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tHe6ptlhCIk&t=3149s
지난 주로 일곱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마치려고 했는데, 마지막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감동이 있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도 받아야 할 교회입니다.
일곱 교회 중 예수님께로부터 단 한마디의 칭찬을 받지 못한 유일한 교회가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를 미지근한 교회라고 하십니다.
현대교회의 성도들이 선호하는 것은 미지근한 신앙일 것 같습니다.
남에게 피해도 안 주고, 유난스럽게 믿지도 않고, 세상에 잘 묻어가는 게 미지근한 신앙이잖아요?
예수님의 생각은 다르시다는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경고를 하시죠.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
‘곧’이라는 번역이 빠졌는데, 당장 역겨워서 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대표자가 낭독했을 때 교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누가 나한테 구역질나는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 기분이 어떻겠어요.
이것은 신앙이 뜨뜻미지근하다고 책망하시는 게 아닙니다.
아무렴 그렇다고 역겨워서 토하고 싶다고 하시겠어요?라오디게아 교회가 미적지근한 신앙상태에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미온적 태도인 사람, 마지못해 따라오는 성도의 문제는 무엇일까요?오늘 성령께서 특히 귀를 열어주시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1. 먼저 라오디게아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바울사도가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등장합니다.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는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라가 전도해서 세운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사도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교제하고 있었던 것이 골로새서에 나옵니다.
골로새서 2장1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바울사도가 이 두 교회의 믿음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고 하죠?
또 라오디게아교회에도 편지를 보냈으니 서로 바꿔서 읽으라고 합니다.
4장16절,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만일 그 편지가 남아 있었다면 라오디게아서가 되었을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한 때 이렇게 바울의 큰 관심과 지도를 받았습니다.
삼십여년이 지나 요한사도가 이 편지를 쓰는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지금은 예수님의 무서운 질책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일까요?
우선 라오디게아라는 도시에 대해 알면 오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성경에서 읽었듯이 라오디게아는 부자도시였습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이곳이 금융도시였고, 고급직물의 산지였고, 의료기관이 있었는데 특히 안약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18절에 금, 흰옷, 안약이 이것을 빗대어 말씀하시는 것이죠.
부유한 도시의 성도들도 부자였고 교회도 돈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계시록의 다른 교회들이 겪고 있는 박해와 이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자기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자만한지가 17절에 나타납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그런데 이 자랑 때문에 토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에 대해 자만심을 가지는 게 하나님께는 항상 역겨우십니다.
교만과 자만은 대개 장점과 재간에서 나오기 때문에 우리의 장점이 죄가 되기 쉽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장점과 재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높이게 되어있거든요.
차라리 그게 없는 사람과 일하시는 게 하나님은 더 나으십니다.
매번 구할 때 주시면 되거든요.
원문의 뜻을 살리면 라오디게아교인들이 이렇게 말했다는거예요.
나는 원래 부자야, 돈이면 다 돼
그들의 미지근한 신앙과 이렇게 말함을 보시고 예수님이 판단을 내리십니다.
‘네 안에 나 없다’
자기가 최고라는 자기중심적 교만,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숭배, 하나님 앞에 자기 죄와 심판을 모르는 상태니 전도 받아야 할 형편인 것이죠.
이런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문제는 박해는 없고 항상 부자여 왔다는 것에서 더 해결의 기회가 없었을지 모릅니다.
돈이 많으면 돈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단순비교해서 잘 사는 사람이 못 사는 사람보다 자신감도 있고 삶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돈은 사람관계에서 권력도 줍니다.
한때 연예인이었던 목사님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20대에 가수로 돈을 많이 벌어 그야말로 비싼 차를 타고 다녔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전엔 허물없이 어울렸던 친구들이 자기를 대하는 게 달라지고 자기 앞에서 주눅 드는 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게 점점 기분이 좋아지더라는 거예요.
