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12장22절-32절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남수연 2019. 2. 25. 22:48

https://www.youtube.com/watch?v=wVvD7UVghXA&t=546s


2019년2월24일 설교영상



한 주간 동안 다들 평안하셨습니까?

큰 어려움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신 분도 계시겠고, 마음이나 신체적으로 좀 힘들게 보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나에 의해서만 좌우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엔 두 세계가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보이는 자연세계와 얽혀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우리 삶에 개입했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죠.

오늘 말씀이 이 두 세계의 공존과 그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삶 속에서 이 전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 관계들을 인식하고 하나님 편에서 사탄과 맞선다면 마음과 소유를 안전히 지키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전쟁에 대해 무지하면 자꾸 뺏기는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중대한 영적 지식을 잘 이해하고 영과 육의 세상을 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병든 사람을 고쳐주신 것과 맞춰서 전개됩니다.

세 가지 정도로 말씀이 주시는 메시지를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귀신추방과 병 고침으로 보여주시는 에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둘째는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저항하고 있는 사탄에 대해서입니다.

셋째는 이 사이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역할에 대해서입니다.

내용이 많아 분산되기가 쉬워서 요점을 먼저 정리 해 드리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1. 먼저 귀신추방과 병고침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한 원리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눈멀고 말을 못하는 불쌍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귀신에게 붙들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질병은 원죄의 결과에 의한 생로병사에 따라 발생합니다.

그러나 귀신에 의해서 생기는 질병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더 잘 인정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인 의술로는 잘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환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은 당연히 귀신을 쫓아 내셨다는 뜻이죠.

그리고 눈과 성대의 기능이 회복되도록 고쳐주신 것입니다.

눈이 안보이고 말도 못한다면 어떻게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변을 볼 수 없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눈앞이 깜깜한 것만큼 삶은 절망적이겠죠.

게다가 이 병자는 사람들도 느낄 만큼 귀신에게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고 병을 다 치료해 주셨다는 것은 단순한 기적이나 의술을 베푸신 차원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영적으로 눈먼 상태로 사탄에 잡혀 있는 인간을 대표해 등장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눈에 보이는 육적인 삶도 곤궁에 빠져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이 기적을 지켜 본 사람들이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하죠.

예수님이 메시야이길 바라는 큰 기대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집을 잡으려고 와 있던 바리새인들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이 사탄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메시야인지 검정하려는 자들과 입증하려는 주님과의 긴장관계가 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해 놓은 메시야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야 같은 사람이 나오면 구약성경의 메시야상을 잣대로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검정하려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도 역시 그 메시야상에 자신이 일치되는 분이심을 증명해야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은 계속 이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역시 구약성경을 갖고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메시야 논쟁과정을 관전하면서 예수님이 과연 메시야인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귀신들린 병자를 고치신 것도 메시야상에 맞을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사야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예수님은 그것을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사야 611절에 근거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기서 내가 누구입니까?

이사야선지자에게 이런 능력이 임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잖아요?

메시야가 성령의 능력으로 포로되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것입니다.마귀에게 포로가 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죠.

지금 예수님이 성령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게 예언 된 메시야사역에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35장에서 이렇게 메시야의 사역을 예언했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오늘 맹인이 보게 되고 다시 말하게 된 것과 일치하잖아요?

안식일마다 회당예배에 참석하던 유대인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이 두 가지 예언이 완벽하게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므로 지금 너희가 고대하던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벌써 이런 말씀들을 연상하고 이분이 메시야다, 다윗의 자손이다라고 술렁거린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이적을 보고 바리새인들만 예수님을 더 큰 귀신들린 사람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가 증언하는 사람들의 논쟁에서 우리도 입장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 메시야가 맞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병자처럼 내게서 귀신이 나가고, 눈이 열리고 입이 열린 것이 아니라 해도 우리 안에 사탄은 결박되어 쫒겨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눈이 열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 우리 혀는 풀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다음은 이 큰 구원에 저항하고 있는 사탄의 세력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시는 이런 사탄과 귀신들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하는 입장은 이것에 무지하고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지식들을 가진 것과 무지한 것은 실제 살아갈 때 큰 차이를 만듭니다.

이걸 알아야 지금 내 안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이지만 신이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과거 천사였다 타락한 이 사탄과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신비에 속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악령들에 대한 지식은 예수님과 성경이 가르쳐주신 범위 내로 제한해야 합니다.

