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서1장에서 6장까지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1차 포로귀환자들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성전을 건축하고 고향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오늘 7장부터는 2차 포로 귀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차 포로귀환자들의 이야기는 느헤미야서로 이어집니다.
2차 귀환자들을 데리고 온 지도자가 바로 아론의 16대손 대제사장 겸 학자인 에스라입니다.
에스라가 귀국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가 그의 직책에서 드러나죠.
예배와 말씀의 회복입니다.
에스라의 귀국 과정을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말씀의 회복이 얼마나 시급한 일입니까?
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이 일 후‘는 앞에서 성전을 완공한 뒤에 라는 말입니다.
마치 성전 건축을 끝내고 곧 이어서 일어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7장은 앞에서 성전을 완공하고 58년의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남의 역사라 58년 하면 감이 잘 안 오죠.
지금부터 58년 전이면 1967년입니다.
제가 7살 때예요.
엄청난 시간이 지나간 것이죠.
그래서 제가 설교 제목을 ’하나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이렇게 정한 겁니다.
우리교회가 설립되고 16년이 지났잖아요?
그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교회의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흐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빨리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발전이 있길 원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기나 하시는지, 내 고난의 시간도 너무 천천히 흘러가죠.
하나님의 시간보다 더 성급하면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미국에 개척9년 만에 대형교회로 성장한 한 교회가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젊은데, 교인들이 많아지자 옮길 장소를 찾다 메머드급의 미국교회를 인수했습니다.
사실 그 교회가 감당하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전도를 하고 교인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 지역 한인사회 규모가 한정적이잖아요?
우연히 예배영상을 하나 보았는데, 큰 예배당을 채우기엔 역시 성도들의 숫자가 역부족이더군요.
담임 목사의 얼굴에 수심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사방팔방 강사로 초청받고 외부활동이 많더군요.
이번에도 한국에 오면 보름 정도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출금의 압박이 그만큼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를 맞추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 유일한 시각장애인 투자 전문가 신순규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영끌이 실패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투자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기는 지루한 데 투자를 한다고 하더군요.
다들 조급하게 가는 세상에서 새겨 둘 조언인 것 같습니다.
1차포로들의 삶도 참 더디고 천천히 흘렀을 것입니다.
고국에 돌아올 때 힘든 것은 각오했겠지만 기대도 컸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간신히 작은 성전 하나 지어놓았을 뿐입니다.
기대했던 조국의 번영은 불씨도 안 보이는 것이죠.
그런 사이 1차 포로귀환자들은 다 생을 마감했던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서서히 흐르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예수님을 묵묵히 따르다 주님께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1차 포로귀환자들이나 우리들이나 세상 바벨론을 버리고 주님을 좆은 사람들이니까요.
이사야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이 배신한 이스라엘을 보고 너희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물을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이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의 인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물을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은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시죠.
은혜를 기다리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서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조급함보다 천천히 흐르기에 인내만 잘해도 주님의 타이밍에 맞출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2. 우리의 시간이 더딘 것 같다면 그때는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에스라를 준비시키셨습니다.
58년이라는 세월 중에 에스라가 태어나고 대학자로 성장한 것이죠.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포로 2세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타국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한 대학자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때 금은 보화만 강탈해 간 게 아닙니다.
어느 시대이건 침략자들은 역사적인 사료들과 예술품도 다 가져갑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도서관 규장각 도서들을 일본이 대거 반출 해 갔잖아요?
전에 프랑스까지 흘러 들어갔던 외규장각 작품을 힘들게 찾아오기도 했죠.
그때 프랑스가 반환 조건으로 고속열차 도입을 걸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때도 왕실과 성전에 보관되었던 많은 서책들이 당연히 바벨론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일부는 불태우고 일부는 가져갔겠죠.
본토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합니다.
에스라가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과 구약성경과 조국의 문헌들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절하절에 이렇게 기록하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학자가 왕에게 뭘 구했겠습니까?
돈을 구했겠습니까?
왕실 서고를 마음대로 출입하며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가 다 되고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구했을 것입니다.
10절에서 말씀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여기서 결심하였다는 것은 목적을 정하고 강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결심한 에스라가 준비되도록 하나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사관리는 철저하십니다.
특히 성경 기록자들은 각별히 선별하시고 준비시키시고 감화하셨습니다.