비싼 외제차를 왜 좋아하냐, 승차감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차감이 좋아서라고들하잖아요?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살면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탐욕과 교만인데 게다가 뼛속 깊이 세속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자신을 알고 그런 걸 죄로 알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일 뿐이죠.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저 자만심과 자기만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대조되게 평가하시잖아요?
17절,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2. 그렇다면 라오디게아교회에 내리시는 처방은 무엇입니까?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새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네 안에 내가 없으니 내가 들어가게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역시나 예수님이 문 밖에 서 계시다고 하시죠.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과 결단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요한복음1장12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교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만족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이 말씀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긴장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한 분들도 계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행위와 결심을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좀 상세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구원을 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는지를 계속 말씀드려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조만간에 확인 될 미래입니다.
머잖아 가보면 곧 알게 됩니다.구원의 문제에 무관심하면 정말 안됩니다.
우리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그냥 무조건 믿어야하는, 실체가 없는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 우리가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확신하라고 권합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고 교회에 오게 되면 구원에 관한 성경의 지식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존재, 창조, 인간의 죄와 타락, 예수님을 통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 그것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하나님의 심판 등에 대한 것입니다.
성도님들 모두 이 내용에 대해 들어서 알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배운 이 믿음의 내용들에 대해 찬성하실 것입니다.
이 내용들을 다 믿으시죠?내 머리가 이 구원의 이치가 옳으니 찬동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 상태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완전한 믿음의 상태가 아닙니다.
머리로 찬동하는 상태는 극도의 박해나 고난이나 유혹이나 정반대의 설득에 확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어느날 믿음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지적 찬동에 그쳐서는 안되고 그 다음은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내 인격과 삶에 모신다는 것은 당연히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본래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는 게 단지 그래야 구원 받기 때문이라는 것과, 거기에 더해서 예수님이 내 전체에 권리를 가진 주님이시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과 다릅니다.
영접은 단순한 지적찬동과 천지차이입니다.
그것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 큰 것이죠.
그것이 천국과 지옥을 가르니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지적 찬동만 한 것을 참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단지 구원의 지식을 믿겠다는 지적찬동에서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이 믿음이라면 반대할 사람이 없죠.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 결단과 영접에 대해 주님은 한번도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4장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또 망대를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 보고 시작하라고 하셨죠.
천국은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이전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적찬동만 하고, 나와서 예배만 드리고, 헌금만 좀 하고, 봉사만 좀 하고, 나머지는 옛날 살던 그대로 마음껏 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과 생활에 모시고, 주인의 자리를 양도하고, 명령을 따르고, 즐거이 함께 동행 하는 것이 영접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강요도 아니고, 내 운명 전부를 걸고 가장 신중하게 고려하고 고려해서 내 주인을 결정하고 받아들이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루고 회피할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예수님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주님 안에 있는 구원을 비롯한 모든 안전과 축복의 삶과 나대로 사는 것과 무엇이 유리한지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야 합니다.
왼손에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내 모든 게 있고, 오른손엔 예수님 한 분만이 있을 때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교해야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가 분명해집니다.
솔직히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접하기 위해서는 양 손을 비교해서 정확하게 값어치가 계산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과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계산이 나와야 영접이 가능해집니다.
이 은혜롭고 거룩한 거래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3.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구원을 확정해 주시죠.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삶이 무엇인지는 제자들이 주님과 숙식을 함께 했던 삼년여의 모습을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영접해서 사는 삶의 원리가 그와 같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제자들과 예수님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렇게 살게 되죠.
모든 것은 주님이 결정하십니다.
사마리아로 가자시면 그리로 가고, 예루살렘으로 가자시면 그리로 가는 것이죠.
제자들이 다음 날 있을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예수님께 가져와서 말씀드리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 이들은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삼 년여 동안 예수님 일행을 포박하려고 종교지도자들의 몸이 달았지만 한번도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에도 주님은 제자들이 붙들리지 않도록 조처하셨습니다.