개인이 경험하거나, 살면서 얻어들은 귀신에 대한 지식들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선 사람은 귀신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억울하게 죽어 이 땅에서 맴도는 그런 귀신은 없습니다.

조상신도 없습니다.

사람의 영은 죽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또 지나치게 악령들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둠의 영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우리가 감각으로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말이 잘못 된 지식이라고 바로잡으십니다.

25,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나라든 단체든 집이든 그 안에 서로를 망치는 분쟁이 있으면 어떻게 바로 서겠느냐는 것입니다.

잘 해볼 생각이 있으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죠.

최근 우리나라가 너무 진보와 보수 간의 분쟁이 심화되어서 걱정입니다.

이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 왕국이 있다는 것과 사탄도 자기 나라를 굳건히 지킨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싸워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은 절대로 안한다는 것이죠.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귀신들이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강한 귀신이 약한 귀신을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사탄의 나라가 얼마나 조직과 체계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절대로 자기들끼리 무너뜨리고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실제로 퇴마사나 무속인들이 귀신을 내 쫓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건 실제로 귀신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눈속임을 하고 서로 위치만 바꿔 앉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자리 이동인 것이죠.

귀신은 무속인이나 퇴마사의 능력으로 쫒겨 나지 않습니다.

저희 집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어릴 적 저희 아버지가 귀신을 들여 고사도 지내고 귀신 힘으로 운세도 좀 봐줬습니다.

한의사셨기에 약과 함께 부적도 써주면 병도 아주 잘 나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느 날 점을 보러 가셨는데 점쟁이가 이 사실을 다 알아 맞추는 것입니다.

이 귀신을 내쫓아야 집안이 편하니 큰 굿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식들이 이 귀신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죠.

근심하며 돌아온 어머니가 우리 자식들을 모아놓고 이 문제를 의논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결론이 너무 쉽게 나버려 좀 싱거웠던 것 같습니다.

결론은 작은 귀신 내쫓으려 큰 귀신 불러들이지 말고 이번 기회에 기독교로 개종하자였습니다.

아무렴 귀신보다야 하나님이 더 쎄지 않겠냐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죠.

그리고 귀신에게 간택될까봐 겁나 열심히 믿었습니다.

무속인 말대로 사람들은 마치 큰 귀신이 작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계획적으로 임무교대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나라와 체계가 그만큼 치밀하기에 벗어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의 최우선 과제는 이 마귀의 통치와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 중요성을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시죠.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강한 자가 장악하고 있는 집에 들어가 그 소유물을 꺼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한 자가 순순히 내 줄 리가 없잖아요?
먼저 그 강한 자를 꼼짝 못하게 결박해야만 그가 점유하고 있는 무언가를 뺏어 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먼저 사탄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형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귀신들려 눈이 멀어 꼼짝 못하게 된 이 병자가 그런 상태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상태가 드러나지 않지만 다 사탄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와서 그 포로 된 속박을 풀어주겠다고 하셨다면 속박된 자가 있다는 걸 전제하는 것이잖아요?
요한일서에서 사도요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이듯이 온 세상은 악한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사탄이 주인 되고 지배하는 사탄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배당하지 않으면 그 빈집은 사탄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냐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의 성패를 가르는 것입니다.

또 주인은 자기 집을 자기 취향으로 가꿉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면 하나님의 모든 좋은 성품과 선한 것들로 우리를 가꾸고 다듬어 가십니다.

마귀가 자기 백성을 삼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또한 마귀의 성품대로 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어둡고, 방탕하고, 더러운 인품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쩌다 이렇게 마귀에게 붙들리는지를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일서38절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하나니

사람들이 죄를 짓는 틈을 타서 마귀가 점점 그 사람을 장악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약점과 단점, 개성과 기질들이 다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별로 시험에 들지 않는 문제인데도 어떤 사람은 그 문제에 항상 넘어집니다.

이성 문제에 특히 약하다거나, 돈에 늘 시험에 든다거나, 세속과 허영심에 쉽게 넘어간다거나, 화를 잘 낸다거나, 심약해서 늘 불안하거나, 고집이 쎄다거나.

사람들이 누군가를 험담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 사람 다 좋은 데, 딱 이거 하나가 문제야

사람들이 없는 사람 디스 하는 것 같지만 잘 본 거예요.

이런 단점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런 약점을 귀신같이 이용해서 죄를 짓게 하고 마귀는 점점 더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워낙 교묘하게 우리 약점에 붙어서 활동하기 때문에 눈치채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도박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도박장에 막 가고 싶다거나 그러면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늘 넘어지던 것에 또 넘어질 때는 단지 자기 약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좀 피곤하고 긴장이 풀려서 약점이 또 나왔는지 그 사이를 마귀가 틈탔는지를 분별할 줄 알면 대처방법이 좀 달라집니다.