우리는 에스라를 대단치 않게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라와 그의 제자들이 구약 성경들을 모으고 연구해서 지금의 성경의 순서로 배열했다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 기록과 보존에 큰 일을 한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우수한 두뇌였지만 당대 세상학문을 연구해 최고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위한 준비만큼만 예수님의 제자 될 삶을 위해 준비한다면 지금과 다른 놀라운 삶이 되지 않을까요?
3. 하나님의 시간은 세상 사람들과 세상 역사와 맞춰서 흐릅니다.
내 주변과 환경이 준비되는 시간에 맞춰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십니다.
7장에 공개 된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보면 에스라가 얼마나 왕의 신임을 받았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왕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스라엘 인근 페르시아 속국들을 재판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까지 줍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가 본국에서 활동할 때 필요한 경비와 물품도 다 대주라고 조서에 기록합니다.
현금은 은 백 달란트까지 주라고 강 서쪽 재정관에게 명합니다.
당시 강 서쪽 속국에서 거둔 세금이 삼백오십 달란트라고 하니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알겠죠.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28절을 보면 왕 뿐이 아니라 보좌관과 방백들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물론 에스라서를 보면 에스라의 인품이나 일처리에 흠잡을 데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재정을 왕실의 재산에서 계속 제공한다는 것은 단지 인간적인 호감 때문일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였죠.
또 시대적으로 아닥사스다왕의 시대는 그런 정책이 나올만큼 유다인들의 위상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아닥사스다왕의 부친이 아하수에로왕입니다.
에스더의 남편이죠.
모르드개와 하만의 사건으로 왕궁에서 유대인들의 대적들이 완전히 사라지잖아요?
그때 유대인들의 위상이 어땠는지 에스더서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에스더8장17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지금은 아닥사스다 재위 7년입니다.
아직 유다인들의 영향력과 유다인들에 대한 호의가 남아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닥사스다왕이 이어서 느헤미야의 3차 포로귀환도 승낙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이런 세상 역사와 환경에 맞춰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치 사회 제도가 나를 위해 바뀌는 걸 느낄 때가 있죠.
저도 그걸 경험했습니다.
제 순위고사 때 수업시수가 늘면서 단 한 해만 교사를 두 배로 증원하는 바람에 제가 무사히 합격했거든요.
전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었죠.
강원도 정선에서 할머니 한 분을 두고 목회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이분이 기도하던 중 외롭게 여생을 보내는 인근 노인분들을 위한 센터를 짓는 꿈을 갖게 됩니다.
딱 좋은 폐교가 하나 있었지만 자금이 없었죠.
그 이야기가 알려지자 사방에서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매입할 수 있는 돈 1억9천이 만들어졌습니다.
공개입찰에서 이 목사님이 최종 선정이 됩니다.
그런데 국민신문고에 어떤 사람이 불법적인 특혜가 있었다고 올린 것입니다.
시에서는 거기에 대한 해명을 올렸지만, 이 사람이 불복하고 만일 또 투고를 하면 입찰이 무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난 번 국가정보원화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국민신문고도 먹통이 돼서 민원을 올릴 수 없게 되었잖아요?
정해진 기간 안에 민원이 올라오지 않았기에 교회가 소유권을 인수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것을 만들어 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를 잘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고 믿는 편이죠.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 기도 제목과 함께 엮여 있는 복잡한 사람들과 환경들까지 다 정리해 가시면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4. 하나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반드시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으십니다.
에스라와 귀환자들은 페르시아를 출발한 뒤 4개월 만에 무사히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9절,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천 사백 킬로미터 쯤 됩니다.
당시에 그 먼 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광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갖은 위험을 넘어야 합니다.
게다가 에스라는 왕의 군대의 경호를 거절하잖아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보호자신 데 군대에게 신변 보호를 맡기는 걸 부끄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에스라의 믿음은 실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에스라 일행이 왕궁에서 내어 준 은금과 보물들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소문은 다 퍼졌을 것입니다.
8장에 보면 귀국 도중에 위기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31절,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여정에 대적도 있고 매복한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 가족들의 안전을 맡기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율법과 예배의 회복이라는 중대한 일을 단시간에 이루지 않으시는 걸 보았습니다.
올 한 해 바쁘게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하나님의 시간과 뜻보다 내가 앞서지는 않았는지 다시 하나님께 삶의 보조를 맞추길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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