 앞에서 서성이는 여호수아는 마침내 가나안 정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이스라엘 12부족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여호수아서를 끝맺습니다.
그가 그 모든 과업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첫째로 그는 기도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라고 기록되었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과 두려움 중에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을 돌파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우선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사명을 놓고 하나님 앞에 나가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도의 사람인 것을 아십니까?
출애굽기33장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만나는 모세 곁에서 시중을 들고 난 뒤 모세가 진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성막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민수기 27장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후계자를 삼으라 하십니다.
평소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훈련이 된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가 올 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합니다.
이 고난과 위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이룬 루터는 기도하다가 ‘이겼다, 이겼다’ 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종교개혁의 성공을 확신했다는 뜻입니다.
답답한 문제를 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응답을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구했다면 어떤 방법이든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3절에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모두 주시겠다고 합니다.
5절에 평생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런 복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그러니 너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곤고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번민할 때 우리도 하나님아버지 앞으로 나가면 반드시 말씀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누가 너희를 대적하겠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을 때 우리 안에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고 평안이 올 줄 믿습니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바로 오늘 9절 말씀이라고 합니다.
경기에 우승하기 위해 초긴장 상태에 있는 선수들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이 말씀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말합니다.
최0주선수가 지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18억5천만원의 상금을 탔고 미국 PGA에서 여덟 번째 우승을 따냈습니다.
이렇게 다승을 하는 선수가 열 명 안 팍이라고 합니다.
타이거우즈, 비제이 싱, 필 미켈슨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최선수가 골프를 시작한 동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그는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웃으며 얘기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역도부 할 사람 나오라는 체육선생님 말에 12명의 학생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여섯 명씩 두 줄로 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왼 쪽 여섯명은 역도부, 오른쪽 여섯명은 골프부 하더랍니다.
골프가 뭔지도 모르던 최선수가 골프부가 싫어서 슬그머니 옆 줄로 가서 섰더니 제자리로 돌아가란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최 선수를 골프선수로 부르신 방법이었습니다.
뭐 거창하고 대단한 부르심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얼떨결에 우연히 된 것 같은 일도 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었다는 것이죠.
잠언 16장 33에도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돈 없이 골프를 배워야 했기에 서울로 올라와 갖은 고생 끝에 프로로 데뷔합니다.
미국 무대로 진출한 최0주선수는 만만찮은 PGA무대에서 성적 부진의 시련을 겪을 때 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결국 PGA 투어에 그 많은 실력 있는 선수 가운데서 그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최선수는 티샷을 한 후 걸어가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암송하며 찬송을 부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손과 다리가 덜덜덜 떨린다는 결승 마지막 라운드 역전의 홀 앞에서 그는 기도합니다.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지고 침착한 퍼팅으로 승부를 마무리 합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단순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영어가 안 돼 자신이 없고 힘들 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가라 내가 다해주겠다 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담력이 생겨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더니 기자들이 다 알아듣더라는 겁니다.
미리 두려워 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죠.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에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자기 명예나 돈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과 낙심되는 상황에 빠질 때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한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이고 마귀의 생각입니다.
걱정 근심 시름에 잠겨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죄성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리라 믿고 기도하시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해결 방법을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잘 못 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 놓고 지금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의 환경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고의적으로 불순종 불의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과정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가운데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먼저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6절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을 처음 약속한 게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이 십니다.
그것도 맹세까지 하면서 축복의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여기 스스로 찾아서 오신 분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다가 오셔서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시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지할 곳 없는 고아처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탄한 길 형통한 길을 주길 먼저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알아서 좋은 것 먹이려 하고 좋은 집안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거와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같을 줄 믿습니다.
아이들이 원치 않아도 살만큼은 물려주고 싶은 게 부모마음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확신했기에 담대하게 이기고 땅을 차지한 줄 믿습니다.
항상 우리 편이 되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기도하며 어떤 상황에도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두 번 째로 여호수아가 약속을 성취 받기 위해 할 일은 무엇입니까?
7절과 8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전해 준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네 입에서 율법을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여 기록 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우리가 앞을 가로막는 문제를 해결하고 형통하게 되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세속적인 삶을 사는 자녀들은 스스로 떳떳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가질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말씀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죄와 불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먼저 충족하신 후 임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다 해도 우리의 죄 값을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를 받아들이실 수 없으셨습니다.
우리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하나님 스스로가 혹독한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지난 번 문경 십자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던가요?
정말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저는 그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파장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정말 모든 사람이 그렇게 끔찍하고 몸서리쳐질 만큼 잔인한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런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살 길을 열어주셨으니 이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말씀대로 사는 삶이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고 축복 된 인생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연약한 믿음이라도 듣고 배운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한계와 깨달은 것 이상을 순종하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장가 들 나이 된 큰 아들과 지금 막 걷기 시작한 늦둥이에게 부모가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습니까?
우리 앞에 큰 문제와 어려움을 두고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의 작은 믿음과 헌신을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감사하라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기뻐하라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행동해야 할 모든 것은 이 말씀가운데 다 기록된 줄 믿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해석하지 말고 말씀대로 믿고 순종할 때 약속대로 평탄하고 축복 된 삶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무리 우리 앞에 어려움과 역경이 있어도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호수아의 두려워 하던 것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모세처럼 추종했습니다.
요단강은 홍해처럼 갈라졌고 난공불락의 요새들은 무너졌고 그가 밟는 땅은 다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두려운 환경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벌하기까지 그의 남은 생애를 다 바쳐야 했습니다.
우리 기도하고 원하는 것이 당장 응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시에 오시고 지체하거나 늦지 않으십니다.
인생에서 믿고 기대했던 것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고 기댔던 것들이 사라지길 기다리시는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영적 싸움터로 담대하게 나가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터인 이 땅은 아직 완성 된 천국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전쟁터라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 때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리라고 약속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힘을 내고 일어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우리 예수님께선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고 우리와 함게 하시며 우리를 이끌어 영원한 약속의 땅 하나님의 축복의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줄 확신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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