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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광야시리즈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식을 가졌죠.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세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예배 할 성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성경 중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와 있는 성막에 관련 된 부분은 총 50여장에 달합니다.
그만큼 성막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은 하나하나가 구원의 과정과 원리를 보여준다고 그동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성막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엔 성막도 사라졌고 성전도 무너졌고 한 개의 성물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신 이것들이 가리키는 모든 것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도 구원 받기위해 이스라엘을 찾아가 함께 성막을 짓고 성막에서 속죄의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방법 밖엔 없는거예요.
그렇지 않은 모든 이방인들은 죄악 속에 살다 심판대로 나가는 것이죠.
오늘 성막을 통해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에 대해 더 확실한 믿음을 갖고 더욱 주님께 헌신하는 복된 마음을 주시길 소망합니다.
1. 광야의 예배처인 성막의 구조를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성막은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맞게 세워진 이동식 성전입니다.
성막 주변엔 뜰이 있고 뜰 사방엔 세마포 울타리로 외부와의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뜰에는 제물을 잡아 번제를 드리는 제단과 제사장이 손을 씻는 물두멍을 두었습니다.
성막은 조립식 콘테이너 같이 만들어서 위에 덮개를 씌워 놓은 것입니다.
그 안은 두꺼운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의 칸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미리 보내 드린 사진을 참고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성소가 나오는 데, 성소의 오른쪽에는 떡상이 있고 항시 열 두 개의 무교병 떡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왼 쪽에는 항상 불이 켜져 있는 금촛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생명의 떡, 세상의 빛과 다 관련되죠.
이 떡상과 촛대 제작 방법이 오늘 본문 뒤에 이어서 자세히 나옵니다.
성막 안에 있는 이 금촛대를 ‘메노라’ 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외교문서나 깃발에 사용하는 국장은 무궁화 꽃 안에 태극마크 모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국가에서 쓰는 국장 문양은 바로 이 성소에 있는 금촛대, 메노라입니다.
로마에 가면 티투스의 개선문이 있는데, 서기 70년에 예수님 예언대로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뒤 로마에 세운 기념비입니다.
개선문 아치 안 쪽에 보면 로마가 예루살렘에서 물건을 약탈해 오는 장면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요.
거기 보면 금촛대 ‘메노라’를 로마 군사 두 명이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이 아주 정교한 부조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국장을 만들 때 정작 메노라의 자료가 하나도 없어서 로마 개선문에 있는 메노라 형태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주전 14세기경에 기록되었으니 지금부터 삼천오백년 전인데, 현재 그 자취가 그렇게 남아 있다는 게 신비하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과 현재가 하나의 선상으로 이어져 있잖아요?
성경의 세밀한 부분까지 정말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또 성소엔 떡상, 촛대 외에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소 안에는 딱 이 세 가지가 있는 것이죠.
이 성소에서 그룹이 새겨진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지성소가 나옵니다.
지성소에는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 얹어 놓는 덮개와 같은 속죄소가 있습니다.
그 법궤 안에 하나님이 손수 쓰신 증거의 돌판을 넣어 두었습니다.
나중에 그 옆에 아론의 살구꽃이 핀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를 놓아두었죠.
이것이 대략의 성막 구조입니다.
2. 그러면 왜 이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는지가 중요한데, 8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기 위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거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이 진짜 우리를 좋아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구세주의 사명을 위해 억지로 죄인들과 어울려 사셨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주님은 정말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제자들을 좋아하셨잖아요?
하나님의 구원이란, 결국 우리를 데려다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죠.
또 하나님이 성소에 거하신다는 것은 거기에 가면 항상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은 지금부터는 내가 너희를 인도하고 보호해주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성막은 이스라엘이 진을 칠 때 정 중앙에 위치하고 열두지파가 사방으로 자리를 잡게 하셨습니다.
성막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이 늘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구름기둥이 성막에 내려 올 땐 이스라엘이 장막을 쳤고,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장막을 걷고 이동했습니다.
이백만명의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안전한 곳으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든 눈을 들면 성막의 구름 가운데 계실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을 먹이다가도, 만나로 밥을 짓다가도 언제든지 성막의 구름기둥을 보며 하나님이 거기 계심을 보며 경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막에서 이 모든 축복을 누렸듯이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똑같은 은혜를 지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동거하고 계시잖아요?
우리가 주님께 인생의 주도권을 맡겼기 때문에 주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또 언제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잖아요?히브리서 4장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도 하루 중 언제든지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피곤한 일상에서 커피 한잔의 휴식도 좋지만 잠시 예수님을 생각하고, ‘아버지’하고 부를 때 안식을 느끼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해 질 때, 죄에 무기력하게 끌려갈 때, 주님을 불러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매일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그런데 이 성막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식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9절,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성막은 오늘 명시된 재료들로만 지었고 모세에게 보여주신 설계도에 따라 지었습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처음엔 성막을 설치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윗왕 때가 돼서야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다윗의 아들에게 맡기십니다.