자신을 이렇게 분석하고 파악할 줄 알면 마귀에게 넘어가 손해 보는 일이 훨씬 줄어드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 악의 세력들은 가장 교활한 활동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44절에서 바울사도가 파악했습니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사람들의 약점을 부추겨 죄 짓고 마귀 닮게 하는 게 다가 아닙니다.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해서 구원에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성경박사들이지만 그들의 오랜 교만 속에 집을 지은 마귀들에 의해 복음의 광채가 가려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결국 이들을 단죄하시잖아요?

독사의 자식들아.

이것이 강한 자가 들어가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행한 실체입니다.

거기 들어가 이 영혼들을 꺼내오는 게 쉽겠습니까, 어렵겠습니까?

예수님은 마귀를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지 않고 강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를 꺼내 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더 강한 자가 들어가 그 놈을 꼼짝 못하게 묶고 꺼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던 강한 사탄이 쫓겨가고 그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 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은 오늘 주인공 못지않게 귀신의 속박에서 극적으로 풀려난 사람들이기에 이 은혜가 더 실감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결박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어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빈집은 무섭잖아요, 왜 무섭습니까, 거기 무언가 있는 것 같아서죠.

우리 영혼을 빈집으로 두지 말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안전하고 복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이 구원 사역에는 성령님의 필연적인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지원하시는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죄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내려집니다.

31,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사역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으라고 감동하시는 데 거부하면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오늘 바리새인들이 그런 것입니다.

이미 군중들은 이 기적이 메시야의 증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방식과 쌓아 온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진리와 구원에 대해 몰라서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다 보면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설득이 될 듯 말 듯, 결단을 할 듯 말 듯, 그렇게 오래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미루는 동안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귀신의 영향을 받으며 귀신의 영역을 더 많이 허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의 감동을 끝까지 거역한다면 영원히 속죄 받을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또 이미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신 우리들도 경계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성숙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거역하면 성장하고 성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엔 거짓말 하고, 나태하고, 세상방식대로 살아도 갈등이 없었지만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 가르치심을 계속 생각나게 하시죠.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그걸 계속 무시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마음에서 밀어내면 귀신들은 슬그머니 우리 죄를 타고 다시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설령 악령들이 간섭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며 꾸려가는 삶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선하고 안정된 삶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악령이 없이도 사람은 마귀 같은 짓을 합니다.

인간은 마귀보다 힘은 없지만 마귀보다 더 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악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극한 상황, 전쟁, 천재지변, 이런 것들을 만나면 인간의 악함이 나오잖아요?

살인하고, 방화하고, 약탈하고.

이런 무궁한 악의 가능성을 가진 우리를 제어하려면 성령의 제어와 인도를 반드시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귀신들려 병든 사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현실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귀의 일을 모른 척한다고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아닌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얼마나 자주 우리에게 접근해 있는지는 성경에서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셔서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번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죽을 때까지 붙어서 구원을 저지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상상이 포함 된 작품이니만큼 그대로 믿을만하지는 않겠죠.

다만 내가 지금 마귀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신중한 언행심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압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따라 내 버릇과 성품을 고쳐나가고 죄의 요소들을 이겨내려는 긴장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마귀가 틈타지 못합니다.

그러나 태만한 가운데 있다면 처음엔 별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점점 위태로운 조짐이 나타납니다.

왠지 무언가에 눌리는 기분이 들고, 더 부정적이 되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세상적이 되고, 마음이 차갑고 냉소적이 되면 성격 이면에 마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또 마귀는 현실의 문제를 크고 두렵게 부각시킵니다.

불안과 근심으로 심령을 쇠약하게 만들어 믿음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매일의 현실을 직시하되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다면 넘어지지 않고 곧바로 서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힘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신 것은 우리도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결박하고 나를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마귀가 다가온 환경이나 기분을 느낄 때 어떻게 마귀를 좇아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그렇게 한다고 귀신이 쫓겨가지 않습니다.

마귀의 속한 감정에 동조하지 않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기도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선택하면 마귀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평안을 누리라고 하셨잖아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미움에 넘어가지 말고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격과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귀신은 물러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움 없이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선하고 복된 것으로 우리 영혼의 집이 늘 풍성하게 채워짐을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