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14장8절-12절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남수연 2020. 2. 26.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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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2월23일 설교영상


세상적인 종교의 관점으로 본다 해도 기독교만큼 사람을 계몽하고 사회를 발전시킨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은 본래 내세를 위한 것입니다.

현재의 삶을 더 아끼고 가치 있게 살고자 하는 것도 내세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근본을 자꾸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 믿음은 단지 현세를 잘 살기 위한 세속 종교로 타락합니다.

현세는 밤의 한 경점에 지나지 않고 내세는 영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평생 관심을 갖고 배우고 즐거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 안에 구원의 비밀과 내가 장차 얻을 영화로움이 담겨 있는 것이잖아요?

오늘 본문은 제자 빌립의 불완전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빌립의 의혹에 대해 예수님은 참 믿음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십니다.

과거 역사 속에 오셨던 예수님과 지금 하나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동시에 알아야 내세를 위한 견고한 믿음이 됩니다.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예수님만 알 때 믿음에 실패했지만 부활하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을 알고 나서 하나님나라도 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나눈다는 것에는 더욱 미흡하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잘 이해하게 하시고 영원한 내세에 대한 믿음도 갖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1.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삼년 동안 따랐던 예수님이 곧 십자가를 지게 되실거라는 말씀에 큰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 될 새롭고 강력한 이스라엘 국가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생각과 다른 계획을 말씀하셨을 때 충격에 빠진 것이죠.

지금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인류를 영벌에서 구원해 복된 영생으로 인도하기기 위한 계획대로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 말씀을 되짚어 보면 주님이 세우실 나라에 대해 제자들 생각대로 말씀한 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제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으며 주님을 따랐던 것이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고 싶어합니다.

도대체 하나님 뜻을 모르겠다는 말은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애매하게 전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각자의 렌즈로 주님을 보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모든 상황도 제자들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을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열렬히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신 이적을 생각할 때 로마제국을 대항해서 독립한다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몇 번째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언급하시는 예수님이 당혹스러운 것이죠.

첫 번째 십자가 말씀을 하셨을 때 베드로가 어땠습니까?

그런 나약한 소리 마시라고 주님의 멱살을 잡다 시피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만찬이라 하시고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는 말씀까지 나오자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신자들이 처음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의지합니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점점 믿음에 대한 회의감이 듭니다.

제자들이 그런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따르던 이 분은 메시야가 아니었던가?’우리가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이런 불신감은 언제든 신자들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지고 평생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육체를 소유한 인간의 한계인 것이죠.

결국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는 예수님께 실망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제보해 돈을 챙기고 자기 갈 길로 가고 맙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돌아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우리교회만 해도 지난 10년 동안 많은 사람이 와서 잠시 믿어보려다 돌아섰잖아요?

코앞까지 왔던 메시야의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느낀 빌립은 결국 참았던 말이 터져 나오고 맙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이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못 믿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진 못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14장을 읽어보면 빌립 뿐 아니라 도마도 마찬가지로 의심이 가득 찬 질문을 예수님께 던집니다.

실망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믿음이 무너지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주님의 아픔이 어떠셨을까요?

오늘 하나님을 예배하는 많은 교회 안에도 이런 의혹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믿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일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정말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일까?’

현세적인 믿음은 오히려 현실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내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더 현실을 잘 이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도망쳐 버린 제자들은 결코 의지가 박약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예수님이 주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사람은 결국 더 확실한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 내세의 근거가 될 복된 진리를 잘 이해하고 믿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아버지를 알고 믿으라고 가르치시는지를 알아야겠죠.

예수님은 빌립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이미 보여 주셨다는 게 오늘 주님의 답변입니다.

그것은 당시 빌립에게는 곁에 계신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우리에겐 그들이 전해 준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랬다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장엄한 강림을 본 이스라엘은 다 하나님을 믿었게요?

그렇지 못했잖아요?

믿음의 확신은 무언가를 보고 기적을 체험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과 신뢰는 상대의 인격에 대한 정밀한 판단 아래 생깁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따랐던 예수님이 얼마나 믿을만했던 분이신지를 기억해야 했던 것이죠.

그랬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믿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신비로운 하나님지식 중에 성자와 성부는 한 분이시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택하신 특별한 분이라고 알았지 주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격으로 존재하는 한 분의 신이라는 것은 사람의 머리로 이해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분명히 제자들 생각에 하늘엔 성부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은 눈앞에 계신데 어떻게 둘이 하나가 되는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죠.

지금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분명히 다른 인격체이신데 왜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우리 상식으론 차라리 세 분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게 더 쉽습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이런 계시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일들은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선 초자연적인 지식을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은 분리 된 분이 아니라 하나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은 각각의 인격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한 분이시고 생각과 특성도 완벽하게 똑같으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그동안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어떤 성품이나 생각을 알게 되셨습니까?예를 들어 최근 나눈 말씀 중에서 바리새인 시몬을 대하시는 주님을 보았죠.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며 시몬을 깨우쳐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울림을 주셨잖아요?