당연히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참된 성전을 세우실 걸 상징하는 것이죠.
그렇게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설계도대로 지은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의 임무를 솔로몬에게 넘겨주며 이렇게 말하죠.
역대상 28장19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손이 다윗에게 임하셔서 성전의 설계도를 그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건축가도 아닌 다윗이 어떻게 성전 설계도를 그릴 수가 있었겠어요?
작은 집하나 짓는 것도 정교한 설계도 없인 불가능한 일이잖아요?오늘 모세에게도 성막 모양을 보여주셔서 그대로 만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재료와 모양, 만들어진 기구, 치수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단 한 가지도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게 없다는 것이죠.
성막과 거기 있는 모든 기구들이 다 성막의 제사를 완전하게 성취하실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성막 기록은 예수님을 알되 더 철저히 알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막을 만든 사람들은 그런 걸 몰랐죠.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이 다 교회세대인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신 놀라운 말씀이 있잖아요?
예수님이 오신 다음 믿는 우리 세대에서야 비로서 성막을 예수님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막도 성전도 전체가 다 예수님에 대한 모형이고 상징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그렇게 풀어주고 있잖아요?오늘은 그 중 본문에 있는 지성소의 법궤와 속죄소 양식과 거기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1) 법궤는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입니다.
본문 크기대로 하면 가로가 114센티에 세로가 68센티 높이가 68센티로, 아이스박스만한 크기입니다.
나무상자 안팎을 금으로 싸고 이동할 때 어깨에 메도록 두 개의 채를 항상 법궤에 꿰어 놓게 되어 있습니다.
2)그리고 뚜껑과 같은 역할을 하는 속죄소는 전체를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속죄소의 좌우에는 그룹천사 둘이 날개를 맞대고 중앙을 향합니다.
22절을 보면 이 속죄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하시죠.
속죄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보좌가 옮겨 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이 법궤와 속죄소는 성막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법궤에 들어있는 증거의 돌판에는 율법을 요약한 십계명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조건으로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은 사람의 타락한 본성과 대치되기 때문에 속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겉으로 따라하는 것만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약이란 게 조건을 어기면 깨지는 것이잖아요?
백성들이 하나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이 깨지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에 속죄의 제사법을 함께 주십니다.
레위기는 속죄의 제사법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년에 한번 정해진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막 뜰에서 제물을 잡아 번제로 드리고 피를 받아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도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물의 피를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속죄소 위에 뿌려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 받았던 것이죠.
그러니까 법궤에 공의의 율법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가 그 위에 있어 이 법을 기준으로 선악간의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심판의 보좌라고 하고 의와 공의가 보좌의 기초라고 시편에서 말씀하잖아요?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속죄의 피로 덮어 버려 무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소는 심판의 보좌임과 동시에 은혜의 보좌인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소를 시은좌, 은혜의 장소라고도 번역합니다.
이 속죄소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과 죄인을 향한 사랑이 제물의 피를 통해 완벽하게 해결되는 걸 보여주는 것이죠.
이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룰 완전한 속죄의 예표인 것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은 이 성막과 지성소의 속죄가 다 예수님을 예표 하는 것이었음을 잘 설명해 줍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1절,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맞죠?
9절, 성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절,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오사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이 성막에서 섬기는 참 대제사장도 되시고, 제물도 되셔서 하나님 보좌 앞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게 얼마나 복입니까?
내게서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의 본성을 볼 때 정말 밉고 좌절이 될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감춰진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내가 미처 죄인지 알지도 못하던 것까지 다 아시는 데 그 심판의 보좌 앞에 선 나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숨이 막히죠.
그 심판을 예수님께서 그 몸으로 막아주셨다는 것, 그것이 바로 법궤와 속죄소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다른 재물의 피가 필요 없이, 완전히 우리의 죄성에 대한 속죄가 이뤄진 것입니다.
물론 매일 짓는 죄를 회개하는 것도 용서가 보장된 것이죠.
이걸 알고 믿는 것만큼 우리를 담대하게 하는 게 없습니다.
다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4. 이 성막 건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물과 봉사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을 예물을 요구하십니다.
3절에 가져 올 물품 종류가 나옵니다.
각종 귀금속과 고급 섬유와 가죽 종류, 조각목 같은 목재, 그리고 향품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2절에서 이렇게 명령하시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이 말씀에서 성막을 위해 드리는 물품에 두 가지 원칙을 주십니다.
1) 이 물품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마땅히 예물을 받으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 섬기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로써 마땅한 것이고, 더 이상 돈이 나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걸 성막을 위해 바친 물품들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주신 것을 다시 드리며 섬긴다는 것이죠.