숙식과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 혼자 준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선교비가 필요하니 가서 고기를 잡아 돈을 마련해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진 것을 다 버려두고 빈몸으로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돈 많은 청년 부자관원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가서 돈을 다 처리하고 빈손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당장 넝마 같은 옷을 벗기고 좋은 옷을 입혀 주었죠.
아버지 집에는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전도 보내실 때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원격으로는 돌 볼 능력이 없으시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너 먹고 살건 챙겨서 가라고 하셨겠죠.
그리고 돌아왔을 때 제자들에게 그러셨잖아요?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진짜 왼손에 있는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도 부족함 없이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저도 예수님을 처음 믿고 영접할 때 빈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다 주님께서 책임져 주셨습니다.
모든 것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선택한 사람들은 종교맹신주의자들일까요?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더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나를 위한 좋은 쪽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라오디게야교회는 한 때 바울사도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새로 알게 된 기독교를 열심히 배웠을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이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교회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배우고 거기에 분명히 찬동했기에 라오디게아교회도 로마종교의 사회 속에서 교회를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다음 예수님을 영접하는 단계로 결단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실 일이고 우리에겐 각자의 결심과 결단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오늘 설교를 듣다보니 내가 예수님과의 그런 거룩한 거래가 없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결심을 해야 합니다.
아직 구원의 내용을 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돈 좀 벌어보려고 주식을 시작한 주린이들은 밤낮없이 주식을 공부하죠.
구원은 내 영원한 미래가 달린 문제인데 당연히 열의를 갖고 배우셔야 합니다.
매주 설교를 잘 듣고, 매일성경도 하시고, 소요리문답도 하시고, 성경도 읽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할 만큼 구원의 지식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십니다.
다들 알만큼 충분히 교회에 다니셨어요.
예수님을 영접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싫고 나대로 살고 싶어서 주저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냐 마느냐의 문제잖아요?
예수님 안에 얼마나 좋은 것들이 차고 넘칩니까?
영생과, 평안과, 지혜와, 능력과, 사랑과, 겸손과, 절제와, 진실과, 거룩과, 부요와, 존귀와, 참된 행복과, 건강과, 기쁨과, 만족과, 저는 한없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세상에 얼핏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유리병처럼 작은 충격에도 깨져버리는 가짜들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권력의 무상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국내 최고의 기업 대표가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런데 왜 프로포플 병을 들고 병원복도를 휘청거리며 다니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것들, 동경하는 것들, 내가 자랑하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목숨이 끊어져 생전 경험하지 못한 사후의 세계, 미지의 세계로 갈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내가 과연 심판을 이길 만큼 의롭고 당당한가요?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성령께서 마음을 감화해 주시고 결단하게 도와주시길 기도하십시오.
여전히 고민이 되신다면 이 문제를 덮지 말고 계속 씨름하셔야 합니다.
21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리라
구원의 씨름에서 이기시길 축원드립니다.
이미 영접하신 분들은 오늘 말씀에서 다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점검하셔야 합니다.
내 삶의 모든 결정권자가 현재 예수님이십니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계명이 내 삶의 원칙인가요?
오늘 예수님께서 주님과 먹고 마시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과 동행하는 관계가 기쁘고 행복하십니까?
만일 여기서 벗어나 있다면 예수님을 다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내 왼손에 있는 것들, 거기엔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친숙한 삶이 있습니다.
내 오른 손엔 예수님과 예수님 안에 있는 선물들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만일 왼손에 있는 것들을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면 오른 손에 있는 예수님을 버려보십시오.
괜찮으시겠어요?
어떤 리포터가 신자들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날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게 아니다. 예수님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수 없다. 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한번 말만 해 보라고 했는데도 성도들이 ‘절대로 그 말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다’며 울먹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더 미루지 말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화려했던 인생이나, 망가진 인생이나, 별 소망이 없는 인생이나, 예수님이 들어와 함께 하시며 가장 보람되고 참 만족을 주는 인생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이 시간 가장 은혜로운 거래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계속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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