믿음에 미온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죄인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진리로 인도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부하나님께서도 똑같이 죄인들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 티를 흠잡지 말고 네 눈에서 들보를 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아버지의 생각도 똑같으십니다.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은 각각의 인격이 있으시지만 성품과 능력과 본질이 정확히 동일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지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님이 완전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각각 티끌만한 부족이나 불완전함이 없으시다면 당연히 똑같이 일치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완전함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죠.

10절도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종속적으로 이 구원사역을 하고 계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이 정확히 일치된다는 뜻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살아보니 뭐가 가장 어렵다고들 합니까?성격차이라고 하죠.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면 척하면 서로를 알아서 잘 통하고 너무 좋을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요?나와 똑같은 사람과 살아보면 서로가 극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배우자가 낫습니다.

그 성격이 나일 때는 몰랐지만 상대가 내 성격일 때는 견디기 힘들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흠없이 완전하시기에 삼위일체는 완벽한 존재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우리가 모르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어서 계속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죠.

신령한 지식, 하나님을 아는 심오한 지식을 멀리하면 주님을 땅의 일로만 이해했던 제자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부족한 설명으로라도 힘써 하나님지식에 대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내세에 대한 우리 믿음을 더 풍성하고 견고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어떤 하나님을 보여 주셨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여전히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또 이어가십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그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부하나님과 예수님이 동일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신 걸 말씀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님이 베푸셨던 수많은 이적을 얘기하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셨죠.

구약시대 엘리야도 죽은 자를 살렸고 엘리사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슷한 기적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죠?

엘리사도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요단강물을 이리저리 치면서 강물 위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병자를 고친 것도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라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삼년 동안 지내며 예수님께로부터 무엇을 느꼈을까요?훌륭한 인격자고 이적을 일으킬 큰 권능을 가진 분이시라는 것일까요?

저는 만약 예수님과 그렇게 동행했다면 저 분은 사람과 다르다는 걸 느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예수님을 보았다면 저 분은 사람과 다른 분이다이걸 느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인품과 생각은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과 완전히 다른 기이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은 그걸 보여줍니다.

오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 뺨도 돌려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식에게 그렇게 가르치시겠습니까?

자신의 것을 남기지 않고 가난한 사람에게 헌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이타적인 사람도 자기 것은 남기고, 남보다 자기를 더 생각할 순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셨잖아요?

이적과 은혜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그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린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영광이라도 가로채 내게 돌리려고 하죠.

주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느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인자하고 자비롭고 사랑을 베푸실 수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 중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특성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부하나님도 성령하나님도 주님과 동일하게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사람을 구원하실 복음을 계획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가늠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까지 하셨는지를 생각해 볼 수 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고 완전하시기에 항상 불변하는 존재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스스로 변하신 게 예수님의 성육신입니다.

그것도 피조물의 형상으로 완전히 낮아지게 변하셨습니다.

성자하나님이 가장 완전했던 존재형태를 버리고 스스로 변해서 인간이 되신 거예요.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뒤에도 인간의 몸을 벗지 않고 승천하셨습니다.

성육신 이전의 존재방식이 가장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동일하게 되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는 나와 똑같이 육체를 입으신 성자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기꺼이 자녀들과 똑같은 옷을 입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게 우리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더 놀라운 생각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밝히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 말씀의 핵심은 역시 우리가 주님같이 이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더 큰 사역을 해 낼 것에 초점이 맞춰진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셨던 일, 그 사랑으로 인해 파멸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하신 그 사랑이 제자들에게도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도 예수님과 똑같으십니다.

그렇기에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 안에서 행하며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책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렸죠.

식인종인 남미의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갔다 창에 찔려 죽은 다섯명의 젊은 선교사들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죽고 나서 삼년 뒤 다섯명의 여자들과 아이들이 아우카족에게 들어갑니다.

바로 죽음을 당했던 선교사들의 아내와 자식들이었습니다.

아우카족은 남자들은 죽였지만 여자와 아이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미리 의술을 배워 간 아내들은 마우카족을 돌보며 그들을 섬겼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 이들을 보고 추장이 묻습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우리를 섬기는 것이오?

선교사의 아내는 우리는 오년 전 당신이 죽였던 선교사의 가족들입니다라고 밝힙니다.

큰 자책감과 뉘우침이 이 부족에게 번지고 결국 부족 전체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서 사람이 느껴집니까, 예수님이 느껴집니까?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의 피로 속죄해 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이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하심 안에 우리를 끼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복을 누리며 사랑하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기생충의 대사로 하면 이렇게 되죠.

하나님이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말씀을 마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가 좀 되셨습니까?

이 지식은 믿으면 됩니다.

또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느껴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에 근거해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고 자녀를 삼으신 하나님은 우리도 주님과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과 타인을 사랑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더 힘을 냅시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행하면 성경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이렇게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고 그 말씀대로 열심히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하게 되고 그 부요하심을 점점 더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