오늘 예물로 드리라는 물품들을 보면 금은 보석과 같은 비싼 물품들입니다.
성막을 짓는 데 사용 된 금만 해도 30달란트였습니다.
한 달란트를 30킬로로 볼 때 900킬로그램의 금을 백성들이 가져왔다는 것이죠.
요즘 시세로 계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제가 대강 계산 해보니 금만 600백억원 정도가 나오더군요.
엄청나게 드렸다는 것이죠.
노예 처지에 어디서 이런 엄청난 귀금속들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서 나올 때 필요한 것들을 애굽인들에게 다 요구해서 받아가지고 나오라고 하신 말씀 기억나실 것입니다.
그냥 이별의 선물 조금 요구했던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창세기 때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창세기15장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미 창세기에 아브라함을 통해 출애굽을 예고해 놓으신 것이죠.
그때도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시잖아요?
어지간히 얻은 것을 큰 재물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특별히 자꾸 언급하시는 건 단지 부자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뜻은 아니시겠죠.
출애굽 할 때 보면 이스라엘이 원하는 금은 패물과 의복을 요구하는 대로 애굽인들이 내 놓도록 하나님께서 조처를 해 놓으십니다.
애굽인들 눈에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위대해 보이게 하셔서 달라는 대로 다 내놓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결국 오늘 예물로 드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얻게 해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리는 헌신도 결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임을 알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내게 물질을 주신 것이고 우리는 주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부 예물을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것만 받으라고 하셨잖아요?
드리지 않은 이들은 귀중품들을 가나안땅에서 쓰려고 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 삶을 꾸려야 하잖아요?
애굽의 좋은 조각목으로 가구를 만들고, 청색 자색 홍색실로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어 애굽 주인들처럼 멋지게 살아 봐야죠.
그걸로 이젠 더 이상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이 왜 없겠어요.
출애굽기3장을 보면 하나님이 좀 특별하게 ‘너희는 애굽인들에게 받은 귀한 것들로 자식들을 꾸미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헐벗고 살았어도 자식이 헐벗은 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입니까?
그 원을 마음껏 풀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지금 하나님 믿고 나가는 데, 과연 괜찮을까’ 염려로 가득하지만 자식들 걱정은 말라 하시는 것이죠.
실제 어린 자식들은 다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잖아요?
이들에게 금은 패물은 자식의 미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어느 부모든 다 그렇잖아요?
열심히 일해서 돈 벌면 다 자식 위해, 자식들과 잘 먹고 살려는 것이죠.
자식들 미래를 위한 귀중한 패물들, 처음 가져보는 보석들 이것들을 쉽게 바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고 믿지 못하면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걸 절대로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드리지 못하는 것은 물질이 없는 게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나안의 삶을 위해 움켜쥐려고 했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가나안 땅엔 필요한 게 다 있었습니다.
이미 지어진 집이 있었고 그 안에 좋은 물건들이 있었고, 잘 가꿔진 포도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누릴 자격이 없는 토종 부족들을 내 쫒고 그들이 누리던 것을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주시잖아요?
그리고 출애굽 세대는 결국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가나안땅에 가서 써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드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 것이죠.
2) 또 하나님을 위한 헌신은 기쁜 마음이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여기서 기쁜 마음이라는 뜻에는 즐거운 감정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결의에 찬 마음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할 때는 단지 감정에 이끌리기 보다는 의지가 동반 된 최선의 헌신을 말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데 장애가 될 뿐입니다.
기쁘게 헌신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봉사가 늘 기쁜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헌신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에 믿음과 의지를 다해 꾸준히 훈련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막을 세우는 작업들도 이들이 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이들이 재능과 반년이라는 시간을 드려 성막을 짓는 일도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없으면 하나님은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십니다.
다만 내가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지혜를 주시고 축복하셔서 일을 하게 하십니다.
바라기는 내게 더 많은 재물과 더 많은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이 땅의 삶을 아름답게 헌신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이렇게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하나님께 헌신해도 되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모든 것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산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막에서 이뤄지던 모든 축복은 참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다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그 복을 누리고 있고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해 봉사했듯이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깁니다.
이번에 청어람에서 코로나로 인한 예배 변화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응답자 중 절반은 온라인 예배에 만족하고 있고, 4명 중 1명은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계속 온라인 예배를 드리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각 교회마다 온라인 예배에 들어오는 성도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라인예배는 결국 예배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원하지 않는 예배와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멀어지는 것은 가장 귀한 축복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속죄소에 부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천국의 자녀 된 영광과 복을 주셨습니다.
그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예배하고 헌신하며, 성막을 세우듯 주님의 교회와 나라를 세워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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